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결전
"오, 선생님 피의 결혼식 장면이라도 보고 계시나 보군요. 그 장면 진짜 개쌉에바였죠, 작가 쌉변태 쉑 같으니."
최재훈이 지금 키스키스의 모습을 봤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응당, 도대체 뭘 보고 있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하는 모습이었다.
<계정 이용이 제한되었습니다>
-기한 1, 000년.
그 창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키스키스의 모습은 말이다.
업보.
이보다 지금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지금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 그녀가 어뷰징과 트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지른 온갖 추잡한 행위로 인해 다른 이들이 느꼈던 망연함을 한 번에 되돌려 받은 듯했다.
-아이고~ 저걸 어째.
라고 걱정스럽게 말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들어도 비웃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도록 의도된 포빌라의 목소리도.
-언니…?
-괜찮으세요?
걱정하는 팀원들의 목소리도.
그 무엇도 지금의 그녀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
그 소리만이, 지금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움찔하고 떨린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괜찮은 거예요?
앱에 의해 기계음으로 변조된 정체불명의 클라이언트.
김경훈의 목소리였다.
변조되었음에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다 숨겨지지 않았다.
그 감정은 당연히 걱정이었다.
"아, 네 저 괜찮습니다."
-아니, 그쪽 말고요.
"…예?"
-일 진행 문제없는 거냐고요.
같은, 훈훈한 전개가 일어날 리가 없다.
이 둘 사이에서는 말이다.
변조된 기계음에 담긴 감정은 짜증과 초조였다.
운명의 날.
김경훈은 오늘도 숨컷, 그 가증스러운 놈 때문에 바닥을 칠 자신의 시청자를 보기 싫었다.
아예 휴방을 공지한 뒤, 숨컷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계획으로 인해 그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처음엔 만족했다.
퍼블팀의 대리로 확연히 굳어가는 숨컷의 표정.
지난 며칠간 차곡차곡 가슴에 쌓여온 답답함이 한 번에 뚫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어!
그렇게 퍼블팀의 행동력이 아닌, 자신의 판단력을 치하하며.
그는 기쁨을 만끽중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벤트 시작합니다.
최재훈의 과감하고도 창의적인 판단에 의해, 김경훈의 판단이.
퍼블팀이.
계획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키스키스.
이번 의뢰의 총 책임자이자 핵심 멤버인 그녀의 퇴장 소식.
김경훈이 최재훈의 점수를 확인했다.
시청자를 확인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되찾은 여유를 홀랑 잃어버리고 키스키스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자신을 안심시켜 보라고!
-기억하고 있겠죠?
"예?"
-그쪽이 반드시 성공했다 자부해 가지고, 선금 입금한 거. 이번 일 실패하면-
김경훈의 초조한 으름장.
-이거, 괜찮은 건가?
팀원들의 우려.
통화를 끊은 키스키스는 정신을 차렸다.
"야, 누구 하나 나한테 계정 넘겨봐."
-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지까지 당한 상태에서.
일까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퍼블팀이 지금까지 쌓아온 신용이.
자신이 지금까지 일군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라고 키스키스는 생각했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무너졌음을.
자신은 이미 끝났음을.
"니들보다 내가 하는 게 나으니까 아무나 계정 넘겨보라고!"
-계속 하는 거예요…?
"시발, 당연한 소릴 하고 자빠졌어!"
그 윽박에 찾아오는 침묵.
그리고-
-언니. 일단, 열심히 하긴 할 건데요. 그 뭐냐, 저는 어뷰징이랑 트롤은 더 이상 안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뭐!? 너 시발 지금-"
-저도요.
"어?"
-저도 어뷰징은 좀….
-이해하시죠?
다른 팀원들은 이미 키스키스라는 배를 버리고 다른 배로, 다른 대리팀으로 갈아탈 생각으로 가득했다.
'시발, 지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키스키스와의 의리를 지키겠답시고 제 한 몸 바쳐봐야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키스키스가 이미 끝났음을.
본인은 모르지만, 그녀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르고 있었다.
수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매우 상징적인 제재를 받은 이가 수장으로 있었던 대리팀의 일원을 다른 대리팀에서 써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끝난 건, 키스키스가 아닌 퍼블팀 그 자체.
그녀 전부였다고.
사실, 알고 있지만 인정을 안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키스키스처럼 말이다.
<계정이 정지되었습니다>
-사유 : 대리 게임, 어뷰징, 고의 트롤.
-기한 : 100년.
이 일이 끝나고 그녀들이 보게 될 창이었다.
그걸 모르는 그녀들은.
자신의 신용이라도 살리기 위해 아주 열정적인 자세로 저격에 임했다.
아주 열정적인 자세로 프로들의 먹이가 되길.
최재훈의 미션 성공의 거름이 되길 자처했다.
기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 * *
"아… 나 점수 안 될 것 같다."
"하, 씨. 저번판은 저격에 성공했어야 됐는데."
"아니, 여기서도 운빨좆망겜이야!?"
"야 희은아. 니 어떻게 돼 가냐?"
"저, 지금까지 대리 계속 적으로 만났고, 다 이겼습니다.
"뭐? 와, 얘 운 미쳤네."
"운의 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건가?"
"성욕의 신 아닐까? 이 새끼 성욕에 감탄해서."
"아."
"하, 씨. 부럽다."
팀원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정작 김희은은 남들의 부러움을 실감할 만큼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격에 성공한 건 대저방충들뿐.
그토록 원하던 숨컷과의 게임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
"뭐야 왜 그래."
"숨컷 님이랑 같이 게임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부럽슴다…."
숨컷과 같이 게임을 해보긴 했으나 그에게 패배했고, 결국엔 점수 확보에 실패하여 탈락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팀원, 김차련을 보며.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이.
"!!!"
김차련이 즉시 어디론가 향한다.
부엌쪽이었다!
"차련아 진정해!!!"
"여기서 죽이면 뒷수습 어떻게 하려고!!!"
"아직은 때가 아니야!!!"
"맞아 차련아. 지금 희은이 중요한 일 하는 중이니까 나중에 죽여."
선수들 사이에 앉아 관전하던 한시영이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그럼 지금 어떻게 되는 거야. 희은이 빼고는 사실상 다 아웃인 거야?"
최재훈이 지금까지 한 게임의 판수를,
그리고-
-2시간 남았는데 +3승, 한 판만 지면 실패라… 하. 이게 여기까지 오네.
[STMSAY : 세 판 째에서 겜 지고 저격당했니 프로들 개입했니 뭐니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아~ STMSAY님이 말씀하시길, '무척이나 힘든 도전이지만 개쌉오지는 숨컷이면 당연히 성공하지~' 아~ 감사합니다.
[STMSAY : 뭐래 ㅋ ㅄ인가]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또 STMSAY님이 말씀하시길, '어차피 성공할 거 알아서 재미없다. 난 이만 나가본다~' 아, 그러시군요. 들어가세요~
[딜교 일방적인 거 보소 ㅋㅋ]
[프로들이랑 라인전해서 이기는 숨컷한테 딜교를 거누 ㅋㅋ]
[괜히 깝쳐서 쳐맞기만 하다 뒤지누 ㅠㅠ]
[길가다 똥을 밟으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쌉악질 심해새끼 컽!]
[아니 근데, 프로 수준 겜에서 3연승 어케하게]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해내 보겠습니다.
[아니 그래서 뭐 어떻게 펀하고 쿨하게 섹시하게 하겟다고]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요.
[얼탱이 없는 롬 아니야]
앞으로 남은 판수를 고려해 보면.
미팅권의 주인이 될 후보들은 대강 추려졌다 할 수 있었다.
팀BAY에선 에이스인 김희은 한 명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있었지만 결국엔 실패한 선수들이 의기소침해져서 한시영에게 말했다.
"죄송이라니! 게임을 못하는 건 죄가 아님다!"
그에 김희은이 열정적으로! 진심을 담아 팀원들을 격려(?)했다!
한시영이 고갤 끄덕였다.
"그래, 알면 됐다. 이 한심하고 쓸모없는 패배자 자식들."
엄한 얼굴로 탈락자들을 쳐다본다.
"너희와는 달리 게임을 잘하는 희은이가 굶어가며 게임하는 자랑스러운 모습이나 구경해라. 방금 배달 온 저 치킨이랑 피자나 먹으면서, 비참하게. 너희같이 한심하고 쓸모없는 패배자들한테는 그게 딱이다."
"흑흑."
"너무 비참해."
"이것이 패배자의 삶인가."
"나도 희은이처럼 점심부터 굶으면서 힘들게 세 판이나 더 하고 싶었는데!"
"감독님, 이상함다. 제가 가장 잘하고 있는데 왠지 벌칙을 받고 있는 기분임다."
"음, 그래. 희은아. 그게 에이스의 무게란 거다. 이 감독님은 그걸 짊어지는 너가 자랑스럽다."
"앗, 큐 잡혔다!"
앞으로 겨우 세 판 남았다.
이 판은 제발!
팀원1
팀원2
하나둘씩 표시되는 팀원.
그리고 마지막 팀원이 표시되자, 김희은은 낙담했다.
이번에도 숨컷은 없었다.
"하…."
그녀가 또다시 김차련을 진심으로 부럽단 듯이 쳐다봤다.
"정말이지, 부럽슴다."
"그래, 희은아. 이거 먹고 힘내라."
인자하게 웃은 김차련이 김희은에게 치즈 스틱을 건넸다.
"거긴 콧구멍임다?"
아니, 쑤셔 넣었다.
"어!?!"
팀원들이 김희은의 코에 들어갔던 치즈스틱을 그녀에게 먹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
김희은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 드딩- 엑! 아, 너무하심다 진짜!"
"큭큭, 한 막대를 두 구멍으로 범했군."
"미친련."
"감독님 저 새끼 말하는 거 봐요. 언제 한 번 일내는 거 아니에요?"
"그래, 나도 너희가 자랑스럽다."
"니 소원대로 숨컷이랑 같이 게임하네, 축하한다. 이제 뒤져도 여한이 없지 않겠냐?"
뒤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으며 구경하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김희은이 다급히 옆 컴퓨터를 조작해 숨컷의 방송을 재생시켰다.
"감독님, 이 새끼 당당하게 방플하려고 하는데요."
"음, 감독으로서 목적을 위해 제자의 타락을 방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희은아, 너가 나를 기어코 선택의 기로에 세우는구나."
"무슨 말씀이심까~ 방플이라니. 당연히 반응 보면서 게임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슴까!"
김희은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게임에 임했다.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의 행동에 숨컷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기대-
'어, 잠깐.'
-하며 게임을 하던 그녀의 표정이 이내 굳는다.
깨닫는다.
'이거, 내가 이기면 숨컷 님 미션 실패하는 거잖아…?'
숨컷과의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기엔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이 게임에서 자신이 숨컷을 이겨버리면, 그는 방송과 레오레를 접어야만 한다.
'어떡하지….'
져드려야 하나?
결국 프로게이머로선 해서는 안 될 발상을 떠올려 버린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감독과 팀언들의 눈치를 봤다.
"뭐야, 왜 그래."
"뭐 문제 있어?"
'감독님께 상의해야 하나?'
'허락하시려나?'
'만약 허락하셔도 이거, 사람들이 내 정체 알아내서 내가 일부러 져준 거 알아내면 어떡하지?'
김희은을 괴롭게 만드는 예상치도 못한 문제.
'어?'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더블킬!>
후보가 간추려진 프로팀들은 대부분 팀 BAY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사실상 탈락한 애들은 저격을 멈춰서, 성공 후보가 저격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도록 몰아주자!
이에 따라 저격을 하는 프로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이번 판 게임에서 프로는 숨컷과 김희은.
둘뿐이었다.
이는 즉슨, 숨컷이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로 공략할 빈틈이 '네 개'나 있음을 의미했다.
김희은이 혼자서 틀어막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김희은이 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아니.
숨컷.
솔로 랭크에서 감히 그를 봐줄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이 새끼, 숨컷이라고 봐주네."
"아니, 새꺄. 니가 못 만나봐서 그래. 저 사람 진짜 잘한다니까?"
"맵을 진짜 넓게 쓰긴 하네. 라인전도 잘하고."
"감독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리얼이냐, 희은아? 저 사람이 그렇게 잘해?"
누군가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편견을 가져 버린 편협함에 대한.
오만에 대한 반성.
숨컷의 실력에 대한 놀라움.
등, 다양한 기분을 느낀 김희은의 양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녀는 비로소 가볍고 즐겁되, 진지한 자세로 게임에 임할 수 있었다.
잠시 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떠올랐다.
<패배!>
* * *
"앞으로 두 판."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게임이 서칭된다.
"어?"
팀원을 확인한 최재훈이 반갑게 미소지었다.
-우연이네.
잠시 뒤, 연결된 보이스 채팅에서 시큰둥한 삼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팀원에 삼피가 있었다.
"이야, 이 시간까지 나 저격하고 있었던 거야?"
-….
맞긴 한데, 구태여 지적하니 괜히 얼굴이 뜨거워진다.
부끄러워-서는 아니고 짜증 나서라고 생각한 삼피가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자의식 과잉 역하네.
"큭큭."
지쳐가던 와중에 그런 삼피의 태도는 활력이 되어줬다.
이내, 시작되는 게임.
"어?"
반가운 얼굴들이 또 있었다.
포빌라와 타임 앤드.
"너희도 참,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뭐. 너희는 적당히 역겨웠으니까."
최재훈이 도발적으로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엉님이 마지막으로 솔루션 해줄게."
<패배!>
"하."
화면에 떠오른 그 창을 보고, 타임 앤드는 허탈하게 웃었다.
완패였다.
거듭 숨컷과 적으로 걸려 죽만 쑤던 퍼블팀의 대리기사들이 보이스 채팅으로.
운 좋게 듀오로 걸렸는데도 그걸 지고 자빠졌냐.
우리였으면 이겼다.
따위의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지만, 타임 앤드는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서칭에 시작한다.
마지막 한 판을 위해.
"어?"
그런데, 방금 그 판이 마지막 판이었나보다.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 내역이 확인되어 계정 이용이 제한되었습니다>
-아, 시발! 뭐야!!!
헤드셋 너머에서 포빌라의 비명이 들려왔다.
* * *
[플레이어 님의 리포트가 검토되었습니다]
[대상 - 4빌라]
[대상 - TIME END4]
키스키스 때만큼의 통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감흥을 주기는 한다.
이것도 이제 진짜 마무리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게임을 수락하시겠습니까?>
마무리.
그 과정이 시작되었다.
"어."
적팀의 미드를 확인한 최재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서 이놈을 만나다니.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고민하는 최재훈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적팀의 미드.
최재훈이 '그 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
'고전주의'
그 괴물이, 이 대장정의 마무리를 직접 수놓아 주기 위해 행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