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편집자 채지윤 2
채지윤은 문자를 보고 말 그대로 빡이 돌아 버려서 반사적으로 즉시 답장을 보냈다.
[읽씹 30분동안 한 걸로도 모자라서 ㅋㅋ]
[시비겁니까?]
곧바로 문자를 확인했다고 표시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안 온다.
'당황해서 말을 고르고 있나?'
보통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채지윤은 그 지체를 이렇게 해석했다.
'이 새끼 일부러 이 지랄 하는 건가?'
자신이 일부러 기다리게 한 걸, 복수한답시고 저러고 있는 거라고.
[잉]
[ㄷㄷ]
[죄송해요 기분 나빠하실 줄은 몰랐어요]
[그런 의도로 한 건 아닌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곧이어 도착한 문자도 그렇다.
최재훈의 태도는 지극히 정중했다.
흠을 잡으면 트집이 될 정도로, 예절상으론 문제가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채지윤에겐 그렇게 들렸다.
아니, 보였다.
[그쪽이 한 짓 그대로 되돌려준 건데 기분 나쁘다고요?]
[그러면 그쪽은 그게 기분나쁜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저한테 한 거네요?]
[대단하네요 ^^]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해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랄까.
그녀의 피해망상적인 해석은 놀랍게도 최재훈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단지.
그 의도를 어떤 형태로 받아들이는가만 달랐다.
최재훈은 채지윤이 이렇게 받아들이길 원했다.
[시비 거는 거냐고?]
[어~ 존나 맞아~병신아~]
[꼽냐? ㅋㅋ]
[화내 보던가 ㅋㅋ]
[니가 한 짓 그대로 한 건데 ㅋㅋ]
[화내는 순간 니 스스로 인정하는 거임]
[니가 나한테 먼저 ㅈ같이 군 거라고]
[멍청하고 얼빠진련 컽!]
최재훈, 그는 권지현의 조언 대로.
지금 자신은 물 들어오는 상황에 있으니 노를 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편집자를 고르라면 당연히 인성보다는 실력이었다.
그렇기에.
최재훈은 지금까지 채지윤이 보여준 태도를 근거로, 그녀가 "음메이징."소리가 절로 나오는 어마 무시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능력이 있으니 편집자로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
그래.
'받들을 의향'이 아닌 '받아들일 의향'.
동등한 입장의 관계가 될 의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개 같이 굴면 따라서 개 같이 군다.
오는 존중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가는 존중도 없다.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겠다면?
'별 수 있나.'
'솔직히 얘, 내 팬도 아닌 것 같은데.'
'유명 편집자라는 놈이 왜 팬도 아닌데 뭐가 아쉬워서 방송 막 시작한 뉴비의, 막 개설한 채널에 편집자 지원을 했겠어. '
'내 성공 가능성이 딱 보고 느껴질 정도라 거기에 빨대 꽂으려 한 거겠지.'
'게다가 보니까.'
최재훈은 채지윤의 편집물을 찾아보고 느꼈다.
'그렇게 편집을 기가 맥히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평범하더만.'
'굳이 얘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오는 물에 노 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얘, 스타 편집자 된 것도. 이런 식으로 된 거 아닌가?'
'어차피 뜰 애들한테 숟가락 얹어서.'
넘치는 자신감을 토대로 한 최재훈의 생각은 타당했다.
그리고 채지윤이 알았으면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했다.
'정상이 아닌 새끼'와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새끼'
대화 몇 마디 나눴을 뿐으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놀라우리만치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다른 의미로 잘 맞는 둘이었다.
'그러니까 아쉬운 건 내가 아니지.'
일련의 생각을 근거로.
최재훈은 이처럼 채지윤에게 기선제압을 허용하지 않았다.
상하관계 구축을 허용하지 않았다.
채지윤에겐 낯선 상황이었다.
아니, 처음이었다.
'개헤엄' 후보의 기선제압에 실패한 건.
채지윤에겐 다수의 '개헤엄'이 있었다.
그들 중 최재훈과 같은 생각을 한 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생각했었다.
'이런 재수없는 사람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성공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건 최재훈의 경우와 같이 정답이었다.
그들은 채지윤의 도움이 없었어도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채지윤의 개헤엄이 되어 버렸다.
이는 크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미튜버 채널이 없거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자신의 성공 가능성만 믿고, '유명 미튜버를 다수 키워낸 편집자'라는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게 가능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상한 게 있다면.
그건 초월적인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최재훈의 자신감이었다.
채지윤에겐 그런 최재훈의 자신감이 낯선 건 둘째 치고 무엇보다, 불쾌했다.
'내가 '띄워 준' 거니까, 당연한 거지.'
그녀는 개헤엄들에게 저지른 짓들을 그런 식의 사고로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분명 남들보다 뛰어난 안목.
그걸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 하는 개헤엄들의 발에 줄을 매다는 데 사용한 것뿐이면서.
선점하여 착취한 것뿐이면서 말이다.
그런 채지윤이었기에 최재훈의 자신감, 동등한 입장의 관계만을 허용하려는 의도에-
'감히 내가 알아봐 주고 기회를 줬는데, 이딴 식으로 나와? 나랑 맞먹겠다고? 주제도 모르는 괘씸한 새끼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채지윤은 참는다.
'하극상'을 '용서해주기'로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불쌍한 것한테 관용을 베푸는 마음으로.
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채지윤이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무시하고 있는 사실 때문이었다.
숨컷이 자신 없어도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
이 관계를 놓치면 크게 손해 보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
아쉬운 건 숨컷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불쾌했다면 죄송하다는 숨컷의 말에 담긴, 자신과 '맞먹으려는' 숨컷의 괘씸한 의도를.
따라'준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따를 수밖에 없는 거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기도 하네요]
[최재훈 : 그렇죠? ㅋ]
"개새끼가."
맞먹는 걸 넘어서 자신을 밑에 두려는 의도를.
참아'준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참을 수밖에 없는 거면서.
[네 ^^]
[편집자 관련해서 연락 주셨죠?]
[최재훈 : 네네]
[만나서 자세히 얘기 나누실까요?]
키 170 후반의 큰 덩치를 가졌으며, 험악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채지윤은 생각했다.
어차피 상대방은 남자.
'얼굴 마주 보고도 깝죽거릴 수 있나 보자.'
평소 개헤엄들에게 하던 대로 얼굴 마주하고 적당히 위압감 주면서 대화하면, 자신에게 주도권이 돌아오게 돼 있다고.
다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수 있다고.
그렇게 평소처럼 계약을 따내면, 결국 웃게 되는 쪽은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최재훈 : 딱히 만나서 얘기할 필요가 있나요?]
[앞으로 같이 일할 사이인데]
[얼굴 터 두면 좋잖아요]
[다양하게 이야기 나누기도 더 좋고]
[최재훈 : 아하]
[최재훈 : 그러면 영상 통화 ㄱ?]
[^^;;]
[그냥 만나시죠]
최재훈은 이미 채지윤이라는 인간군상에 대한 파악을 완료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
그렇기에 존중할 가치가 없는 인간.
채지윤이 저자세로 나와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게 존중의 표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채지윤에 대한 취급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최재훈 : 굳이?]
[최재훈 : 혹시 그냥 절 실물로 보고 싶으신 건가]
[최재훈 : (파랭이가 자아도취하는 이모티콘)]
그런 그의 문자에-
[적당히 깝치지?]
채지윤은 무심결 그렇게 답장해 버릴 뻔했다.
"후… 시발…."
[네 ㅎㅎ]
[제가 숨컷씨 팬이라서 ^^]
[최재훈 : ㅎㅎ]
[최재훈 : 아 그러면 또]
[최재훈 : 한번 만나 드려야지]
"누나, 언제까지 계실-"
"아 닥쳐 봐!"
"…."
괜한 이하온에게 화풀이를 한다.
[어디서 만나실래요?]
채지윤은 장소를 지정했다.
자신이 자주 들르던 카페였다.
그러니까, 지한테서 가까운 데였다.
[최재훈 : 좀 먼데]
[팬 만나러 와 주시는 거니까 ㅎㅎ]
[최재훈 : 아니 ㅋㅋ]
[최재훈 : 보통 반대 아닌가ㅋㅋ]
[최재훈 : 제 팬이면 절 만나러 와 주셔야죠 ㅋㅋ]
[최재훈 : 여기서 만나져]
그가 장소를 지정했다.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카페였다.
그러니까, 이것도 지한테서 가까운 데였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좀 먼데;;]
[최재훈 : 아쉬운 사람이 오는거져 뭐 ㅎㅎ]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하…."
채지윤이 화가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곤, 신경질적으로 이하온의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딱 봐도 답답하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에, 이하온은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좀 더 그녀를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요즘 채지윤 때문에 계속 힘들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힘들 그에겐 소소한 행복이 필요했다.
* * *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화가 다 가라앉지 않았다.
"시발, 진짜 존나 머네."
최재훈이 지정한 장소가 시발 진짜 존나 멀었기 때문이다.
그 긴 거리를 이동하면서 계속 최재훈과의 대화 내용이 떠오르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최재훈과 마지막으로 대화한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채지윤은 차에서 내려 문을-
쿵.
조심스럽게 닫았다.
쾅!
남의 물건에 화풀이하기 위해 힘을 비축해두었던 것이다.
채지윤이 철제문을 사정없이 박차며 계단에 들어섰다.
채지윤은 잘 가다가 카페 근처에서 멈춰섰다.
"후…."
짝짝.
양쪽 뺨을 두드린다.
'사내새끼들은 여자 화나게 하면 지가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마냥 으스대니까.'
시간을 들여 화난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만든 뒤.
그제야 카페에 들어섰다.
짤랑~
"어서오세요~"
남자 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카페 내부를 살핀다.
구석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최재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릴 끌어올렸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그런 반응이 나오게 하는 외모였다.
'실물도 쓸 만하네?'
채지윤이 그를 위아래로 끈적하게 훑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채지윤이 가까워지자 그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들어 올려 채지윤을 바라보는 최재훈.
눈을 한 번 꿈뻑이곤 말한다.
"편집자 님?"
채지윤과 달리, 그는 그녀의 얼굴을 몰랐다.
채지윤은 어느새 표정을 바꾼 상태였다.
다소 딱딱해서.
안 그래도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채지윤에게 더해지면, 남자 입장에서 위압감을 느낄 법한 표정으로.
그런 표정에, 내리깐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예."
채지윤이 남자들을, 개헤엄들을 상대로 주도권을 가져오는 방법이었다.
겁주기.
무식하지만 그래서 잘 먹히는 방법이었다.
"아~"
최재훈이 자리에 일어나서 목례한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시죠."
그의 태도에 채지윤은 잠깐 당황한다.
역시 아무리 봐도 표면상으론 정중해서?
아니.
너무 태연했기 때문이다.
겁먹은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문제없이 눈을 마주친다.
오히려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채지윤은 좀 더 분위기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끼익!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꺼내 앉는다.
몸을 약간 숙여, 반대편 자리의 최재훈에게 가까이 근접한다.
그 상태에서 말한다.
"재훈 씨."
"네?"
"사람 섭섭하게 그러십니까."
"?"
따지듯 공격적인 어조로 말한다.
그런데 당황하거나 겁먹긴커녕-
"이 새끼 갑자기 뭐라는 거지?"
그런 표정으로 쳐다본다.
채지윤은 강도를 올린다.
"아니, 중요한 일 이야기니까 얼굴 마주 보고 하자 했는데. 그냥 영상 통화로 하자느니. 내가 그렇게 보고 싶냐느니. 한 번 만나준다느니. 사람 그렇게 놀리면 재밌어요?
좀 더 험악해진 표정과 목소리.
그에 최재훈은-
"아."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