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김희은
"닉네임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냥 머그컵임다."
"네?"
"캐릭터 닉네임 뭐로 지을까 고민하는데 근처에 머그컵이 보이길래 그냥 그렇게 지었슴다!"
"아, 그런가요?"
"그렇슴다!"
"그렇군요!"
한국 레오레 1부 리그 LKL의 3대 정글 중 한 사람인 머그컵.
본명 김희은.
부지런한 그녀의 하루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오전 9시.
통상적 기준에 따르면 하루를 열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다.
부지런하다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허나, 레오레 팀 BAY 숙소의 선수 취침 시간이 오전 2시, 기상 시간이 10시인 걸 고려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간단한 츄리닝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곧장 숙소 밖으로 나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숙소 안이었다.
게임단 BAY의 빌딩에서 3층 전체가, 그녀가 속한 레오레 팀의 숙소였으니까.
"안녕하심까, 코치님!"
"아, 안녕 희은아. 빨리 일어났네."
"안녕하심까!"
"아, 안녕하세요."
"기운이 없어 보이심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심까?"
"희은 씨가 특이한 거지… 원래 아침엔 다 이래요…."
중간중간 만나는 아침의 피로에 찌든 이들에게 활기를 흩뿌리며 향한 곳은 윗층이었다.
윗층에 위치한 헬스장에 방문하기 위해.
정확히는, 헬스장에 있는 런닝머신을 이용하기 위해.
김희은이 좋아하는 건 운동이라기보단, 달리기였다.
통유리로 된 창가에 위치한 런닝 머신.
햇빛이라는 선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곳에 직행하여 가벼운 준비 운동 뒤, 곧장 달리기를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부에 송골송골 맺힌 땀들이 선명해진다.
이내, 숏컷 머리를 타고 구릿빛 피부 위로 떨어져, 산산조각난다.
땀의 파편은 각각 햇빛을 머금고 그걸 주변으로 흩뿌려, 반짝였다.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그녀는 말 그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당장 런닝 머신 혹은 스포츠 브랜드의 홍보 영상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장면이었다.
"후아!"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런닝머신에서 내려온 그녀는 '끝났다!'라는 표정이 아닌 '좋았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흐흥흐흥~"
그런 표정에 어울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로 돌아간다.
"응?"
그리고 목욕을 하고 나온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한 컴퓨터 앞에 옹기종이 모여 있는 팀원들이었다.
"거기 모여서 뭣들 하심까?"
그 말에.
'여자'들이 친한 친구끼리 모여 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웃음기 머금은 표정을 한 팀원이 김희원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
그리곤 깜짝 놀란다.
김희은이 몸에 딸랑 한 장만 걸치고 있는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한 장도 팬티나 브래지어가 아닌, 목에 두른 수건이었다.
습관화 된 달리기로 조금의 군살도 없는 몸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
그녀의 몸매는 찬사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씨, 미친년아!"
허나 동료이자 동성이며 친구인 팀원의 눈에 출렁거리는 살덩인 그저 흉물스러울 뿐이었다.
"목욕하고 알몸으로 싸돌아 댕기지 좀 말라고, 제발!"
"어? 아! 뭐야!"
"아 저 노출광 새끼! 또 지랄이네!"
"아악 내 눈! 저 새끼 검은 눈 동자랑 눈 마주쳤어!"
"엥?"
그 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곤 말한다.
"핑크임다만?"
"핑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 머리가 펑크겠지."
"구라 아니고, 오늘 스크림 조지면 니 때문에 눈 썩어서라고 감독님한테 말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하하하!"
팀원들이 질색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다간다.
"다들 이렇게 모여서 뭐 보고 있는 검까?"
"오지마!!!"
"아아악!!! 닿잖아 미친년아!"
그렇게 팀원들에게 둘러싸인 모니터를 쳐다본다.
"응?"
레오레의 게임이 진행되는 무대인 '전설의 협곡'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아침 시간도 전인데 벌써부터 부지런하게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게임 속 화면이 아닌, 영상 속 화면이었다.
플레이어의 화려한 플레이만을 편집하여 엮은 하이라이트 영상,
"매드 무비?"
가 재생되고 있었다.
암살자 챔피언이 묘기에 가까운 현란한 움직임으로 적팀을 농락함으로써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아."
이내 그런 소리가 나왔다.
화면 구석에 표시된 플레이어의 티어가 플래티넘이었다.
한국 3대 정글 중 한 명이자.
챌린저 최상위권 플레이어인 그녀에게 있어 플래티넘은, 아무리 잘 쳐줘도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초등학생 상대로 아무리 뛰어난 덩크슛을 해도.
아무리 뛰어난 드리블을 보여도.
결국엔 '양학'밖에 안 되는 것이다.
다른 팀원들 눈에도 같을 것이다.
그녀들은 한국 3대 까지는 아니었어도.
LKL에서 TC1이라는 거인과 1위를 다투는 팀의 팀원들이었으니.
그래서 의아함을 느낀다.
어째서 이런, 그저 널리고 널린 양학 영상 따위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아함은, 곧바로 종식된다.
영상의 우측 하단.
원래는 레오레의 맵이 위치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캠 화면.
그 안에 있는 남자의 모습에, 김희은은 눈길을.
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빼앗김으로써 말이다.
그녀의 시선은 한동엔 그곳에 박혀 있었다.
"이거, 누굼까?"
결국 김희은은 매드 무비인데 게임 플레이가 아닌 얼굴을 보며 그런 질문을 꺼내 버린다.
팀원들은 그러한 그녀의 행동을 밝힌다며 비난하거나 놀리지 않았다.
[댓글 : 아니 ㅋㅋ 얼굴만 보이는디? 추천 713]
남자가 게임에 몰두한 그 정적인 모습이.
극도로 동적이며 현란한 플레이 화면보다 더욱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댓글 : 숨컷쉑 와꾸 매드무비누? ㅋㅋ 추천 118]
영상을 본 여자들 대다수가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신-
"에엥?"
"이잉?"
"어엉?"
"아 찌찌 좀 치우라고."
그런 반응을 보인다.
'모른다고?'
같은 말이 들리는 반응을 말이다.
"무슨 일임까?"
"아니, 너 이 사람 몰라?"
"유명한 사람임까?"
"숨컷 몰라? 그 페카 이긴."
"어? 저분이 그분이었슴까? 오…."
그 말에 한 번 더 캠 화면에 향해진 김희은의 눈이 다양한 감정으로 반짝거렸다.
"우린 당연히 니도 아는 줄 알았는데."
"저 원래 레오레 커뮤니티 안 보는 거 아시잖슴까. 그래도, 여러분이 말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슴다."
"아. 어쨌든. 지금 이 사람 난리 났어."
"무슨 일임까?"
"어- 아, 직접 보는 게 낫겠다."
그렇게 말한 팀원은 영상을 내린 뒤, 특정 사이트에 접속했다.
'비씨인사이드'
사이트의 이름은 확인한 김희은이 표정을 찡그렸다.
흐름상 자연스럽게 레오레 갤러리에 접속할 듯한데.
통칭 레갤은 모든 레오레 커뮤니티를 통틀어 좋게 말하면 가장 자유로운, 사실 대로 말하면 가장 과격한, 나쁘게 말하면 가장 저급한 곳으로서.
프로 선수가 멘탈을 보존하고 싶다면 가장 기피해야 할 장소 1순위였다.
"으, 안 보면 안 됨까?"
"아, 새꺄 걱정 마."
"우리가 이미 봐서 아는데. 니 욕은 하나도 없어. 우리 욕만 졸라 많지."
"상식 대로. 욕을 먹으면 똥싸개인 우리가 먹지, 에이스인 니가 먹겠냐."
"그리고 임마. 어? 멘탈이란 게 원래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이야."
"그니까. 나도 레갤에서 하도 욕 쳐먹다 보니까, 이제 감독님이 화내면서 피드백 해도 하나도 안 무섭잖아."
"어, 감독님한테 말해야지."
"이르기만 해 봐. 나는 니가 감독님한테서 노처녀 냄새 난다고 한 거 이를 거니까."
"아니, 솔직히 나긴 하잖아."
"그렇긴 해."
"시집 언제 가시려나."
"확실히 해두는데. 난 이 대화에 낀 적 없음."
"응~ 방관했으니까 너도 공범이야~"
"이 괘씸한 새끼. 우리 이 새끼가 감독님한테서 노처녀 썩은내 났다고 하자."
"콜."
"삼인성호 맛 좀 봐라. 이 배신자 새끼."
"에반데."
"아니, 어쨌든. 어? 일단 봐바 임마. 이거, 니도 관련된 상황이니까."
"제가 말임까? 끄응…."
팀원들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레갤을 확인했다.
* * *
인기글 제목: 머그컵 의견 정리 ㅇㅇ
내용 : [영상]
"지금 숨컷님 계정 보니 1승급 당 7승은 해야할 것 같슴다."
"그러니 플4에서 다이아4까지 가는데만 최소 +30승을 해야 하는 건데."
"제가 숨컷님 계정으로 한다 가정해 보고 이야기 해보겠슴다."
"저라면 플래4에서 다4까지 전승 가능함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 레오레 솔랭이라는 게 실력 하나 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슴까?"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함다."
"그러니, 승률을 90%정도라 치고."
"그러면 10판에 9승1패, 즉 +8승이 되니까."
"40판을 해야 하는 게 됨다."
"여기서 또 저라면 모든 게임 15분 항복 받을 수 있는데."
"역시 모두가 알다시피 이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하니까 30분까지 가는 게임도 있을 것 아님까?"
"그러니 게임시간 평균 25분으로 잡고"
"벤픽시간 평균 5분으로 잡으면 판당 30분이라는 값이 나옴다."
"30X40=1200."
"플4에서 다이아4까지 가는 데에만 20시간, 하루에 10시간씩 한다 해도 이틀이 걸리는 검다."
"가장 쉬운 구간인 플래에서 다이아 구간에서만 도전 기한의 1/3을 잡아먹는 검다."
"다이아에서 마스터까지."
"마스터에서 그랜드 마스터까지."
"그랜드 마스터에서 챌린저까지."
"갈수록 어려워지는 구간이 세 개는 더 남았는데 말임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불가능한 이야기인 검다."
"숨컷 님께선 어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저는 못할 것 같슴다."
---
그렇댄다 ㅇㅇ
판단은 각자 알아서
ㄴ : 솔직히 머그컵 얘기 안 들어도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였냐?
ㄴ : ㄹㅇ 숨컷만 모르고 있는 거지
ㄴ : 솔직히 숨컷 걔도 알고 있을 듯
ㄴ : ㄹㅇ ㅋㅋ 그냥 리치TV에서 시작하는 방송 키우려고 되는 대로 내뱉은 거임 딱 봐도
ㄴ : 하는 짓 보면 실패해도 철판 깔고 방송 안 접을 듯 ㅋ
ㄴ : 이런 애한테 더이상 어그로 끌리지 말죠 ㅇ
ㄴ : 도대체 왜 이런 판단을 한 건지
ㄴ : ㄹㅇ 얼굴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게임도 잘해서 호감이었는데 갑자기 팍 식네
ㄴ : 하여간 잘생긴 남자들은 이게 문제임
ㄴ : 못생긴 너는 뭐가 문젠가요?
ㄴ : 못생긴게 문제겠지 시발아
ㄴ : ㄷㄷ 이분 현인이네 이분 말 들어라 숨컷은 이게 문제인 게 맞다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마치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하는 산악인.
용기다.
응원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4일 만에 200점에서 600점 도달하기]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여자'가 하기에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하기에도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남자, 숨컷에게 열광했다.
반면에.
큰 리스크를 젊어지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마치 장비 없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하는 산악인.
만용이다.
혹은 허풍이다.
응당 비웃음과 멸시를 야기한다.
[1주일 만에 플래티넘4에서 600점에 도달하기] 를 불가능한 일이라 단정 짓는 머그컵의 의견이 담긴 글이 인기글에 등극한 이후.
커뮤니티에서 숨컷에 대한 시선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관심마저 식게 만들 정도로.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무려 LKL 3대 정글인 머그컵의 주장에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이내, 커뮤니티에서 숨컷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그런데.
11시간 뒤.
그 머그컵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 이가 나타났다.
제목 : 속보) 숨컷 도전 11시간 만에 30연승으로 다이아4 달성
내용 : 리치TV ㅈ밥 쉑들 ㅋㅋ 2틀 걸린다고?
어~ 옐로TV는 하루컷이야~
ㄴ: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옐로TV의 자랑 숨컷!
ㄴ : 2틀은 뭐고 시발 틀딱 두명을 암시하는 것인가?
ㄴ : 1루 2틀 3흘 4흘
ㄴ : 30연승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ㅋㅋ 헛소리도 좀 말이 되게 해라 엘수새끼야
ㄴ : [사진]
ㄴ : 어케했노 시발년ㄴ아
바로 숨컷 본인이었다.
제목 : 아니 ㅋㅋ 30연승 머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 : 이게 가능함ㅆㅂ? ㅋㅋㅋ
ㄴ : 심지어 중간중간 저격이랑 트롤도 만났었음
ㄴ : ?? 저격은 둘째치고 트롤 만났는데 30연승이라고?
ㄴ : ㅇㅇ 트롤새끼들 항문 틀어막고 그냥 '승리'시켜 버림
ㄴ : 나도 숨컷이 내 항문 틀어막아줬으면 좋겠다
ㄴ : 부모님 숨통 틀어막는 걸론 만족 못하누?
심지어.
저격이랑 트롤도 만났단다.
그런데 30연승을 한다.
그것도 11시간 안에.
그 글을 본 김희은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라면 가능할까?
방송을 켠 상태로, 저격과 트롤을 당하며 11시간 안에 30연승을 해내는 게?
이내, 답이 나온다.
"하."
머그컵.
한국 레오레 1부 리그, LKL의 3강 팀 중 하나인 팀BAY의 에이스이자.
한국의 3대 정글 중 하나인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아주 무기력한 얼굴로.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1군 프로게이머였다.
게임에서 만큼은 자신이 최고다, 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자신감.
혹은 실력.
혹은 승부심이 있어야 쟁취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녀의 이빨이 드러난다.
눈이 반짝인다.
활짝 웃음으로써 말이다.
경쟁심, 이라 부를 법한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3대 정글로서.
그녀의 안에 존재하던 경쟁자 목록.
두 명이 적혀 있는 그 목록에, 한 명이 더 추가 됐다.
11시간 30연승.
그리고, 1주일 만에 600점.
김희은의 머릿속이 그 두 가지 생각으로- 아니지.
"…."
방금 전의 '매드 무비'를 떠올린 김희은의 머릿속이.
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어딘가 달뜬 표정이 되어, 모니터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조금 더 숙인 그녀에게 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아, 찌찌 좀 치우라고!!!"
찰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