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제나 웨스트 3
방송이 시작되고 악성 네티즌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며 분탕질을 시작하자, 삼피가 이린의 권유에 따라 준비해 두었던 수십 명의 일일 채팅 관리자가 빠르게 그들을 차단해 나갔다.
IP 차단이 당연시된 요즘이다.
방금 상황에서 차단한 악질 목록을 최재훈의 방송에 그대로 옮기면, 그 자체만으로 최재훈은 방송 활동에 크나큰 장애물이 될 것들을 완벽히 제거한 게 된다.
그리고 수천 명에 달하는 삼피의 고정 시청자들이 악성 네티즌들의 분탕질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분위기를 유지해 구심점이 되어줬다. 덕분에 분탕질로 흐려졌던 방송의 분위기는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자신에게 쏠려 있던 관심의 여과.
최재훈이 삼피의 합방에서 이루고자 하는바, 과제라고 할 수도 있었던 것이 합방 시작과 동시에 해결된 것이다.
이젠 그 여과된 관심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자신의 방송을 성장시킬 일만 남았다.
"레오레 켠다."
최재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방송에 임했다.
* * *
"야."
레오레를 킨 뒤 곧바로 로그인을 하는 대신 나를 부르는 삼피.
"뭐."
"니 티어가 어떻게 돼."
[둘이 뭐임 구면임?]
[말 엄청 편하게 하네]
[친구임?]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올라온 채팅을 본 삼피가 코웃음을 쳤다.
"얘가 나랑 프랜드? 뻐킹 불 쉿. 나 얘랑 만난 지 10분 됐나?"
[말하는 거 보면 10분이 아니라 10년은 된 것 같은데]
[삼피가 10년이긴 해]
[이 빡머가리쉑 분이랑 년 헷갈린 거일 수도 있음 ㅇㅇ]
[아니면 그냥 분을 모르는 걸수도 있음 얘 사람 지칭할때 '분'쓰는거 봤냐? 이분 저분? 난 못봄 년만 봤지 ㅋㅋ]
[아 ㅋㅋ 뇌에서 예의를 담당하는 부분을 너무 안 써서 퇴화된 게 언어 담당하는 부분까지 영향 왔누]
"아니, 갑자기 웬 지랄들이야. 스튜핏 뻐커스. 텐 미닛, 말하는 거잖아 당연히."
"맞아요, 저희 오늘 초면입니다."
[근데 왜 그리 친해 ㅋㅋ]
"친해? 얘랑 내가? 하, 디스거스팅 조크."
[그럼 안 친하면서 말을 그렇게 편하게 하는 거임? ㅋㅋ]
"미국에선 원래 이러는데?"
[여기가 미국이야 ^^ㅣ발?]
[미국에선 원래 그렇게 싸가지가 없으면 총을 맞지 않나요?]
[안녕하신가! 힌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삼피 미국 친구. 번역기의 힘을 빌려 한다 인사. 삼피 싸가지 없게 굴고싶은데 총맞기는 싫어서 한국으로 빤스런했다. 땡큐 김치 사랑해요 연예가중계 한국 치맥 삼겹살 천재적이에요 너무맛있어요]
[그런 사연이 ㄷㄷ]
[역시 한국의 위대한 발명품 삼겹살]
[돼지를 한국이 발명한 거였누]
삼피가 어깨를 으쓱이며 우쭐대자 폭발하는 채팅창.
'대충 이런 분위기구만.'
[숨컷님 불쌍하다 ㅠㅠ]
[남성 분이신데 좀 젠틀하게 대해 줘요~]
"불쌍해? 얘가? 와우. 니들이 얘 말하는 걸 봤어야 됐는데."
삼피 방송의 분위기가 내 방송과 비슷하다는 이린 씨의 말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주억거리는 고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나는 본격적으로 방송 분위기에 뛰어들기로 한다.
"맨날 니가 말하는 거 보는 분들인데, 내가 말하는 거 봐도 별다른 감흥 없을걸."
[엌ㅋㅋ]
[ㄹㅇ루다가]
[설사 보다가 오줌 본다고 놀라냐고 ㅋㅋ]
[숨컷좌 성격 화끈하누 ㄷㄷ]
[역시 보이크러시 숨컷 형아 ㄷㄷ]
예상 대로.
삼피를 깠는데 오히려 좋은 반응을 보이는 삼피의 시청자들.
"쯧쯧쯧, 좋단다 븅신들~ 됐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니 티어 얼마야."
"아니, 얘 진짜 골 때리네. 너는 니가 나보고 합방하자 해 놓고, 내 점수도 몰라?"
"그래서 지금 알려고 하잖아, 멍~청아."
"당당한 거 보소. 마스터 200점."
"200점? 쓰레기네."
[남자가 마스터 200점이면 높은 거지]
"남자라고 뭐 리미테이션 받는 것도 아닌데 그딴 게 어딨어. 헤이, 왓두유유띵크어바우릿. 니도 '난 남자니까 200점이면 대단한 거야~' 그따구로 생각하고 있어?"
[숨컷 그래도 탈마스터급 실력인데]
[ㄹㅇ 한예지 쟈드 미러전으로 이겼음]
"걔 이기는 게 대단한 건가~? 아, 뭐. 그래도. 제법이긴 하네. 마스터 200점 주제 걔를 쟈드 미러전으로 이긴 거면."
[페카도 이겼는데?]
"페카 뎃 비치, 거품이야 그 새끼도."
[걔 지금 랭킹 14위인데 ㅋㅋ]
[랭킹 14위가 거품이면 랭킹 46위인 너는 거품물고 뒤져야 하는 건가요?]
[페카는 이긴다곤 못하누 ㅋㅋ]
"내가 이길 수 있는데?"
[근데 왜 만날 떄마다 지누? ㅋㅋ]
"그 뻐킹 비치, 맨날 정글 쳐부르짆아."
[아 ㅋㅋ 1:1할거면 ^^ㅣ발아 레오레 말고 격겜을 했어야지]
[니도 정글 부르던가 ㅋㅋ]
[정글 부르는 것도 실력이야 ㅄ아 ㅋㅋ 뇌지컬 ㅋㅋ]
삼피의 말이 이어질수록 미간의 각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계속 참았다.
그런데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이건 꼭 말해야겠다.
"얘 영어 잘하는 거 맞아요?"
하도 자신감이 넘쳐서 긴가민가한데, 아까부터 뭔가 엉성하다.
발음도, 토종 한국식이라는 느낌이다.
저 더는 없을 정도로 서양인스러운 낯짝으로 말이다.
[걔 영어 100점 수준임]
"아, 그래요?"
착각이-
[토익 기준]
아니었네.
"하."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느끼며 말한다.
"100점이 200점 보고 뭐라 하던 거였네."
"저걸 믿는다고? 왓어 덤브. 아무튼, 니 마스터 200점 따리면-"
드디어 로그인을 한다.
"수준에 맞춰 줘야겠지."
삼피의 원래 점수는 800점 이상으로 챌린저.
반면에 지금 접속한 계정은-
"뭐야, 310점?"
310점으로 그랜드 마스터, 부캐인가 보다.
"마딱이한테 챌린저 오더시킬 순 없는 거니까~ 왜, 이것도 너무 높아?"
"아니, 챌린저란 애가 그마에서 오더를 받아야 할 정도로 뇌지컬이 심각한가 해서."
"그마딱이들 같은 건 앤조잉 게임해도 바르는데. 그리고-"
피식 웃는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내 뇌지컬이 구리다고?"
[네]
[ㅔ]
[아니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존나쌉구리다고 생각하는데요]
[말이라고]
[난 요즘 구리다는 표현 대신 '삼피 뇌지컬이네'라는 표현 쓴다 ㅇㅇ;]
[서정적인 표현이네요]
"라는데?"
그러자 더욱 입가를, 눈가를 일그러트린다.
정말로 가소롭고 같잖아서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
"저 퍼킹 눕들 중에 나보다 레이팅 높은 새끼가 몇이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그님티를 시전하누 ㅋㅋ]
[삼하다 추피야]
[와 오늘 얘 방송 첨보는데 ㄹㅇ ㅋㅋ 개띠껍누]
[숨컷아 ㅇㅇ;; 이런 애한테 굽신거리면서까지 리치에서 성공하고 싶냐? 그냥 옐로시티 돌아와서 다시 페카한테 저격이나 당하는 행복한 나날로 돌아가자]
"시발."
"앙?"
"앗, 죄송. 잠깐 끔찍한 채팅 보고 PTSD 도져서."
[ㅗㅜㅑ]
[숨컷좌 욕하는거 ㅗㅜㅑ;]
[퍄퍄퍄]
[페카쉑한테 치를 떠누 ㅋㅋ]
[속보) 페카 리치TV 접속]
[강한남자 ㄷㄷ]
[난 남자가 나한테 욕해주는 게 그렇게 꼴리더라]
[그래서 맨날 아버지 속 썩이시는 겁니까]
[시발이]
[오빠 우리대신 욕해주네 ㅋㅋ]
그 말 대로, 내가 지한테 욕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특유의 조소를 터뜨린다.
"욕하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해. 찌질하게 그런 변명 대지 말고. 아이 돈 기브 쉿. 우리 아메리칸,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아니 ^^ㅣ발아 니가 뭔데 아메리칸을 대표해]
"그럼 한국인을 대표할까, 멍청아?"
[군대도 안 갔다 온 새끼가 어딜 감히]
"나 군대 갔다왔는데?? 전시근로역으로."
눈 앞에서 서양인 여자가 황금버섯 같은 단발 헤어스타일의 머리를 갸웃거리며 한국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음을 당당히 자랑한다.
나로선 특히나 으메이징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전시근로역을 언제부터 군대로 쳐줬냐 ㅅㅂ아]
[여자분들 전시근로역이 뭐예여?]
[군사 훈련 안 받고 민방위 훈련만 받는 애들]
[공익보다 꿀이고 면제보단 덜꿀인 새끼들]
[사지 존나멀쩡한 새끼가 서양인이라고 군대도 안 가네 아 ㅋㅋ]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고 군필도 면제도 아니고 우리도 이제 니가 뭐하는 새낀지 모르겠다 ㅇㅇ;]
[아니 근데 ㅋㅋ 전시근로역 ㅅㅂ ㅋㅋ 개웃기네 저면상에 진짜 존나 무근본 그자체다 삼피야]
"뭐야 이거, 인종차별이야?"
[금발파란눈흰피부 백인을 어떻게 인종차별해 ^^ㅣ발아 ㅋㅋ]
[ㄹㅇ ㅋㅋ 인종차별 내성 만땅이자너]
[얼음 얼리는 소리 하고 있누 ㅋㅋ]
"아 됐고. "
엄….
그런 서양스러운 소릴 내며 고민한다.
[엄?]
[상]
[희]
[UM... 은 씨발아 ㅋㅋ 한국인이면 어디보자~ 해라]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로다~]
"퍽킹 쉿. 이 머저리들 때문에 뭔 얘기하는지 까먹었네. 아, 롸잇. 이 새끼들이 내 뇌지컬 구리다고 지랄 중이었지.
헤이 유, 렛츠띵킹어바우릿. 같잖지 않아? 저 새끼들도 그렇고, 니도 그렇고. 나보다 점수가 높긴커녕, 챌린저도 못 찍는 심해새끼들이 내 뇌지컬 평가하는 거. 내 피지컬이 너무 우월해서 뇌지컬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보이는 거지.
너네 심해새끼들이 뭐라 왈가왈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뭐, 점수가 전부가 아니라고 추하게 씨부려 볼 수도 있지. 어쨌거나 내 입장에선 투머치 힐라리우스 할 뿐이지만. 유노왓암셍?"
[천조국 형님들 제발... 이것좀 다시 가져가주십쇼]
[환불, 곤란.]
[산타할머니 저 올해는 말 잘 들어서 엄마랑 아빠 안 울렸으니까 제발 선물로 저 새끼좀 조져주세요]
[올해'는'? 작년 까지만 해도 울렸었누?]
"그러면 니는 니 뇌지컬 수준이 어느 정도라 생각하는데요."
"노멀."
"니 점수, 챌린저 800점 기준으로?"
으흠.
코를 울려 긍정을 표한다.
"그러면, 니는 니 피지컬 수준이 어느 정도라 생각하는데요."
"원탑."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다란 검지를 치켜들며 말한다.
아니, 이거.
좀 멋진데.
특유의 비웃는 상의 표정이 위풍당당하게 느껴질 정도다.
병신같지만 멋지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다.
근데, 얘는 지가 말해 놓고도 문제를 모르는 건가.
"이상한 거 못느껴?"
"스트레인지 띵? 왓."
"니 말 대로, 뇌지컬이 800점 기준으로 평범한데 피지컬이 원탑 수준이라면. 니 점수가 800점 보단 높아야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이거는 반박 못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이게 병신좆망겜인 이유지."
짝짝짝.
무의식적으로 박수가 나왔다.
"인정합니다."
"하, 웬 일이래?"
니 말을 인정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니 3자(자존감, 자기애, 자부심)이 경지에 올랐음을 인정한다고.
피곤하니까 굳이 정정하진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애초에 뇌지컬-"
투~머치 힐라리우스 하다는 듯한 조소를 짓자 반달처럼 휘는 커다랗고 파란 눈.
"그거잖아. 피지컬 손 딸려서 쓰레기 챔피언밖에 못 하는 쓰레기들이 마스터베이팅하려고 만든 개념. 그딴 거 좋아 봐야 뭐 하냐고. 결국 피지컬 하위 개념인데."
[마스터베이팅이 뭐임?]
[우리가 맨날 하는거]
[미친년아 뼈삭아 작작해]
[아니 이 새끼 ㅋㅋ 남자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이건 ㄹㅇ 미국식 빠꾸없는 성관념이누]
-…님이 10, 000원 후원했습니다.
=제발 ㅅㅂ 이 새끼 성희롱으로 고소해서 참교육좀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성희롱으로 고소해서 사형시키면 500억.
"뭐, 그런데도 얘네들이 니 '뇌지컬' 니 '오더'-"
특정 단어를 강조하며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세운 채 접었다 핀다.
저 비꼬기 제스쳐는 확실히 유나이티드 스테이티드 음메리카스럽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다니까, 열심히 재롱 한 번 떨어 봐."
시그니쳐인 비웃는 표정과 어조로 장문의 연설이란 이름의 조롱을 마무리한다.
신조차 모독할 정도의 천재스러운 띠꺼움.
참느라 고역이었다.
불쾌함을 드러내는 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제발 지랄 좀 그만하라고 부탁하는 걸?
아니.
웃는 걸.
삼피의 저 띠꺼움이라는 단어 조차도 띠꺼움을 느낄, 초월적인 띠꺼움이.
내게는 그저 웃길 따름이었다.
귀여웠기 때문이다.
저런 귀염성이라곤 먼지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모습에서, 어떻게 귀염성을 느낄 수 있는가.
껍데기만 놓고 보자면 삼피가 의심할 여지 없이 '서양 미녀'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는 인물이라서는 아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한들, 저 띠꺼움은 개성으로 포장해 주기엔 무리가 있다.
[구독자 : 삼피 누나 또 깝죽대네 ㅋㅋ]
[구독자 : 깝피 기여워 ㅋㅋ]
몇몇 '놈'들 생각은 다른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나는 아니다.
내가 삼피에게 귀염성을 느낄 수 있는 이유.
바로, 내가 삼피의 또다른 모습을 알고 있어서다.
운명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나는 지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렇게 날 만나서 '또다시' 죽도록 깝을 치는 삼피.
그런 삼피를 '또다시' 참교육 시켜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말이다.
아무래도 삼피는.
'치킨킹의 꼬봉'의 일원'나는빡빡입니다'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