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3일차
레오레를 하다 보면 그런 판이 있다.
'뭘 해도 안 풀리는 판'
체력과 마나가 적어 기지로 귀환해서 재정비해야 하는데.
골드가 아주 약간 모자라서 이 CS만 먹자고 귀환을 미루는 순간, 곧바로 적에게 습격당한다거나.
갱을 가려는데, 게임 내내 조심성이라곤 모르던 적이 갑자기 조심하기 시작한다거나.
우연히 자신을 발견한 적에 의해 위험에 처한다거나.
그런 판을 하게 되면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아, 이 판 아다리 존나 안 맞네]
부진의 원인이 실력이 아닌 운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패배>
타임 앤드는 화면에 떠오른 두 번째 <패배>창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다리가 아주 안 맞는다고.
숨컷이 무방비 상태인 자신을 발견해 죽였다.
숨컷이 자신의 갱을 회피했다.
숨컷이 자신의 위치를 예측하고 교전에 개입하여 이득을 취했다.
숨컷의 승리를 있게 한.
그가 자신을 상대로 득점을 거둔 세 번의 순간.
그 세 번의 순간이 일어난 건, 아다리가 안 맞아서였다.
그게 아니라면 숨컷이, 저 남자가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어서라는 게 되는데.
그럴 리는 없잖은가.
그런데 뭘까, 이 답답함은.
그것들을 해소시킬 방법은 단 하나였다.
승리.
타임 앤드는 옆의 모니터에 멈춰 두었던 숨컷의 방송을 재개하여 세 번째 저격에 돌입한다.
머지 않아 서칭되는 게임.
저격 성공.
같은 팀이었다.
숨컷이 기한 내에 챌린저에 도달하지 못하게 저지한다.
그게 타임 앤드의 맡은 바 임무였다.
그리고 그건 적군일 때보다 아군일 때 더욱 용이한 일이었다.
캐리가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보다, 트롤이 팀을 패배로 이끄는 게 더 쉬웠으니.
"…쯧."
그런데 타임앤드는 닷지(픽벤 단계에서 강제로 게임을 종료해서 게임을 무산시키는 행위)를 했다.
타임 앤드는 대리로 그녀의 나이대의 일반인은 거머쥐기 힘든 돈을.
그리고 유명세를 얻었다.
그걸 가능케 해준 자신의 게임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실력 하나 만으로 승부한다.
타임 앤드는 대리였지, 어뷰저가 아니었다.
그리고 애당초.
네 자릿수에 달하는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는 방송에서 저격한 뒤 고의 트롤이라니.
고의성을 의심받아 제재를 피하지 못할 터다.
앞으로 숨컷과 게임을 수십 판 더 해야 하는 상황에서 써먹기엔 부적합한 전략이었다.
타임 앤드가 닷지를 한 사이, 서칭에 성공하는 숨컷.
아쉽게도 세 번째 저격은 실패였다.
"시발…."
그 만큼 해소가 늦춰진 답답함이 타임 앤드를 몰아세웠다.
그녀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전판의 리플레이 영상을 재생시켜 게임을 복기한다.
자신이 진 건 운 때문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게임 복기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도.
그래서인지, 복기를 하는 그녀는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무미건조한 얼굴에 색이 칠해진다.
한 번 본 장면을 되돌려 다시 한번 본다.
또 한 번.
또 한 번.
다른 장면에서 그걸 반복.
그렇게, 아다리가 안 좋았다고 치부했던 세 가지 순간을 반복하여 관찰.
이후 이끌리듯 숨컷의 방송국에 접속한다.
방송국의 다시보기 기능으로.
아다리가 안 좋았다고 치부했던 세 번의 순간을, 이번엔 숨컷의 시점에서 관찰한다.
-얘가 보통 게임이 이런 상황이면 바텀 위주로 동선을 짜거든요?
마치 '자신을 일전에 여러 번 만나 봐서 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방금 얘가 여기서 보였을 때 레벨이랑 피가… 보니까 여기 유령 아니면 골렘에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골렘에 걸어 볼게요.
-어디보자~ 그렇지, 요놈 새끼. 일루 와. 람무스 컽!
무방비한 상태인 자신을 발견해 죽일 때.
-방금 얘 봇 갱 가고, 낮은 피로 정글 들어가는 거 보였잖아요?
-제가 보기엔 일부러 보여준 것 같거든요? 낚시 하려고?
-그러니까 어디 보자- 아니 듣자….
-여러분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람무스 굴러오는 소리? 얘 이거 나한테 고스란히 직선갱 올 것 같거든?
-그렇지, 요놈 자슥아! 절대 안 뒤져 주지!
자신의 갱을 회피할 때.
-지금 우리팀 정글이 봇이랑 같이 용 치는 중인데, 적 정글이랑 미드 같이 안 보이잖아요?
-이러면 보통 전령 치고 있다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근데 저는 좀 디퍼런트하게 봅니다.
-이거, 탑 다이브를 먼저 할 거예요.
-무리 아니냐고요?
-아슬아슬하게 돼, 그 각이 있어. 얘는 그 각을 봤을 거야.
-거기에 적팀 탑 무빙 보면.
-저는 제 판단 믿고, 탑 뒤봐주러 가 볼게요.
-어…이것 봐! 내가 뭐랬어! 그렇지~ 탑 잡고, 정글 잡고, 미드까지! 게임 셑!
마지막으로, 자신의 위치를 예측하고 교전에 개입하여 이득을 취할 때.
타임앤드가 운이라 여겼던 순간에.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한 판단을 말한 게 중요했다.
이가 의미하는 바.
"…."
타임 앤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이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김경훈이었다.
"일 관련해서 협의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말씀하세요.
"조건을 재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요?
"가격을 올려야겠습니다."
-뭐라고요?
처음 타임 앤드가 비상식적인 비용을 청구했을 때에도 놀랄지언정,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던 김경훈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목소리에 불쾌함을 담아 말한다.
가격 문제가 아니었다.
-제가 타임 앤드 님께 왜 돈을 지불했죠? 이기라고, 숨컷 그 사람 지게 하라고 돈 지불한 거예요. 맞죠?
타임 앤드에게 일을 맡겨서 그제야 마음을 놓고 방송을 하던 김경훈이었는데.
채팅창에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타임 앤드의 2연패.
뭐, 여기까지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오히려 2연패 한 걸로도 모자라서 갑자기 가격을 인상하겠다니. 그쪽 생각하기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 말대로.
이기라고 돈을 쥐어줬더니, 오히려 꼴사납게 2연패를 하고 돌아와선 한다는 말이 '돈 더 주쇼'라니.
김경훈의 비난은 지극히 타당했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뭐요?
"이 사람 실력이 챌린저 상위권이라고."
-…그런데요?
그런데도 타임 앤드는 당당했다.
그도 그럴게.
"전혀 아닙니다."
-뭐라고요?
"챌린저 상위권 실력, 전혀 아니라고요."
그녀는 사냥을 의뢰 받았다.
의뢰자가 말하길, 사냥감은 늑대.
그런데 늑대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타나 버린 것이다.
늑대를 잡을 각오와 준비로 임했으니 실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 저 못합니다."
-네!? 안 하신다고요?
"아뇨,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못 한다고요."
-…예?
"그러니까."
하.
타임 앤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곤 굴욕적이라는 듯,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저 혼자서 이 사람 이기기 힘들다고요. 저희 쪽 사람 한 명 더 불러서 같이 진행해야 돼요."
맥락상 이해하기가 힘든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경훈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에.
받아들이는 데에 정확한 부연설명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솔로 랭크 게임 랭킹 6위.
대리 업계 1인자.
그 타임 앤드의 입에서 누군가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극도로 당황한 김경훈에게 인상되어 정정된 가격이 제시되었다.
기존 비용의 세 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가당찮은 액수지만 김경훈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알기로 타임앤드보다 유능한 사냥꾼은 없었으니까.
* * *
제목 : 속보) 타임앤드 대리충쉑 2연패 ㅋㅋ
내용 : 숨컷한테 2판 연속 털림 ㅋㅋ
ㄴ : 엌ㅋㅋ 대리가 0승2패 ㅋㅋ
ㄴ : 대리가 0승2패하면 어떡함? 받은 돈 돌려줘야댐?
ㄴ : 돌려주고 거기에서 오히려 돈을 더 줘야 하는 거 아님? ㅋㅋ 2패 했으니까 2승 가격 만큼
ㄴ : 오늘 번 돈으로 남친한테 사준 빤스 다시 환불해야겠누 ㅋㅋ
ㄴ : 번 돈으로 사먹은 치킨도 다시 토해내야겠누 ㅠㅠ
ㄴ : 입던 팬티랑 소화되던 치킨 ^^ㅣ발 환불 시스템 개발한 사람도 환불 안해줄듯
ㄴ : 대리에서 2연패 했으니 사원으로 강등 ㅋㅋ
ㄴ : ? 타임앤드라고?
제목 : 타임앤드가 2연패 했다는 거 무슨 얘기임?
내용 : 자세히 좀 말해 봐
ㄴ : 마스터 구간에서 숨컷 만났는지 저격헀는지 아무튼 2판 연속으로 만나서 둘 다 짐 그것도 람무스로
ㄴ 글쓴이 : ?? 마스터게임에서 탐무스를 만나서 2연승했다고? 구라 ㄴ
ㄴ : 아 ㅋㅋ 구라 같으면 와서 보던가~
숨컷이 무려 그 타임 앤드를 상대로 2연승을 달성했다는 소식.
숨컷에게 관심이 없던 이들조차 관심이 동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집이 그렇게 맛집이에요?
정체기에 돌입했던 숨컷의 방송에 새로운 발길이 찾아왔다.
"자, 정숙. 지금부터 처형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1번 죄수 'AD3323' [이 새끼 개나대네, 크크. 심해 구간에서 양학 몇번 했다고 타임앤드를 이겨? 크크. 주제파악좀.] 이라 했는데 발언하시겠습니까?"
[AD3323 : 응~ 운빨 ㅋㅋ]
"아, 잘 들었습니다. 이제 배심원 분들, 판결을 내려주십쇼."
[길티!]
[유죄!]
[매달아!!!]
[단두대에 올려!]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AD3323님, 쿨하게 단두대 위로 올라가주십쇼."
[AD3323 : 응 니아빠]
"뎅겅!"
AD3223 님이 강제퇴장 당했습니다.
"부활 비용은 국룰에 따라 2만 원이지만, 감히 우리 아부지의 이름을 입에 올렸으니. 부활 비용 200만 원으로 책정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다음, 2번 죄수-"
"자 그럼 처형식은 끝났으니, 수금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손모가지가 아니라 돈을 거신 분들은, 입금을 조져주시길 바랍니다."
"아, 2만 원 감사합니다!"
"5만 원!!!"
"10만 원!!!"
"에에엥 30만 원!?!!?!?"
"아아아앍!!!!! 50만 원!!!!!!!!! 끼아아아아앍!!!!!!!!!!"
"감사합니다 우리 해장님 어르신들 !!!! 제가 큰 공중제비 한 번 올리겠습니다. 잘 보십쇼 흐에에에!!!"
새로운 고객들에게 요리가 나온다.
소문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
이 집, 요리가 좀 시큼하다.
어쨌거나 분명, 맛있긴 해서-
<14, 032명>
장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타임 앤드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둔 최재훈은 곧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했고.
그렇게 다시 한번 캐리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캬 ㅋㅋ]
[타임앤드 판 보고 이 판 보니 왤케 쉬워 보이냐 ㅋㅋ]
[ㄹㅇ 이거 마스터 겜 맞냐?]
[마스터 게임 에서 양학하누 ㄷ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어 이제 곧 리치TV의 자랑이야~]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 적당해 잘해 역겨우니까!!!
찰랑!
찰랑!
찰랑!
이어지는 후원.
찬사.
아침부터-
아니지.
도전 첫날부터 이어진 승승장구에 최재훈의 자신감이 마침내 극에 달했다.
자신감에 취한 그가 근엄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팔을 내려 보았다.
"나 또한 두렵다…."
[??]
[머임]
"이 나의 재능. 이 나의 멋짐, 이 나의 위대함! 나조차도 역겨울 정도다."
[아니 장난 아니고 진짜 역겨운데요]
[얘 또 시작된 것 같은데]
[정신병 on]
"그대들의 눈엔 내가 뭐로 보이지?"
[ㅄ이요]
[미친놈이요]
[삼도수군통제사]
[감비아수산부장관]
"그렇다. 나, 역겨울 정도로 개쌉오지고 조지고 위대한 숨컷. 리치TV의 새로운 왕으로 거듭날 남자다."
캠을 향해 근엄하게 손짓한다.
"갈채하라."
[왕이시여!!!]
[남왕이시여!!!]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박수소리)]
[갈채는 ^^ㅣ발아 갈치 꼬리 잡고 면상에 휘두르고싶네]
[전하... 뒤지기 싫으면 쌉꼴깞 그만떨고 큐나 돌리시옵소서...]
"음, 그렇지. 짐의 위대한 행보를 묵도하는 것을 한시라도 멈추고 싶지 않을 테지. 내 그대들의 간절한 청을 기꺼이 들어주도록 하지."
[아니 ㅋㅋ 미친 건가]
[^^ㅣ발 !!!! 돌리지 말던가 이거 니 방송이야]
[이 집 셰프 상태 이상하네]
[요리는 맛있긴 한데 ㅇㅇ;]
[아니 얘 뭐 이럼? ㅋㅋ 어이가 없네]
[얼굴 값좀 하소서 전하]
시청자들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재훈의 근거 있는 자신감에, 매력에 하나둘 감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흥미와 분위기에 휩쓸려 찾아온 '구경꾼'들이, 분명한 최재훈의 '시청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팔로우 7, 327명>
배로 뛴 팔로우 수치가 그를 증명했다.
시청자 수는 많았으나, 그 대부분이 자극적인 미션에 이끌린 거품 시청자여서 실속이 없었던 그의 리치TV 방송의 뼈대가 엄청난 속도로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와 ㅋㅋ 얘 금방 대기업 되겠네]
그 누구도 그 말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대기업 되고 자시고 미션부터 성공해야지]
[이쯤되면 성공할 것 같은데?
그 말에도.
겨우 동시 송출 3일차에, 최재훈은 이미 대기업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이례적인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