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14화 (111/361)

114. 타임앤드

대리.

보통 대리라 하면 대리 운전이나, 회사에서의 직급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허나 게이머들은 대리라 하면, 금전을 비롯한 대가를 받고 타인의 계정을 대신 플레이하여.

주로, 점수나 랭킹 따위가 걸린 승부에서 승리해주는 행위인 '대리'를 먼저 떠올린다.

대리 기사는 그런 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혹은 업으로 삼는 이들을 칭했다.

대리와 대리 기사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레오레의 흥행 이후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레오레에서 대리는 역사가 깊었다.

관계가 깊었다.

그 만큼, 수도 많았다.

당장 검색 사이트에 '레오레 대리'를 검색해도 나오는 사이트, 업체의 가짓수만 수십.

업체당 대리 기사가 열 명씩만 소속돼 있다 쳐도, 대략 수백의 레오레 유저가 현역 대리 기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게 된다.

국내 레오레 유저만 수백 만 명에 달한다는 걸 고려하면 '에게'소리가 나올 만큼 적게 느껴지지만.

대리 기사의 특성 역시 고려하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임 한 판 이겨주는데 그만큼이나 받는다고?]

대리는 문외한들로 하여금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1승 당 적게는 수천 원에서, 특수한 경우엔 수백만까지.

대신 이겨주는 대가로서, 상당한 비용이 요구된다.

그만큼.

확실한 성과를 보장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성과를 보장할 수 있는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했다.

고객의 지갑을 열려면 말이다.

그렇게 대리 기사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요건.

현직 마스터 티어였다.

레오레에서 진정한 천상계, 실력자임을 자부할 수 있게 되는 마스터 티어는 랭킹 2천위에게까지만 부여되는 티어다.

즉.

레오레 실력자 이천 명이 있으면 그 중 수백 명은 대리기사라는 게 된다.

[대리가 돈이 꽤 되더라~]

유명한 이야기다.

그만큼.

대리를 할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은 대리에 흥미를 갖고, 정말로 대리를 시작하게 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반면에.

[돈을 줘가면서까지 점수를 올린다고? 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만큼.

대리를 받는 사람, 즉 고객은 특이한 케이스에 속하는 편으로서 그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형성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

물론.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상위 2천 명 안에 드는 실력자여야 하는 대리기사보단, 당연히 고객의 수가 많았다.

허나, 대리 기사 한 명이 소화 가능한 고객을 고려한다면.

고객의 수는 분명 부족한 편에 속한다 할 수 있었다.

대리 업계는, 과포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대리 업계에선 천상계라 칭송받는 마스터 티어도, 최소한의 요건을 간신히 만족시킬 뿐인. 바닥에 깔리는 그저 그런 기본 인력에 불과했다.

이름을 알리긴커녕, 일감을 따내기조차 힘든 치열한 업계.

그러한 업계에서.

그녀, 타임 앤드는 남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했다.

최고급 인력인 챌린저들조차 더 좋은 일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한 대리 업계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는가?

타임 앤드는 최고급 인력인 챌린저들조차 버거운 일감을 맡는 게 가능한 몇 안 되는 이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챌린저들에게조차 버거운 일감이란 무엇이 있을까?

간단하다.

챌린저 근처, 혹은 그 이상까지 올려야 하는 일감이다.

대리 기사가 대리를 통해 소요 노동력에 걸맞은 수익을 올리려면 일정 수준의 고승률을 유지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일감의 해당 티어보다 최소 1단계 높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다이아4 티어까지 진행하면서 고승률을 유지하려면, 최소 마스터 티어 이상이어야 했고.

마스터 티어까지 진행하면서 고승률을 유지하려면, 최소 그랜드마스터 티어 이상이어야 했고.

그랜드마스터까지 진행하면서 고승률을 유지하려면, 최소 챌린저 티어 이상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 위가 없는, 가장 높은 티어인 챌린저 티어는?

레오레 챌린저티어는 일반적인 게이머가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중 하나였다.

영광이라니.

일반인 입장에선 게임 등급 따위로 너무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레오레 유저들에겐 따위가 아니었다.

레오레 유저에게 챌린저 티어가 갖는 의미는 분명, 영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챌린저까지 대리는 부르는 게 값이다]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데도, 챌린저의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이들의 수는.

일감의 수는 상당했다.

엄청난 거액이 달린 일감의 수가 말이다.

그런데도, 그 일감을 맡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맡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하는 게 맞겠다.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챌린저 티어보다 한 단계 높은 챌린저 티어에서 고승률을 유지하며 대리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실력이라니.

상위권 프로나, 솔로 랭크에서 내로라하는 랭커들 정도나 돼야 가능할 법하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리를 하지 않는다.

선택 받은 재능으로 의사나 검사보다 범죄자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선택 받은 재능으로 프로나 방송인보다 대리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타임 앤드는 특이했고, 특별했다.

그녀는 선택 받은 재능으로 대리가 되길 택했고.

그렇게-

'챌린저를 대리해줄 수 있는 챌린저.'

'대리의 신.'

'업계 1인자.'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결과를 거두었다.

숨컷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전전긍긍하던 김경훈이 떠올린 방안은.

모종의 사연으로 접점이 있는 그런 그녀에게 연락하여-

"그러니까, 지금 경훈 씨 말은. 그 숨컷이란 사람의 미션이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을 저격해서 챌린저 성공을 저지해라. 이거죠?"

그런 의뢰를 하는 것이었다.

-네, 얼마 나오든 상관없으니까 견적 잡아줘요.

"음…."

타임 앤드는 머릿속의 계산기를 켜놓곤 말한다.

"그 사람 원래 점수대, 실력이 어떻게 됩니까?"

-챌린저 상위권정도 될 거예요.

그리곤 계산기를 두들긴 뒤, 그 결과 값을 말했다.

-네!?

그러자.

얼마 나오든 상관없다 말했던 것과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는 김경훈.

김경훈의 씀씀이가 궁색해서가 아니라, 타임 앤드의 요구 비용이 명확하게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업 기간이랑 난이도 감안해서 책정한 가격입니다."

하지만 타임 앤드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요구한,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비용이 지극히 합리적이라 생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 알겠어요 지불은 이번에도-

"당연히 선금입니다."

타임 앤드는 김경훈의 말을 끊고 대신이 이어서 말했다.

"당연히 성공할 거니깐요."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숨컷 앞에 섰다.

[와 ㅅㅂ 타임앤드]

[하필 타임앤드를 만나누]

[다 업보다 숨컷아...]

[무슨 업보]

[땀흘리면서 헐떡이는거 안 보여준 업보]

[너 같은 시청자가 생긴 건 무슨 업보일까]

[그건 울 부모님 탓하면 됨]

[너가 자식인 것만 해도 충분히 힘드실 텐데... 됐어]

[(따봉 이모티콘)]

[숨컷쉑 시작부터 깔쌈하게 1패 깔고 시작하겠네]

[쟤가 그리 잘함? 그래봤자 대리충 아님?]

[쟤 본캐 랭킹 한자릿수임]

[ㅁㅊ;]

타임 앤드의 등장에 요동치는 채팅창.

[와 탐무스 ㄷㄷ]

타임 앤드가 이번 게임에서 선택한 챔피언은 그녀의 주력 캐릭터.

콩벌레 같이 생긴 외모가 귀여운 람무스였다.

대표 스킬인 Q스킬, 구르기를 사용하여 몸을 말아서 구를 때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이동속도.

그걸 기반으로 한 기동력과 변수 창출 능력이 특출 나지만-

[천상계에서 저 똥캐를 하네 ㅋㅋ]

그보다 더 많은 단점이 존재하여, 누군가 말하길 객관적으로 '똥캐'의 범주에 속하는 챔피언이었다.

[쟤 람무스는 다름]

하지만, 역시 누군가가 말하길 그 조종사가 타임 앤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리를 할 때.

양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바로, 상대적으로 높은 실력을 갖췄기에 발견할 수 있는 상대방의 빈틈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타임 앤드가 여기기에.

특출 난 기동력과 변수 창출 능력을 가진 람무스는 그에 가장 최적화된 챔피언이었다.

그러한 타임 앤드의 의견을 알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이견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타임 앤드의 람무스'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타임 앤드의 람무스'는 양학과 대리에서 만큼은 감히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만큼 절대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유일한 결점이 있다면.

'타임 앤드의 람무스'는 워낙에 상징적이라 특정당하기 쉬워, 들켜선 안 되는 대리를 진행할 때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는데.

지금은 대리가 아닌 저격을 하는 중이라, 그 유일한 결점마저 사라져 버렸다.

[쟤 람머스 보니까 부캐 키우는 프로들 만나서 그냥 ㅈ발라버리던데 ㅋㅋ]

[탐무스 챌린저 밑 구간에서 적으로 만나면 못이긴다 봐도 무방함 ㅋㅋ]

[그냥 빠르게 담판 보자 숨컷아 이건 운이 안 좋았다 ㅇㅇ]

[이판은 졌다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듯]

람무스(0킬0데스2어시스트)

게임 시간 5분 경.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아니 쟤 어떻게 저깄음?]

[동선을 어케 짠거지?]

[벌써 시동 거네 ㄷㄷ]

[구룬다]

[겜 끝난것 같은데?]

허나, 타임 앤드의 첫 득점에 시청자 대부분은 이미 게임의 결과를 확정지었다.

2데스. 혹은 2킬.

그 자체는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을 정도로 큰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기세.

자그마치 그 타임 앤드가 선취점을 올림으로써 흐름을 가져온다.

마치 전장에서, 이름 높은 장수가 위용을 뽐낸듯.

주변이 술렁인다.

(팀)(데인) : 아니;; 람무스 어떻게 벌써 여깄지?

(팀)(인어 미나) : 머임 정글? 쟤 탑쪽이라며

(팀)(에이코) : ;; 모르겠음 동선을 어떻게 짠 거지

(팀)(데인) : 근데 저거 타임 앤드 찐임?

(팀)(우른) : 그런듯?

(팀)(에이코) : ㅁㅊ 쟤 타임앤드 찐이라고?

(팀)(에이코) : 어쩐지

(팀)(에이코) : 그러니까 내가 동선 놓치지

(팀)(인어 미나) : 당당한거 봐라;

(팀)(에이코) : 당연히 당당하지

(팀)(에이코) : 타임앤드인데

(팀)(에이코) : 쟤 본캐 챌린저 천점 넘잖아

(팀)(에이코) : 나랑 거의 천점 차인데 ㅋㅋ

(팀)(에이코) : 내가 쟤보다 못하는 게 당연하지

(팀)(에이코) : 그거 가지고 뭐라 하면 난 할말 없음 ㅇ

(팀)(데인) : 에휴

(팀)(우른) : 그래서 뭐 포기하는 거임?

적들이 동요한다.

레오레에서.

정확히는 솔로 랭크 게임에서 승리를 얻어내기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

적들의 멘탈을 뒤흔들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다.

동요시킴으로써 말이다.

레오레에서 그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중 한 명인 타임 앤드.

그녀의 예상하기 힘든 변칙적임 움직임으로 빈틈을 찌르는 플레이는 그에, 상대방을 동요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숨컷 팀의 채팅을 확인할 방도가 없는 타임 앤드였지만,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적들이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평소, 주로 그랜드 마스터에서 챌린저 구간에서 대리를 진행하는 타임앤드였다.

'너무 쉬운데.'

그런 그녀에게 지금 여기, 마스터 구간에서의 게임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물론, 그냥 마스터 게임이 아니라 챌린저 상위권, '숨컷'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게임이긴 하다만-

그래봤자다.

자신은 솔로 랭크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변수지만, 위협까진 되지 못한다.

두 번째.

두 번째로 바텀 갱에 성공하여.

두 번째로 적팀 바텀을 동요시켜 멘탈을 뒤흔드는 데 성공한 타임앤드는 승리를 반쯤 확신한다.

'앞으로 한 번.'

숨컷 팀 바텀의 멘탈이 깨지기까지, 그렇게 게임이 끝나기까지.

타임앤드는 반쯤 승리를 확정지었다.

* * *

-지지지직

금이 간다.

-펑!

이내, 폭발하는 넥서스.

그렇게, 첫 번째 게임의 종료를 알린다.

게임은 타임 앤드의 예상과는 달리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숨컷이라는 변수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 정돈 오차범위 안에 넣어 놓고 있었다.

중요한 건 결과다.

그래.

결과.

<패배>

"…."

반쯤 승리를 확정지었던 게임의 패배.

그게 결과였다.

타임 앤드는 화면에 떠오른 그 결과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변의 원인을 분석하던 타임 앤드는 당연한 듯 그런 결론을 내린다.

'운이 안 좋았다.'

자신이 이 구간에서 저 남자에게 진 이유가 실력 차일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녀가 아는 하나.

자신이 솔로 랭크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극소수의 이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현 랭킹 6위인 그녀의 본 계정이 증명하길,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모르는 둘.

숨컷 또한 솔로 랭크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이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지.

숨컷의 경우엔 '이들 중 한 명'이 아닌, '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니까.

숨컷은 솔로 랭크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이였다.

이 또한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증거.

숨컷이 프로 입단 전, 2년 간 랭크 게임의 시즌을 마무리한 성적이었다.

[랭킹 1위]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증거.

그렇기에 타임앤드, 그녀로선 알 방도가 없는 사실이었다.

"오케이."

그렇기에, 두 번째 저격에 성공한 타임 앤드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따라 이미 반은 승리했다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고!!! 타임 앤드 또 이기면 20만 원 님께서 2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거 뭐야! 성실하게 돈 벌 생각 안 하고 게임 좀먹는 똥기생충 또 컽! 컽컽!! 숨컽!"

그 확신이.

표정이 무너지는 데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숨컷의 배가 타임 앤드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간단히 뛰어넘어, 순항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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