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87화 (84/361)

087. 편집자 채지윤 4

"개같은새끼가…."

자신의 중얼거림에-

"여기에서 그런 것도 팔았었나?"

히죽 웃으며 그런 능청스러운 대사를 내뱉는 최재훈.

"…."

잠깐의 당황.

이내 분노만이 남은 최지윤이 최재훈을 노려봤다.

여유로운 태도.

그게 고스란히 묻어져 나오는 능글스러운 얼굴.

보고 있노라니 자연스럽게 눈빛에 노기가 담긴다.

"야."

최재훈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

여지껏 가장 폭력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역시, 위축되지 않는 최재훈.

"응?"

심지어 깔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유롭다.

"뭐 믿고 깝치냐, 도대체?"

"뭘 믿고 깝치다니.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요?"

"계속 깝죽거렸잖아 썅놈아."

"제가 그랬었나요? 아 그럼 뭐, 저도 농담~인 걸로 하죠."

최재훈이 방금 전, 무례를 모두 '농담~'이라 어물쩡 넘겼던 말투를 따라 했다.

후읍.

하.

채지윤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했다.

"내가 좋게좋게 대해 주니까, 만만하지?"

"글쎄요. 좋게좋게 대해 주신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진짜, 꼬박꼬박 말대꾸. 하는 거 봐라, 십새끼가."

"그럼, 대화 중인데 꼬박꼬박 대꾸해야죠. 무시할 순 없잖아요."

"이런 시발 새끼가 진짜."

덜컥!

채지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데도,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헤죽거린다.

손이 근질거렸다.

성별 하나만 믿고 폭력상황에서 면역될 거라 생각하는 저 얼굴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채지윤은 남자에게 폭력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무식한 수단을 자주 써먹을지언정.

정말로 남자에게 폭력을 가할 만큼 무식하진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곳, 공공장소에서.

적어도 지금 최재훈과 자신의 관계에서는 말이다.

최재훈을 개헤엄으로 만들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니, 그녀는 더더욱 최재훈을 개헤엄으로 만들고 싶었다.

"후…."

그녀가 다시 한번의 심호흡을 통해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다시 자리에 앉아 말했다.

빙긋 웃으며 말한다.

"재훈 씨."

"예."

"저희 그냥, 지금부터 사적인 감정 배제하고. 비즈니스 이야기에 치중하는 거로. 어때요?"

최재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저렇게 나올 줄이야.

이 정도의 뻔뻔함이라니.

이 정도의 독기라니.

편집자로선 어쩐지 몰라도, 안 좋은 의미로 비범한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부터'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비즈니스 이야기라니.

그러기엔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로 너무 잘 알게 되지 않았나 싶었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비즈니스 관계를 성립하고 지속하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아니다.

그걸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저런 태도로 나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러니 자신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상황.

그런 상황이었기에, 최재훈은 기꺼이 흥미 본위로 이야기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또 어떤 어메이징한 씨부림을 하는지, 들어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툭툭.

최재훈은 옆에 엎어진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괜스레 톡톡 두드리며 턱짓했다.

한번 지껄여 보라고.

채지윤이 힘겹게 얼굴근육을 움직여 싱긋 웃어 보인 뒤, 지껄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생각해 봐요. 미튜브 수익 나올 정도로 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수익 나온다 해도,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한테 비싼 임금 지불해 가며 미튜브 채널 키우면 오히려 본전을 뽑지도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제가 임금 대신 수익을 분배 받는 형식이면, 그러한 위험 리스크를 재훈 씨가 아니라 제가 떠안게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오."

"그러니까. 단적으로 나중에 '엄청난 수익이 발생할 경우'가 아닌, 전체적인 상황을 상정해 보면. 나름 합리적인 조건 아닌가요?"

채지윤이 처음 했던 제안이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말장난이었다면.

이번엔 정말로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위한 설득이었다.

논리적으로 아주 설득력 있었다.

애초부터 되도 않는 말장난 말고 이런 식으로 설득했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다.

'아, 하긴.'

채지윤이 보인 일련의 행동을 보면, 그녀의 목적은 대등한 계약 관계 확립이 아니긴 했다.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여 상하관계를 구축하는 것.

그럼으로써 채널의 지분을 분배받는 걸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완전히 차지하는 거였겠지.

라고, 최재훈은 추측했다.

채지윤이 어떤 이인지 완벽하게 파악한 최재훈의 입장에선 지극히 타당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이번에도,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채지윤은 지분 50%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갖고 개헤엄들을 차츰 억압해 나갔다.

상하관계는 갈수록 뚜렷해졌다.

채지윤 스스로가 여기길 주인과 노예의 관계.

그렇게 그녀가 개헤엄들의 채널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평균 70%를 웃돌게 되었다.

'얘 성격에 지금처럼 말한 거면. 나를 평등한 관계로 봐주겠다고, 나름대로 인정해 준 거라 봐야 하나?'

'…아니지.'

'주도권은 언제든지 가져오면 되니까 일단 다리부터 놓자. 이게 더 말이 되겠네.'

최재훈의 반응을 기다리는 채지윤은 비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기였다.

'저건 그걸 위해서 연기하고 있는 거겠고.'

최재훈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더는 이어나가지 못할 연기.

최재훈이 생각의 정리를 마쳤다.

채지윤의 의도에 대한 생각의 정리를.

채지윤의 제안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에 대한 답은 애당초 정해져 있었으니까.

"괜찮아요, 저는 자신 있거든요."

"네? 무슨 자신이요?"

성장 가능성이 느껴지되 막연한 채널 초창기 단계에서 채지윤의 제안은.

채널 성장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자신이 젊어지겠다는 제안은 분명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당초 최재훈이 채지윤에게 구애 받지 않았던 이유가 뭔가.

"제 채널에 투자해서 손해보지 않을 자신이요."

성장 가능성을 막연하게가 아닌 확연하게 느끼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편집 비용을 지불해서 손해 보는 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미튜브 채널은 단기간에 만족스러운 성장을 거둘 것이라고.

이 훌륭한 안목을 지닌 장사꾼 채지윤 님께서 어떻게든 올라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봐라.

떡상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꿈틀.

웃는 채지윤의 눈썹이 짧게 경련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요?"

"적어도 두 명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두 명?"

최재훈이 검지로 채지윤을 가르켰다.

그리곤 그걸 고스란히 가져와서 자신을 가르킨 뒤.

척.

엄지를 치켜들었다.

빠직.

채지윤의 얼굴 근육에서 그런 소리가 난 것만 같았다.

"니가 뭔데."

"네?"

"내가 관리하는 구독자 수십만 미튜버들 다 그 조건에 계약했는데. 니까짓 게 뭐라고 그 계약을 거절하냐고."

"응?"

최재훈은 그에 대꾸하지 않고, 또 하나 발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관리하는'이라고요? 관리했던이 아니고?"

뭐 어쩌라는 거냐는 심드렁한 표정을 한다.

"아니. 그렇다면 이미 담당하는 채널이 있는데. 아니지, 채널'들'이 있는데. 이미 여러 명을 관리하고 있는데도, 제 편집자로 지원을 하신 건가요?"

부자연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자연스러운 것도 아닌 어조로.

마치 누군가가 이 대화를 들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또렷하고 설명적인 어조였다.

"뭐, 어쩌라고."

"제가 알기로는, 편집자가 채널 하나 담당하는 것도 힘겨운 일인 걸로 아는데. 어떻게 여러 채널을 담당하시고 그걸로도 모자라, 저까지 담당하려고 하시는 건지.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요?"

게임 방송의 영상은 대체로 최소 수 시간의 길이를 갖고 있다.

그런 영상의 경우.

편집 영상 1분 어치 만드는 데 평균 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고도의 숙련자의 경우, 3~40분까지 단축시킬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면 채지윤이 그 고도의 숙련자라고 가정해 보자.

게임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들의 길이는 평균 10분.

그렇다면, 한 채널에 올릴 영상을 편집하는 데 약 6시간이 소요되는 거다.

두 채널이면 12시간.

세 채널이면 18시간.

두 채널.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하루 작업량이었다.

채지윤이 고도로 숙련된 편집자인 동시에, 엄청난 워커홀릭이라고 가정하면 세 채널까진 되겠지.

"보니까, 아까 보여주셨던 채널들 다 관리 중이신 것 같던데."

하지만 두 개가 됐건, 세 개가 됐건.

채지윤이 담당 중이라고 판단되는 채널보다는 명백히 적었다.

더군다나 채널 전부 매일마다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어, 분배해서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런 최재훈의 반응을 제 딴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감탄으로 받아들인 채지윤이 피식하고 웃었다.

"나쯤 되면 다 방법이 있어요~"

최재훈이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하는 소리를 흘렸다.

"그 사람들이랑 다 수익분배 계약했다고 하셨죠?"

대답 대신 가만히 쳐다본다.

"그분들, 구독자 수십 만이니까. 영상 하나 올릴 때마다 수익 꽤 많이 나오지 않나요?"

"많이 나오지~"

최재훈과의 기 싸움에서 연이어 밀리고 있던 채지윤이었다.

자신의 기를 살릴 기회가.

재력을 자랑할 기회가 나오자 주저하지 않는다.

"보통 얼마정도 나오나요?"

"영상 하나 하고 몇백 벌 때도 있어."

"오오… 채 편집자 님은 그 50%를 받으시는 거고요?"

"그렇지."

"채 편집자 님쯤 되니까 그런 조건 받으시는 거겠죠?"

갑자기 아부를 하는 최재훈.

"그렇죠. 저 정도 되니까 그렇게 받는 거죠."

그걸 좋은 신호라고 판단한 채지윤의 태도가 돌변했다.

"다른 편집자들도 채 편집자 님처럼, 50프로를 받거나 하시나요?"

"아주 특별한 경우죠."

최재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그의 의도대로.

"와. 그러면 확실하게 해 두는데, 그 많은 채널들을 채 편집자님 '혼자서' 다~ 관리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그런데 제 것까지 담당하실 수 있겠다고요?"

끄덕.

"와~ 대단하시네."

채지윤이 흡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최재훈 또한 흡족스럽게 미소짓더니 말을 잇는다.

"채 편집자 님."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 봅시다. 편집자가 아니라, 마법사시죠?"

"뭐요?"

생각치도 못한 귀여운 아부(라 생각한 말)에 채지윤이 미소지었다.

"갑자기 웬 마법이요?"

"아니, 그렇잖아요. 5만 원을 50만 원으로, 10만 원을 100만 원으로 만드시는 것 같은데. 그게 마법이 아님 뭐겠어요."

"하하하."

"…? 그게 무슨 소리야."

여지껏 가장 불온한,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편집 직접 안 하시죠?"

늘어났던 고무줄이 다시 돌아오듯.

다시 풀어지기 시작하던 채지윤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담당하는 채널들 영상 편집 직접 안 하고, 다른 편집자한테 5만 원 주고 시키고. 그거 채널에 올려서 50만 원 챙기는 식으로. 편집이 아니라 마법을 부리고 계신 것 같은데. 맞죠?

그거 때문에 굳이 임금 대신 채널 지분을 고집하는 거고."

"…."

말만 의문문이지 표정에선 확신이 느껴진다.

시치미 떼봐야 소용없을 듯하다.

괜히 대화의 주도권만 넘어갈 뿐.

채지윤은 "하." 코웃음 치며 운을 뗐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오…."

당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독한 인간이었다.

"이걸 솔직하게 인정하신다고요?"

'인정하면 뭐. 인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어?"

"그런가?"

최재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게 괜스레 불안해서, 채지윤은 다시 또 성질을 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쩔 거야."

"아니, 채 편집자 님. 편집이 아니라 마법을. 장사를 한다고 고백하셔놓고 그러시면."

그 말대로다.

그렇기에 채지윤은 방식을 바꾸기로 한다.

애시당초 이 다음으로 하려고 준비해 놓았던.

최재훈이 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방식으로.

"니 거절하면 안 될걸?"

"오, 자신감. 그 자신감의 근거가 뭘지, 또 어떤 음메이징한 멘트를 날리실지. 뭘 더 궁금해야 할지 고민되네요."

"장난 같지?"

"들어나 봅시다.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니, 방송 못 해."

협박이었다.

회심의 일격을 가하듯 자신감에 들어차서 한 그 말에.

최재훈이 고개를 숙였다.

채지윤은 알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최재훈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힐끔 어디를 쳐다봤는지.

바로, 아까부터 옆에 엎어져 있던 최재훈의 휴대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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