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여파 4
옐로우TV 내에서 대표 PD를 꼽으라 하면 반드시 거론되는 PD들이 있었다.
[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내놔! 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내놔! 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내놔! 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내놔! 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내놔!]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좀꺼져미친새끼들아]
[아 ㅅㅂ ㅋㅋ 뭔데 이거]
그 대표 PD중 한 명인 페카.
그녀는 지금 아메리카TV라는 외부 유입에 의해 자신의 방송이 개판이 나 버렸다는 상황에, 웃고 있었다.
어이가 없고, 불쾌해서 흘리는 종류의 쓴웃음?
아니.
"큭큭큭큭큭."
그냥 웃음이었다.
그냥 순수하게 웃겨서 나오는 웃음.
그녀는 정말로 이 상황이.
평소 자신의 방송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인들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방송이 통제 불가 상태가 되었다는 상황이.
마냥 웃겼다.
영소 플랫폼이라곤 하나, 과연 한 플랫폼에서 대표라고 불리는 방송인의 유쾌함이었다.
[아 싸패쉑 쪼개고 있는 거 실환가]
[뭐가 웃겨 ㅄ아 니방송 난리났는데]
[선생님 무섭습니다 그만 쪼개십시오] 라고 보기엔, 그녀의 팬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반응이었다.
"아니, 아 웃긴 걸 어떡해. 나 이런 상황 처음이란 말이야."
여타 방송인들 같았으면 눈쌀을 절로 찌푸리고 불쾌함을 느꼈을 상황에 웃으며 진심으로 유쾌해 한다.
그 모습은 마치 괜히 팬들로부터 싸페카, 조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총 맞아도 처음 맞아 본다고 웃을 새끼 ㅋㅋ]
[훈련소에서 한달내내 쪼갤 새끼]
[유언으로 'ㅋㅋㅋㅋㅋㅋㅋ'타이핑 칠 새끼]
페카는 도배 채팅 사이로 파묻혀 사라지는 멀쩡한 채팅을 확인하기 위해 눈에 힘을 집중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하~ 안돼, 이거. 안 되겠다. 여러분. 오늘은 여기서 방종할게요~"
[아니 그니까 왜 신났냐고 ㅁㅊ년아 ㅋㅋ]
[진짜 골떄리는 년이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전업 방송인으로서, 하루 장사를 공쳤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페카는 이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옐로우TV 갤러리에 접속했다.
"큭큭큭, 아니. 진짜 이 사람들. 미쳤네?"
제목:아메리카TV에서 왔습니다 숨컷 내놔!!!
라는 글로 도배되어 있는 갤러리의 상황을 보고 또 한 번 거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잘생긴 남자 PD니 뭐니.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이쯤 되면 관심을 안 가지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페카는 숨컷이라는 PD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 진짜 잘생기셨네~?"
그렇게 접한 그의 얼굴 사진을 보고 감탄한다.
감탄하긴 하는데, 어딘가 영혼이 결여된 반응이었다.
다음은 현 사태의 발단인 올삭빵, 그곳에서 그가 보인 플레이를 보게 되었다.
무난한 게임이었다.
양상도 그렇고, 결과도 그렇고.
"오?"
그런데, 그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되자 생각이 바뀐다.
한예지.
기억하기론, 아군으로 만나면 국밥처럼 든든하고, 적으로 만나면 껄끄러운 플레이어였고.
쟈드로만 따지면 한국에서 손가락에 뽑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쟈드 미러전.
무난하게 가기만 해도 대단한 건데, 심지어 이겨 버렸다.
운이 좋았나?
"오, 오오오~?!"
그런 의심은 이어지는 두 번째 경기를 보는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첫 번째 게임에 비해 폼이 월등히 상승한 한예지를 상대로 비등비등하게 가는가 싶더니, 결정적인 상황에서 찍어 눌러 버린다.
압도적인 실력차로.
감히 의심할 수가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였다.
해당 경기를 몇 번이고 돌려본 페카의 눈은 어느새 빛나고 있었다.
얼굴을 봤을 때 미동도 없었던 그녀의 관심도가 쭈욱하고 올라가 있었다.
"아니, 이런 훌륭한 인재가 우리 옐로우TV에?"
얼굴을 확인할 때만 해도 아무래도 좋을 사람이었던 숨컷이, 훌륭한 인재가 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은 빠르게 빠르게 떠야지?"
페카는 순수한 호의 혹은 팬심 아니면 동료애로 그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워낙 유저풀이 작은 플랫폼이라 숨컷이 큰다면 그녀의 방송에 영향이 올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상 화폐 투자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둔 지인을 따라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이후.
그녀의 직업인 방송은 취미에 더 가깝게 되었다.
가능성 있는 신입PD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건 그녀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게임 캐릭터 키우는 기분이랄까.
"어디보자~"
추측하건데.
숨컷은 향후 방송을 키면 오늘 일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때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자.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 숨컷의 방송에 참가한 그녀였는데-
PEKA - 용서 해줄까 말까~
PEKA - 이거 고민되는데요?
"엥…?"
그런 말을 한다.
당황한 얼굴이 된 최재훈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냥 용서해주면 재미 없지?"
용서하고 자시고, 최재훈에게 유감을 느끼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말한다.
어째서?
간단하다.
생각해 보니까,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방송 차원에서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아니.
자신이 느끼기에.
두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완전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방송 경력.
덕분에, 페카는 알 수있었다.
자신이 지금 간단하게 숨컷을 용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당장은 자신의 팬들이 숨컷에 대한 비난을 멈출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어제 일로 인해 그에게 갖게 된 나쁜 인상이 사라져서는 아니다.
자신이 용서함으로써 그를 비난할 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다시 또 트집잡음으로써 비난할 거리를 찾아내어, 그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는 이가 나올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방송인을 악착같이 괴롭히는 악질 시청자들은 어느 방송 플랫폼에나 존재했다. 자신이 아끼는 옐로우TV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러니까, 귀여운 후배PD의 향후 원활한 방송 활동을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근본적인 해결책.
자신의 팬들이 어제 일로 인하여 숨컷에게 갖게 된 나쁜 인상을 없애 주는 것이다.
그를 위해 지금부터 숨컷 방송의 일부가 되어, 팬들이 그의 방송을 편견 없이, 나아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 상태에서 숨컷이 인상적이고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나쁜 인상을 충분히 좋은 인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
인상적이고도 강렬한 모습.
페카가 도와줘도 결국 이번 일은-
<시청자 : 5623명>
이 많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될 지는.
숨컷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페카가 생각하기에, 숨컷은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부터 자신이 할 행동은 숨컷의 그 능력을 끌어내주기 위함이다.
라고, 거리낌 없이 최재훈을 괴롭힐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한 페카가 특유의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PEKA - 그냥 용서해주면 재미가 없으니까
PEKA - 이렇게 하시죠 선생님
"어떻게요? 선생님?"
PEKA - 선생님 일단, 보이스코드 가능하세요?
페카의 제안대로 게임 채팅 프로그램인 보이스코드에 접속해서 그녀와 연결됐다.
"아, 아. 들리세요, 선생님?"
페카의 목소릴 들은 최재훈의 눈썹이 작게 들썩였다.
일련의 행동에서 받은 짓궂은 인상과 갭이 있는 차분한 목소리와 분위기였다.
"예, 예. 들립니다, 선생님."
"좋습니다~ 선생님. 그, 레오레 계정 티어가 어떻게 되세요?"
"저요? 골드 하나랑, 마스터 티어 하나 있습니다."
"아, 마스터! 딱 좋네요. 그걸로 접속해서 솔로 랭크 게임 서칭 시작해 주실래요? 아니 그런데 잠깐, 골드요? 아니, 그 실력에 어떻게 골드 계정이 있으시지? 뭐 패작, 그런 거라도 하셨나? 하하하!"
"히히히?"
[아니 ㅋㅋ 맥이는 거 봐]
[초면에 '패작하셨어요?' ㅇㅈㄹ ㅋㅋ]
[진짜 싸패쉑 ㅋㅋ]
"어쨌거나, 이렇게 하죠! 지금부터 솔로 랭크 게임 두 판 해서!"
"해서?"
"전부 이기시면, 어제 일! 깔끔하게 없는 걸로. 어때요?"
"아, 좋죠."
페카의 행동 의도를 도통 파악할 수가 없어 긴장하고 있던 최재훈.
그의 긴장이 풀렸다.
동시에 감동을 받는다.
페카가 자신을 위해 판을 깔아주려 하고 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천산가?'
그때 게임 서칭이 완료되고 최재훈의 화면에 수락 여부를 묻는 거대한 창이 떠오른다.
그가 수락을 하려던 찰나-
"아, 잠시만요!"
페카가 만류한다.
"아, 이번 거는 거절해주세요."
"잉? 네 일단 거절했어요."
그렇게 게임 서칭에 성공하고, 거절하고를 수차례 더 반복.
"아, 예. 수락해주세요, 이번 건."
드디어 허가가 나왔다.
그렇게 게임을 수락하자 들려오는 페카의 말.
"아! 아까워라, 아군이네."
"네?"
그 말을 듣고 아군 목록을 확인하자 눈에 들어오는 아이디.
'PEKA'
페카가 보인 일련의 행동은 같은 게임에 매칭되기 위함이었다.
듀오를 하면 되는데 어째서 그런 번거로운 방식을 채택하는가?
페카는 '아! 아까워라, 아군이네.'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아니 조카 또라이새끼 진자 ㅋㅋㅋ]
[저격할려고 그지랄한 거였나 ㅋㅋㅋ]
페카는 최재훈을 적팀으로 저격하려 한 것이다.
"와…."
난생 처음 접하는 지극히 능동적이며 당당한 저격.
[면상저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표현이 딱 어울리는 행위를 당연한 듯 해내는 경이로운 뻔뻔함에 최재훈은 감탄하며, 생각보다 짓궂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약간은' 말이다.
적어도 현재로썬 그렇게 생각했다.
* * *
제목 : 아 조카쉑 오늘 레전드네 진짜ㅋㅋㅋㅋㅋㅋ
내용 : 이 싸이코패스새기 진짜 ㅋㅋ
ㄴ : 뭔소리임 조카쉑 지금 방송 안 켰는데
ㄴ 글쓴이 : 이 새기 지금 숨컷 방송에 있음
ㄴ : 아니 방송 안 키고 걔 방송에서 뭐한다냐
ㄴ 글쓴이 : 뭘 물어봄 니가 직접 보면 되지
ㄴ : 어제 일땜시 숨컷은 좀
ㄴ 글쓴이 : ㅋㅋ 인생 절반 손해보누
ㄴ 글쓴이 : 조카쉑 지금 숨컷 방송에서 레전드 갱신중인데
ㄴ : 머하는데
ㄴ 글쓴이 : 숨컷이 어제 일 사과하면서 용서해달라니까 조카쉑이 지금부터 솔랭 2판 이겨서 둘다 이기면 용서해준다했음
ㄴ : 그게 왜
ㄴ 글쓴이 : 그래놓고 저격해서 같은 팀 걸린다음 괄약근 풀어놓고 즐겜하는중 ㅋㅋ
ㄴ : 어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ㄹㅇ 개싸이코 새기라니까
제목 : 아메리카TV 홍보땜시 숨컷 좀 많이 꼬왔는데
내용 : 페카쉑 출몰했대서 방송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려 하네 ㅇㅇ;
2연승하면 용서해준다 하자 마자 아군으로 저격해놓곤 트롤하면서 실실 쪼개는데 저걸 유쾌하네 받아준다고? ㅋㅋ
ㄴ : ㄹㅇ 조카쉑 윈드밀 돌면서 사방에 똥뿌리는거 오열하면서 주워담는거 십호감
ㄴ : 그니까 ㅋㅋ 조카쉑 계속 맥이면서 성격 살살 긁는데 정색 한 번을 안하누
ㄴ : ㅈㄴ 잘생겼는데 성격도 호탕하고 겜도 잘하고 ㄹㅇ; 좀 호감되려 하네
페카의 의도대로라고 해야 할까.
옐로우TV의 특정 이용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최재훈에 대한 반감이 희미해지려는 징조가 보이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 또 뭐 하다 잘리신 거예요, 도대체!!!!!"
하지만, 페카의 똥을 치우느라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는 최재훈이었다.
그는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순수한 재앙이나 다름없는 페카의 행동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계속 부진해서 죄송해 가지고 뭔가 한 번 보여드리려던 게!!!"
"아까부터 그렇게 뭔가 보여주겠다고 해놓고 보여준 거라곤 배변 활동뿐이잖아요!!! 선생님 제발 괜찮으니까, 그냥 마음 편히 계세요!"
"아이, 그럴 순 없죠! 우리 숨컷 선생님 분발하고 계신데 어떻게!"
"니 때문에!!!!! 분발하는 거잖아요!!!!! 니가 분발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제가 더 힘내볼게요!"
"아니 거기서 뭔 힘을 더 줘!!! 괄약근에 힘 좀 빼라고 제발!!!"
[힘 좀 빼라고 제발? ㅗㅜㅑ]
[똥이 소세지 뽑듯 쫙쫙쭉죽 나오는거 보소 ㅋㅋ]
[조카쉑 어제 뷔페 조졌누 ㅋㅋ]
<승리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이끌어 낸 승리.
최재훈은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라톤의 승리자 같이,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야, 이걸 이겼네? 대단하신데요, 선생님? 이 기세를 몰아서 바로 다음판 가죠!"
[뭔 기세를 몰아 ㅁㅊㄴ아 ㅋㅋ]
[니 기세를 몰 거면 다음판이 아니라 화장실로 가야지 똥싸개새기야 ㅋㅋ]
"하… 그래요, 그래. 갑시다."
저 언덕만 넘으면 정상이다.
한 판만 더하면 끝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최재훈이 게임을 서칭을 시작한다.
"거절하시고."
"거절하시고?"
"됐습니다! 가시죠!"
또 한 번, 능동적인 저격을 당하는 그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나.
"오!?"
이번엔 PEKA가 아군이 아닌-
"숨컷 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이번엔 적이네?"
적에 있다는 걸 확인하곤 단번에 활기를 되찾았다.
아니, 활기를 되찾은 정도가 아니라 활활 불탄다.
"뒤졌다, 조카쉑."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왔다.
[속보) 숨컷 광복]
[본심 나왔누 ㅋㅋㅋㅋㅋ]
[내가 다 후련하네 ㅇㅇ;]
[1판이 10판같았습니다]
[조상선생님들 광복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조상선생님은 또 뭐야 옐로시티쉑들 말투 개에바네 진짜 ㅋㅋ]
지금까지 페카가 보인 일련의 행동은 방송을, 나아가서 자신을 위한 것임을 어렴풋이 느낀 최재훈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페카를 정말로 뒤지게 혼내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게임을 망칠 의도로 악의적으로 플레이한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끔찍한 결과로 귀결되는 음흉한 즐겜 실력.
이쁜 말을 이쁜 목소리로 해도 끔찍하게 들리게 만드는 음흉한 말투.
저번 게임을 하며 그 둘에 단단히도 시달린 탓이었다.
"아니, 선생님. 너무하세요. 같은 팀으로 역경을 헤치고 나간 직후인데!"
"니가 내 역경이에요."
전판의 고통을 고스란히 되돌려 줄 때다.
-칼에서, 칼로.
철저하게 페카를 혼내줄 생각으로 모스트 챔피언 중 하나인 텔론을 꺼내 든 최재훈.
그는 전판 페카가 보인 모습을 떠올리며, 그 고통을 되돌려 주는 과정이.
이 게임이 더는 없이 간단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판 페카가 보인 모습.
좋게 말하면 즐겜의 화신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배변의 화신이었다.
끊임없이 똥을 싸재낀다.
<선취점!>
저 봐라.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페카가 있는 탑에서 들려오는-
<아군이 처치되었습니다!>
"잉?"
아군이 선취점을 취한 게 아니라 빼앗겼다는 소식.
-아니 적 탑 너무 잘하는데?
적인 페카에 대한 아군의 경외.
"뭐? 쟤가 너무 잘한다고요? 너무 잘 싸는 게 아니라?"
그때, 최재훈의 눈에 들어오는 단어.
[조카쉑 적팀 가자마자 AKEP 모드 되는 거 보소 ㅋㅋ]
[진짜 선생님이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페카!!! 그만좀 역겨워!!! 진짜 존나 역겨우니까!!!]
[숨컷쉑 표정 보소 ㅋㅋ]
AKEP
이 세계에 오기 전.
최재훈이 '본캐로' 솔로 랭크를 게임을 하면 간혹 만나던 탑 유저였다.
그러니까, 랭크 50위 안에 드는 최상위급 실력자인 것이다.
그 AKEP의 아이디를 뒤집으면 PEKA가 된다.
그리고 채팅창에서 AKEP이 언급된다.
우연의 일치일 리 만무했다.
즉, PEKA가 최재훈이 아는 그 AKEP이 맞는 것이다.
그, 랭크 50위 안에 드는 최상위급 실력자가 맞는 것이다.
그런 최상위급 실력자가, 전판에 그렇게 똥을 뿌다다닷 싸재낀 것이다.
그래놓곤 적팀이 되자-
-아, 안되겠어 이거;; 적팀탐 너무 잘해.
상대로부터 그런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아니, 진짜 뭐 이런 개-"
"앜핰핰핰!!!"
무심결 입 밖으로 뛰쳐나온 최재훈의 본심.
그 뒷부분을 페카 특유의 웃음소리가 삼켜 버렸다.
[아니 근데 조카쉑 ㅋㅋ 적팀가서 빡겜하는거면 애초에 용서해 줄 생각 없었던 건가]
[ㄹㅇ ㅋㅋ 저새끼 빡겜하는 걸 어케 이기냐고]
[어쩌다 저 싸이코패스새기를 건드려 버려서 ㅠㅠ]
[조카가 용서 안 해도 우리가 용서할게 ㅇㅇ; 힘내라]
[힘내봤자 조카쉑 AKEP모드면 못이길 텐데]
[ㄹㅇ; 숨컷쉑 아무리 잘해도 그건 무리지]
시청자 안에서 최재훈의 패배는 이미 확정된 사항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재훈에 대한 반감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최재훈은 그거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페카의 본 실력을 깨달았어도, 그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짜, 뒤졌다 조카쉑."
그는 페카를 뒤지게 패줄 생각이었다.
"오오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