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99화 (96/361)

099. 제나 웨스트 5

레오레에서 게임 시작 준비 과정, 그러니까 벤픽은 게임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게임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평균 소요 시각 5분.

"무슨 챔피언 해줘?"

픽 차례가 마지막인 삼피가 선심 쓰듯 말하며, 5분 동안 이어질 대화의 운을 띄웠다.

"뭐 잘하는데."

"그마딱에선 뭘 해도… 유노왓암셍?"

내가 '아이돈노왓유셍' 이라 말할 거란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하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그 위풍당당한 모습.

가만히 보고 있는데.

한 번 떠올리자 계속해서 떠오르는 '나는빡빡입니다'의 모습.

머리털과 함께 공격성이 거세된 그 모습이, 저 모습 위로 겹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너 진짜 상태 괜찮은 거 맞아?"

그러자 걱정, 이 아닌 조소를 담아 그렇게 말하는 삼피.

"선생님의 자신감이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왓? 뭐라 씨부리는 거야?"

"저런, 한국어도 영어만큼이나 서투시나 봅니다."

[자강두천 ㄷㄷ]

[얘네가 ㄹㅇ 오늘 막 처음 만난 애들이라고?]

[아니 삼피새끼 이런건 하루이틀 아니니까 둘째치고 ㅋㅋ 숨컷 얘도 정상 아니네]

[채지윤 털렸던 게 그냥 얘가 더 미쳐서 그랬던 거였누]

[이이제독 ㄷㄷ]

[성격 ㅈㄴ 빠꾸없고 ㅋㅋ]

[형아 보이크러시 ㄷㄷ]

"어쨌거나, 선생님 방금 이거-

그마딱해서 뭘 해도, 유노왓암셍?

방금 전 삼피를 흉내 낸다.

그런 날 오물 보듯 쳐다본다.

"어디 아프냐?"

"방금 니 모습 그대로 따라한 건데요."

"옆구리에 각목 얻어맞고 몸 비비 꼬는 니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 거겠지."

"옆구리에 각목 얻어맞고 몸 비비 꼬는 게 뭔지 아시나 보군요. 경험담이신 것 같으니 니 말이 맞는 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방금 그 말, 이 말이잖아요. 나 정도 되는 사람한테 그랜드 마스터 구간은 심해나 마찬가지라 뭘 해도 시청자들이 인정할 수준으로 캐리할 자신이 있다."

"UH HUH."

"UH HUH. 그러니까 아무거나 시켜라."

"UH HUH."

"UH HUH."

[아니 삼피 ^^ㅣ발아 ㅈ같은 싸구려 ENGLISH 그만하라고 숨컷한테 옮잖아]

[근데 숨컷이 하니까 A LITTLE BIT CUTE한데? ㅋㅋ]

[채팅창 꼬라지 보소 세종대왕님 오열하시겠누]

[흥선대원군이 이렇게 1승을 챙기네]

[DLPU1132 : 나 리수인데 숨컷 ㅈ도 안귀엽다 리치에서 꼴보기 싫으니까 그냥 빨리 옐로시티로 FUCK OFF 했으면]

[박연우주 : 내가 봐도 숨컷 얘는 YELLOW CITY 감성이다 물흐리지 말고 빨리 옐로시티로 꺼져라]

[PLS30 : ㅋㅋ 옐수들 개수작부리누]

[DLPU1132 : ? 개소리]

[박연우주 : 옐수가 뭔데 씹덕년아]

[엄]

[DLPU1132 : 상]

[박연우주 : 상]

[상]

[상]

[희]

[아 ㅋㅋ 절대못참지 씹수년들 컽]

"그랬는데 만약?"

"UH HUH?"

"시청자들이 캐리라고 인정하지 못할 플레이가 나온다면?"

"뭐."

"스스로 내뱉은 말도 못 지키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방송을 그만두겠다. 맞죠?"

"뻑유."

[담구려다 실패했누 ㄷㄷ]

"…님이 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Nice Try. 쿠쿠루쿠쿠삥뽕."

그때 들려 오는 후원음.

그리고 인공지능 보이스 캐릭터, 찬우의 유창한 영어 발음과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 섞인 목소리.

[찬우 영어 발음 보소 ㄷㄷ]

[나이스튜롸~]

[유사 미국인 새끼 맛탱이간 발음 듣다 저거 들으니 귀가 맑아지누]

[ㄹㅇㅋㅋ루ㅋㅋ삥뽕]

[리수 애들은 저게 재밌냐? ㅋㅋ]

[ㄹㅇ ㅋㅋ 십수새끼들 수준하곤]

[똥방귀하면 자지러지는 초딩마냥 엄상희나오면 좋아 뒤지는 새끼들이 수준운운 ㅋㅋ]

[뻑유 ㅋㅋ 삼피쉑 쫄았누]

"뻑유라니.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니었어?"

"헤이, 렛츠띵킹어바우릿. 너 같은 마딱이 하꼬도 잘만 방송하는데, 나 같은 인재가 관두면. 게임 방송의 전체적인 수준이 너무 다운그레이드되지 않겠어?"

"아니, 절대 질 일 없다는 듯 말해 놓곤, 지는 걸 전제로 얘기하네? 우리 삼피 님, 그마딱이들 이길 자신도 없어요?"

그러는 사이, 삼피의 픽 순서가 돌아왔다.

"이제 슬슬 그만 씨부리고 고르기나 해."

짤랑!

그때 들려오는 후원음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 님. 이 새끼 아무거나 고르랬으니 라뭄-무 어떠신가~요."

"라뭄-무? 그거 좋다, 라뭄-무로 갑시다."

전신에 붉은색 붕대를 두른 흉칙하고 거대한 미라, 라뭄-무.

그런 위협적인 끔찍한 외형과 달리 성능은 깜찍해서.

주력 포지션인 정글에서도 5티어로 최하급 취급을 받는, 명실공히 레오레 대표 찐따 챔피언 중 하나.

"하."

그런 챔피언으로 탑을 가라는 내 지시에 삼피는 여유로운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오?'

챌린저 상위권으로서, 그마딱이들 따윈 간단하게 발라버리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포했다.

그런 입장에서 탑 라뭄-무를 플레이해야 하는데 저런 여유라니.

이번엔 나조차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피지컬 하나 만큼은 탑클레스인 삼피가.

탑 라뭄-무라는 특이한 픽으로 그랜드 마스터라는 낮지 않은 구간에서 어떤 플레이를-

[겨뤄 볼 만한 상대… 어디 없나?]

보여주지 않네 이 새끼 나보고 고르라 했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존나 당연한 듯이 라뭄-무가 아니라 피올라를 골랐다!

화면에 찐따 미라 라뭄-무가 아닌, 펜싱의 대가 피올라의 일러스트가 표시되는 걸 지켜본 내 얼탱이가 조속히 출타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고르라면서요. 유노왓암셍의 서약은 어디다 갖다 쳐박은 것이지?"

"그러게 누가 헛소리 지껄이래? 기회 줄 때 제대로 했어야지."

"아니, 니가 아무거나 고르라면서요. 그게 구린 캐릭터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지. 근데 결국 성능 좋은 거 고르네?"

"성능 이스 낫 프라블럼."

"앗, 이 새끼 성능 영어로 뭔지 모른다."

[성능 이스 낫 플라블럼 ㅇㅈㄹ ㅋㅋ]

[쪽팔려서 안 쓸 법도 한데 당당한거 보소 ㅋㅋ]

[여러 의미로 대단한 새끼 ㄹㅇ]

[ㄹㅇ ㅋㅋ 성능이 ㅅㅂ 뭐가 문제야 이 서양인 새끼 저 미국스러운 면상으로 성능이스낫프라블럼 ㅇㅈㄹ하고있는데]

비아냥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 경이로운 뻔뻔함, 그걸 가능케 하는 자기애로 말을 이어간다.

"성능 구린 챔피언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피지컬 좋은 년이 하든, 구린 년이 하든 아무런 차이 없는 그딴 갈비지 챔피언을 하기 싫은 건데, 하긴. 니네 같은 애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

상황이 상황이라 당연히 변명 같지만.

얘가 가진 성격, 3자과(자부심, 자존감, 자기애 과잉)성격을 고려해 보면 또 진심인 것 같기도 했다.

라뭄-무는 피지컬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인 논타겟 스킬이 붕대를 날려 적중시킨 상대를 기절시키는 동시에 날아가는 Q스킬, 붕대 날리기 하나뿐이고.

그 붕대 날리기를 맞춰 적 진영에 파고 들어간 뒤 WER를 누르고, 그러니까 나머지 스킬들을 쓰고 죽는 게 플레이 내용의 전부인 챔피언이었으니까.

그런 챔피언을 하면 내 자랑인 피지컬을 썩히는 거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아마.

-5

-4

-3

-2

-1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기실에서 로딩화면으로 이동한다.

로딩창에 표시되는 열 명의 챔피언.

저 중에 내 캐릭터는 없다.

이번 게임에서 내 역할은 탑도, 정글도, 미드도, 바텀도 아닌 오더였다.

제6의 멤버.

"이거 완전 반칙이네."

"뭐?"

"적팀은 5명인데, 우리팀은 오더하는 나까지 6명이잖아."

[식스우먼 아닌 식스맨 ㄷㄷ]

[말 되누 ㅋㅋ]

[삼피 새끼 뇌 없고 숨컷님은 뇌만 쓰는 거니까 문제 없음]

[아 코러네 ㅋㅋ]

[외장형 브레인 ㄷㄷ]

"아, 그러네?"

"에휴, 병신들."

이윽고 로딩화면에서 게임화면으로 이동.

이제 1분 20초 뒤, 라인의 미니언들이 생성되어 라인전이 시작되고.

정글 몬스터가 생성되어 정글링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게임이 시작되는 건 그때, 1분 20초가 지난 이후라 할 수 있을까?

아니.

게임이 시작되는 건, 우측 상단 게임의 타이머가 흐르기 시작한 이후다.

그러니까.

게임이 시작되면, 그냥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구태여 말하면 멍청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더러.

게임이 1분 20초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니코틴 섭취할 생각에 흥분해서 담배랑 라이터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유사 약물 중독자 새끼들.

방광 비우러 화장실 가는, 꼭 시험 시작하면 그제서야 화장실 가도 되냐고 손드는 그 새끼들.

그리고 시발 하루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웹툰을 굳이 지금 쳐 보는 새끼들.

기어코 1분 20초를 알뜰살뜰하게 낭비하는 놈들이 분명, 존재한다.

게임 특성상 이 1분 20초로 게임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 1분 20초를 어떻게 활용해야, 잘 활용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어디가 이것아."

일단 삼피, 얘처럼은 아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 라인인 탑 라인을 타고 뽈뽈뽈 기어간다.

미니언 없는 라인에 가서 뭘 하겠는가.

초반 1분 20초의 무대는 정글이다.

정글에도 몬스터가 없는 건 매한가지 아니냐?

맞다.

하지만 타워도 없다.

그렇기에, 영역 침범에 제한이 없다.

영역의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정글이 어느 진영 쪽이든 상관없이 시야를 장악하는 쪽이 주인이 된다.

인베이드 혹은 인베라 불리는 치열한 영역 싸움과 신경전이 일어난다.

고로.

아군 진영의 정글을 지키거나, 적군 진영의 정글에 쳐들어가거나 해야 한다.

그 행동을 이르길 인베.

그게 1분 20초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이자, 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데-

"너는 챌린저가 돼서 인베도 안 봐?"

나는 당연한 의문을 말했다.

"미리 가서 부쉬 장악할 건데?"

라인전의 고지, 부쉬.

그걸 미리 장악해서 라인전 초반의 선공권을 차지한다.

그 또한, 1분 20초 까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면 하나였지만-

"아니, 니 부쉬 장악하는 것보다 아군 정글 장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무슨 노른자 땅이야? 면적부터가 비교가 안 되는데. 게다가 쟤네팀 1레벨 꽤 세서 십중팔구 인베 들어올 건데."

인베와 비교하면 차선책, 비교적 좋지 못한 선택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플레이란 점에서 그렇다.

팀원들 다 인베 보느라 정글에 있는데 혼자만 탑에 있으면, 적과 비교했을 때 1명의 공백이 발생한다.

교전시 패배로 이어지는 명백한 전력차이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인베 싸움 자체를 포기한다?

아군의 정글러를, 팀원 중 하나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레오레는 팀게임이다.

구성원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체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구성원이 게임 전반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정글러.

인베를 보는 게, 부쉬를 장악하는 것보다 상책이다.

상식이다.

아무리 뇌지컬이 구려도 챌린저다.

그러한 상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한 치의 망설이 없이 그런 상식을 어기는 판단을 내린다.

이유?

"어차피 내가 캐리할 텐데 뭐."

삼피가 삼피 한 거다.

혹은.

탑신병자가 탑신병자 한 거다.

"알겠으니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정글 지키세요."

"컴온~ 시리어슬리?"

선생이 학생 달래듯 지시를 내리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즉각 따른다.

<선취점! 추가골드 +100G.>

(팀)(에이코) : 아 왜;; 아무도 같이 안 봐주심 ㅠㅠ

(팀)(주이) : 어차피 우리 있었어도 4:5였음 ㅇㅇ

(팀)(애즈리얼) : 한 명만 죽은 걸 다행히 여기죠

(팀)(에이코) : 탑님이 위에 계시네;;

그러나 시스템 이미 늦었음을 알린다.

"에휴."

그에 한숨을 내신 뒤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 삼피.

"렉톤 킬이네, 그마딱 뻐킹 눕스들 아니랄까봐."

특유의 비웃는 듯한 인상 위로, 진심으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어쨌거나."

날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이미 죽었으니까 안 가도 되지?"

일단 말은 잘 듣지만 광견병 걸린 미친개와의 산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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