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67화 (64/361)

067화. 주작을 잡아라 9

방민아의 발언을 이용해 '모든 것을 건 대결'을 성립시킨다.

대결의 결과를 보증해 줄 증인을 대동해, 방송에서 대결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최재훈의 실력을 증명하고 한예지에게 커다란 빅엿을 선사함으로써 조작 의혹을 마무리 짓는다.

최재훈이 방민아에게 제안한 계획은 완벽했다.

최재훈이 정말로 한예지를 가볍게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는 전제가 뒷받침 된다면 말이다.

방민아는 흐름을 타고 기꺼이 최재훈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뒤늦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그녀가 한 일이라곤 최재훈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한 것이었음에도.

'재훈 씨가 못미더워서가 아니라 걸린 게 너무 커서 그래….'

방민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오레 계정과, 아메리카TV 계정과, 미튜브 채널 계정.

그 세 가지로 방민아가 일 년에 올리는 수익이 억대다.

그것들은 그녀의 직업이자, 커리어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다.

'계삭빵'이라는 가벼운 단어에 편승하며 얼마나 큰 걸 걸어 버렸는지 그녀는 재차 실감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붉게 물들었다.

그 신호에 따라 방민아의 붉은 스포츠카는 멈췄다.

탁.

탁.

탁.

핸들을 잡은 오른손.

방민아는 무의식적으로 그 오른손의 엄지를 튕겨 핸들을 두드렸다.

최재훈이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싶던 그때.

"민아 씨."

마침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

근심이 담겨 있었다.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방민아는 최재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웠다.

"그, 이게 갑자기 걱정이 되는 게…."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내가 이런데, 당신까지 이러면 안 되지.

당신이 제안한 일인데, 날 안심시켜주진 못할망정 적어도 당신까지 그러면 안 되지.

방민아의 머리가 단번에 복잡해졌다.

"너무 판돈을 크게 잡은 게 아닌가 싶어서…."

방민아는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민아 씨…."

방민아는 답하지 않았다.

되려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최재훈은 말을 잇는다.

"한예지 그 인간… 이거 진다고 한강 가진 않겠죠."

"…네?"

방민아는 그제야 당황해서 최재훈을 쳐다봤다.

그의 표정에선 목소리처럼 근심이 묻어나왔지만, 그 이상의 여유와 장난기가 느껴졌다.

"아니, 이게 갑자기 걱정이 되더라고요… 한예지 그 사람 지고 다 삭제하고 어느날 갑자기 한강 다이브했다는 기사 올라오는 거 아닌가 해서…."

"아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한 그녀가 이내 "참나." 실소를 터뜨렸다.

신호등의 색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아, 진짜. 재훈 씨 때문에 못살겠다, 진짜."

그녀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악셀을 밟았다.

* * *

이번 대결의 근본적인 목적은 승리 이전에 방민아와 최재훈에게 제기되어 있는 조작 의혹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재훈이 실제로 프로급의 실력자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대회에 출전한 '치킨퀸치퀸'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했다.

최재훈이 대회에 출전한 '치킨퀸치퀸'과 동일인물이라는 걸 입증하기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방법.

방민아만 갖고 있는 다시보기 영상의 결승 장면에 담긴 최재훈의 모습을 공개한 뒤, 진짜 최재훈의 모습을 캠으로 비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경우, 방송에서 얼굴과 목소리 노출을 꺼려하는 최재훈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재훈은 한예지를 직접 만나 합동 방송을 진행하는 것을 제의했다.

한예지는 조작 의혹을 제기한 측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니, 그녀에게만 자신의 얼굴을 공개해서 입증하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게 최재훈의 생각이었다.

객관적으로도 합당한 판단이었기에 방민아는 기꺼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그 합동방송을 어디서 진행하느냐.

방민아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방송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지만, 한예지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방송으로 진행할 것을 고집했다.

속셈이 훤히 드러나는 수작이었지만, 최재훈과 방민아는 기꺼이 걸려주기로 했다.

한예지의 스튜디오에 도착하기 전에 방민아의 집에 들렀다.

그녀가 방송 출연을 위한 치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후줄근한 모습도, 꾸미지 않은 모습도 자신 있었지만 자칫 한예지를 비롯한 자신의 안티들에게 약한 모습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다.

방민아의 자택은 최재훈으로 하여금 "헉, 거기 사신다고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고급 빌라의 오피스텔이었다.

방민아의 집에 들어선 최재훈은 자연스레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했다.

넓지 않은데도 호화스러움이 느껴지는 방민아의 집이었다.

"집이 뭐… 그냥 엄청나네요."

집 내부를 둘러보던 최재훈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음에 드시면 같이 사실래요?"

"오~ 저야 좋죠?"

"네?"

먼저 짓궂게 농담을 던져 놓고 최재훈이 그렇게 대답하자 오히려 당황한다.

그러나 곧바로 최재훈 또한 농담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멋쩍게 웃는다.

마치 동성인 양 자신을 너무 털털하게 대해서, 이런 쪽의 농담으론 도무지 당할 수가 없었다.

"이야… 민아 씨 제 생각보다 훨씬 잘 나가는 분이셨네."

와, 대리석 뭔디.

최재훈이 쭈그려 앉아 바닥을 두드리며 중얼거리자 방민아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니에요."

"에이, 아니긴요."

"이 건물… 이 집, 제 능력으로 한 게 아니고 저희 어머니 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부끄럽네요."

"아아…."

최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아가씨 지금, 이 '건물'이 어머니 되시는 분 소유라고 말하려 한 건가?'

갑자기 방민아가 너무 위대해 보이기 시작한 최재훈이었다.

"저는 그럼, 저 안에서 옷 좀 갈아입고 화장 좀 할게요. 머리는 가는 길에 미용실 들릴 거고, 재훈 씨는 어쩌실래요."

"저요?"

"화장이랑 머리, 어떻게 하실래요."

"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거'하고 방송에 출연할 거라."

"아, 맞다."

"그리고 화장은… 원래 안 해서요. 머리는, 글쎄요 지금 괜찮지 않나?"

방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끄덕이다가, 굳었다.

"잠깐, 방금 뭐라고요?"

"머리는 지금 괜찮지 않냐구요?"

"아뇨 그 화장. 화장을 원래 안 하신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아니, 지금 화장 안 하고 계신 거라고요…?"

"…그런데…용?"

방에 들어가려던 방민아가 홀린 듯이 최재훈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정말이네."

자연스럽고도 진하게 잘 칠했다 싶은 눈썹은 원래 그런 거였다.

저렇게 흰데도 자연스럽게 톤을 잘 잡았다 싶은 화장된 피부도 원래 그런 거였다.

눈가도 그냥 원래 그렇게 진한 거였고, 콧대도 그냥 원래 번듯한 거였다.

얼굴이 크고 키가 큰데 비율까지 좋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재훈 씨."

"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연예인 지망생, 모델 지망생.

자연스럽게 그 두 가지가 떠올랐다.

"저요?"

최재훈에게 원래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전 프로게이머라고 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선 최재훈2에 대한 대답을 해야 되겠지.

"저 뭐, 학생이죠?"

"학생이요?"

'학생이면 모델학과 뭐 그런 건가? 아니 잠깐,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학생이라고요?"

"네, 일단은 뭐."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저 올해로 스물 둘이요."

"스물 둘이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왜 그렇게 놀라냐 묻는다면, 방민아가 그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포용력 넘치는 오빠.

때문에 방민아는 어느새 부턴가 당연시 그를 연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하라니.

그것도 자기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왠지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바꾼다.

나이에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나이 서른을 먹고도 스물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이 남자는 나이 스물인데 서른처럼 의젓하다.

그러니, 이 남자는 자신의 오빠인 것이다.

그런 기적적인 논리를 통해 기적적인 결론을 내린 방민아였다.

그래도 역시 놀라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놀란 여운이 남아 있는 표정과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학은 어떤 대학 다니세요?"

최재훈이 기억을 되짚는 듯하더니 답했다.

"네!?"

예상치도 못한 대학이 언급됐다.

대한민국의 명문 대학교를 세간의 인식에 따라 급대로 줄 세우라고 하면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언급되는, 명문 중의 명문 대학교의 재학생.

그게 최재훈의 정체였다.

"하."

방민아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잘생긴 남잔데 성격도 털털하고, 게임도 수준급으로 잘하고, 심지어 공부마저도 수준급으로 잘한다니.

"제가 거기 학생이라니, 깜짝 놀랐죠?"

끄덕끄덕.

"저도 깜짝 놀랐었어요."

"…?"

남 이야기 하는 듯한 맥락의 말을 방민아는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 * *

"머리 어때요?"

"…그게 7만 원 짜리라고요?"

"…왜요? 많이 이상해요?"

"아뇨 이상한 게 아니라… 티가 안 나는데요?"

"이게 티가 안 난다고요?

굳이 차이가 있다면 부스스한 생머리가, 깔끔한 생머리가 됐다는 것 정도일 텐데, 거기에 정말로 7만 원이라는 거의 3.5치킨에 해당되는 거액의 가치가 있는 걸까?

이 세계에서도 여자의 스타일링은 실로 미묘하고도 심오하다는 걸 깨달은 최재훈.

마침내 치장을 끝내고 연예인 포스를 되찾은 방민아.

둘이 탄 스포츠카가 한예지의 스튜디오로 향하기 이전에, 이번 대결의 증인 역할을 맡아줄 인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렇게 또 시간 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야 뭐 리그 없을 때는 거의 뭐 백수나 마찬가지니까, 딱히 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방민아 씨한테 워낙 신세진 게 많고 또… 수고비랑 소개비로 두둑하게 챙겨 주시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이틀이나 백수 탈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강연승과 방민아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뒷자리에 앉은 최재훈도 일단 "헤헤헤헿." 웃고 봤다.

"하… 근데 진짜 민아 씨. 이번 일 진짜 유감이에요. 진짜, 사람들 말도 안 되는 마녀 사냥하는 거 좀 어떻게 하고 싶어서 영상 올리려고는 했는데, 리그 관계자 분들이 민감한 사안에 불필요하게 끼어들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해서…."

"아닙니다. 믿어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합니다."

"하… 씁쓸하네요. 아참. 오늘 올리신 영상.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런 강경수를 두실 줄이야… 민아 씨도 그렇고 그 인간도 그렇고. 레오레 계정, 방송 계정, 미튜브 계정 가치 금액으로 환산하면 억 단위가 넘어갈 텐데… 민아 씨는 몰라도, 한예지 그 인간은 잘도 그런 내기를 받아들였네요. 민아 씨와는 다르게 절박한 입장이 아닌데도."

"예 뭐, 영상에서 제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아~ 아! 맞다, 그거. 이야~ 그거 진짜로 영리하다 생각했어요. 그렇죠. 그런 식으로 발언 이용해 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대요?"

"사실 제 생각이 아니라 뒤에 앉으신-"

"예?"

강연승이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시선을 향했다.

마찬가지로 룸미러를 쳐다본 미남과 눈이 마주쳤다.

"와 레오레 프로 리그 해설가! 한국 쪽 분을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한국 쪽 분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라고? 다른 쪽은 봤다는 건가?'

영문 모를 말은, 미남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 아무래도 좋을 부분이 되었다.

강연승이 그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아~ 애인분 의견이였구나."

그 부분에 반응한 방민아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애인이요? 아~ 그렇대 자기야."

"헛 수작 부리지 마쇼, 방씨."

"헤헤헤."

"아, 아니였구나."

"뭐, 그렇죠. 아직은?"

방민아의 그 말에 강연승이 '오~'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에 최재훈이 보인 반응.

"오~"

자기도 그런 추임새를 넣는 것이었다.

강연승과 방민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남 한 명만으로 장소가 이렇게 화기애애하고 훈훈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재차 감탄하며 강연승은 말했다.

"그런데요 그, 민아 씨?"

"네?"

"민아 씨 대신 미드빵 한다는 그 우승자 분… 괜찮으신 거예요?"

"제가 왜요?"

"아니 그게… 엥?"

강연승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 그쪽 분이 그-"

"예 이쪽 분이 그 '그-' 맞습니다."

"아니…."

강연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방민아와 최재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엄청난 실력을 가진 '남성' 플레이어가 이런 미남일 줄 상상도 못한 그녀였다.

그녀가 특히나 편협한 시선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엄청난 게임 실력과, 엄청난 미모. 그리고 남성이란 세 키워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참. 제 소개도 아직 안 드렸네. 최재훈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아, 네."

최재훈이 꾸벅 목례하자 그녀가 기계적으로 동작을 따라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가 왜요?"

"아니 그… 이렇게 중요한 게임을 남한테 맡겨도 되나 해서요."

"에이~ 제 실력 못미더워서 이야기 꺼내신 것 같은데."

뜨끔.

그런 반응을 보여 버린 강연승에게 최재훈이 말했다.

"강연승 해설가님."

"아, 네."

"한예지 그 인간 좀 잘 부탁드립니다."

"네? 한예지 그 인간을요?"

방민아가 아니라?

강연승이 방민아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방민아는 못 당하겠다는 듯이 웃고, 최재훈은 말했다.

"계정 다 삭제하고 한강 다이브 안 하게."

"아…."

그녀는 그 경이롭기까지 한 자신감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저기예요."

강연승의 지시에 따라 어딘가에 들른 방민아의 스포츠카가 한예지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건물 근처에 주차되었다.

차에서 내린 '네 명'이 건물로 들어선다.

* * *

홈그라운드.

스포츠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이들은, 그러니까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것이 갖는 이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홈그라운드의 분위기가, 승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승부는 기세 싸움이란 말이 있듯, 기세는 승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홈그라운드의 분위기는 그 기세형성에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아군의 기세를 살리고 적군의 기세를 죽인다.

한예지는 이번 방민아와의 미드빵에서 자신의 홈그라운드를 조성하는 데에 정성을 기울였다.

남자와의 미드빵 승부에서 질 거란 생각은 추호도 안 하지만 철저히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고, 방민아를 철저하게 박살내기 위해서였다.

그걸 위해 처한 첫 번째 조치, 승부 장소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정한 것이었다.

10평 원룸을 빌려 방음 처리를 한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현재 그녀 말고도 다른 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이게 바로 두 번째 조치다.

자신의 사람들로 관중을 채우는 것이다.

중재를 한 명으로 한정했지만, 중재가 아닌 사람에 대한 제한은 없었다.

중계라는 명분으로 장소에 합류한 어느 정도 유명세도 있고, 어느 정도 덩치도 있는 동성 BJ 두 명.

그리고 그녀와 친한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잘생긴 남캠BJ 한 명.

거기에 한예지의 요구에 따라 최대한 명품 위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온 그녀의 남자친구까지.

거의 군단이었다.

화룡정점으로 그녀의 중재 역할을 맡은 인물.

다름 아닌 'BJ헤이러'였다.

급으로만 따지면 방민아는커녕 한예지에도 못 미치는 BJ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BJ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녀는 조만간 둘을 넘어설 것이다.

그걸 보장할 수 있는 건, 헤이러의 출신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름 아닌 그 TC1의 주전이었다.

TC1이 어디던가?

최다 리그 우승 보유 팀, 최다 렐드컵 우승 보유 팀.

그리고, FACE 보유 팀.

세계최고와 명문이라는 수식어를 자연스럽게 붙일 수 있는, 드림팀이었다.

그런 TC1의 주전이었던 헤이러가 나타나자-

[한예지 VS 방민아(치킨퀸치퀸) 올삭빵 미드빵]

먼저 방송을 켜고 시청자를 모으며 분위기를 달구던 그녀의 방송 분위기가 폭발해 버렸다.

완벽한 플레이 그라운드가 조성된 것이다.

의기양양을 넘어선 단계에 도달한 그녀는 지금 표정으로만 따지자면 이미 챔피언이었다.

라톡!

그때, 방민아로부터 톡이 왔다.

"아~ 여러분 도착했다네요."

머지않아 문이 울린다.

한예지는 여자BJ 중 한 명을 시켜 문을 열게 했다.

일제히 자리에 거만하게 앉아 문을 지켜보는 한예지 일행은 마치 골목길에 기세등등하게 자리 잡은 불량배들을 연상시켰다.

문이 열린다.

방민아가 들어오고, 예상했듯 강연승이 들어온다.

'그렇지.'

엊그제 강연승과 해명방송을 진행했던 것 때문에, 방민아가 영향력 있는 중인을 데려온다면 그녀일 줄 알았다.

LKL의 해설가지만, 실로 애매한 입지를 가진 객원 해설가.

TC1의 주전이었던 헤이러만큼의 임팩트는 없다.

엄청난 미모로 어그로를 끌 줄 알았던, 최재훈(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웬 청바지 후드 차림에 문방구에서 집어온 듯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고.

'끝났네.'

기세 싸움에서 완전히 이겼다.

이 장소는 완전히 자신의 주도권 아래에 놓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친?'

오만하게 미소 지으며 다리나 꼬려던 그녀였는데, 기겁하며 황급히 자리에서 기상한다.

다른 여자 BJ들은 물론이며, BJ헤이러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가장 먼저 기상한 게 BJ헤이러였다.

그 동작엔 군기마저 잡혀 있었다.

입장이 최재훈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한 명이 더 들어왔고, 그 한 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렐드컵 우승 MVP 경력 보유자.

세계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탑 포지션 플레이어를 꼽으라면 반드시 거론되는 유저.

TC1의 레전드 중 한 명.

그리고 강연승이 들어가 있는 단톡방, '틀딱S'의 멤버.

한마디로 강연승의 친구이기도 한 그녀가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와 특유의 털털한 말투로 말했다.

"에이 왜들 그래. 오바들 떨지 말고 다들 앉아요~"

'NAVY'

LKL의 맏언니이자 레전드가 행차했다.

그런 그녀를 중재 역할로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방민아가 완전히 위축된 한예지를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비웃으며 말했다.

"앉으라잖아요."

그러자 가면 쓴 괴인이 거든다.

"한강 다이브할 준비는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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