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69화 (66/361)

069화. 주작을 잡아라 11

"이게 마지막이잖아요. 그쪽 방송하는 거."

""""오~~~~~~~""""

[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쳐 ㅋㅋㅋㅋㅋㅋ]

[ㅗㅜㅑ 오빠 나죽어]

[한예지 개처발렷누? ㅋㅋ]

[ㅗㅜㅑ 남자랑 목숨걸고 하는 최후의 께임]

[쌌다(김으로 밥을 ㅎ)]

[젖었다(감동받아서 눈가가ㅎ)]

채팅창의 반응까지 포함해서, 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폭발적인 반응에 한예지가 언짢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할래요?"

방민아가 의사를 묻는 게 한예지에겐 비웃으며 재촉하는 걸로 느껴졌다.

"…방민아 씨 마지막 방송 될 거니까 방민아 씨가 골라요."

그렇게 말한 한예지가 채팅창을 확인했다.

침착하고 재치 있게 잘 받아쳤다.

제 딴에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반응을 기대했다.

[아 ㅋㅋ 드립 재활용 뭔디]

[속보) 한예지 하랄땐 안한 재활용 이제와서 시작해]

[속보) 한예지 평소 팬티 그냥 한 번 뒤집어서 한 번 입는다 밝혀]

[속보) 한예지 팬티日"죽여... 줘..."

[속보) 한예지 '그거'도 재활용한다고 밝혀]

[그쪽 마지막 방송이긴 ㅋㅋ 이거 니방송이야 ㅄ아 ㅋㅋ]

[아 ㅋㅋ .NTR받아들인거냐고]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개같은 새끼들이… 방민아 신나서 깔 땐 언제고.'

그 말대로.

신나서 방민아를 공격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신나서 한예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애초에 방민아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있어서 그녀를 공격했던 게 아니다.

그저, 유명한 방송인이 비참해지는 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 상관없는 것이다.

방민아든, 한예지든.

둘 다 유명BJ로서, 열등감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한예지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자신의 방송을 보러 온 이 무수히 많은 이들은 자신의 편이 아닐 뿐더러, 자신이 파멸하면 진심으로 기꺼워할 이들이라는 것을.

방민아가 느꼈던 순수한 악의, 광기.

한예지는 뒤늦게 그걸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오늘 이기는 건 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랜다.

더 이상 채팅창을 확인하지 않길 다짐한다.

한예지는 침착을 되찾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했다.

"그러게요. 이거 제 방송이었나요? 뭐, 주인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죠?"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기선제압을 해 오는 방민아 때문에 잘 되진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제 마음대로 하시라니까~ 이번에도 젠틀맨 퍼스트로. 재훈 씨에게 결정을 맡기겠습니다."

"오예~ 5판 3선승제로 고~"

"고~"

[텐션 뭔디 ㄷㄷ]

[한예지 뺴고 다 신났누 ㅠㅠ]

[우리 예지는 고~가 아니라 고인~이 됐누 왜 말이 없어]

[故(go) 한예지 님의 명복을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액션빔]

[한예지 벌써 올삭 대비 연습에 들어갔누?]

[아 ㅋㅋ 벌써 방송인모드 OFF하고 시청자모드ON한거냐고]

[예지야 이제 너도 방송인 아니고 시청자니까 방송에서 발언하려면 천원씩 후원해라 뒤지기싫으면]

"그러면 게임 진행 방식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세 판 다 블라인드 픽으로?"

블라인드 픽은 블라인드란 말 그대로, 상대방의 캐릭터를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캐릭터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최재훈이 말을 꺼냈다.

"아 솔직히 저는 뭐가 됐든 상관없긴 한데, 그 경우 생기는 문제가…."

"문제가 있나요."

"네 그, 뭐냐. 제가 원래 이 일이 있기 전에는 한예지 씨를 몰랐거든요? 워낙 뭐라 해야 되나… 유명세가 애매해서."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놓고 맥이누 ㅋㅋ]

[한예지정도면 유명한 편에 속하지 않냐?]

[남자가 말하면 그냥 공감이나 하라고 ㅋㅋ]

[ㄹㅇㅋㅋ나 치세요]

[ㄹㅇ ㅋㅋ]

"그래서 이 일 때문에 처음으로 몇몇 영상 챙겨봤는데, 승패 결과에 대해서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쿨하지? 못하시더라고요. 패배하는 판마다 보면 정글이 어떻다~ 상성이 어떻다 하시는데, 좀 많이 구질구질하시더라고요."

"아니, 시비 거세요 지금?"

지금 분위기에서 섣불리 대응했다간 놀림거리만 될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참다 못 한 한예지가 입을 열었다.

"시비 거는 거냐고요?"

최재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더니 씨익 웃는다.

"정확히 맞추셨네."

"…뭐요?"

"맞아요, 시비 거는 거. 왜, 기분 나빠요?"

"아니, 시발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 그러면 미안해요."

"뭐?"

"기분 나빠하실 줄 몰랐어요."

"제가 기분 나빠할 줄 몰랐다고요? 대놓고 시비 걸어 놓고?"

한예지는 이때다 싶어 "참나!" 코웃음을 치며 따지고 들었다.

"지금 장난쳐요?"

최재훈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는 피식하고 웃는다.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발 놈, 카메라 꺼져 있었으면 진짜.'

한예지가 손이 올라가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최재훈이 말한다.

"아니, 그렇잖아요~"

"뭐가 그래요."

"저격 영상으로 본 거랑은 달라서."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데요."

"아니~ 저격 영상에서 시비 걸어서 남의 인생 망치려고 할 땐 엄청 신나 보이길래, 이렇게 시비 거는 거 좋아하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네. 시비 거는 것만 좋아하지, 시비 걸리는 건 아주 그냥 질~색 팔~색을, 어휴. 미안해요, 제가 오해했나 보네요. 상상도 못했어요."

"…."

'계속 지껄여 봐.' 그런 말이 들리는 듯 도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최재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신랄한 비꼬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예지 개털리네 ㅋㅋ]

[ㄹㅇ 많이 추하긴 하다 예지야]

[내로남불의 화신 ㄷㄷ]

[방민아 표정보소 ㄷㄷ 사이다 원샷하다 사레들렸나]

누군가의 채팅대로, 지금 방민아는 통쾌해 죽으려 하고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한예지가 아무런 말도 못하자 최재훈은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어쨌거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이게 블라인드 픽으로 했다가 제가 만약, 한예지 씨가 고른 챔피언의 상성 상 우위에 있는 챔피언을 골라서 이겨 버리면, 한예지 씨가 '비겁하게 나에 대해 미리 연구해 뒀느니~' '실력이 아니라 상성 때문에 진 거니~' 뭐니 구질구질하게 인정하지 않을까봐, 걱정이 된다 이거죠."

"아니 듣자듣자 하니까."

"듣자듣자 한 김에 계속 들으세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 봤죠.

한예지 이 사람이 승패 결과를 깔끔하게 승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졌을 때 깔끔하게 실력차를 인정할까!"

딱!

최재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변명거릴 안 주면 되겠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명거릴 안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떠올린 거죠."

딱!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며 말한다.

"미러전."

미러라는 말 그대로, 양측이 동일한 캐릭터로 승부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었다.

"캐릭터 상성이니 뭐니, 실력 외적인 요소를 거론하면서 변명할 수 없게. 그냥 처음부터 순수 실력 싸움인 미러전으로 가면 아무리 구질구질한 예지 씨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는 게 제 생각인데, 어떠세요."

무슨 말을 지껄이나 벼르고 있던 한예지.

"푸흡!"

그녀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러전이요?"

한예지가 아는 한 이 '남자', 최재훈이 자신과의 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오랜 방송 생활로 인해 낱낱이 공개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전략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즉.

사전에 조사해서 이미 파악하고 있을 자신의 주력 플레이 챔피언과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캐릭터 선택 과정에서 이익을 거둬 캐릭터 상성상 우위를,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뿐이었다.

챌린저 700점인 자신과, 마스터티어인 '남자'.

둘의 전력차이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남자가 전략 쪽에서 승리를 거둬야 그나마 승부가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자는 미러전을 제안해 왔다.

그럼으로써 전략 싸움을 포기하고 순수하게 전력으로만 승부할 것을 제안했다.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승부할 것을 제안했다.

본인이 가진 이점과, 한예지가 우려하던 변수를 동시에 없애는.

한예지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좋으라고 하는 행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진짜 개 빡대가리 새낀가?'

그 어리석음에 어찌 웃음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심이에요? 아, 저는 물론 좋죠. 아니, 좋대. 오케이. 그쪽 제안, 받아들여줄게요."

한예지는 반색하며 냅다 받아들였음에도, 최재훈이 제안했음을 거듭 강조하며 도리어 생색을 냈다.

그런 한예지를 보며 최재훈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곤 이야길 진행시킨다.

"그러면 5판3선승제, 미러전으로 진행하는 거. 맞죠?"

끄덕.

"그러면, 어떤 챔피언으로 싸울지는 차례대로 고르는 걸로 하고. 누가 먼저 고르는지는 사다리타기로 정하려는데, 괜찮죠?"

끄덕.

그렇게 사다리 타기 게임이 진행됐고.

그렇게 한예지에게 처음 챔피언을 고를 권리가 주어졌다.

한예지는 속으로 "그렇지!"라 환호하면서, 겉으로는 덤덤하게 말했다.

"쟈드 고를게요."

[ㅋㅋㅋ 남자상대로 바로 모스트1 뽑누]

[추하다 예지야...]

[예하다 추지야...]

[추지?]

시청자들의 말대로 쟈드는 한예지가 초장부터 확실하게 기선 제압을 해둘 생각으로 고른 모스트1 챔피언, 그녀가 가장 잘 다루는 챔피언이었다.

"아니, 이 게임에 뭐가 걸려 있는데. 당연히 전력을 다해야지. 그리고 나 이거 또 모스트1 안 고르면 저 사람이 그런 말 할지도 모르잖아. 내가 일부러 변명거리 만들려고 모스트1 안 골랐다고. 안 그래요?"

일련의 과정으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공고히 하여 기세를 되찾은 한예지가 최재훈을 향해 빈정댔다.

그는 대답대신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었다.

지체 없이 게임은 진행되고, 로딩창이 떠오른다.

위아래로 배치된 '어둠 암살자', 쟈드의 일러스트가 서로 대립한다.

'맞다. 그러고 보니, 얘도 쟈드하는 애였던 것 같던데.'

최재훈이 대리를 받았으며 대회에선 남이 대신 플레이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모순되는 일이지만.

한예지는 최재훈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그의 계정인 '치킨퀸치퀸'의 최근 전적을 확인했었다.

그녀는 전적에 따르면 그의 주력 챔피언 중 하나가 쟈드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가 주력으로 다루는 챔피언 폭이 자신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 있게 꺼내든 챔피언조차 내가 더 잘 다룬다는 걸 깨달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 쟈드도 그렇다.

지 딴에는 나름대로 잘 다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 벽을 느낄 것이다.

방심 없이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여 조금의 득점도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다.

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넘치는 놈이 얼마나 볼품없는 플레이를 보여 망신을 당할지.

망신을 당해 어떤 볼썽사나운 반응을 보일지.

그녀의 입꼬리가 음습하게 일그러졌다.

[와 근데 진짜 ㅈ 됐네 ㅋㅋ]

[하필 쟈드 미러전 ㅋㅋ]

[재훈이 모냥 개빠지겠누]

시청자들 또한 한예지와 같았다.

이미 최재훈의 패배를 확정하고 기본 전제로 삼고 있었다.

그 누구도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임.

미니언이 라인에 도착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머임???]

[의외로 팽팽하네?]

게임은 모든 이들의 예상과 달리 팽팽하게 진행됐다.

흥미진진하기까지 해서, 많은 이들이 당황을 표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당황의 정도는 더욱 커졌다.

[잠만 지금 이거 방송 화면 한예지가 아니라 남자지?]

[뭐임? 그럼 남자가 이기고 있는 거임?]

[한예지 뭐하누?]

채팅대로, 시간에 흐름에 따라 한예지가 열세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연코 가장 당황스러운 이는 한예지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6레벨, 궁극기 타이밍.

거의 똑같이 6레벨에 도달한 둘은, 거의 똑같이 서로에게 궁극기를 사용했다.

똑같이 모든 걸 쏟아 붓는다.

둘의 캐릭터는 똑같았기에, 플레이 또한 똑같은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예외로, 스킬의 적중률만은 똑같지 않았다.

파삭!

둔탁한 파열음이 울리고, 쟈드 중 하나가 쓰러진다.

패배자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느 순간부터 바뀐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패배자는 한예지였다.

"…."

회색빛으로 물든 화면을, 한예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생각했었다.

'자신 있게 꺼내든 챔피언조차 내가 더 잘 다룬다는 걸 깨달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놀랍게도, 최재훈 또한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한예지에 대해 조사하다 그녀의 주력 챔피언 폭이 자신과 유사하다는 걸 깨닫고는 말이다.

이번 한예지와 방민아의 올삭빵 대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말했었다.

'한예지가 자신의 상위호환과 싸운다고'

그 말 대로였다.

한예지는 이번 대결에서 자신의 상위호환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상위호환은 방민아가 아닌 최재훈이었다.

한예지가 가진 플레이 스타일을 정점까지 끌어올리면 도달하는 단계.

그게 바로 지금 최재훈이 있는 단계였다.

최재훈이 넋이 나간 한예지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해보니까, 그냥 계속 그쪽이 원하는 챔피언으로 해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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