135. 레검망빤브
김치.
피자.
탕수육.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인가!
입이 아닌 눈으로만 담아도 머릿속은 행복으로 가득찬다.
단언컨데 한국인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을 한 군데에 합쳐놓으면?
아주 끔찍하고 또 감히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되는 발상이지만.
그런 발상을 실제로 떠올리고, 행동으로 옮긴 매드뻐킹쿠커가 존재했다.
그렇게.
존재해선 안 될, 음식계의 프랑켄슈타인 김치 피자 탕수육은 탄생했다.
일명 김피탕.
세상 사람들은 김피탕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저기서 피자는 '피자 치즈'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문제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튀김의 촉촉함과, 기름과 육즙의 촉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탕수육!
본디라면 그 위로 호박 보석을 녹인 듯 찬란한 빛깔의 소스가 부어져, 윤기가 좌르르 흘러야 한다.
하지만 이 김피탕은 있어야 할 장소를 착각한 치즈의 존재가 위화감을 만들어낸다.
탕수육을 들어 올리면 끈적거리며 늘어지는 하얀 천! 그 사이에서 메롱하듯 보이는 김치들!
[이건!!!!! 현실에선 존재해선 안 되는 음식이다!!!!!!!!!! 사탄이 현세에 음식의 형태로 내린 저주야!!!!!!!]
많은 이들이 경악하며 입을 모아 말했다.
도대체 그딴 걸 왜 먹냐고.
도대체 그딴 걸 어떻게 먹냐고!!!
그러나.
아주 의외로.
에베레스트 등반자급의 용기와 모험심을 가진 시식 경험자들의 말에 의하면, 맛 자체는 준수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본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가지를 한 군데로 합쳐 놓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어떤 맛이 나오는지.
그런 논리로, 이것도 사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스.
검은색.
망사.
빤스.
브라.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뭔가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단어들!
그런 점에서 김치, 피자, 탕수육(쉼표 중요)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합치면 레검망빤브가 되는데-
'레검망빤브도 사실 김치피처럼, 막상 먹어보면 괜찮은 거 아닐까?'
[이성의 최재훈 : 진심이고?]
나도 안다.
지금 내 사고방식이 김치피를 창조한 매드뻐킹쿠커 만큼이나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상 속의 권지현 : 그게~(에코) 남성 분들한테~ (에코) 가장~(에코) 인기가 많은 거래요~(에코)]
[상상 속의 권지현 : 맛있게~(에코) 드세요~(에코)]
달라진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응해야 한다.
어긋난 세계를 따라, 나 또한 어긋나야 할 필요가 있다.
'레검망빤브는 남자들한테 가장 인기가 많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뇌를 절인다.
그렇게 내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세뇌?'
아니.
이건 설득-
'도 아니야.'
이건….
'그래.'
이건 짚고 넘어가는 거다.
레검망빤브가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먹거리다.
그건 새삼스럽게 세뇌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는 매우 보편적인 진리이며 사실이었으니까.
레검망빤브를 맛있게 먹는 걸 마다하는 남자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음…."
나는 다시 한번 레검망빤브를 내려다보았다.
꿀꺽.
하고 절로 군침이 돌-
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
[상상 속 권지현 :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에코)]
레검망빤브를-
[상상 속 권지현 : 맛있게(에코)]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레검망빤브의 가슴 부위를 집어 들었다.
"헉…."
그 순간, 계단을 올라오던 주민W(WOMAN ㅎ)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복도에서 레이스 달린 검은 망사 브래지어를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상황이다.
마치 빵을 먹고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
"…."
주민W과 내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것은.
이러면 마치 내가 이상한 일을 하고 있던 걸 주민W에게 들켜버린 상황 같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런 이상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남자로서 레이스 달린 검은색 망사 브래지어를 손에 들고 있었을 뿐.
전혀 켕기는 게 없는 나는 자연스럽게 주민W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아, 안녕하세요!"
'아!'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주민W과 내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이유.
주민W은 마치 검색 사이트에 '여자 인싸 패션'이라고 검색하면 나올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어색한 건 바로 여자가 인싸이고, 내가 아싸였기 떄문이다.
아싸와 인싸는 마치 물과 기름.
호날두파와 메시파!
상극인 성질상 만날 경우 어색한 분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주민W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어딘가 칠칠치 못한 표정이 됐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싸를 가까이서 처음 접하는 게 처음이라 신기한 것 같았다.
"뭐, 하세요?"
여자가 흥미진진하게 물어왔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남자가 복도에서 레이스 달린 검은색 망사 브래지어를 들고 있는 이유가 또 뭐가 있겠는가.
"보시는 대로입니다."
"네?"
"(인싸라서 당연히)알고 계시겠지만, 남자들한테 가장 인기가 많다네요."
"아…."
뭔가 당황한 듯하더니-
"뭔지 몰라도, 저랑 같이 하실래요?"
이내 능글거리면서 말한다.
"아뇨."
"네? 에이, 그러지 마시-"
"선물 받은 거라 남한테 못 나눠줍니다."
여자가 감히 남자의 브래지어를 탐하다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행태에 나는 단호하고도 강경히 말했다.
"아, 예…."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무례하고 또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건지 깨달은 건지, 정신을 차린 얼굴로 황급히 자릴 떴다.
과연, 권지현 씨가 본 것 중 가장 비싸다는 레이스 달린 검은색 망사 브래지어.
여자들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탐을 내게 만들 정도다.
역시.
이 정도 되는 걸 그냥 먹는 건 아깝다.
나는 인터넷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레검망빤브 맛있게 먹는 방법'
"…."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브래지어 맛있게 먹는 방법'
'….'
마찬가지.
이상하다.
이러면 마치-
이러면 마치…!
'이 세계에서 레검망빤브를 먹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 일 같지 않은가.'
그 순간.
쨍그랑!
"…!"
머릿속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대체 뭘….'
정신이 든 나는.
나는-!!!
-라톡!
"누구징."
집안에 들어와서 상자를 내려놓은 뒤 문자를 확인했다.
* * *
제나는 본인의 차 운저석에 앉아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나 : 야]
어딘가 초조한 듯.
평소보다 훨씬 더 시큰둥한 얼굴을 한 그녀의 입꼬리가-
[최재훈 : ㅇㅇ?]
올라갔다.
[제나 : 니 오늘 방송 안 하지?]
[최재훈 : ㅇㅇ 쉬려고]
[제나 : 약속 있음?]
[최재훈 : ㅇㅇ]
내려갔다.
[제나 : 어떤 년]
[최재훈 : 많은데]
"많다고…?"
대답으로 끽해봐야 권지현이나 그 편집자 정도가 나올 줄 알았다.
알았어도, 막상 그 권지현이나 편집자가 거론되면 불쾌한 기분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이상가는 답이 나와 버렸다.
최재훈이 성격이 좀… 특이해도 매력적인 남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자들이 주변에서 떠받들어준다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많다니.
제나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녀의 생각이 복잡해지려던 찰나였다.
[최재훈 : 치킨 배달원, 피자 배달원 영화 등장인물들, 만화 등장인물들 등 개많음]
[최재훈 : 오늘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빈둥거릴 예정]
"아."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크게 안도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평소의 비웃는 듯한 인상으로,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액정을 두들겼다.
[제나 : 뭐라는 거야]
[제나 : 어쨌든 그러면 오늘 딱히 약속 없는 거지?]
[최재훈 : ㅇㅇ]
[제나 : 그러면]
[제나 : 지금 시간 되냐]
그녀의 옆 좌석에는 꽃다발.
그리고 딱 봐도 '남자'가 좋아할 법한 화려한 디자인의 술병이 놓여져 있었다.
[최재훈 : 왜?]
[제나 : 안됨?]
[최재훈 :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이냐고]
[제나 : 어제 일 축하
"…."
라고 하기엔 뭔가 싫었다.
그게 쑥스럽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그녀는 시큰둥하게 문자 내용을 수정했다.
[제나 : 되는지 안되는지나 말해]
[최재훈 : 안댐]
"…."
단호한 대답.
아직 피곤해서 예민했을 수도 있는데 이건 좀 아니었나?
역시 그냥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나?
그녀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후회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그때-
[최재훈 : 사실 댐]
머릿속에 평소 그가 자신을 놀릴 때의 조소가 떠오른다.
"이런 씨."
신경질을 내는 그녀의 한쪽 입꼬린 평소처럼 올라가 있었다.
[제나 : 어이가 없네]
[제나 : 아무튼 된다는 거지?]
[최재훈 : ㅇㅇ]
제나가 확인한 건 거기까지였다.
[최재훈 : 근데 어디서 만나게?]
그 다음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다.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술병을 챙겼다.
그리고 꽃다발을-
"…."
내버려 둔 채 차에서 내렸다.
장신인 그녀의 길다란 다리가 차에서 나와 곧바로 건물에 들어선 뒤, 계단을 올라갔다.
똑똑똑.
그리고 그녀의 길다란 팔이 문을 두드린다.
이내 문이 열리고 둘은 마주했다.
"짜잔."
따위를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심하게 술병을 내밀어서 보여줬다.
뭐, 최재훈의 성격상 이 정도만 해도 호들갑스럽게-
"뭐여."
반응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는데.
그의 반응은 '서프라이즈!'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뭐여'였다.
예상과는 달리 당황에 가까운 그 반응에 제나까지 덩달아 당황했다.
"어떻게 알고 왔대?"
"니가 그때 술 마실 때, 언제든지 놀러 오라며."
그녀가 답지 않게 눈치를 보며 답했다.
"아."
그제야 최재훈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아니, 깜짝 놀랐네. 이거 뭐야, 서프라이즈?"
그에 따라, 굳어 있었던 제나의 표정 또한 평소의 조소를 되찾는다.
그녀는 최재훈의 반응에 안도하면서, 겉으론 무심하게 술병을 건넸다.
"오~"
최재훈이 확연히 기뻐한다.
"이거 뭐야?"
"술."
"술? 술이 뭐 이렇게 생겼대."
"…술이 그렇게 생기면 뭐."
"아니, 재밌어서."
흥미롭다는 듯, 다소 특이하며 화려한 색채의 병을 살펴보는 최재훈을 보며 제나는 생각했다.
'꽃도 가져올 걸 그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쨌거나, 난 간다."
볼일은 끝났다.
어딘가 아쉬웠지만 애초에 기대도 않았기에 그녀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계단을-
"뭐야, 그냥 가게?"
내려가려는데.
애초에 기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제나가 고개만을 돌려 눈치를 봤다.
"기껏 왔는데?"
"…그럼?"
목이 늘어난 티셔츠.
그녀가 저도 모르게 쇄골에 갈 것만 같은 시선을 힘겹게 거두어 그의 얼굴에 고정했다.
"밥 먹었어?"
먹었다.
그녀는 고갤 가로저었다.
"그럼 뭐, 밥이라도 먹고 갈래?"
그에 제나가 피식 웃으며 답한다.
"뭐야, 나랑 같이 있고 싶어?"
"싫음 말고."
쾅.
"…."
그녀가 터벅터벅 다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열려 있어~
그녀는 짧게 심호흡을 한 뒤, 최재훈의 집에 들어섰다.
여기가 최재훈의 집.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 주변을 살펴보는 제나.
"…어?"
의 눈동자가, 어떤 부분에 고정되더니 흔들렸다.
속옷이었다.
여성의 속옷.
그것도 아주 선정적인.
남자의 집에 여자의 속옷이 있는 경우.
삼피의 기준에선 하나 밖에 없었다.
여장.
은 당연히 아니다.
물론, 워낙 곱상하게 생긴 최재훈이다.
한다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은근 궁금하기도 했다.
허나, 그녀가 알기로 최재훈은 여장을 즐길 성격 같지는 않았다.
고로 답은 '여자'였다.
삼피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엉? 왜 그래. 또 뭐가 불만이야."
제나에게 줄 물을 떠온 최재훈이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어떤 년이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는다.
"어제 뭐했어?"
제나는 어제 최재훈이 방송을 끄고 난 뒤에 대해 자연스럽게 은근히 물었다.
"어제?"
최재훈은 '어제'를 떠올렸다.
일주일의 대장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후련한 기분으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잠에 들었던 그 순간을.
"뭐, 별거 있나. 잤지."
그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
그 모습이 지금의 제나에겐 다르게 받아들여졌고.
권지현.
머릿속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재훈의 윗집에 사는 그 여자의 얼굴이.
힘겹게 불길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제나의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왜, 뭔 일이야. 아까부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
-라톡!
최재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권지현 : 드셔 보셨나요?]
[권지현 : 어떤가요? ㅎㅎ]
"하."
최재훈이 난처한 듯 쓰게 웃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누구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나의 미간이 구겨졌다.
"응? 아, 지현 씨. 아, 맞다."
최재훈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문자를 작성한다.
[최재훈 : 지현 씨]
[최재훈 : 지금 바쁘세요?]
[권지현 : 아니요 ㅎㅎ]
뭘까.
아까부터 평소와 달리 묘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최재훈 : 그럼 내려오실래요?]
[최재훈 : 같이 놀죠]
"오!"
문자를 확인한 권지현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아무래도 케익이 먹혀도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자신의 '남자' 이론이 공고해지는 걸 느낀다.
그녀는 우쭐거리며 답장을 보낸 뒤,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우나, 누가 봐도 꾸민 듯한 치장을 재빨리 끝내고.
빨라진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최재훈의 집에 들어서자-
"어."
"…."
평소보다 언짢아 보이는 제나 웨스트가 그녀와 마주했다.
'니가 왜 여깄어?'
같은 종류의 시선이 오갔다.
"지현 씨, 오늘 방송 하세요?"
"저요?"
휴방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뇨."
그녀는 제나를 한 번 본 뒤 답했다.
"오, 잘 됐네. 그러면 이거 모인 김에 땁시다."
최재훈이 제나에게 받은 술을 들어 보이더니 바닥에 상을 차렸다.
제나와 권지현이 그 앞에 앉으며 대화를 이었다.
"오, 뭐예요?"
"술이요."
"오… 예쁜데요?"
"얘가 갖다 준 건데, 같이 마십시다."
"아니 뭔, 이 시간에."
제나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는데, 권지현에겐 그게 우쭐대는 것처럼 보였다.
"재훈 씨!"
"네?"
"그, 술 마시기 전에. 제가 드린 것부터 드시죠!"
그 말에 어딘가 우쭐대는 것처럼 보이던 제나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어…."
최재훈의 시선이 방황했다.
"그걸요…?"
"아, 혹시 벌써 다 드신 건가요?"
"어, 그건 아닌데…."
"아니면 별로였나요?"
이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여유를 잃고 절박하기까지한 권지현의 태도.
최재훈으로선 난처할 따름이었다.
'그걸' 먹자니.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 이건 기회였다.
권지현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기회.
"알겠어요, 준비할게요."
최재훈이 부엌으로 향했다.
그렇게 권지현과 제나만 남게 됐다.
"…안녕하세요."
권지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쪽, 오늘 휴방 아니지 않나?"
제나가 반갑게 화답했다.
"방송 규모도 작은데, 열심히 해야지."
그리곤 평소의 비웃음.
권지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거 아세요?"
"응?"
"재훈 씨, 술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
"뭐?"
제나가 깜짝 놀랐다.
"제가 드린 건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권지현이 우쭐대며 말을 이었다.
"그쪽이 드린 것보단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짧은 딜교환이 끝남과 동시에 최재훈이 돌아왔다.
그의 손엔 큰 접시가 들려 있었다.
그 접시 위엔 자신이 준 게 들려 있겠고.
권지현은 자신의 선물을 띄워주기 위해 케익의 비쥬얼을 떠올리며 박수를 쳤다.
"와~ 맛있겠다~"
이내, 상 위에 접시가 놓였다.
"…."
"…."
접시엔 권지현이 제나에게 '그쪽이 준 것 보다 맛있게 먹을 거라' 자부한 게.
"와~맛있겠다~"고 환영한 게 올려져 있었다.
진한 색채.
강렬한 비쥬얼.
하늘거리는 질감.
남자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레검망빤브.
야한 여성용 속옷이었다.
"미친년…."
제나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