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80화 (77/361)

080. 여파 6

레전드 오브 레전드에서 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분류하자면.

수행 능력인 피지컬과, 판단 능력인 뇌지컬.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레오레에는 그런 말이 있다.

솔로 랭크 게임에서 피지컬이 존나 좋은 사람과, 피지컬이 존나 구린 사람이 오더를 하면.

둘 중 피지컬이 존나 구린 사람의 오더를 들어라.

그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은 당연히 의문을 표할 것이다.

어째서?

피지컬 좋은 사람이 더 잘할 거 아닌가?

그러나 생각해 보자.

피지컬이 존나 구린 사람이, 어떻게 피지컬이 존나 좋은 사람과 같은 게임에 매칭되었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같은 점수대에 있을까.

그게 가능한 경우는 하나뿐이다.

존나/ 구린 피지컬을 보완할 만큼, 존나 좋은 뇌지컬을 갖고 있는 경우다.

마스터에 도달하기 위한 실력, 그러니까 피지컬과 뇌지컬 수치의 합이 50이라고 치면.

10의 피지컬을 갖고 있는데 마스터에 있는 사람은 40의 뇌지컬을 갖고 있는 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피지컬의 존나 구린 사람의 오더를 듣는 게 맞다.

오더의 정확도는 뇌지컬 능력과 비례하니까.

그렇게 존나 구린 피지컬을 지녔으나 존나 좋은 뇌지컬을 지닌 이들은 손없페라고 불렸다.

'손 없는 FACE'의 줄임말이었다.

반대로 40의 피지컬을 지녔으나 10의 뇌지컬을 지닌 '뇌 없는 FACE', 뇌없페도 있었다.

챌린저 상위권에도 뇌없페들은 더러 존재했다.

그리고, 뇌없페만큼은 아니지만.

피지컬에 치중되어 게임 수준에 미달되는 뇌지컬을 보유한 소프트 뇌없페들 또한 숱하게 존재했다.

최재훈은 그러한 뇌없페들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남자였다.

그가 랭킹 1위 도달 경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데엔, 뇌없페들을 잘 다루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뇌없페들을 어떻게 잘 다루느냐?

바로, 부족한 뇌지컬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오더로써 말이다.

챌린저 상위권 게임에서 뇌없페들을 다루며 단련된, 챌린저 상위권 게임에서도 통용되는 랭킹 1위의 오더.

그것이 현재 숨컷과 페카의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스터 게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원래였다면 페카 팀의 대승으로 끝났어야 할 교전이 3:3교환으로, 무승부로 끝났다.

페카와 달리, 그녀의 팀원은 아직 숨컷 팀에게 일어난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고.

그렇기에 문제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 시작했다.

[팀 채팅][카투스] : 우리 왤케 못 싸움? 카시 뭐한 거임?

[팀 채팅][카시오페이아] : 왜 나한테 ㅈㄹ임

[팀 채팅][애즈리얼] : 머 어케댄거?

단번에 꺾여 버린 페카 팀의 기세.

"아니 이런 놀라운 일이?"

그런데도 페카는 웃음을 터뜨린다.

숨컷이 보여준 놀라운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한다.

그 능력으로 인해 궤도에서 벗어나 버린 상황에 순수하게 즐거워한다.

페카팀의 사망자 안에는 페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숨컷 또한 사망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렐리야를 처치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룬 이 또한 숨컷이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상황은 아직 좋았다.

숨컷이 이제 막 따라오기 시작했을 뿐.

과도하게 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대신 적당한 위기감은 필요했다.

숨컷의 새로운 능력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따라잡히고, 추월당하고 말 것이다.

[팀 채팅][이렐리야] : 여러분 괜찮으니까 진정하시고

페카는 일단 팀원들을 진정시킨 뒤-

[팀 채팅][이렐리야] : 여러분 한타 문제 없이 잘하셨어요

[팀 채팅][카투스] : 그런데 왜 짐?

[팀 채팅][이렐리야] : 적 팀에 아주 잘 하시는 분께서 오더를 시작하신 것 같네요

[팀 채팅][카시오페이아] : 오더 하나로 저렇게 된다고?

[팀 채팅][애즈리얼] : 말도안되는데

[팀 채팅][이렐리야] : 그러게요 말도 안 되게 대단하신 분이네요

[팀 채팅][카투스] : 그럼 어쩜?

[팀 채팅][이렐리야] : 저도 지금부터 감히 오더 내려볼 테니

[팀 채팅][이렐리야] :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오더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다만, 숨컷과 같이 엄청난 밀도의 오더는 아니었다.

[팀 채팅][이렐리야] : 아직 비셔 백작 안 나왔으니 저 바텀으로 가서 스플릿푸시시작할 건데

[팀 채팅][이렐리야] : 적 팀이 저를 막으려면 최소 두 명 이상 와야 되거든요?

[팀 채팅][이렐리야] : 그러니 적팀들이 저 막으러 오는 거 기다렸다가 그거 이용해서 이익 보시면 되겠습니당.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페카의 이렐리야는 혼자서 숨컷의 텔론을 막을 수 있었지만.

숨컷의 텔론은 혼자서 페카의 이렐리야를 막을 수 없었다.

챔피언 상성이 그랬다.

덕분에 숨컷과는 달리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스플릿 푸시(팀원과 따로 떨어져 혼자서 적팀의 기지를 압박하는 전술)가 있었다.

이렐리야가 바텀 압박을 시작했다.

맞라인인 캡틴플랭크가 마크해 오지만, 성장 차이가 너무 커서 조금의 억제도 되지 못한다.

이렐리야의 압박 속도를 아주 미미하게 늦출 뿐.

이렐리야를 막으려면 텔론이 합세하여 캡틴플랭크와 협력해야 했다.

하지만 텔론의 선택은 수비가 아닌 공격이었고.

텔론의 위치를 확인한 이렐리야가 타워를 무시하고 캡틴플랭크를 덮쳤다.

공격에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숨컷과 페카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전면전이 간접적인 형태로 성립되었고.

-크아아아앙!!!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게임이 빠르게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펑!

넥서스가 폭발하고, 게임의 결과를 알리는 창이 떠오른다.

체감 시간이 몇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치열한 게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후~"

페카가 시원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 이거. 아까웠습니다, 선생님?"

"하, 진짜…."

페카의 목소리가 승부의 흥분으로 업되어 있다면 최재훈의 목소리는 승부의 피로로 다운되어 있었다.

영락없는 패자의 목소리.

흔히 말하는 명경기의 양상.

게임은 끝까지 막상막하로 치열하게 흘러가다 아주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와 ㅅㅂ ㅋㅋㅋ 끝까지 쫄깃쫄깃한거 보소]

[숨컷 오빠 나 거기가 흥건해(손이 땀으로 ㅎ)]

[와 아니 이걸 진짜 이기네 숨컷 진짜 ㅁㅊ놈인가]

[오더 정신 나간것 같네;;;]

[오더는 둘째치고 걍 실력이 쳐돌았는데]

[아니 얘 진짜 남자 맞냐?]

[페카 이긴거면 ㄹㅇ 남자중에 원탑이라 봐도 무방할듯]

[아니 이걸 정의구현에 성공한다고?]

[조카쉑 엌ㅋㅋㅋ 남자한테 발렸대욬엌ㅋㅋㅋㅋㅋㅋㅋ]

[강한 남자 ㄷㄷ]

<승리>

최재훈의 승리였다.

-미칠것같애 님이 5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이 경기 본 내가 인생 승리자다 ㅇㅇ;

[ㄹㅇ; 이 경기 본 내가 너무 대견하다 오늘 상으로 공부 쉬게 해 줘야지]

[선생님 부모님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벌을 받는 건가요?]

[날 낳은 죄]

[(파랭이가 깜짝 놀라는 이모티콘)]

-어케 이겼노 시발년ㄴ아 님이 3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어케 이겼노 시발년ㄴ아

[ㄹㅇ ㅋㅋ 진짜 어케 이겼노 시발년ㄴ아]

-김해 건물주 님이 5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 씨 이 정도일 줄이야 ㄷㄷ 너무 멋지십니다

[와 ㄷㄷㄷ 해장님 ㄷㄷㄷㄷㄷㄷ]

[50만원 쿨도네 ㄷㄷ]

-RAIO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누구야! 남자 마스터한테 지는 거품 챌린저! 컽!

[? ㅋㅋㅋㅋㅋ]

[아니 ㅆㅂ 니가 왜 거서 나오누]

[라이오 개새끼야 제발 방송켜!!!!!!!!!!!!]

[아 ㅋㅋ 바이트 코인으로 300조 벌었는데 방송을 왜 하냐고]

[ㄹㅇ ㅋㅋ 방송하고싶으면 지상파 채널 사면 되는데 옐로우TV에선 안 하지]

불리한 게임을 팀원들을 이용해 승리로 이끈 최재훈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숨컷을 혼자서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페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지금 시청자들은 방송에 열광하고 있었다.

숨컷의 방송에 말이다.

완전히 사라진 나쁜 여론.

쏟아지는 후원.

<15, 311명>

엄청난 시청자.

페카와의 게임으로 진이 다 빠져 있던 최재훈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내-

[ㅗㅜㅑ]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상기돼서 웃는모습 보니까 젖을것 같애 (감동받아서 눈가가)]

[선생님 같은 자식을 둔 분들의 눈가는 촉촉함을 잃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진다.

분기점에 서 있던 방송이 옳은 길로 들어선 것을 느꼈다.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약속대로 두 판 이기셨으니, 어제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페카의 덕분이었다

그녀가 마련해 준 기회의 장 덕분이었다.

최재훈은 페카에게 두 판 동안 시달린 것도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오롯이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페카 선생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와서지만, 옐로우TV의 식구가 되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박수~"

짝짝짝짝.

'세상에.'

최재훈은 감동받아서 눈에 존재하는 수분이랑 수분은 즙으로 다 짜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런 천사가 다 있나 싶었다.

이런 소시오싸이코패스패스가 존재하는데 조커와 한니발 박사 따위가 너무 고평가되었다며 생각하던 과거의 자신을 통렬히 비난한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은 자신의 은인이며 사랑과 자애의 천사다.

라고 생각한 과거의 자신을.

최재훈은 통렬히 비난했다.

그는 대결의 여운과 보상을 만끽하곤 곧바로 방송을 속행했다.

페카와의 대결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괜한 것까지 이어졌다.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이어나가려는데, 페카의 저격까지 따라서 이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더 이상 최재훈이 순수히 저격을 당해주지 않는데도,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연이어서 저격에 성공한다.

저격 첫 판째.

"아니, 페카 선생님. 이런 우연이?"

"그러게요? 이런 우연이!"

두 판째.

"어? 또?"

"아니, 숨컷 선생님! 이 정도 되면 우리는 운명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러게요?"

"하하하하."

"히히히히."

세 판째.

"???"

"아니 이런 우연이!"

"이게 우연이라고요?"

"아, 아니지. 이건 우연이 아니죠!"

"그렇죠?"

"이 정도면 운명이죠!"

"허."

다섯 판째.

"아니 또 이런 우연이!!! 아니, 이런 운명이!"

"하…."

여섯 판째.

"선생님, 이번엔 아군이네요!"

"제발… 좀 꺼져주시면 안 될까요."

"알겠습니다! 다음 판은 적팀에 걸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뭐 새꺄?"

여덟 판째.

"너 시발, 또 적 팀에 있지."

"선생님 저 밥 먹는 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맛있게 드십쇼."

"넵."

"아니이런 시발, 뭐야. 적 팀에 있는 거 맞잖아."

"밥 먹는 중인 것도 맞습니다."

"아니 이런 개-"

열 판째.

"아니 제발 좀…."

"큭큭큭큭."

"제발 좀 꺼져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흐어어어엉!!!"

"선생님 울지 마세요."

"그러면 좀 꺼져!!!"

"아니, 무의미해서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는 연기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냥 좀 제발!!! 아아아아앍!!!"

"핰핰핰핰핰."

후원액 약 312만 원.

최고 시청자 1만 7천 명.

최재훈은 오늘 엄청난 대박을 거둔 방송을, 두통을 호소하며 종료했다.

장장 열두 시간 동안 이어진 저격 끝에 일어난 일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