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75화 (72/361)

075화. 여파 1

방송이 종료된 직후.

스튜디오엔 아주 매우 많이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분위기는 우리(방민아 크루)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주저 없이 스튜디오를 나섰다.

스튜디오를 나서자 곧바로 반겨주는 밤공기의 서늘함이 개운하게 느껴진다.

"끄으으응악~!~~~~~"

옆에서 방민아 씨가 기지개를 피며 소리를 냈는데.

신음보다는 기쁨의 괴성에 가까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도 안 쓴다.

거지 같은 상황 해결하고, 그 상황 만든 거지같은 놈들한테 참교육 시전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라톡!

[굿]

재은이에게서 귀여운 캐릭터가 따봉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가 왔다.

오빠한테만 한없이 엄격한 여동상조차도 따봉 판정을 내릴 만큼, 이번 사건에서 오빠의 활약은 굿이었던 것이다.

[굿ㅋ]

나 또한 우리 옐로우TV 마스코트 캐릭터인 파랑이가 따봉을 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 지현 씨한테서 문자가 왔다.

"띠용?"

정신을 차려 보니, 지현 씨는 합류해서 뒤풀이 자리에 합석한 상태였다.

"니가 여기 왜 끼어?"

"에이, 그쪽 축하해주러 온 건데 너무하네."

"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 양쪽에 앉은 지현 씨와 민아 씨는 경쟁하듯 술잔을 비우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얼굴이 시뻘개져서 맛탱이가 가 버렸다.

그리곤 이 꼴이다.

"재훈 씨…."

술버릇인지.

아까부터 날 부르곤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방민아가, 또 다시 나를 불렀다.

"뭐요."

"나 재훈 씨 왤케 믿음직스럽지?"

"내가 좀 구빱 같은 남자긴 해."

"남자들이 믿음직한 여자들 보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건가? 막 듬직하고, 누나, 아니, 오빠 같고?"

"제가 '남자'가 아닌 남자라 모르겠는데요."

"재훈 씨."

"뭐요."

"저 재훈 씨 오빠라고 불러더 돼여…."

"또 물어보네. 아니, 나 그쪽보다 나이 적다니까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여…."

"나이가 상관 없으면 호칭도 상관 없는거 아닌가?"

"오빠."

"이게 뭔."

"재훈 옵빠."

"뭐 임마."

"헤헤헹."

헤실헤실 웃는다.

아니 근데, 이 친구 지금 이 행동.

이 세계 기준으로 괜찮은 건가?

이렇게 애교 부리는 모습이 내가 느끼기에 뭔가, 여자 같은데.

그러니까, '여자'가 아닌 여자 말이다.

그렇다면.

이걸 그대로 치환해 보면, 남자가 여자처럼 애교를 부리고 있는 상황이잖아.

괜찮은 건가?

"우욱."

안 괜찮은가보다.

옆에서 권지현이 방민아 들으란 듯 그런, 헛구역질 소리를 내는 거 보니.

그나저나, 아까부터 내 어깨에 머리 박고 미동이 없길래 또 뻗어 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재훈 씨."

"뭐요."

"그럼 저도 동생처럼 불러 주세여."

"그쪽이 왜 내 동상이야. 세 살이나 더 많으면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여…."

"아니 왜 이러지, 얘네. 그보다 동생처럼 부른다는 건 또 뭐야."

"…야."

"뭐."

"아니, 야라고 불러주세여."

"오냐. 야."

"좀 더, 목소리 낮게 깔고."

"야."

"헤헤헹."

다시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새근새근거리더니-

"재훈 씨…."

곧이어 그 상태로 말한다.

"뭐, 임마."

"저 졸려여."

"어쩌라고 임마."

"저 오늘도 업어다 주세여!"

"미친 것인가."

"안대여?"

"안대여."

"재훈 씨!"

또 방민아.

아깐 머리를 내밀더니 이번엔 팔을 벌리며 말한다.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저 안아주세여!"

"미친 것인가."

"안 대여!?"

"안 대여."

그리고 또-

"재훈 씨?"

"아, 뭐 임마!"

"예…?"

아, 이번엔 강연승 씨였네.

"아, 죄송합니다. 또 애네가 부른 줄 알고."

"아, 예."

"강 해설가 님."

"네?"

"'여자' 관점에서 얘네 이러는 거 어때요?"

"어…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한테 애교 부리는 거요. 역한가요?"

"어… 네…."

그렇다네.

"왜 이럴까요 얘네."

"어… 재훈 씨가 워낙에 친오빠 같이 친근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친오빠.

그러니까, 친 남매란 어떤 관계인가.

기본적으로 껍데기가 이성이라도 서로가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관계다.

그러한 점에서 저 친오빠 같이 친근해서 그렇다는 표현은 딱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슬슬 해산하는 게 어떨까요. 시간도 늦었고, 두 분 너무 취하셨으니."

"그거 엡솔루틀리 옳은 말씀이십니다."

두 술주정꾼 때문에 슬슬 귀찮은 걸 넘어서 피곤해지려던 찰나였다.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이성을 유지한 두 지성인이 논의 끝에 뒤풀이 술자리는 막을 내리자는 결론을 내렸다.

쿵!

"잉?"

내게 기댔던 권지현의 몸이 미끄러지듯 테이블 위로 착지했다.

그리곤 새근거리기 시작하는데-

"아니-"

이번에야 말로 정말 뻗어버린 것 같았다.

커플룸이 따듯하고, 아늑하고, 레오레 구경은 지루하고.

PC방에서 잠든 건 그런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이 인간의 술버릇이 시체가 되는 거였다.

"재훈 씨."

"아, 뭐 임마."

"저 안아주세여."

"아니, 얘네 둘 어떡하지? 슬슬 주먹이 우는데?"

(주먹 : 징징징)

"아니, 근손실 온다고 평소에 술도 안 드시는 분이 왜 이렇게 취하셨대."

"근손실?"

그 말을 여자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방민아 이 사람. 헬스충이었다고라?

"음…."

어깨가 넓고 팔다리가 튼튼해 보이긴 한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여성의 체형 안에서다.

여자 치곤 어깨가 넓은 거고, 여자 치곤 팔다리가 튼튼해 보이는 거다.

남녀역전 세계인데도 남자처럼 근육이 비대해지진 않는 건가.

그런데도 근육이 비대해진 남자처럼 센 거고?

'허미….'

이게 그 실압근인가 뭔가 그거구마이.

"아니 잠깐, 이 사람 차 갖고 오지 않았어요?"

"저여?"

너 맞는데, 너한테 말한 거 아님.

정신 멀쩡한 사람이랑 대화할 거다.

"그렇죠."

강연승 씨가 쓰게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위장에 술 들이부은 건가?"

"그러게요, 왜 그러셨대."

"하하! 나약한 자식. 겨우 그거 마셨다고 뻗어 버리다니!"

"아, 권지현 씨랑 경쟁한 거구나."

"답 없는 새기들이네요, 진짜."

"예, 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대리 불러야 하나?"

"대리!? 대리!?! 강연승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방민아씨 닥쳐요."

"넵."

"제가 이럴 줄 알고 일단, 술을 안 마시긴 했어요."

"오…!"

"근데 면허가 없음."

"…."

"사실 술도 그냥 안 땡겨서 안 마신 거임."

"그런데 취하신 것처럼… 텐션이 높으시네요."

내가 따봉을 시전하자 맞 따봉을 해 주는 강연승 씨.

우리는 둘로 갈라지기로 했다.

강연승 씨는 라디오가 된 방민아를 맡고.

나는 시체가 된 권지현을 맡는다.

아무리 깨워도 미동도 않길래 결국 또 업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방민아를 부축한 강연승 씨가 놀라움과 걱정이 반씩 담긴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저는 괜찮으니까, 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남자한테 업힌 아가씨한테 한 마디 해주시죠."

"큭큭, 권지현 씨.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정신 차려요."

어응? 하고 정신을 차린 방민아가 날 보더니 말한다.

"아니, 머야. 나도 업힐래!"

"민아 씨… 저는 안 업어 줄 거예요."

"상관 없거등? 나도 우리 오빠한테 업힐 거거등?"

"뭔 소리여. 나 너 안 업어 줄 거거등?"

"웨!!! 권지현은 업어줬잖아!!!"

"얘 업었으니까 널 못 업죠."

"걔 말고 날 업어!!!"

"얘 우리 윗집 살아서 지금 이렇게 나뉘는 게 좋을 텐데요."

"그럼 난 오빠 집에 살래!"

"아니, 너네 '여자' 아니예요? 남자한테 업히는 거 안 부끄러워?"

"오빠 집에 살 거야!!!"

"수치심도 없고 답도 없네. 강 형사, 연행해."

"넵."

"싫어!!!"

"하하하! 패배자 자식!"

"?"

"??"

"???"

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권지현.

얘가 어느새 일어나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권지현에게 쏠렸다.

"…."

권지현이 눈치를 보더니-

"흠냐흠냐…."

다시 잠이 든다.

가, 아니라.

잠든 척 하는 것 같은데 이 새기.

"지현 씨."

"…."

"야."

"…."

"얌마."

"흠냐흠냐…."

"환장하겠네."

"내려오라잖아 이 쪽팔린 것도 모르는 년아!!! 남자한테 업히고 쪽팔리지도 않아!!?!!?!"

방민아가 부축 받은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거리 한복판에서 말이다.

"아… 소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 취하면 뇌 기능이 저하된다고 하는데.

그 중, 수치심을 관장하는 부분의 기능이 가장 크게 저하된다는 것을.

"내려와!!!!!"

"…."

강연승 씨와 나는 다급히 인사를 나눈 뒤 도망치듯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내려오라고!!!!!! 우리 오빠한테서!!!"

"흠냐흠냐…."

이 한심한 인간들을 떼어놓기 위해.

* * *

지난 며칠간의 생활로 내 생체리듬은 완전히 아침에 맞춰졌다.

성능은 개한테나 줘 버리고 디자인에 몰빵해서 예쁜 쓰레기라 명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커텐. 그걸 간단히 뚫고 방 안을 밝히는 아침햇살은 더 이상 내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나 최재훈은 태양을 정복한 남자가 된 것이다.

고작 달 따위 정복한 게 전부인 닐 암스트롱은 내 앞에서 닐 암낫스트롱에 불과하다.

"으어어~"

나가서 조깅 조지고, 국밥 조진 뒤 돌아와서 뜨신 물로 목욕을 조진다.

그렇게 신체 정비를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크, 새끼 멋진 거 보소."

어제 민아 씨랑 계획 조율하는 사이, 옆에서 지현 씨가 연결해 준 듀얼 컴퓨터, 송출형 본체를 괜스레 두드려 본다.

툭툭

구빱 조져서 안 그래도 든든한 속이 더욱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체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오늘 방송 뒤졌다.'

송출형 컴퓨터를 장만했으니, 어제처럼 방송 도중 과부하가 걸려 컴퓨터가 다운되어 방송이 끊기는 일도, 조작 의혹도 없다.

순조로울 수밖에 없을 오늘의 방송을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라톡!

[어제 죄송했습니다...]

권지현.

아니, 지현 씨한테서 톡이 왔다.

사람이 진심일 때만 나온다는 전설의 '...'

이걸 보고 내가 어찌 지현 씨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어제 택시 안에서 잠들었는지, 아니면 잠든 연기를 한 건지.

뭐가 됐든 간에 기어코 나한테 업혀서 자기 집 침대 위까지 업혀온 정신 나간 버전의 권지현의 버전이 문득 떠올라 혼란스럽다.

이 정중하고 예의바른 권지현.

아니면 그 여러 의미로 정신이 나간 흠냐흠냐 권지현.

어느 쪽이 진짜 권지현인가.

라톡!

[어제 미안했어요...]

이번엔 민아 씨한테서 톡이 왔다.

똑같이 취하고 똑같이 깽판 부렸던 주정뱅이들 똑같이 일어나서 똑같이 톡 보내는 거 보소.

환장의 듀오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사과 문구마저 똑같고.'

어쨌거나.

이 '...'를 보아 하니, 이 친구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

[오빵 ㅎㅎ]

아니네.

'오빵 ㅎㅎ'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이 인간 때문에 고생했을 강연승 해설가 님, 나의 동지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라톡!

라톡!

라톡!

지현 씨와 민아 씨 둘이 동시에 톡을 보내오는데, 동시에 상대하는 게 너무 번거로워서 그냥 단체 채팅창을 개설한 뒤 두 사람을 초대했다.

권지현 님을 초대했습니다.

권지현 : 오

방민아 님을 초대했습니다.

방민아 : 오

권지현 : ?

방민아 : ???

권지현 : 니 뭐임 / 방민아 : 니 뭐임

권지현 : 재훈 씨 얘 뭐예요 / 방민아 : 재훈 씨 얘 뭐예요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말을 하는 둘.

최재훈 : 둘이 머 이복자매임? 왤케 잘맞음

권지현 : ;; 제가 얘랑요? 너무하시네

방민아 : ㄹㅇ 이복자매라기엔 우리 지현이가 저보다 게임도 잘하고 키도 크고 돈도 잘 벌고 얼마나 우월한데요

권지현 : 얼굴은 내가 더 예쁨

방민아 : 뭔 ㅋㅋ

어쩌다가 싸움판을 열어준 게 돼 버렸다.

어쨌거나 그렇게 사이좋게 아웅다웅하기 시작한 둘을 뒤로하고.

나는 방송이나 켜기로 했다.

<방송 시작>

곧바로 들어오는 시청자가 하나, 둘, 셋, 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열하나열둘-

[끼에에에엑!!!!!!!!!!!!!!!!!!!!!!!!!!!!!!!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왜 이제왔어 ^^ㅣ발롬아]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어제 외 방송않킴?]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아메리카TV의 자랑 최재훈!]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옐로우TV의 자랑 숨컷!]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

"모지, 시발."

샤따 올리자마자 가게가 개판이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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