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뒷풀이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극장 안은 적막하고 또 삭막해진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예외도 있다.
영화가 너무나도 훌륭한 경우.
관객들은 여운에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지금 숨컷의 방송이 그랬다.
[숨컷미션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뭐라누 리치TV의 자랑이지ㅋㅋ]
[개소리 ㄴ]
[아 ㅋㅋ 알 만한 거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ㅋㅋ]
[그래서 이적 절대 안 한다던 장혜환 어떻게 됐죠? ㅋㅋ]
[아니라고]
[^^ㅣ발년들이 말 ㅈ같이 하네]
[숨컷까지 떠나면 우리 옐로TV 어떻게 하라고]
[그냥 계속 동시송출하면 안 될까...?]
[하긴 옐로TV 이 ㅈ망 플랫폼에서 뭘하겠누]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정확하누 ㄷㄷ]
-숨컷사랑개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 THE 챌린저 1주일 컷이시여 ㄷㄷ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아니 이 새기 ㅋㅋ 이걸 수금 타임 없이 바로 방종하네 ㄹㅇ 개쿨한거 보소 호감 그 자체
-MGKAN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숨컷 님이 2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처음부터 하늘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견디기 힘든 천좌(天座)의 공백도 이젠 끝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리치TV 하늘에 서겠다.
찰랑!
찰랑!
찰랑!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원 소리!
그때-
-♪
핸드폰이 울렸다.
(X, XXX, XXX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숨컷 방의 후원 릴레이를 보고 감명받은 김경훈의 팬이, 그의 핸드폰으로 직접 후원을-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돈의 출처는 타임 앤드였다.
엄청난 액수.
하지만, 김경훈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김경훈의 돈이었으니.
그 돈은, 타임 앤드가 김경훈에게 받은 의뢰금을 돌려준 거였다.
그러니 기쁘긴커녕, 도리어 화를 돋울 뿐이었다.
더는 없을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미션을 완수하여 후련하고 또 당당한 모습으로 방송을 종료한 숨컷.
그런 숨컷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청자들.
그 안에, 간간이 보이는 '자신의 시청자'들.
때마침 도착한 타임앤드의 환불금은.
김경훈이 자신의 계획이 더는 없을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상황을 보며 간신히 삭히고 있던 화를 돋울 뿐이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날아가는 걸 느꼈다.
쨍그랑!
쨍쨍그랑!
한동안 김경훈의 집엔 물건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와, 남자의 비명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와!!!!!"
"나이스!!!!!!!!!"
"호우!!!!!!"
"뭐? 뭐우?"
"메우!!!!!!!"
짝짝짝짝!!!
월드컵에서 골이 나와도 이 정도일까 싶은 열기가, 거실에서 야식을 먹으며 거대한 화면을 바라보던 팀 BAY의 팀원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숨컷의-
<승리!>
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와, 진짜.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그러게, 렐드컵 결승보다 떨리네."
"우리 결승 가본 적 없잖아."
"보는 거 임마…."
"아."
"응?"
팀원들이 흥분한 가운데.
정작 가장 흥분할 만한 김희은이 가만히 있었다.
"니 뭐하냐?"
-컷!!!!!!
"컷!!!"
"컷컷컷~~~"
"크~ 귀엽다 진짜."
그러던 와중 방송은 종료되고-
-MGKAN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김희은이 뭘 하고 있는지 밝혀졌다.
"이야아아아!!!!!!!!!!!!!!!!!!"
그제야 일어나서 뒤늦게 환호하는 김희은.
"아니, 미친."
"백만 원?"
"아니, 너 미쳤어?"
"뭐가 말임까!?!?"
"뭐 저렇게 많이 후원해?"
"저 돈 많슴다!!!"
"아."
"그렇군요."
팀BAY의 에이스이자, LKL의 3대 정글러이자, 스타 중 한 명으로서 연에 억대 수익을 챙기는 그녀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 희은아."
"넵!?"
"그 뭐냐… 적당히, 알지?"
감독인 한시영 정도만 넌지시 말할 수 있었다.
"야 근데, 김희은."
"넵?"
"너 막판 어떻게 됐냐?"
김희은은 마지막 게임까지 플레이하고 뒤늦게 거실로 나와 합석한 거였다.
그녀가 특유의 생기발랄한 웃음을 지으며 브이를 그렸다.
"저격 성공, 게다가 이겼슴다!"
"오!!! 그러면, 미팅권 사실상 확정 아닌가!?"
"그렇지, 얘 전적 보면 백프로야."
"희은아!!!!!!!!!!!"
"넵!?"
몸을 숙여 피자를 집으려던 김희은을 한시영이 만류했다.
"그거 먹지 마!!!!!!!!!!!!!!!!!!!"
"에? 왜, 왬까? 저 미팅권 땄는데…."
"누가 그런 식은 피자 먹으래!!!!!! 감독님이 지금 뜨끈뜨끈하게 새로 시켜줄 테니까, 그거 먹어!!!!!"
"오."
"짜식!!!!!!!! 사랑한다!!!!!!!!! 니가 이 감독님을 살렸다!!!!!!!!!"
한시영이 격하게 달려들어 김희은에게 헤드락을 걸은 뒤, 사정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윽… 그 대가로 저는 죽는 검까."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한시영이 격하게 기뻐하자, 김희은도 새삼 체감이 되었다.
그 숨컷과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와아아아!!!!!!!!!!!!!!!!!!!"
"야야~~~야야야야~~~"
김희은과 한시영이 어깨동무를 하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근데 감독님."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흥을 깬다.
"응?"
"그거, 희은이가 나가도 되는 거예요?"
"엉?"
"그 뭐냐, 팀의 에이스인 희은이가 그런 데 나가면 팀의 이미지가 약간 좀 뭐라 해야 하나, 경박해지지 않을까요?"
김희은이 환호하는 상태로 굳은 얼굴로, 그녀를 직시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라고 말하는 눈빛.
하지만 그녀는 김희은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시영만 설득하면, 그녀의 의견 따윈 중요치 않다!
"그러니까, 제가 대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헤헤.
환관을 떠올리게 하는 야비한 미소였다.
"아니, 그러면 팀에서 제일 듣보인 내가 나가야지!!!"
"감독님 저는 성욕이란 게 없습니다!!! 문제 일으킬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를 계기로, 무수히 많은 참가자가 지원한다.
김희은보다 '많이'는 몰라도, '먼저' 숨컷을 알고 팬이 된 그녀들이었다.
"연봉 반납할 게요!!!!!!!"
꽤나 치열한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가라앉는다.
"…."
순살치킨을 시켰는데 살이 모조리 뻑뻑살.
콜라는 헵시.
그런 상황에 처한 듯, 배신감과 망연함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김희은의 표정을 보고도.
더 이상 그녀의 미팅권을 탐할 수는 없었다.
"와 그런데, 진짜 개 쩌네?"
이어서 도란도란 모여서 야식을 먹는 도중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걜 이기다니."
걔.
필시 페이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벤트 참여한 것도 그렇고, 걔도 여자긴 여자인가 봐. 그 겜시오패스가 봐줄 정도면."
"그러니까."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숨컷이 이긴 건 페이스가 봐준 덕분이라고.
"무슨 말씀이심까들!!! 숨컷 님 만나 보지도 못했으면서, 얼마나 잘하는지 아심까!?"
그러자 김희은이 열성적으로 설파한다.
설파하지만, 생각 자체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는 딱히 그녀들이 숨컷을 무시해서는 아니었다.
수차례 페이스를, 페드라를 상대해 본 그녀들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동등한 조건에서 페이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페이스를 상대로 승부는 졌지만 게임을 승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 잠깐."
팀원 중 한 명이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있는 한시영을 쳐다봤다.
"감독님."
"엉?"
"방금 페이스 걔, 전적 보면 걔도 미팅권 당첨될 것 같던데."
"…?"
"그러면 우리 '그 일'로 협상할 때, TC1이랑 경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한시영의 얼굴에서 단번에 술기운이 달아났다.
"니, 니들끼리 먹고 있어 봐!"
그녀는 급히 사무실로 향했다.
'총알'을 확인하기 위해.
* * *
"크, 새끼."
"니도 결국 젖 달린 여자였구나."
"3연벙보다 기계적인 니 영혼에도 인간성의 파편이 남아 있었구나."
"잘 생각했어, 짜샤. 어? 거 뭐. 니가 오늘 몇 연승을 하고, 몇 판을 했는데. 지쳐서 한 판 정돈 설렁설렁해서 질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인정~"
<패배!>
그런 창이 김이리의 화면에 떠오른 데에 대한 반응이었다.
요컨대, TC1 선수들은 김이리가 숨컷을 봐줬다 생각하고 있었다.
"응?"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김이리가 정신을 차리고 팀원들을 쳐다본 뒤,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닌데?"
"뭐가?"
"아, 우리도 알고 있어. 니 사람 아닌 거."
"100100101011011."
"안 봐줬어."
그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굳는다.
쑥스러워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김이리에 한해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저건 사실이었다.
김이리는 봐주지 않았고.
숨컷은 김이리의 진심을 다한 페드라에게 승리한 것이다.
"아니, 뭐 솔랭이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렇지."
"팀원들이-"
팀원들이 페이스의 패배를 합리화시키는 이유, 혹은 변명들을 바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건 팀의 동료이자 에이스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괴물이 그 남자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준비과정이었다.
그렇게 결론이 나온다.
솔로 랭크가 아니라 프로 게임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솔랭인데 질 수도 있지 뭐~"
솔로 랭크 게임은, 명백히 프로 게임의 하위 수준에 있다.
대부분의 프로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솔로 랭크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김이리 또한 같았다.
김이리 또한 솔로 랭크 게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는 솔로 랭크 게임을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서, 경시해서가 아니었다.
페이스에게 솔로 랭크 게임은, 프로 게임까지 거쳐 가는 단계가 아닌.
하위호환이 아닌.
레오레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종목이었다.
그녀가 솔로 랭크 게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이미 해당 종목을 완벽하게 정복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로 랭크 게임에서 그녀가 마음먹고 이기자 한다면 이기지 못할 판은 없었다.
이기고자 한다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었다.
하지만-
김이리는 재차 화면을 쳐다봤다.
<패배!>
그녀가 보기에, 숨컷과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명의 실력은 비등했다.
같은 조건에서 싸운 것이다.
그런데 패배했다.
게임은 졌어도 승부는 이기지 않았냐고?
프로 게임이었다면 자신의 승리였을 것이라고?
졌잘싸.
~~다면~~이었을 것이다.
김이리가 알기로 그것들은 합리화할 때나.
그러니까, 변명할 때나 사용하는 논리였다.
그런 논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그건 이미 완벽한 패배였다.
팀원들도 감독들도.
열심히 '합리화'하고 있을 때, 그녀는 인정했다.
솔로 랭크에서 그 사람은 자신의 위에 있다고.
숨컷.
그 이름을 떠올린-
'로블랑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로블랑을 하면 그 사람한테 이겼을까?'
'그 사람은 솔로 랭크 게임에서 어떤 기준으로 플레이하는 거지?'
아주 오랜만에 '도전자'의 입장이 된 김이리의 입꼬리가, 이례적일 정도로 올라갔다.
그녀는 즉시 게임 서칭에 시작했다.
"어?"
"니 뭐하냐?"
"그 사람이랑 한 번 더 해보게."
"…그 사람 방금 그게 막판이었는데?"
"아, 그래?"
긁적긁적.
그런 모습을 보고 팀원들은 생각했다.
역시.
이 겜창 새끼, 지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야, 잠깐."
"?"
"근데, 너희는 가능하냐?"
"뭐가."
"일주일 만에 플4에서 챌린저 600점 가는 거."
"…."
TC1 선수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