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편집자 이린
밤낮을 불문하고 어두운 방.
그리고 모니터들.
오늘도 어김없이 이린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다만.
오늘의 그녀는 인터넷 방송 죽순이, 폐인이 아닌 편집자였다.
아니.
아직 편집자는 아니지만.
숨컷이 자신을 뽑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그의 영상을 편집 중이었다.
띠링!
"어?"
그때 울리는 알람 소리.
숨컷의 방송 개시를 알리는 알림이었다.
집중 상태이던 그녀의 퀭한 얼굴에 다른 종류의 활기가 돈다.
일을 할 때와 취미 생활을 할 때의 차이랄까.
그녀가 시간을 확인했다.
딱 좋은 타이밍에 숨컷이 방송을 켜주었다.
어제, 숨컷의 활약상을 정리해서 퍼뜨리고 잠든 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착석, 편집에 착수해서 아직까지 아침도 점심도 못 먹었는데.
그 타이밍을 잡아준 것이다.
숨컷의 방송을 보면서 식사를 하며 한숨 돌린다.
완벽했다.
"끄응-"
기지개를 핀 이린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가 다 개운하네.' 소리가 나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그런 표정이 곧바로 구겨졌다.
숨컷.
그의 얼굴이 이상했다.
눈가는 울었던 듯 부어 있었고, 뺨에는 선명한 폭행흔이 남아 있었다.
숨컷이 사정을 설명한다.
채지윤이라는 편집자를 만났다가 사달을 본 것이라고.
처음엔 극도로 분노한 이린이었지만, 이내 복잡한 심경이 된다.
숨컷이 자신 말고 채지윤을 선택한 것이다.
2옥타브 초~중반 음역대로 흐느적대는 이별 노래 주인공 같은 심경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쾅-
-어? 저 사람 따라왔다.
그런 복잡한 심경은, 채지윤의 등장으로 미뤄지게 된다.
채지윤, 숨컷을 협박하고 폭행한 저 정신 나간 범죄자 년이 쫓아오기까지 했단다.
게다가 지금 숨컷이 있는 장소는 주차장.
인적이 드물다.
누가 봐도 명백한 위기 상황.
숨컷이 어찌 될까 봐 안절부절 못 하는 이린.
-여러분, 괜찮으니까. 제 증인이나 돼 주세요.
그런 그녀를, 오히려 숨컷이 안심시켜 주었다.
자신감에 들어찬 목소리.
이후, 방송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숨컷이 건장한 여성인 채지윤을 농락하는 광경이었다.
"…."
그걸 넋을 놓고 바라보다 보니-
-보셨죠? 이런 인간입니다. 무서워하실 필요 없어요.
어느새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이린은 넋이 나간 채로 방송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얼굴의 상처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가, 자신감이 담긴 특유의 웃음.
그리고 의미심장한 발언.
이린은 마치 열린 결말의 영화를 본 것 같이, 그 장면을 거듭 되새기고 있었다.
라톡!
라톡!
"어?"
그녀를 상념에서 끄집어낸 건 문자 알림음이었다.
설마?
그녀는 다급히 문자를 확인하고,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숨컷입니다]
[편집자 관련해서 연락드립니다]
채지윤 안 되니 차선책으로 자신이다.
라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자신한테 왔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린은 즉시 답장을 작성하려다-
[안녕하세요!
"아니지."
말았다.
느낌표는 빼자 싶었다.
'내가 자길 너무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면 뭐가 문제냐?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평등한 입장을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냥 쑥스러워서였다.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재훈 : 넵 그 다름이 아니라]
[최재훈 : 편집자 님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요]
[네]
[좋습니다]
[최재훈 : 그 임금 관련해서는]
[최재훈 : 최대한 시세에 맞게 편집자 님께 맞춰드릴려고 하고요]
"응?"
'분명 댓글에 임금 지불하기에 충분한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진, 무보수로 한다고 했는데?'
간절함과 열렬한 팬심의 콜라보레이션이 있기에 제시 가능한 파격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공짜는 부담스럽다는 걸까?
[아]
[괜찮습니다]
[최재훈 : 네?]
[그냥 댓글에 적어놓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최재훈 : 예? 무슨 댓글이요?]
"어라?"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
이내, 이린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최재훈은 못 본 거다.
자신의 커리어와 파격적인 조건이 기입된 두 번째 댓글을.
'그래서 내가 아니라 채지윤을 고른 거였어.'
라고, 정신 승리가 가능해진 이린이 우쭐거리는 얼굴이 되었다.
'아 맞다.'
그녀는 숨컷의 미튜브 채널과 방송국에 적어 놓았던 자신의 커리어가 기입된 글을 즉시 지웠다.
자신을 평범한 편집자로 대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임금 주실 여유 될 정도로 채널 수익 발생하기 전까진 안 주셔도 됩니다]
아까부터 즉시 답장이 왔는데 이번엔 좀 지연된다.
'그렇지, 감동스럽겠지.'
그 지연을 그렇게 생각한 이린이 흡족하게 고갤 주억거렸다.
[최재훈 : 어...]
[최재훈 : 혹시 그러면]
[최재훈 : 나중에 수익나오면 그거 분배해 드려야 되는 건가요?]
실상은 채지윤이 똑같은 조건을 제시했었던 게 떠올라 PTSD가 도진 것뿐이었다.
[네?]
[아니요]
[최재훈 : 아 ㄷㄷ]
[최재훈 : 깜짝 놀랐네요]
[깜짝 놀라다니요?]
[최재훈 : 안 그래도 다른 편집자 분께서 비슷하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최재훈 : 편집 임금 안 줘도 되는 대신에, 나중에 수익 나오기 시작하면 그 50%를 떼어주시라고]
[최재훈 : 제가 생각한 거랑 달라서 거절했는데]
[최재훈 : 비슷한 얘기를 하셔서 또 그런건줄 알고 ㄷㄷ]
이린의 미간이 구겨졌다.
채널 수익 배분은, 미튜버가 감사의 의미로.
호의로 편집자에게 제안하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편집자 쪽에서 먼저 요구하면 뻔뻔하고 안하무인이라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편집 임금을 주기 힘든 소형 채널 같은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린은 알고 있었다.
숨컷의 채널이 소형 채널로 그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 사실을, 채지윤이 알고 있었을 거란 사실을.
이린은 채지윤의 실체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경쟁자가 된 그녀에 대해 조사했었는데 꺼림칙한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이었어?' 가 아닌 '이런 인간이어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지는 않아도 분개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숨컷이 잘 대처하여 이런 인간의 손아귀에 빠지지 않은 것은.
아니.
잘 대처한 정도가 아니었다.
'혹시?'
이린은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지금부터 숨컷이 하려는 행동을.
[어쨌거나]
[임금 문제 같은 경우엔]
[숨컷 님께 최대한 맞춰 드릴 테니]
[나중에 이야기 하는 걸로 하고]
[지금 숨컷 님께서 급한 용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최재훈 : 아 예, 맞습니다]
[최재훈 : 그 다름이 아니라]
[최재훈 : 음...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최재훈 : 혹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네 그러시죠]
이내, 라톡 통화 착신음이 울린다.
"후…."
이린은 심호흡을 한 뒤, 통화를 수락했다.
"여보세요?"
열렬한 팬심, 그 열기가 조금도 묻어나오지 않는.
평소 이린의 지극히 사무적이고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숨컷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표정뿐이었다.
최재훈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숨컷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채지윤이 담당 방송인들을 부당하게 억압, 착취하고 있다는 말이 신경 쓰여서.
그 말이 사실일 경우, 자력으로 채지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채지윤의 실체를 대대적으로 폭로함으로써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한다.
"숨컷 님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궁금했다.
의도가.
-예, 뭐 사실. 그 사람들 돕는 것도 있는데. 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네?"
-채지윤, 그 인간이 방송인들한테 시켜서 마녀- 아니, 마남사냥 시켜서 저 매장한다 했거든요. 개수작 부리기 전에 팔다리 잘라놓자 이거죠.
"아."
이린의 머릿속에 그려지던, 핸드폰 너머의 숨컷.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이린의 표정이 마침내 무너졌다.
하지만 곧바로 추스르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사실 여부 확인하기 위해 그 피해자분들께 연락 시도는 해보셨나요?"
-채지윤, 이 인간 같으면 그 사람들 철저히 통제하겠답시고 연락처 자기 걸로 해놨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아까 채지윤 엎어져 있을 때 개헤엄이란 분한테 메일 보낸 순간, 이 인간 핸드폰이 울리더라고요.
"아."
채지윤의 철저함.
그 근원인 악의를 간접적으로 느낀 이린은 불쾌함에 미간을 구겼다.
이쯤 되면 채지윤이 방송인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제가 가진 녹음본이랑, 방금 방송 녹화분을 용도에 맞게 편집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실까요?
"제가 편집하면 그 영상을 퍼뜨리실 생각이신 거죠?"
-맞습니다.
"숨컷 님의 방송과 미튜브 채널로 말씀이시죠."
-예. 자료를 만들어서 커뮤니티에도 퍼트릴까 합니다.
"음…."
-의견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녀가 잠깐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일단. 채지윤에게 법적 문제로 붙잡고 늘어질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걸 기본전제로 편집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편집 결과물이 숨컷 님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그 경우, 영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나요?
"숨컷 님께서 영상에 기대하는 역할이 피해자분들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맞나요?"
-네.
"그렇다면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숨컷 님 계획의 관건은, 숨컷 님의 폭로에 피해자분들이 얼마나 빠르게 동조해 주시느냐가 될 것 같거든요."
-예예.
"그래서 말인데, 이 일. 저한테 일임해 주시겠습니까?"
-예?
"제가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래도 일임이라니… 제가 벌린 일인데 어떻게.
"저 채용된 거 맞나요?"
-예? 아, 예. 상세한 계약은 나중에 따로 만나서 협의하시는 거로 하고.
"그럼 전 이제 숨컷 님의 편집자인 거고."
-예예.
"숨컷 님 일은 제 일이기도 한 거네요."
-예… 예?
"부담 안 가지셔도 되니까, 맡겨 주시겠습니까?"
분위기를 타고 멋들어진,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어 버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감성 알레르기.
이린이 뒤이어 찾아오는 오글거리는 대사의 부작용으로 무안함에 몸을 비비 꼬았다.
하지만.
잠깐의 침묵 뒤,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짧은 헛웃음.
-제가 채지윤으로 액땜 제대로 했나 보네요.
최재훈 또한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어줌으로써 무안함을 분담해 준다.
오글거리는 대사엔 오글거리는 대사로.
상도덕을 아는 사람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다양한 의미가 담긴 최재훈의 말에 이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재훈에게 파일을 받고 삽시간에 편집을 끝낸 이린.
그녀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웬일이야. 니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지금 통화돼?"
-지금? 일 얘기야?
"괜찮은 건수 하나 있어."
이린은 채지윤의 피해자들.
그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이 사람들 중에, 니 회사에서 컨텍 들어갔던 사람 있어?"
-음… 다른 건 몰라도 개헤엄 그 사람은 이야기 나왔던 거 확실하게 기억나네. 그 사람들이 왜."
이린은 사건의 전말과 숨컷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확실한 거야?
"안 그랬으면, 채지윤 그 인간이 녹음본 뺏겠답시고 눈이 돌아갔겠어?"
-그렇긴 하네. 뭐,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 달라고.
"너희 쪽에 그 사람들 연락처, 채지윤 통하는 거 아닌 직통 연락처 있을 것 같은데. 그걸로 접촉해서 내가 지금 숨컷 님 미튜브 채널에 영상 올릴 건데. 그것 좀 보게 해서 의향 타진해 본 다음에. 도움 필요하다면 너희 법무팀에서 힘 좀 실어줘."
-그러면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데.
"게임 방송인 전문 MCN 레드풋, 위기의 방송인들 구출! 방송인들의 공정한 대우를 위해 힘쓰는 레드풋! 그림 좋잖아."
-괜찮은 건수라기엔 좀 약한데.
"그 사람들. 지금 소속 없는 것 같던데, 채지윤 때문인 것 같거든. 그런 상태에서 니들이 빚 지워두면, 계약 우선권 따낼 수 있는 거잖아. 그 사람들, 하나 같이 우량주야. 투자해서 손해 볼 거 없어."
-그래? 니가 그렇다면야, 뭐.
"일 바로 진행해 줄 수 있어?"
-어. 오케이.
"아 맞다."
-어? 뭐.
"너희 쪽 파트너십 팀에서 이미 숨컷 님 자료 올라왔지?"
-어떻게 알았대.
"어떻게, 컨텍 넣어 볼 거야?"
-아직. 조금만 더 상황 지켜보기로 했어.
"…어쨌거나, 이번 일로 덕 좀 보면."
"보면?"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그거 자료 보고. 숨컷 님한테 맞는 일거리 몇 개만 갖다 줘."
* * *
간신히 사태를 수습하고 차에 올라탄 채지윤.
"개새끼. 너는 진짜 내가-"
채지윤은 생각했다.
숨컷이 시청자가 아무리 많기로서니, 결국엔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더군다나 미튜브 구독자 끽해봐야 수백.
아직은 형편없는 파급력이다.
자신의 녹음본을 폭로해 봤자 퍼지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개헤엄들의 구독자는 합산 수백만,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선수를 치면 된다.
최재훈이 행동하기 전에 먼저 그를 매장하는 거다.
그런 판단으로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개헤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숨컷이라는 새끼 저격하는 영상 찍어서 보내]
그녀는 향후 계획을 떠올리며 차에 시동을 넣었다.
* * *
"…."
채지윤의 문자를 본 이하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숨컷이라는 방송인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그를 마남사냥 하라는 지시가 담긴 문자를 보곤 말이다.
하고 싶지 않았다.
채지윤이 자신 말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걸 돕기 싫었다.
동질감, 죄책감이 그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채지윤에 대한 공포 역시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주저앉아 있지만, 사고는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렇게.
그의 사고가 극단적인 곳에 도달하려던 찰나였다.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
(레드풋)
채지윤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통화를 수락하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
잠깐이라도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하온은 통화를 수락했고.
"안녕하세요, 개헤엄 님. MCN 레드풋 법무팀 소속 변호사 김하영이라고 합니다."
그는 요청에 따라 한 영상을 보게 된다.
처음 듣는, 숨컷이라는 사람의 채널에 방금 올라온 영상.
[유명 편집자의 실체를 고발합니다]
그 영상 안에서 채지윤-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꼴사납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열심히 손발을 휘두르지만, 허공을 가를 뿐.
우스꽝스럽게 허우적대는 모습이 연출된다.
-시-발새끼야!!!! 허어억- 죽여버릴 거야 개새끼야!!!! 허어억--어, 잠깐 거기-"
퍽.
-아아악꿱!
[고라니 치였눜ㅋㅋㅋ]
"풉."
이하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없이 두렵기만 했던 채지윤을 보고 말이다.
머지않아, 화면에 비추는 누군가의 얼굴.
남자였다.
채지윤은 자신과 같은 남자에게 그리도 꼴사납게 농락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얼굴에는 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채지윤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채지윤이 폭력을 가해왔었는데도 겁먹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서 가볍게 농락하고는.
자신감 넘치는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보셨죠? 이런 인간입니다. 무서워하실 필요 없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태로웠던 이하온의 눈이 변했다.
그가 핸드폰을 향해 말했다.
"할게요."
* * *
"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채지윤이 개헤엄들에게 숨컷 저격 영상을 만들어 제출하라고 한 지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영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말이다.
채지윤은 답답한 마음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 액정을 두들겼다.
[뭐 하냐 시발]
[영상 빨리 안 보내냐]
[꼭 이렇게 내가 찾아가게 만들지]
재촉을 하자, 그제서야 도착하는 문자.
[개헤엄 이하온 님을 비롯한 미튜버 일곱 분의 소송 절차를 맡게 된 MCN 레드풋 법무팀 소속 변호사 김하영이라고 합니다]
[향후 일곱 분과의 대화는 저를 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뭐?"
채지윤의 표정이 급변했다.
의중을 완벽하기 파악하기 힘든 아주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저 표정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아, 저 사람 진짜 심하게 인생을 조져 먹었나 보다.'하고 말이다.
머지않아.
개헤엄들의 채널에 채지윤의 바람대로 저격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만.
그 저격의 대상은 채지윤의 바람과는 달랐다.
[제 편집자를 고발합니다]
[최근 제 방송이 이상해진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유명 편집자의 실체에 대하여]
[제 편집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날.
커뮤니티는 특정 화제를 주제로 뜨겁게 타올랐다.
그 화제의 중심에는 '보이크러시 숨컷' 혹은 '남풍당당 숨컷'
혹은, 노예 해방자 '숨컷 the 루터 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