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정모 4
"동시송출을 잠시 미루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넹?"
편하게 말하라고 하자, 편집자 선생님께선 정말 세상 더는 없을 정도로 존나 편하게 말씀하시는데-
'모지.'
우리 믿음직스러운 편집자 님, 이린 씨의 말씀이 납득이 안 된다.
지금, 물 들어오는데 노는 일단 넣어두라니.
'어, 그러고 보니?'
내가 물 들어오니 노 젓겠답시고, 바로 방송 켜서 동시송출 조지겠다고 할 때도 편집자 님은 만류하셨다. 그리곤 나를 이렇게 불러냈다.
"설마 이 모든 게 내 리치TV 진출을 지체시키기 위해, 노 저을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려던 거였나!?"
"헉."
"헉."
"어디서 이런 완벽한 편집자가 나타났나 했더니, 그럼 그렇지! 나 같은 초신성이 리치TV에 진출하면 시청자를 빼앗기게 될 걸 어프레이드한 기성 스트리머가 보낸 스파이였군! 권지현!!!"
"헉, 그런가. 나는 재훈 씨가 두려웠던 건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파이를 보내 버린 거였나."
"아휴, 하여간 리치TV."
쯧쯧쯧.
민아 씨가 옆에서 혀를 차며 추임새를 넣었다.
"재훈 씨, 저런 데 말고 아메리카TV 오시죠."
"싫어. 아메리카TV는 너무 인싸감성이야. 난 간장이랑 닭도리탕으로 목욕할 자신도 없고.."
"뭐예요 그건… 도대체 아메리카TV를 뭐 어떻게 보고 계시길래…."
"어떡할까, 동상아."
"냠냠쩝쩝?"
새로 도착한, 후마토끼인가 뭔가라고 불리는 일본식 김밥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물거리고 있다.
"어, 그래 맛있게 먹으렴. 편집자 님 이 모자란 놈을 위해 설명을 좀 해 주십사… 지금, 오늘 사건으로 한창 관심 쏠려 있어서 동시송출 시작하기 딱 좋은 타이밍 같은데, 왜 미루시라는 거죠?"
"그 관심은, 동시 송출 시작 단계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불순한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불순하다뇨?"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다는 의미에서의 불순입니다."
"아."
"지금 숨컷 님께 쏠린 관심은 곧, 채지윤 사건에 쏠린 관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채지윤 사건에는 숨컷 님 외에도 다양한 사람과 문제가 엮여 있습니다. 즉. 지금 숨컷 님께 향해진 관심은, 다양한 문제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복합체인 거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잇는다.
"제가 동시송출을 미루시라 권유 드리는 건, 동시송출 단계에서 그러한 관심의 복합체가 어떻게 작용할지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비유하죠.
이린 씨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지금 숨컷 님께 쏠린 관심은 몸에 좋은 영양제지만, 여러 불순물들이 섞여 있는 겁니다. 몸에 좋게 작용하지만, 문제가 생겨 나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 거죠.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나쁘게 작용해도, 체질 자체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요?"
"체계와 분위기가 확립된 방송입니다."
"체계와 분위기가 확립된 방송은 이번 관심을 받아들였다가 문제가 생겨도 방송 자체에 큰 영향이 오지 않겠지만, 송출 시작 단계에 있는 방송은 다르다. 이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이린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동시 송출 시작 단계는, 기존 플랫폼에서 구축한 방송 분위기와 체계를 향후 방송의 방향성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는 단계입니다."
평생 쓸 체질이 결정되는 성장기.
이린 씨는 동시송출 시작 단계를 그렇게 비유했다.
성장기에 불순한 영양제를 먹고 잘못되어 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평생을 가게 되는 것처럼.
지금 동시송출 시작 단계에 있는 내 방송도, 불순할 관심을 받아들이고 잘못되어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평생을 가게 된다.
그 문제에 대표적인 예로는 내 방송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
내가 방송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
그렇게, 내가 옐로우TV에서 구축한 기반인 기존 시청자들을 잃는 것이 있었다.
그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관심을 받아들이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니, 동시송출을 미뤄라.
"-이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숨컷 님께선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의 입장입니다. 그런 신참이 방송 외적인 사건으로 이목을 끌게 된다면- 반드시 꼬이게 되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어떤?"
"질투, 열등감 따위로 적의를 갖는, '악성 네티즌'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그게 가장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가장 염려되는 불순물들이죠. 숨컷 님의 기반이 구축된 옐로TV에서라면 모를까. 리치TV에 그러한 불순물들이 쌓이게 된다면, 향후 방송 활동에 크나큰 장애물이 될 겁니다."
"음… 두 분 의견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민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네요."
고민하던 지현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편집자 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 동시송출을 관심이 식을 때까지 미루는 건가요?"
"그건 좀 아깝지 않나?"
옆에서 오물거리며 구경하던 재은이가 땡그란 눈으로 툭하고 내뱉은 말.
그에 이린 씨가 고갤 끄덕인다.
"그렇죠. 아깝죠. 고로, 영양제를 마시되 안전하게 여과시켜서 마시자는 게 제 의견입니다."
"여과라면, 어떤 방식으로 말씀이시죠?"
"숨컷 님께서 다른 방송인의 방송에 출연하시는 겁니다. 숨컷 님과 달리 체계와 분위기가 확립되어 있어 문제가 생겨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악성 네티즌 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방송에 말이죠."
"지금 제게 쏠린 관심이 그 방송에 흡수되겠지만, 제게 필요한. 저에 대한 관심은 흡수되지 않을 테니 그것만 챙겨 나오자. 이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물 마시게 한 다음 오줌 싸면 그거 마시자는 거네요?"
"…."
오물오물 냠냠거리던 재은이가 대뜸 그런 소릴 씨부린다.
'뭐 이런 새기가 다 있어.'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건지, 보호자 얼굴 좀 보고 싶다.
'아, 그게 나네.'
일로 바쁘셔서 항상 귀가가 늦으시는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게. 애를 너무 오냐오냐 길른 게 돼버렸다.
'그래도 애가 영특해서 진짜로 오줌을 먹지도 않고, 구구단도 잘하니까.'
재은이가 내뱉은 쌉소리에, 이린 씨의 표정이 굳었다.
원래 굳은 표정인데도, 굳은 게 보였다.
착한 빡침 인정합니다.
보호자 권한으로 재은이 줘팸을 허락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겠네요."
아니, 저걸 받아준다고라.
"어허, 그런 거 받아주면 안 돼요. 얘 얼굴 믿고 되는대로 씨부리고 다니는 거, 사람들이 지 얼굴 때문에 웃어주는 건데. 진짜 지가 재밌어서 웃는 줄 알아요."
"뭐래~ 나 재밌다는 소리 많이 듣는데."
"뭐, 그럼 해 봐."
"뭘."
"재밌는 얘기."
"음…."
입을 오물거리며 생각하더니 말한다.
"자동차 왕이 죽으면 그 무덤 이름은?"
"뭔데."
"부르릉."
죽일까.
한건 했다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 반응을 기다리는 재은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 싸늘한 냉기가 서리는 걸 느꼈다.
"푸흣."
뭐여.
"누구야, 누가 웃음 소릴 내었어."
진짜 세상에 부르릉 같은 거 받아주면 애가 버릇이 안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망가진다.
잘난 얼굴이랑 잘난 오빠 믿고 대책 없이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취직 안 하고 시집 안 가고 한심하게 오빠한테 얹혀사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좋아.'
하지만 재은이를 위해서라도 안 될 일이다.
민아 씨랑 지현 씨가 우리 재은이를 이뻐하는 것 같던데.
딱 봐도 재은이 기 살려주겠답시고 억지로 웃어-
'잉.'
주지 않았네.
둘이 멍하니 옆을, 이린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웃음 소리의 출처는 편집자 님이었다.
"…."
변함 없이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을 못 마주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편집자 님처럼 사무적이고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뚝뚝한 사람은 부르릉에 웃은 자신을 어떻게 느낄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얘기한다.
"부르릉."
그 훌륭하게 뻔뻔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툭하고 내뱉어 버렸다.
"…."
그러자 나를 노려봐 오는, 사각테 안경 안의 퀭한 눈동자-
"전화기 왕의 무덤은 따르릉."
가 아래로 향한다.
재은이의 후속타에 편집자 님이 마침내 고개 숙인 여자가 되었다.
몸이 들썩거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르릉!"
"따르릉!"
우리 남매가 공격을 멈추기 전까진 말이다.
* * *
"그런 연유로, 동시송출을 미루는 걸 권유드립니다."
가까스로 페이스를 되찾은 편집자 님이 본론으로 돌아와 말했다.
"예. 편집자 님 말씀 따라서 동시송출은 미루는 거로 하고. 그러면 그, 여과-"
"오줌 먹기."
"재은아 진짜 좀 쌉쳐줄래. 오빠 일 얘기 중이니까. 디저트나 먹고 있으려무나."
"다 먹었엉."
"좀 천천히 쳐먹으렴. 차가운데 체할라. 오빠 거 쳐묵어라."
"앗싸리."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그 여과- 합방 같은 경우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먼저, 합방 대상을 정해야 하는데-"
크흠.
갑자기 헛기침을 해서 어그로를 끄는 지현 씨.
"합방할 방송인을 찾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저, 권지현!"
"예, 안 그래도. 리치TV에서 유일하게 숨컷 님과 접점을 갖고 계신 권지현 님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오우예아~"
"하지만, 권지현 님 방송의 파급력이 이번 상황을 십분 활용하기엔 다소 아쉬움이 있다 판단되어, 선택지에서 제하였습니다."
"어헝헝헝."
"왜 우리 지현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하지만, 파급력 있는 방송인을 찾고 계신다면 저 방민아! 어떠신지?"
"마찬가지로, 방민아 님 또한 고려대상이었으나. 아무래도 숨컷 님께서 리치TV 진출을 원하시다 보니. 해당 컨텐츠는 리치TV에서 진행하는 게 맞다고 판단되어 역시 제하였습니다."
"아니, 서러워서 BJ 해 먹겠나."
"어… 제가 합방할 만한 방송인은 이 두 분이 전분데…."
"이걸 봐 주시겠습니까."
편집자 님이 계약서 말고 또 다른 서류를 건넸다.
"어…."
여러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뭐죠, 이게?"
"숨컷 님과 합방을 희망하는 리치TV의 게임 방송인들 중 조건에 부합하다 판단되는 분들을 추려내어 정리한 겁니다."
"네? 저랑요?"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정보들.
"워메…."
방송인의 전투력이라 할 수 있는, 미튜브 채널 구독자 수와 시청자 수였다.
최소 30만에, 5천.
최소, 대기업에 속하는 방송인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저랑 합방하길 원한다고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미튜브 댓글들 확인 안 해보셨습니까?"
"예? 아, 오늘 댓글들은 아직…."
"왠지 그러실 것 같아서, 계정 맡겨 주신 김에 제가 확인해 봤습니다. 이분들 모두 비밀 댓글로 연락 주신 분들입니다."
"저한테 먼저 연락을 넣었다고요? 이 사람들이? 오늘 일 때문인가?"
"오늘 일 때문인 분도 있고, 어제 일 때문인 분도 있습니다."
"어제 일이요?"
"페카 님과 적으로 만나 이기셨잖습니까. 그때 했던 플레이와 오더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오, 그게 퍼졌구나…."
들으며 서류를 자세히 살펴봤는데.
솔직히, 나는 봐도 잘 모르겠다.
구독자랑 시청자 제일 많은 사람으로 고르면 되는 건가?
"편집자 님께선 어떤 분을 추천하시나요?"
"일단 저로서는 삼피 님을 추천드립니다."
"삼피요?"
서류에서 찾아낸다.
Power Pysical Player, 일명 삼피.
구독자 무려 60만 명에, 고정 시청자 수 평균 1만 이상.
그 아래론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이었다.
주력 컨텐츠가 레오레니.
티어가 챌린저니.
레오레에서 가장 유명한 뇌없페니.
워낙 유명인일 뿐더러,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숨컷 님께 '아바타'라는 컨텐츠를 제안하셨습니다."
"아바타?"
"숨컷 님께서 삼피 님에게 지시를 내리면, 삼피 님은 숨컷 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삼피 님은 피지컬을 맡고, 숨컷 님은 뇌지컬을 맡는 겁니다. 워낙에 뇌지컬이 부족하다 평가받는 분이니만큼 숨컷 님의 포인트인 오더가 크게 부각 될 겁니다. 그런 연유에서 추천 드렸습니다."
"하, 삼피…."
"네?"
민아씨가 말을 한숨에 실어서 꺼냈다.
"걔 아군으로 만나면 진짜 피곤한 성격인데. 권지현, 알지?"
"난 아군으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
"아, 맞다. 얘 다딱이였지."
"흑흑."
"아무튼, 그런 애랑 합방을 하다니… 뭐, 그래도. 이린 씨도 그거 감안해도 가장 좋은 조건이라 추천해준 거일 테니까."
"예,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숨컷 님의 의사니까, 제 의견을 너무 개의치 말고 선택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삼피에 대한 민아 씨의 평가는 정확했다.
아군으로 만나면 진짜 피곤한 성격.
더 정확히 하자면, 아군이든 뭐든 그냥 만나면 피곤한 성격이었다.
자부심, 자기애, 자존감이 너무 센데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숨쉬듯이 거만한 태도가 나오는 안하무인이었다.
'걔랑 합방을 한다라….'
원래 세계에서의 관계였다면 문제는 없었겠지만.
남녀역전으로 나와 걔와의 관계는 초기화된 상태다.
그 지랄 맞은 성격을 상대로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것 같다.
되도록이면 그냥 접점을 갖지 않는 게 베스트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영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전지전능한 편집자 님께서 내 방송 성장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될 파트너로 점찍어 준 상대다.
문득 옆에 앉아 있는 재은이의 옷차림이 눈이 들어왔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재은이 답지 않게 유명 브랜드도, 신상도 아닌 빛바랜 옷.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지만, 역시나 빛을 잃은지 오래돼 보였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옷이던 신발이던 충분히 살 여유가 될 텐데도 생활비로 부모님께 다 드리니 이 모양이다.
"오올-'
그때 들려오는 소리.
지 디저트 다 쳐먹고 안정적으로 내 거까지 쳐먹은 재은이였다.
"오빠."
"엉?"
"삼피랑 합방하는 거야?"
"왜."
"오빠 방송 진짜 잘나가나 보네. 개쩐당."
"개쩔어?"
"멋있당."
"멋있어?"
"나 따라 가서 구경해도 돼?"
"당근 오브콜스 빠따지. 삼피랑 합방하겠습니다!"
익사이팅하고 해피한 마음으로 삼피와의 합방에 응하기로 했다.
* * *
Power Pysical Player, 일명 삼피.
그녀가 처음으로 캠을 키던 날, 시청자는 입을 모아 말했다.
[??? 이 새끼 서양인이었음?]
염색이 아닌 체질에 의해 찬란한 황금빛을 띠는 머릿결.
여름 하늘처럼 맑은 푸른 눈동자.
웃는 상- 아니.
비웃는 상의 얼굴을 한 그녀가 문자음을 듣고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화면 너머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 내 방송 나온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