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제나 웨스트 2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일련의 과정으로 이린 씨는 편집자로서 부담스럽다 싶을 정도로 유능하다는 게 증명됐고, 제시한 계약서의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계약서를 지현 씨와 민아 씨에게 검토를 받아 문제가 없다는 걸 재확인한 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후, 이린 씨는 곧바로 삼피와 연락을 시도하여 합방을 성사시켰다.
합방 일자.
내일 오후.
나는 지금 이린 씨의 옆에 앉아 있었다.
오피스텔 앞에 마중까지 나와 준 이린 씨의 고급 대형차를 타고, 삼피의 스튜디오로 이동 중이다.
"아이고,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제 할 일을 할 뿐이니까, 부담 가지지 마시길."
제 할 일이라.
그 계약서에 포함돼 있던 업무에 이러한 섬세한 케어까지 포함돼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 그 계약서가 세간에 노출되는 순간, 난 부당 고용주로 채지윤과 같은 사형대에 오를지도 모른다.
"맞아요, 언니. 얘한테 너무 잘 해 주지 마세요, 버릇 안 좋아져요. 쩝쩝."
뒷자석에 앉은 재은이가 뭔가를 먹으며 헛소리를 씨부렸다.
잠깐, 뭔가를 먹어?
다급히 뒤를 돌아보자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재은이의 상판이 보인다.
"뭐 먹냐?"
"나? 이거."
이거라고 가리킨 옆자리엔 카스테라? 판 같은 게 이미 반쯤 비워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게 뭔데."
"카스테라 같은데 뭔가 다름."
"아니, 맛을 물어본 게 아니고 이 맛탱이 간 것아. 내 말은. 그거 어디서 났냐고."
"응? 여기 있던 건데?"
"편집자 님 차 안에?"
"엉."
"그걸 왜 먹는데?"
"엉?"
"편집자 님 차에 있는 걸 니가 왜 먹냐고 이 정신나간 지지배야."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입가를 음흉하게 일그러트린다.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얼굴을 가격해 달라는 것인가.
"빼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어서 나도 모르게."
설상가상으로 포장지에는 어제 갔던 식당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저 식당의 로고가 의미하는 바를 아는 나였기에 시발 세상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식당의 로고가 의미하는 바.
-앗, 저기요!
-네?
-이거, 흘리셨어요.
-이게 뭔데요?-
-0이에요. 그쪽이 생각하신 가격 뒤에서 떨어졌어요!
였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1만 원이 넘기가 힘든 카스테라지만, 정말 10만 원을 넘어 보이는 개환장 지랄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재은이가 함부로 쳐먹은 남의 음식이 비싸기까지 하다는 잔인한 사실에 경악한 내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말들이 뛰쳐나왔다.
"이-이, 미친 지지배야! 이 오빠가 널 지도 모르게 남의 비싼 음식을 탐하는 미친 지지배로 키웠어!?"
"그런가, 그러면 이건 오빠 탓이네."
이 금수가 진지하게 고갤 끄덕이더니 그런 말을 씨부렸다.
"아, 세상에. 편집자 님, 죄송합니다. 저 금수를 키운 건 접니다. 제가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보상하겠습니다. 얼마짜린가요?"
"가격은 8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흐어어억."
"헤에에엑."
우리 남매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나왔다.
내가 우려하던 개환장 지랄이 일어나고 말았다.
기어코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어 버렸다.
'아니 시발, 도대체 뭐로 쳐 만들어야 카스테라가 8만원이 넘어가는 것이지?'
가장 강한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미지의 공포라고 했던가.
나는 지금 이 8만원 짜리 카스테라에게 진정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 아니 뭔 카스테라 한 판이 8만 원이나…."
재은이가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거대 촉수 괴물이 나타나서 팝핀댄스를 춰도 이만큼 우리의 정신력을 갉아먹진 못할 것이다.
"교꾸라는 일본식 계란 구이입니다."
"어, 어떡하지. 이거 다시 토해서 구으면 되지 않을까? 반죽처럼."
"몰라몰라 미친 지지배야. 애초에 그걸 왜 쳐먹은 거야."
"얘가 날 유혹했어!"
"우리 남매가 유혹에 좀 약한가 보구나. 마침 나도 지금 니 살인 충동에 유혹당하는 중인데. 진짜 죄송해요, 이린 씨."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다기보다는…."
"예?"
"애초에, 제가 재은 님을 위해 준비해 둔 걸 권해드렸을 뿐입니다."
"네?"
"그것 봐. 이게 내가 빼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니까."
음흉한 웃음의 의미는 나에 대한 농락이었던 것이다.
"죽일까."
"하하. 멍청한 것."
"아니, 그보다 도대체 왜 이런 금수에게 그런 무상의 행복을…."
내 의문에 이린 씨는 답 대신 입꼬리를 약간 올릴 뿐이었다.
'아….'
천사다.
금수(최재은)를 좋아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에 따라, 이 사람은 천사임이 분명했다.
도착하기 전까지 이린 씨와 나는 금수의 쩝쩝거리는 소리를 BGM으로 방송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뭐,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동시송출 안정화 되면, 두 플랫폼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굳이 리치TV로 이적할 이유가 있나?"
"모든 플랫폼에서는 플랫폼 차원으로 다양한 지원 혹은 혜택을 받으려면 파트너쉽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계약 조건상 동시송출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아아… 옐로우TV는 그런 게 약하죠?"
"에, 맞습니다. 옐로우TV는 현재 시스템 제공자로써만 기능하고 있는 실정인데…."
"실정인데?"
"들리는 이야기론, 옐로우TV 전 방송인이 설립한 투자회사에서 옐로우TV 매입을 추진 중이라 하는데. 그게 성사되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일과 관련해서 풍부한 이린 씨의 지식을 내가 일방적으로 탐할 뿐이었지만.
"제가 삼피 방송에서 행동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숨컷 님 방송의 성향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선정한 합방 대상입니다. 숨컷 님이 본인의 방송에서 하셨던 것처럼 눈치 안 보고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한 가지."
"네?"
"다소 특이한 성격의 보유자이니. 그 점 미리 염두해두시면 되겠습니다."
''다소' 특이한 성격의 보유자라….'
나는 삼피에 대한 이린 씨의 평가를 듣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다소'가 가진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에 의하면 군대는 다소 고달픈 곳이 되고.
히틀러는 다소 못된 새끼가 되며.
서든샷2는 다소 아쉬운 게임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삼피가 환한 비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온라인상에서 여러 차례 만나 봤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의 모습도 처음 본다.
머리는 황금 버섯 같은 단발 머리가 되어 있었고.
평소 고집하던 탱크탑은 브라탑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 한국이잖아요. 유노왓암셍?"
특출나게 싸가지 없는 성격은 여전했다.
관계가 리셋된 지금, 이걸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우리 이린 편집자 님께서 눈치 안 봐도 된댔으니까.
그 조언을 기거이 따르기로 했다.
"갑자기 영어로 말하길래 홍콩에 잘못 내렸나 했죠. 유노왓암생?"
"…."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삼피가 이내 가소롭다는 듯 "하!"웃음을 터뜨렷다.
"홍콩 가보긴 했어요?"
그리곤 기어코 그런 답을 해 온다.
진짜, 다소 골 때리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 * *
"그 오더, 그딴 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리 호들갑들인지. 그냥 타자 빠르면 누구나 가능한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나한테 그딴 거 보여달라면서 방송 나와달라고 부탁한 어떤 서양인은 뭐가 돼요."
"어쩌겠어~ 그딴 것도 신기하다고 구경하고 싶어하는 귀여운 시청자들 부탁인데. 들어 줘야지."
"…아!"
최재훈이 짐짓 고민에 빠진 척을 한 뒤 깨달았다는 듯한 제스쳐를 보였다.
"알겠다. 딱 알았다."
"? 뭘 알아."
"니 시청자들이 그딴 것도 신기해 하는 이유요."
"뭔 개소릴 하려고."
"니 방송에 없는 거잖아요, 뇌지컬. 그래서 신기한 거지."
"그냥 웃기네~ 마딱이가 뇌지컬이니 피지컬이니 운운하는 거 궁금한 건데. 마스터 애들은 자기가 게임 잘하는지 알아?"
"니는 어땠었는데요."
"왓?"
"니도 마스터였던 적이 있을 거 아니예요."
"하, 나씽."
최재훈이 고갤 갸웃거리자 빈정거리던 서진아의 눈가가 더욱 짓궂게 휘었다.
"불쌍해라. 그래, 인정하기 힘들 거야. 그게 재능의 차이고, 지능의 차이인 거야."
"지능의 차이가 있기는 한 것 같긴 하네."
"뭐?"
"마스터를 안 거치고 챌린저를 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마스터였던 적이 없어."
"하, 그거랑 지금 니랑 같냐?"
"다르죠."
"잘 아네."
"내가 챌린저 가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니가 걸렸던 기간보다 훨씬 빠를 거니까."
"쯧쯧쯧. 그래, 힘내."
얼굴에 연민과 조소를 공존시키며 혀를 차는 서진아.
"힘은 니가 내셔야지. 나한테 따라잡히면 그때 힘 많이 내야 할 거니까."
진심으로 가엾다는 듯 쳐다보는 최재훈.
숨쉬듯 깔보려 들고, 죽어도 안 져준다.
다른 의미로 서로 잘 맞는 둘이었다.
-띡 띡띡 띡
-철컥
서로 신나게 틱틱거리다 보니 어느새 서진아의 집 앞이었다.
서진아의 넓은 집 안은 몇몇 운동 기구가 놓여 있는 걸 제외하고는 그저 있어야 할 가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듯, 꽉 차 있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삭막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안방은 방음 처리하여 개조되어 있었다.
서진아의 스튜디오였다.
일과는 무관한 최재은의 동행은 '어제 채지윤에게 폭행 당한 오빠가 걱정되는 여동생'이라는 입장으로 용납되었다.
그리고 그 입장 대로.
최재은은 최재훈에게 삼피를 구경하고 싶어서 데려가 달라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가 걱정되어서였다.
"언니, 저 팬인데 사진 한 장만요!"
하지만, 표면적인 목적도 거짓은 아니었기에 챙길 건 챙긴다.
서진아는 귀찮은 티를 가감없이 내면서도 팬이라는 최재은의 말에 순수히 사진을 찍어 줬다.
해맑은 최재은의 모습과, 시큰둥한 서진아의 모습이 한 화면 안에 담겼다.
최재은은 그녀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서진아의 사진은 백이면 백.
잘생긴 남자랑 찍든, 예쁜 여자랑 찍든, 연예인이랑 찍든, 프로게이머랑 찍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이거 뭐 하는 거예요?"
"저희 쪽 영상을 별도로 뽑기 위한 세팅입니다."
이린은 최재훈에게 마이크를 연결시키고 책상 위에 별도의 기기들을 설치한 뒤 최재은과 퇴실했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됐다.
[삼하]
[Annyeonghaseyo deahan mi kuk nyeon]
[뭐야 옆에 누구임]
[숨컷이야?]
[와 ㄷㄷ 존잘 존예]
[비쥬얼 보소 캠들 씹어먹는 조합이누]
먼저 알림을 받은 기존 시청자들이 가장 빨리 빈자리를 채웠다.
[숨컷 썅련아!!! 리치tv에서 뭐하는데!]
[여기 집나간 숨컷 찾으러 왔는데요]
[아 ㅋㅋ 벌써 배신은 선 넘었지 ^^ㅣ발아]
[진짜 배신 속도 레전드다 진짜 장혜환도 한 수 접겠누]
[엄]
[상]
[희]
다음은 옐로우 TV에 찍힌 좌표를 타고 날라온 옐로시티 주민들.
[오 숨컷이다]
[얘가 걔 맞지? 채지윤 정의구현한애]
[어제 채지윤한테 했었던 벌컨 보여주세요]
[이 분 개헤엄 도와주신 그 분인가?]
[어제 썰좀 풀어봐]
다음은 어제 채지윤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시청자 33, 138>
단번에 삼피 방의 평균 시청자 수인 7천을 가볍게 돌파하고-
[뺨에 상처난거 꼴리네 ㅋㅋ]
[하꼬새끼 좋겠네 ㅋㅋ 이번사건으로 어그로끌어서]
ㄴ삭제된 채팅입니다
[ㄹㅇ 피해자들 팔아서 이름알리니까 좋냐?]
ㄴ삭제된 채팅입니다
[님 채지윤이랑 했나요?]
ㄴ삭제된 채팅입니다
[얘는 몰라도 다른 피해자들은 ㄹㅇ 100% 했지 보니까 완전 노예더만]
ㄴ삭제된 채팅입니다
[ㄹㅇ ㅋㅋ]
ㄴ삭제된 채팅입니다
방송은 단번에 혼란에 휩싸인다.
[누나 얘네 뭐야]
[채팅창 곱창났네 ㅋㅋ]
[아 뭐야 저새끼들 개더러워]
[어제 그사건보고도 저딴 생각이 가능하구나 ㅋㅋ]
[어그로 ㅈㄴ많네]
그래도.
어제 이린의 충고에 따라 삼피가 대기시켜 둔 다수의 채팅 관리자들, 그리고 어그로에 끌리지 않고 분위기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수천 명의 시청자들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탄탄했다.
반면에 막 동시송출을 시작해 불안정한 자신의 방송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최재훈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말한 대로, 숨컷 데려왔다."
익숙하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서진하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운을 뗐다.
최재훈이 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와 ㅋㅋ ㅈㄴ 잘생겼네]
[영상편지 ㄷㄷ NTR감성 너무 빡쎈데]
[저기 카메라 보면서 손 흔들고 옳치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 주세요]
[오늘 진짜 오더하러 오신거예요?]
[ㅋㅋ 뇌없페쉑 뇌 공수해 왔누]
[탈부착용 뇌 ㄷㄷ]
그렇게 모든 게 잘 진행될 것만 같았으나.
[채지윤은 뭐 어케 만난 거임?]
[니가 먼저 채지윤한테 접근한거 아님?]
[ㄹㅇ ㅋㅋ 뭐가 아쉬워서 채지윤이 이런 하꼬 편집자로 지원하겠어]
[뭐가 아쉽긴 얼굴보셈 함 해볼라 한거지]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꽃뱀설 해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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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고등학교때 ㄹㅇ 걸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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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꼴리네]
[리치TV말고 옥수수TV와서 벗방이나 해라 숨컷아 니 와꾸면 많이 번다]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채지윤이랑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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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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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봐라 동정이겠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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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걸레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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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린과 최재훈이 염려했던 부분, 악성 네티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많아 봐야, 채팅 50개가 올라오면 그중 하나였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수질이 혼탁해지는 게 확연히 보였다.
[여자한테 꼬리치다 ㅈ댄지 하루 지나자마자 바로 다른 여자한테 꼬리치네 ㅋㅋ 그렇게 살지 마셈]
기성 방송인.
그러니까, 이미 성공한 이가 최재훈이 한 일을 해냈다면 이 정도의 악성 네티즌들이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신참 방송인인 최재훈이 이번 일로 성공할 기미가 보이자 이들은, 질투와 열등감에 찌든 부류들은 꼬인 것이다.
"쯧."
그 추악함은 서진아의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던 눈꼬리와 입꼬리를 끌어내려 불쾌함을 표하며 채팅 관리에 가담하게 만들 정도였다.
허나 그녀의 노력에도 급격하게 나빠진 채팅창의 분위기는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던 그때-
찰랑!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찬식단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우리 찬식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찰랑!
-... 님이 5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우리 담담담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찰랑!
-... 님이 33,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우리 삼식이 구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컷 루터 킹
찰랑!
-헤엄단 님이 5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헤엄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마치 여명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아 진짜 발정난 쓰레기새끼들]
[진짜 좋은일 한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한심한새끼들;]
[데배충 새끼들 몰려왔네]
[숨컷님 저런 사람들 신경쓰지 마세요!]
[용기내서 목소리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순한 관심들과 정확히 상반되는 성질의 순수한 관심들이 혼탁해졌었던 방송을 정화시켜 나간다.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숨컷 고마워!]
기가 찬다던 최재훈의 미소가, 순수한 미소로 변했다.
그가 마땅히 그런 표정을 짓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윽고 후원 세례가 멈추었을 때.
불순물들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방송은 완전히 정화되어 있었다.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엄상희는 살아있다!]
-할머니리어카폐지꿉하는박연우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후원을 왜 여기다하누 ㅄ들 ㅋㅋ 삼피쉑 꿉할 생각에 싱글벙글.
아마도.
[엌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삼피새끼 입꼬리 씰룩이는 거 보소]
[꿉이 머임?]
[복잡한데 대충 횡령하다, 빼먹다 정도로 알면 됨]
[성좌, 찢겨진 치킨 포장의 약탈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내려가 있었던 입꼬리가 다시 올라와 평소의 비웃는 상을 되찾은 서진아가 말했다.
"레오레 켠다."
합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