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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133화 (130/361)

133. 가짜와 진짜2

핑크빛으로 상기된 피부 위로 땀 구슬이 흘러내린다.

눈은 황홀한 듯 촉촉하다.

"하아…."

여자가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순대 구빱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소울 푸드인 구빱 정도 되면 그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툭.

권지현이 국물을 들이켜고 거의 다 비운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한 숫가락을 마저 입 안에 넣는다.

육수의 풍미가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진하다.

그래서 느끼하다.

그걸 위해 이게 존재한다.

-아삭.

깍두기의 입맛을 돋구는 시큼한 풍미가 탄력 있는 식감이 거듭됨에 따라 입 안에 퍼진다.

육수의 느끼한 풍미를 중화시키고, 조화를 이룬다.

그 안에서 흰 쌀알들이 터지고 뭉개지며 부드러운 단맛을 피워낸다.

"하."

그렇게 그릇은 비워졌고, 배는 채워졌다.

숨을 쉴 때마다 입과 코에 남아 있는 냄새가 여운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몸 전체에 퍼진 국밥의 따듯한 열기는 겨울의 찬공기를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당장 자리에 드러눕고 싶어지는 압도적인 만족감!

"이게 구빱이지."

압도적인 가성비에 전율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권지현.

"삼촌, 잘 먹었습니다."

계산을 위해 사장을 국룰에 따른 호칭으로 호출한다.

"아유, 그래요. 잘 먹었어?"

"예, 오늘도 이거였습니다."

권지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랗고 온순한 강아지 같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사장은 저도 모르게 딸을 볼 때나 지을 법한 미소를 지었다.

"아유, 그래요.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맙네. 어, 그런데-"

"넵?"

"요즘은 애인 분이랑은 같이 안 오시네?"

"애인…이요?"

권지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구석 겜순이로서 여중여고군대 테크를 탄 뒤 곧바로 방송인이 된 그녀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애인'이란 단어는 '낯선'이라는 단어보다도 낯선 것이었다.

‘낯선 천장이다’를, '애인 천장이다' 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대화의 맥락을 따라가기 위해 고민했다.

이내-

"아? 아! 아니에요."

손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강하게 부정한다.

높게 묶은 포니테일이 꼬리처럼 흔들린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혐오보다는 쑥스러움.

풋풋한 반응에 사장이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 아이고, 난 또. 둘이 그렇게 친하고 또 잘 어울리길래~ 영락없이 애인 사이인지 알았지."

"아…."

만약 아부를 위해 한 말이었다면 권지현 기준에서 만점짜리였다.

그녀는 일단 형식상은 난처하다는 듯 쓰게 웃었지만.

그 쓴웃음은 남이 보기엔 아무리 봐도 좋아 죽는 함박웃음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선 권지현이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녀는 어제 당사자인 최재훈보다 더 몰입해서 그의 미션을 지켜봤다.

저격을 당할 때 그보다 더 화를 냈고.

대리들이 제재당했을 때 그보다 더 통쾌해했으며.

프로들과 접전을 벌일 때 그보다 더 마음 졸였으며.

최재훈이 미션을 클리어 했을 때, 그보다 더 기뻐했다.

그리곤 곧바로 축하 문자를 보내려 했는데- 어제 미션이 꽤 늦은 시각에 끝이 났다.

'이 시간까지 방송 지켜보고 있던 거 아시면… 기뻐하시려나 기분 나빠 하시려나….'

결국 고민 끝에, 자고 일어나자마자 문자를 보내는 거로 했다.

그녀가 보낸 축하 문자는 숫자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자고 있나보다.

'쩝.'

답장을 기대한 그녀는 아쉬워하며 발길을 옮기려다-

[아이디어의 권지현 : 잠깐]

좋은 생각이 났다.

* * *

짤랑!

시내의 한 고급 베이커리.

따분하다는 얼굴로 카운터에 서 있던 젊은 남직원이 시큰둥하게 문쪽을 쳐다봤다.

남자는 평소 그렇게 성실한 직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객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어서오세요~"

없던 성실함이 절로 생긴다.

높게 묶은 포니테일이 잘 어울리는 차분한 인상의 미녀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웃으니 또 인상이 돌변해서 수더분해진다.

남자로 하여금 호감에서 비롯된 성실함을 일깨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녀였다.

그녀, 권지현이 가게를 둘러보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는 몸를 돌려 거울로 얼굴을 확인한 뒤, 안내를 위해 친히 카운터에서 나와 그녀에게 다가가는 성실함을 보였다.

"뭘 찾고 계신가요?"

"그, 어떤 분을 축하해 주려고 하는데-"

"아, 예예."

"그, 남자 분들한테 뭐가 인기 있나요?"

"아."

'남자분들'.

여자의 방문 목적이 다른 남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은 남자의 흥미 단번에 식는다.

그는 다시 태만한 태도로 돌아와서 권지현에게 건성건성 추천했다.

조그마한 크기에 터무니없는 가격.

형편 없는 가성비의 케이크를 아랑곳 않고 흔쾌히 집어 드는.

성격까지 모범적인 그 모습에, 남자는 어딘가에 있을 케이크의 주인에게 짜증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 * *

[로맨틱의 권지현 : 선생님 제법이십니다]

"헤헤."

혹시 모양이 망가질까.

케이크를 신줏단지 안듯 양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귀가한 권지현이 최재훈의 집 앞에 섰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무심한듯 아닌 듯 챙겨주는 걸 좋아한다 했지….'

최재훈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공부하다가 얻은 정보.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어제 '이래도 되는 건가?' 문 앞에 두고 갔었던 자양장강제.

그에 최재훈이 예상과 달리 크게 감동을 받자-

'아하!'

감을 잡았다.

라고, 권지현은 생각했다.

지금 그녀는 마치 남자에 대해 다 알기라고 한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어떡해, 지현 씨… 저 너무 감동 받았어요

-하하, 재훈 씨가 기쁘다니 저도 기쁩니닷!

-혹시, 오늘 밤에 시간 되세요?

-물론이죠!!! 아빠! 저 시집가요! 엄마! 사위 데려갈게요!

-씬난당~

"헤헤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기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케익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걸 한참 동안 헤실거리며 바라보다가 겨우 자리를 떴다.

* * *

여자는 오늘도 모자에 마스크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치는 사람들.

조금도 그녀를 수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긴 팔과 다리를 쭉쭉 내뻗는 걸음걸이는 자연스러운 걸 넘어 당당하고 멋들어졌다.

도무지 수상한 사람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빌라 안에 들어설 때도 그랬다.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선 일말의 수상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가 도달한 곳은 당연히 그녀의 집 앞-

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지인이나 친구의 집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완벽한 타인.

허나 그녀에겐 단순한 타인이 아닌, 어떤 스트리머의 집이었다.

숨컷.

며칠 전.

그는 야외 방송을 할 때 어떤 음식집을 방송에 노출시켰었다.

[우리 국밥]

그가 단골이라던 국밥집.

제목 : 야 저거 국밥집

내용 : 사실상 숨컷 어디 사는지 밝혀진 거 아님?

요즘 세상에 인터넷에 등록되지 않은 음식점이 있을까.

숨컷의 거주 지역을 밝혀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ㄴ : 우리 국밥만 한 5천만개 되는 것 같은데요? ㅋㅋㄴ : 뭔 놈의 우리 국밥이 이렇게 많아 ^^ㅣ발

ㄴ : 진짜 '우리'네 ㄷㄷ

하지만 '우리 국밥'이란 상호명은 그렇게 유니크하지 않았고.

전국에 있는 '우리 국밥'의 수만 한가득이었다.

ㄴ : 아 ㅋㅋ 절대 포기 못하지 하나하나 확인해서 반드시 숨컷이랑 현실 정모 간다 ㄴ : 숨컷 실물 딱 대

ㄴ : 선생님들 몹시 역이 겹네요

ㄴ : 숨컷 실물이 아니라 교소도 실물 딱대겠지

ㄴ : 숨컷 실물 말고 여러분 때문에 닳고 닳은 부모님 등골이 아직 실물로 남아있는지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작정하고 추려낸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당차고도 역겨운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정말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없었다.

현실은 인터넷과 달리 익명성이라는 방어구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법이라는 제약이 존재했으니까.

인터넷 여포도!

인터넷 잭 더 리퍼도!

인터넷 UFC 챔피언도!

현실에 나오면 평범한 사회인A에 불과했다.

ㄴ : 게다가 저거 알아봤자 뭐함 ㅋㅋ 정작 집이 어딘지 모르는데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까지.

단순히 '좋아하는 스트리머'를 만나기 위해 그것들을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지금까진 딱 한 명.

숨컷의 집 앞에 서 있는 그녀 한 명뿐이었다.

"하아…."

여자가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숨컷 때문이었다.

강렬한 눈, 약간 올라간 입꼬리.

집중할 때 보여줬었던 마치 '여성'같이 야성미, 혹은 여성미 넘치는 표정.

터지는 아드레날린.

미션을 성공할 때 보여줬었던 마치 '여성'같이 폭발적인 모습.

어제 그가 미션 마지막 방송에서 보여줫었던 모습들을 떠올리자니 절로 숨이 뜨거워졌다.

"하아… 하아…."

무관한 남자의 집 앞에서 흥분하고 있는 지금의 꼬라지를 보면 믿기 힘든 일이지만.

여자는 사회적으로 꽤 훌륭한 지위를 갖고있었다.

그에 걸맞게 바쁜 인생을 사는 그녀는.

어제, 선물을 주고 난 뒤 한동안은 그의 집에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방문하고 싶어도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어제 그, '남자치곤' 너무나도 당차고, 씩씩한 그 모습을 떠올리자니 주체가 안 됐고.

결국 무리를 해가면서 시간을 내서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여자에게 숨컷은 그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아니었다.

'운명의 상대'

그녀가 문을 쓰다듬었다

마치 문 너머에 있는 숨컷을 쓰다듬듯.

'나 말고 또 당신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숨컷의 본모습.

여자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숨컷이 자신과 똑같은 부류일 거라고.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쌉또라이변태새끼야!"

그가 알았다면 그렇게 기겁을 했을 상황이었다.

그녀는 문고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더니 이내, 무언가를-

"응?"

내려놓으려다가 발견한다.

"케익?"

이내, 그녀는 케익을 두고 간 이가.

방송에 노출된 국밥집을 토대로 숨컷의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온 팬 중 한 명이라 판단하고 중얼거린다.

"소름 돋는 년."

그래.

정말로 '소름 돋는 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불쾌했다.

자신 말고도 이렇게 숨컷에게 접근한 이가 있는 건 차치하고-

"…."

케익은 아주 예쁘고 앙증맞아서-

그래.

실로 '남자'들이 좋아할 법했다.

여자는 그게 거슬렸다.

'이 남자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년이-'

숨컷에게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케익을 짓밟-

"…."

을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케익을 두고 간 이의 정성이 불쌍해서.

는 당연히 아니였다.

흔적이 남으면 숨컷이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들고 온 선물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서, 케익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었다.

틱.

그 반동에 케익이 움직이며 모습이 망가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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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본모습을 알고 있어요

제 앞에선 당신의 본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걸 입은 당신의 본모습을 보여주세요

저도 당신이 원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걸 드리거나요

010-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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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둔 쪽지를 선물 위에 올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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