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주작을 잡아라 10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반가워?"
거만하게 앉아 있던 여성BJ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네이비', 장연화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모습은 학교 선배 혹은 군대 선임을 대하듯 깍뜻했다.
둘은 프로도 뭣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헤이러', 김이지는 어떻겠는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프로, 심지어 TC1의 소속이었던 그녀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방금 전까지 BJ들 사이에서 전 프로로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김이지가 완벽하게 절도 잡힌, 혹은 군기 잡힌 태도로 장연화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 이지야. 이야. 여기서 만나네 우리가? 선수 때도 별로 못 찾아간 것 같은데."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기엔 어쩐 일로…."
"나 민아 씨랑 연승이 부탁으로 증인인가? 그거 때문에. 마침 이 근처에서 저녁 약속 있는데, 그거 기다릴 때까지 구경이나 하다 가려는 느낌으로."
[와 ㅅㅂ ㅋㅋ]
[네언니 증인 ㅋㅋㅋ]
[이건 ㄹㅇ 지면 뺴도박도 못하네]
[ㄹㅇ ㅋㅋ 네언니 보는앞에서 헛수작부리면 레오레판에서 매장당하지]
[엡창 찍자마자 아빠 단두대 위에 올리는 격 ㄷㄷ]
[비유 정신나간년아니야]
"그러는 너도, 증인 서려고 온 거야?"
"에… 예지 언니가 부탁해서."
"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어~."
장연화의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좋았다.
기본적으로 웃는 상에 느리면서 나긋나긋한 말투.
대하는 사람을 한없이 편하게 만든다.
그런데 김이지는 물론이며 그녀를 비롯해서 한예지 일동의 상태는 편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장.
주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TC1의 전설.
AOS계의 터줏대감, LKL의 큰언니.
FACE도 한 수 접어준다는 LKL의 진정한 언터쳐블.
그녀에게 밉보이면 한국 레오레계에서 어떻게 되는지 아주 잘 아는 건 차치하고도-
[헤이러 왜 갑자기 찐따됐누? ㅋㅋ]
[담당일찐 등판했자너]
[네언니 왤케 무서워함? 인상 개좋은데]
[나 괴롭히던 일찐도 인상은 좋았었는데]
[ㅠㅠ]
[얼굴로 성격 정해지면 이 사납게 못생긴 새기들은 다 일찐이지 ㄹㅇ;]
[사납게 못생겼다는건 첨듣네 ㅅㅂ 사납게 ㅈ같네]
[네언니 화나면 ㅈㄴ 사납게 무서움 ㅇㅇ;]
[네언니 방송에서 화내는거 본적있는데 보니까 뒤에 걸려있던 사진 안에 있는 우리가족 다 귀막고 눈 감고 있더라 ㅇㅇ; 무서워서]
[그게더무서워 미친년아]
그녀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저 나긋한 어조로도 얼마나 무섭게 말할 수 있는지 직접 겪어보진 않았으나 간접적인 경험으로, 그리고 들리는 일화로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TC1에서 구단주와 FACE를 제외하곤 전부 네언니의 갈굼에 최소 한 번은 즙을 짜 봤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했다. 심지어 감독과 코치마저도 말이다. 물론 특유의 과장이 어느 정도 들어갔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괜히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다.
"야이~ 왜 이렇게 어색해 다들. 나 그냥 갈까?"
"아, 아닙니다!"
"편하게 계세요! 저희는 이게 편합니다!"
"참나~"
장연화가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난 여기에서 조용히 구경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해요."
[사단장 : 어 ㅋㅋ 나 여기 가만히 있을테니~ 편하게들 일 봐~]
덩치 좀 되는 두 BJ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안절부절 못 했다.
김이지는 아주 달려가서 음료를 대령하는 둥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장연화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방민아 일행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와근데 방민아 인맥 레전드네 ㅋㅋ]
[ㄹㅇ ㅋㅋ 강연승에 네언니에]
[우리 예지는 인맥까지도 방민아 하위호환이누 ㅠㅠ]
자신의 지인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방송을 진행하는, 자신의 스튜디오가.
방민아의 플레이 그라운드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어제까지의 초라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위풍당당한, 키 170대 중반에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방민아가 똑같이 서 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자신을 내려 봐 온다.
그녀가 피식 웃자 한예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깔아 버렸다.
'시발….'
그렇게 한에지가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기세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한 상황에서-
[야근데 저건 머임?]
누군가가 '저거'를 언급했다.
그 '저거'는 후드와 청바지 차림에, 후드캡과 개구리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미안해요,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좀 끌었어요. 이거 진짜 경기 수준 실환가요? 진짜 세계 최강자들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진짜, 이 뒷텔은 전설입니다. 이번이 몇 번째 보는 건지 모르겠는데 또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네요."
장연화의 옆에서 그녀와 같이 스마트폰을 보며 호들갑스럽게 팬심을 표출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인이었다.
[저거 개구리 가면쓰고있는거 누구임?]
[뭐하는 새기임?]
한예지도 '저거'가 '뭐하는 새기'인가 싶었으나, 이내 알 수 있었다.
방민아의 대회 방송에서 봤었던 체형과 스타일과 분위기.
거기에 귀에 익은 목소리.
'저거'가 바로 문제의 대회 우승자이자 오늘 자신의 상대인 '치킨퀸치퀸' 최재훈이라고.
그래.
그녀는 그가 곧바로 최재훈인 걸 알아봤지만 방민아의 기선을 제압하려다 되려 당해버렸던 것 때문일까.
"저기요, 거기 가면 쓴 남자 분."
"네?"
"뭐하는 분이세요."
"저요? 저 오늘 그쪽 상대할 사람이요."
"그쪽이 대회 우승자라고요?"
"네네."
"치킨퀸치퀸?"
"네."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만만한 최재훈에게 공연히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저렇게 얼굴을 덕지덕지 가린 거 보면 모종의 이유로 얼굴 공개를 꺼려하는 것 같은데-
'장난 까나.'
생각해 보니, 자신은 모든 걸 걸고 이 대결에 임하는데 고작 얼굴 공개하기 싫다고 저런 병신 같은 꼬라지로 나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자신이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는 건 지극히 합당했다.
라는 게, 한예지의 생각이었지만 과연 어떨까.
그녀가 모든 걸 걸게 된 경위는 전적으로 자업자득이었다.
근거 없는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으려다 돌아온 업보.
더군다나 한예지가 모든 걸 걸었듯, 방민아 또한 모든 걸 걸었다.
방민아의 모든 것은 한예지의 모든 것보다 가치가 높았다.
이미 동등하다 못해 방민아 측이 양보해 주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최재훈까지 뭔가를 걸 필욘 없었다.
그러니까.
지극히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녀가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건 말이다.
적반하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걸 스스로는 느끼지 못한 그녀가 진심으로 억울해 하며-
"대회 봤다 하지 않으셨었나? 제 목소리랑 체형 보면 알지 않나요?"
"기억이 안 나서요. 그냥 깔끔하게 얼굴 보여주시고, 대회 영상 공개하시죠?"
최재훈의 얼굴을 기어코 공개시키고 말겠다 다짐했다.
그런 그녀의 다짐은-
"아, 이지야."
"네?"
"내가 확인했어. 맞아. 오기 전, 민아 씨가 나한테 대회 영상 보여주셨고, 이분 얼굴도 봤는데, 둘이 동일인물 맞아."
[아 ㅋㅋ 네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네언니가 그렇다면 네언니 해야지 ㅋㅋ]
[가면 안에서 샌스 나와도 그건 치킨퀸치퀸임 ㅇㅇ;]
[와씨발샌스개존나니가거기서왜나와!]
장연화의 개입으로 너무나도 간단히 무너져 버렸다.
이 업계에서 장연화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일이랑 상관없는 새끼가 뭐라던 내 알 바 아니니까, 쳐 벗으라고."
아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엔 없는 게 분명해서 한예지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 뭐. 네이비 선수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러면 이제 문제되는 거 없는 거죠? 대결 진행할 게요?"
한예지의 스튜디오가, 제 스튜디오인 양.
한예지의 방송이, 제 방송인 양.
방민아가 자연스럽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뭐누 ㅋㅋ 이 방송 방민아 거였냐? ㅋㅋ]
[잘못들어왔나 ㅋㅋ]
[tag:NTR]
"개같은년…."
한예지가 중얼거렸다.
마이크를 통해 시청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러나 앞에 있는 방민아에겐 들릴 정도로만 작게.
그걸 들은 방민아가 한예지를 또 다시 내려 봤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
"하."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눈에 힘을 줬다.
한예지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최재훈을 쳐다봤다.
그러자 여유로운 웃음이 나온다.
방민아에게 위축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게,
"한강행 열차 출발하나!?"
"재훈 씨 좀 진정 하세요…."
오늘 저 얼빠진 놈이 방민아의 대타였으니까.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경기가 시작됐다.
* * *
제목 : 오늘 방민아 방송 쳐돌았네
내용 : 강연승이랑 헤이러는 그렇다 쳐도 네이비까지 등장 ㅋㅋ개꿀잼몰카도 아니고 판 ㅈㄴ커지는거 뭔디
ㄴ :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
ㄴ 글쓴이 : 방민아가 증인으로 데려왔대
ㄴ : 인맥 쩌네
ㄴ : 방민아 방송이 아니라 한예지 방송임 ㅋㅋ
ㄴ 글쓴이 : 아 맞다 ㅋㅋ
제목 : 아 남자 좀 귀엽네 ㅇㅇ;
내용 : 내타입임
ㄴ : 가면썼는데 귀여운지 어케알았노 시발년ㄴ아
ㄴ : 듀라한이 취향이신가요?
ㄴ : 듀라한 소믈리에 ㄷㄷ
제목 : 와 한예지 방송 시청자 돌았네
내용 : 4만 ??? 뭐임 이거
무너 일 있음?
ㄴ : 오늘 방민아랑 올삭빵 뜨잖아
ㄴ 글쓴이 : 아니 나도 아는데 근데 왜 저렇게 많이 보냐 이거지 둘 평소 시청자 합쳐도 만명 될까말까잖아
그 말대로, 올삭빵이 진행되는 한예지의 방송이 유례없는 시청자수를 기록했다.
4만 명.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아메리카TV에서 그 방송을 중계하고 있는 방송, BJ만 수십이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10만 명이 넘어가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둘의 올삭빵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듯 둘의 평소 시청자는 합쳐봐야 1만이 안 되었으니, 그 10배에 해당하는 시청자였다.
그 중, 방민아와 한예지의 팬은 극소수에 해당됐다.
나머지 대부분은 그저, 둘 중 한 명이 몰락하고 파멸하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하러 온 이들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 지금 난리 났어요."
한예지는 BJ가 속삭여준 말에, 자신이 지금 아메리카TV 관심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 마냥 좋다고 미소 지었다.
자신이 파멸하는 순간을 보며 좋다고 'ㅋ'를 연타할 이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방송은 최재훈이 앉은 컴퓨터에서 진행되었다.
지금 방송 화면엔 개구리 가면을 쓴 최재훈의 모습과 함께, 그의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걍 가면 벗자 재훈아]
[가면 벗으면 3천원]
[가면을 벗던가 옷을 벗던가!!!]
[ㄹㅇ ㅋㅋ 왜 니혼자만 하나 더 입고 있냐고]
[탈모라서 머리털 벗고있는거아니면 둘중 하난 벗어라 ㅇㅇ; 매너겜해]
"하."
채팅창을 힐끔 확인하고 채팅창 수질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 하구나 깨달은 최재훈.
그가 한예지가 만들어 둔 게임에 입장했다.
그가 들어온 걸 확인한 한예지가 방송 진행을 위해 입을 열-
"대결은 5전 3선승제로 실시합니다. 괜찮죠?"
기전에, 방민아가 자연스럽게 선수를 쳤다.
'썅년이.'
그녀는 언짢은 속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
"5전 3선승제요? 단판이 아니고요? 쫄으셨나?"
그러자 그의 일행이 주변에서 "오~"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오~ ㅋㅋ]
[자신감 ㅋㅋ]
[이열~~ 남자상대로 자신감 표출 ㅋㅋ]
[나도 남자랑 싸워서 져본적 없긴함 ㅋㅋ]
[싸울 남자는 있냐? ㅋㅋ]
[아빠]
[앗뜨거미친년아]
[남자상대로 쏀척하네 ㅋㅋ]
[우리 재훈이 기죽이지 마요 ㅋㅋ]
[근데 이름이 재훈이 ㅋㅋ]
그러자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한예지 씨."
"네?"
"그냥 5전 3선승제로 가시죠."
"아~ 신사 분께서 그렇게 애원하신다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네?"
"이게 마지막이잖아요."
잠깐의 뜸을 들인 뒤 강조해서 말한다.
그쪽 방송하는 거.
"""오~~~"""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도발적인 목소리에 방민아 일행은 물론이며, 한예지 일행까지 환호성을 터뜨려 버린다.
물론, 한예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2패를 적립해 버린 그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