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95화 (92/361)

095. 제나 웨스트 1

Power Pysical Player, 일명 삼피.

그녀의 방송이나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서양인?]

염색이 아닌 체질에 의해 황금빛으로 물든 단발머리.

새하얀 도화지 위에 푸른 보석을 놓은 것 같은, 하얀 피부에 푸른 눈동자.

브라탑만을 고집하는 특유의 패션센스.

만사, 만인을 깔보고 업신여기기라도 하는 듯 뒤틀려 있는 눈꼬리와 입꼬리.

그리고-

"큭큭큭, 이 병~신하는 꼬라지 좀 봐."

[와 이 새끼 서양인 맞냐 말하는 거 보소]

여러 의미로 능숙한 한국어.

여성치곤 낮은 목소리를 콧소리를 섞어 비웃듯 하이톤으로 말하는 특유의 어조.

방송에 비추는 삼피, 제나 웨스트의 모습이었다.

한국식으로 성을 앞에 두게 되면 웨스트 제나가 되는데-

[어떻게 사람 성이 웨스트 ㅋㅋ 이름부터 서양인인거 티내누]

[왜년이 아니라 웨년 ㄷㄷ]

[야 나 소름돋는 사실 알아냄 동양에 '이'씨가 많은 이유= EAST라서 ㄷㄷ '이스트 이씨'였던 거임 ㄷㄷ]

[그럼 우리 왜 남한인데 나 왜 지금까지 '사우스 사'씨 가진 사람 한번도 못봄?]

[사유리]

[사스케]

[미~친년]

팬들이 그렇게 놀리며 붙여준 한국식 이름이 바로-

서(west)진아.

그렇게, 누군가가 어데 서씨요? 물으면 '웨스트 서씨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역대급으로 근본 없는 성씨가 탄생했다.

역대급으로 근본 없는 성씨를 가진 그녀는 지금 방송 중이었고, 레오레 랭크 게임을 플레이 중이었으며-

닉네임 그대로 파워 피지컬 플레이어의 면모를 뽐내는 중이었다.

평소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아~ 시시해~ "

특히 구태여 상대방을 능욕해서 욕보이는 부분이 말이다.

"얘 렝가르 장인 원탑이라 하지 않았어? 너무, 시시한데~? 아니면 내가 너무 잘하는 건가?"

안 그래도 비웃는 상인 입꼬리와 눈꼬리가 더더욱 선명해진다.

안 그래도 비웃는 듯한 어조가 더더욱 노골적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애가 렝가르 장인(게임에서 특정 캐릭터만을 고집하여 해당 캐릭터에 대해 차별되는 숙련도를 가진 유저들을 칭하는 명칭) 원탑이라니. 하. 렝가르 하는 애가 많이 없긴 한가 봐? 한 다섯 명 되나?"

[아니 ㅋㅋ 이 새끼 또 어그로 끄네]

[또 좌표 찍혀서 채팅창 곱창내려고]

[이 채팅창 우리가 쓰고 있다고 우리꺼 같냐? 니꺼야 ㅄ아 곱게 좀 써]

[삼피 누나;; 제발 다른 방송인분들한테 싸움좀 그만 거세요 걱정돼서 그래요]

[삼피 누나~(출렁)]

[ㄴㄴ 이 새끼 ㄹㅇ 남자팬 많음 ㅋㅋ]

[??? 이 새끼 허굿날 재훈드립치는 성차별자 새낀데?]

[존 나 예 쁘 니 까]

[나도 예쁘고 싶다]

[님 얼굴로 예쁘는 힘들고 에프를 노리시는 건 쉬울것 같은데 그거 노리심이]

[C발년아]

"뭐, 쟤 방송하는 애야?"

[ㅋㅋ 지금 리치TV 레오레 카테고리 들어가면 니 우측 아래방 쓰고 있음 그냥 방송하는 애도 아니고 니 이웃임]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네 이게 현대 사회의 각박함이냐?]

[ㄹㅇ 요즘 좀 각박하긴 해 화장실에서 담배좀 폈다고 윗층에서 ㅈㄴ 지랄하더라 빡쳐서 그날 창문 열어 놓고 청국장 끓여먹음]

[너 같은 년이 아직 안 맞아 뒤진 거 보면 아직 그렇게 각박하진 않은 것 같은데]

[담배에 청국장 ㄷㄷ 아가리에서 화생방 훈련해도 되겠누]

-삼피년이 또 님이 5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CLIP]

그때, 누군가가 후원을 통해 영상을 공유했다.

리치TV의 클립 기능을 이용해, 다른 방송의 특정 부분을 즉석으로 편집해 낸 클립 영상이었다.

출처인 다른 방송.

다름 아닌 하인부의 방송이었다.

덤불에서 상대방에게 도약하는 패시브 스킬을 보유하였으며, 그걸 행동 대부분의 기본으로 삼는 챔피언 렝가르.

그런 렝가르의 장인이라, 그런 렝가르의 특징을 따서 지은 닉네임 HIDE IN BUSH.

일명 하인부.

다름 아닌 지금 서진아가 상대 중인 렝가르가 그 하인부였다.

[나만 그런가? 저 닉네임 쎼 보이는 거]

[ㄹㅇ ㅋㅋ 왠지 모르게 존나 쎄 보임]

[페이스 게임 닉네임이 POKERFACE가 아니라 저거였어도 왠지 어울렸을듯]

진선아가 영상을 확인한 뒤, 재생을 허가했다.

팍!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패배를 알리자 하인부는 아쉬움에 키보드를 내리쳤다.

"아으!!"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키보드를 내려친 세기를 보면 알 수 있듯, 분노보다는 흥분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승부의 흥분.

"아, 진짜 개 아까웠다. 와 그런데, 이 분 진짜 잘하신다. 진짜, 피지컬 레전드네. 와…."

패배했음에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웃으며 '한 수 배웠습니다.'라고 말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대방은 다름 아닌 삼피, 선택받은 재능을 가진 챌린저 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피지컬을 가진 유저였으니까.

“그래도, 나 이 정도면 잘 싸운 것 같다. 인정?”

[ㅇㅈ]

[졌지만 잘쌌다]

[뿌다닷]

그때.

-대한미국년 삼피 혐성 님이 5,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CLIP]

누군가가 하인부에게 후원을 하며 영상을 공유했다.

"오, 삼피 님이네?"

방금 전 승부를 서진아의 시점에서 담아낸 것이었다.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하인부는 기대에 찬 얼굴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게임 극초반 상단 공격로 1레벨 타이밍.

하인부의 챔피언인 렝가르.

거대한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사자 인간이 패시브 스킬을 이용하여 부쉬(덤불) 안팎을 현란하게 넘나든다.

마치 표범이 벽을 타듯 막힘 없는 현란한 움직임.

그렇게 서진아의 챔피언, 소드 댄서 이렐리야를 교란시키며 딜교환을 시도한다.

지금 렝가르의 움직임, 하인부의 플레이는 그대로 매드 무비 영상에 옮겨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퍼포먼스 적인 측면에서나, 완성도 적인 층면에서나 두루 뛰어났다.

렝가르를 플레이해 본 사람이라면 그 깊이에 놀랄 것이며, 렝가르를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현란함에 놀랄.

엄청난 수준의 숙련도.

다시 봐도 만족스럽다.

하인부가 흐뭇한 얼굴로 삼피의 반응을 기다렸다.

삼피의 반응.

피식.

"꼴값 떠는 거 봐라~"

비죽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하인부의 흐뭇한 얼굴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지만 영상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1레벨에서 2레벨에 넘어가는 타이밍.

렝가르가 가장 강할 타이밍이었다.

숙련도가 높은 하인부 답게 놓칠 리 만무했고.

그걸 이용하여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렇게 2레벨에 도달하는 동시에, 이렐리야에게 달려들어 모든 걸 쏟아붓는다.

렝가르가 앞발을 들썩이며 거대한 발톱으로 이렐리야를 난도질한다.

렝가르의 2레벨 순간 화력은 모든 챔피언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단번에 빈사 상태가 된 이렐리야.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침착하고 또 신속하게 반응하여 마무리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샥!

이렐리야의 Q스킬인 칼날 돌진은, 어검술로 조종하는 검을 타고 날아 적에게 날아들며 피해를 주는 동시에 체력을 회복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샥!

-샥!

-샥!

대상이 죽을 경우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지금 같은 상황을 상정이라도 해둔 건지.

딱 칼날 돌진을 맞으면 죽을 만큼의 피만 남아 있던 미니언들.

이렐리야가 그 사이를 오가며 HP를 회복했다.

렝가르에게서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거기에, 이렐리야의 패시브 스킬.

스킬 사용 횟수에 따라 기본 공격이 강해지며, 빨라진다.

-스으으으

어검술로 이렐리야의 주위를 떠도는 검들이 서슬 퍼런 빛을 발한다.

그럼으로써 패시브 스킬의 스텍이 모두 충전되었음을, 현재 이렐리야가 가장 강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린다.

반면에 렝가르의 날카로운 발톱은 예기를 잃는다.

그럼으로써 렝가르의 스킬이 모두 소진되었음을, 현재 렝가르가 가장 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린다.

완벽한 응수, 역습.

<이렐리야 선취점 달성!>

그리고-

"아~ 시시해~ 얘 렝가르 장인 원탑이라 하지 않았어? 너무, 시시한데~? 아니면 내가 너무 잘하는 건가?"

조롱과 오만.

자신이 보였던 존경, 그리고 겸손과 정반대되는 반응.

굳었던 하인부의 표정은 어느새 무표정이 되어 있었다.

[와 진짜 삼피 저 혐성새끼 ㅋㅋ]

[저 새끼 미국이었으면 총맞아 뒤질까봐 한국으로 빤스런 한 거자너]

[총을 피해 춍WW의 나라로]

ㄴ강제퇴장 당하여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내가 다 빡치네 하인부님 정의구현좀요]

하인부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손을 바쁘게 움직여 대답을 대신했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하.

서진아가 쓰게 웃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째? 내가 못 할 짓을 했네."

쓰게 웃는 그녀의 눈은-

영상을 향해 있지 않았다.

영상이 끝나기 직전, 적팀의 장글인 자쿠가 갱을 시도했다.

선취점을 취득한 삼피의 이렐리야가 흐름을 타기 직전에 그걸 한번 끊어낼 요량이었다.

과연 상위 챌린저 게임의 정글이라고 할까.

아주 절묘한 순간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와 이렐리야를 덮치는 점액질 덩어리, 자쿠.

레오레 대표 뇌없페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걸맞게 수준에 비해 현격히 낮은 게임의 흐름을 읽는 능력, 뇌지컬을 보유한 삼피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갱킹이었다.

완벽에 가깝다 말할 수 있겠다.

허나.

뇌없페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걸맞게 예측 능력은 낮아도, 대처 능력은 특출난 서진아였다.

자쿠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각'을 보았다.

피지컬 자체만 놓고 보면 프로 무대를 통틀어도 견줄 사람이 많지 않은, 그녀의 피지컬로도 간신히 포착할 수 있는 각.

그 각에 따라, 서진아의 이렐리야는 움직인다.

E스킬 탄력 발사를 사용해 날아온 자쿠의 몸뚱어리를, 착지한 자쿠가 곧바로 내지른 Q스킬 점액질 주먹을 가볍게 피한다.

부쉬에서 도약해 오는 렝가르, 반대편에 있는 미니언에 Q스킬 칼날 돌진을 사용하여 거리를 벌린다.

날아오는 렝가르의 E스킬 올가미 던지기 또한, 가볍게 피한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논타겟 스킬을 가볍게 피한 뒤.

-철컥.

바닥에 검 두 자루를 흩뿌린다.

흩뿌려진 검은 각기 자쿠와 렝가르가 디딘 바닥 바로 뒤쪽에 박혔다.

E스킬, 칼날 교차.

흩뿌린 두 자루의 검 사이에 있는 적들에게 피해를 주며 기절시킴과 동시에, 표적을 남긴다.

표적은 칼날 돌진의 쿨타임을 초기화시켜준다.

엄청난 효과.

다만, 맞췄을 경우에 이야기.

레오레에서 적중시키기 힘든 논타겟 스킬을 꼽으라면 반드시 순위권에 들어가는 그 스킬을, 당연한 듯이 맞춘다.

그것도 렝가르와 자쿠 두 명 전부에게.

[정신 나갔나]

[와 진짜 미친년 ㅋㅋ]

[누나 저 섰어요(두 발로 ㅎ)]

[진짜 피지컬 하나 만큼은 (자리에서ㅎ) 발딱 서게 만드는 새끼]

-샥!

-샥!

-샥!

이번에는 미니언뿐만이 아니라 렝가르와 자쿠 사이를 칼날 돌진의 발판으로 삼는 이렐리야.

렝가르가 부쉬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치타가 벽을 타는 모습 같았다면.

지금 이렐리야의 모습은 좁은 방 안에 탱탱볼을 힘껏 던진 듯했다.

-더블 킬!

시스템의 문구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서진아는

"이거 미안해서 어째? 내가 못 할 짓을 했네."

의 다음 말을 이었다.

"나한테 경쟁심 느끼게 해버렸네. 벽만 느끼게 될 텐데."

자세히 보면 역시 쓴웃음보단 특유의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으로, 특유의 비웃는 듯한 어조를 살려서.

서진아의 뇌없페적 기질이 초반에 너무 좋게 작용한 게임이었다.

서진아가 이후 뇌없페의 결점을 드러내는 플레이를 수차례 보였고, 하인부는 그러한 서진아의 약점을 살려서 분전하였으나.

결국 게임은 서진아의 승리로 끝났다.

"너무 상심하지 마, 상대가 이 삼피 님이잖아~?"

진심으로 격려하는 듯한, 그래서 더욱 모멸적으로 느껴지는 서진아의 반응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인부의 방송으로 수출되었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녀의 멘탈을 박살냈다.

"하, 또 나 때문에 벽 느낀 사람 나와 버렸네."

놀랍게도, 서진아는 이 모든 행동에 일절의 악의를 담지 않았다.

기분 나쁘라고 의도한 것도 아니다.

아무런 의도 없이, 감정 없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온다.

그런 서진아의 캐릭터를 누군가가 표현하길-

[진짜 싸이코 순수악새끼 ㅋㅋ]

[속보) 삼피년 업보스텍 5억 5천조 달성

[사탄 : 엄마 나 자퇴할래]

진심으로 놀라거나 분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엔 서진아의 성격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했다.

[누나 멋있어요]

[와 삼피 캐리 ㅠㅠ 멋져 ㅠㅠ]

-삼피 바라기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캐리 축하합니다!

심지어, 그런 행동을 예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녀의 남성 팬들이었다.

"뭐 이런 거 가지고."

정말로,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진심으로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어쨌거나 오늘 방송은 이쯤에서-"

라톡!

"응?"

자신의 말을 끊은 문자를 확인한 뒤, 말을 잇는다.

"그 사람 내 방송 나온댄다."

[누구]

[그사람이라고 하면 우리가 어케알아 ㅄ아]

[지구에 '그 사람'만 70억 명이 있는 거 알고 계신가요 빡머가리 씨?]

쯧쯧쯧.

서진아가 혀를 차더니 말했다.

"멍청한 새끼들."

말하는 데 사용된 언어는 영어였다.

[스튜휫 빗칫스~]

[멍청한 해변들 ㄷㄷ]

[가만히 있는 해변을 왜 욕해 십련아]

[너 그거 해변혐오야]

"어제 일을 까먹어? 어제 새벽에 수컷인지 뭔지, 그 오더 잘하는 남자 불러서 아바타처럼 오더 받아 보라며."

[아 그사람이 그사람이었누 ㄷㄷ]

[ㄹㅇ 그사람이 나온다고?]

[ㅗㅜㅑ]

[실력은 모르곘고 얼굴은 ㄹㅇ ㅆㅅㅌㅊ던데]

[이 새끼 평소 같았으면 재훈이들이랑 방송 안한다고 무시했을 텐데 얼굴 보고 허겁지겁 섭외했노 ㅋㅋ]

[그 사람 ㄹㅇ 재훈이던데]

[? 개소리 잘하더만]

[아니 ㅋㅋ 이름이 ㄹㅇ 재훈이임 최재훈]

[엌ㅋㅋ 레전드]

[이 새끼 사심방송하네]

"불러달래서 불러줬더니 이젠 사심 방송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고~ 뻐킹 씨티스."

[이번엔 또 도시들을 욕하노 ㄷㄷ]

[뻐킹 시티스 저거 맞는 표현이냐]

[(손 드는 이모티콘)이 새끼 먹은 국밥 수가 먹은 햄버거 수보다 많으면서 왜 ㅈ도 못하는 영어 쓰나요?]

사실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머물고 있었다.

정말로 먹은 국밥 수가 먹은 햄버거 수보다 많았다.

피클보다 김치가 익숙하다.

감자튀김보다 감자전이 편하다.

올림픽에서 미국과 한국 둘 다 응원하고, 둘이 붙게 되면 한국을 응원한다.

이미 그녀의 파란 눈 일부는 김치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발 머리엔 김치 냄새가 배어 있다.

흰 피부밑으론 김치국물이 흐른다.

영어로 말하려면, 한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나날이 퇴화되고 있었다.

훌륭한 한국인이었다.

[면상 떄문에 그럴싸해 보이는 거지 까보면 발음도 존나구림 ㅋㅋ]

[가끔 장문으로 말하는거보면 문법도 곱창났음 ㅋㅋ]

[지가 서양인인 줄 아는 한국인인데 사실은 서양인인 한국인]

[서양인을 하던가 한국인을 하던가 하나만해 김치피자탕수육 같은 새끼야]

[그 면상으로 영어 ㅈㄴ 못하고 한국어를 잘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대한미국년]

"아휴, 멍청한 새끼들."

그 말을 영어로 한 뒤, 한국어로 잇는다.

"그래서, 합방해, 말아."

* * *

다음날 오후.

서진아의 오피스텔 밖.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해요? 방송 시간까지 좀 남았는데, 빨리 오셨네. 어떻게 하실래요?"

그녀는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린 숨컷을 맞이했다.

유창한 영어로.

특유의 비웃는 듯한 표정과 억양을 최대한 살려서.

장난 반, 기선제압 반이었다.

"???"

숨컷, 최재훈이 눈을 꿈뻑이며 당황한 티를 팍팍 냈다.

"큭큭큭."

만족스러운 듯, 비웃음 같은 짓궂은 웃음을 터뜨리는 서진아.

그런 그녀에게, 최재훈이 말했다.

"반갑습니다. 방송 시작하기 전에 상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대화 좀 가능하실까요?"

"???"

유창한 중국어로.

서진아 특유의 비웃는 듯한 눈꼬리와 입꼬리가 내려가, 당황을 표했다.

그것도 잠시.

탄력을 되찾은 눈꼬리와 입꼬리가 평소의 비웃는 듯한 인상을 그렸다.

"뭐라고요? 웬 중국어, 이 분 중국인이었어요? 여보세요~ 말 통하는 거 맞죠?"

"아임 코리안."

"뭐요? 큭큭큭, 이상한 사람이네."

서진아가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커다란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근데 왜 갑자기 중국말을 하셨어요?"

따지는 듯 공격적인 어조.

깔보는 듯 무례한 태도.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악의가 담긴 행동은 아니었다.

무책임한 말이지만, 그게 그녀의 평범하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여기 한국이잖아요. 안 그래요? 유노왓암생?"

"그러면 너는 왜 영어로 씨부리셨는데요."

그런 지적을 할 사람이었다면 처음 서진아가 영어로 말했을 때 지적을 했을 것이다.

최재훈이 눈은 그대로인 채 입만 싱긋이는 특유의, 서진아에게도 지지 않는 띠꺼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영어로 말하길래-"

"하?"

"홍콩에 잘못 내렸나 했죠. 유노왓암생?"

"…."

자존심 강한 두 또라이의 대결- 아니, 합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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