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65화 (62/361)

065화. 주작을 잡아라 7

"그러면… 30분 쯤 걸리겠네요…."

"예 도착하실 때쯤 말씀해 주세요. 마중 나갈게요."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그런 쪽으로, 방민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 버렸는데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 아가씨 엄청 위태로운 목소리로 말하는데, 절벽 끝을 향해 떠밀리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서 방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게 다름 아닌 나였다.

대회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원인인 건 맞았다.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어메이징한 게 잘못이었다.

잘난 게 죄라면 죄라서 나는 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후… 최재훈 너란 새끼. 얼마나 잘날 생각이야."

[거울 속의 최재훈 : 너야말로, 적당히 잘나라고. 역.겨.우.니.까.]

"크~"

그러고 무엇보다, 이 일은 나랑도 상관이 있었다.

나 또한 조작 의혹의 피해자였다.

내가 대리 받은 숫사자 조작러라는 이야기가 당장은 아메리카TV 커뮤니티 안에서만 떠돌고 있지만, 이게 언제 외부로 퍼질지 모르는 일이다.

내 방송에 악영향을 끼치기 전에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아메리카TV 갤러리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상황이 어떤지 방민아에게 대략적으로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 * *

"워…."

아메리카 갤러리는 현재 최재훈과 방민아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으로 가득했다.

"와, 광기네 광기."

최재훈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 글을 확인하다보니 그런 글을 발견했다.

[제목 : 야 치킨퀸 걔 얼굴 캡쳐 사진 갖고 있는 애 없냐?]

"어, 시발. 맞다."

최재훈은 뒷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다시보기와 미튜브 영상만 통제하면 자신의, 숨컷의 얼굴에 관한 자료를 말소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그에 따라 조치를 취했었기 때문이었다.

막 방송인이 되어서 그럴까, 너무 방송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버린 것이다.

시청자들이 영상을 남길 수는 없어도 '캡쳐'를 통해 자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조졌…나?"

그런데 다행히도 캡쳐 사진은 찾는 사람만 많을 뿐, 정작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안도하지 못하는 그의 눈에 어떤 글이 들어왔다.

제목 : 아니 ㅅㅂ 당시 시청자가 거진 1만명인데

내용 : 그렇게 잘생겼다는 남자 얼굴 찍은 놈이 어케 한 명도 없음?

ㄴ : 방민아 이새끼 남자 얼굴 화면에 존나 안 잡지 않았나

ㄴ : ㄹㅇ 곽희영인가 그 챌린저만 잡던데

ㄴ : 내가 기억하기론 남자가 자기소개할때 얼굴 잠깐 잡힌게 전부인걸로 기억함

ㄴ : 나도 그게 얼굴 볼 처음이자 마지막기회인줄 알았으면 스샷 찍어뒀지 ㅋㅋ

ㄴ : 이새끼 다시보기도 안올려가지고

"아, 휴…."

십년감수-

'잠깐,'

하기엔 아직 일렀다.

권지현과의 방송.

그때는 자신의 얼굴이 잠깐이 아닌 지속적으로 노출됐었다.

캡쳐할 기회는 충분했다.

'…아, 괜찮겠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판단이 나온다.

대회에서 최재훈의 얼굴이 노출되면 곤란한 이유는 출전 아이디가 숨컷 방송을 할 때 사용하는 아이디인 '치킨퀸치퀸'이어서, 최재훈=치킨퀸치퀸=숨컷이라는 공식을 성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지현의 방송에서는?

그는 그저 밑집 남자 최재훈일 뿐이었다.

티어를 공개할 때 '치킨킹치킹' 닉네임을 공개하긴 했으나, 아주 잠깐이었다.

대회에서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대회에서도 캡처 안 당했으니, 지현 씨의 방송에서도 캡처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안심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방민아가 언급했던 이 상황을 본격적으로 악화시켰다는 '저격 영상'이 떠오르고 궁금해진다.

'한예지랬지?'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한예지의 미튜브 채널에 들어가자 곧바로 예의 영상이 나왔다.

방민아가 본인의 입장에서 영상을 소청한 시감을 들었으니, 이번엔 자신의 입장에서 영상을 시청한다.

자신이 신경 써야 하는 발언이 있나 말이다.

그런 그의 귀에-

"저도 대회 실시간으로 봤었는데, 특히나 가증스러운 부분이."

"그 조작한 최재훈이란 사람이 동생 데려왔잖아요?"

"동생 복수니 뭐니 하면서 똑같이 오리안나 제드전 가자는데 참나~"

"너무 유치하고 뻔뻔하고 신파스러워서 역겨울 정도더라고요."

"솔직히 이런 일에 가족, 동생 팔고 싶은가도 싶고."

"아 그런데, 이건 확실합니다."

"그 동생? 최재은이란 사람은 일부러 진 거 아니였어요."

"그냥 못하더라고~ 큭큭."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

최재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런 그의 귀에 들어오는 한예지의 말.

"제 모든 걸 걸고 확신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최재훈은 그 말을 듣고 떠올렸다.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혹은 결정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라톡!

[저 거의 도착했어요.]

최재훈은 방민아를 마중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 *

차에서 막 내린 방민아의 모습은 최재훈이 핸드폰으로 목소리를 듣고 느낀 그대로였다.

배드엔딩으로 치닫기 직전의 모습.

최재훈은 그녀를 도와주기로 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에 안도했다.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죄책감 따윈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돕는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녀 덕분에 120만 원을 벌지 않았던가.

게다가-

"와 진짜…."

그는 며칠 전 방민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다.

대리 의혹.

방민아가 처한 상황 만큼 심각한 건 아님에도, 충분히 개같았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개같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뭐 같으셨겠어요… 힘내세요."

한마디로 동병상련이었다.

최재훈의 품에서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이해를 느낀 방민아의 안색은 훨씬 좋아져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최재훈을 따라 그의 집에 들어섰다.

"좀 정신없죠?"

지금 최재훈의 방은 남자 혼자 사는 집 특유의 생활감으로 가득했다.

존나 어지럽혀져 있다는 말이었다.

컴퓨터 책상 위에 컵으로 지어진 탑이 있었고, 방 곳곳에 옷과 수건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방민아가 오기 전에 치우려 했지만 이 커뮤니티질이란 게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커뮤니티 좀 하다 한예지의 영상을 확인하니 어느새 방민아가 도착해 있었다.

"아뇨, 제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데요, 뭐."

"편하신 대로 앉으세요. 커피랑 차, 뭐가 좋으세요?"

주위를 둘러보다 널브러져 있는 나시에 시선을 빼앗긴 그녀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아, 차로 부탁드릴게요."

"아 근데 차가 없어서."

"아 그러면 커피로…."

"커피도 없고."

"그런데 왜…."

"드라마나 영화보면 보통 이렇게 말하던 게 떠올라 가지고."

"아니-"

큭큭.

최재훈의 능청스러운 표정에 그 나름대로의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음을 터뜨린다.

"콜라라도 드릴까요?"

"큭큭, 그것도 없는 거 아니예요?"

"에이, 콜라 없는 집이 어딨습니까."

"콜라가 그 정도였나요… 큭큭. 알겠어요 그러면- 아. 아니다. 역시 콜라는 안 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속이 쓰려가지고."

지난 3일 동안 경황이 없어서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한 그녀였다.

심지어 본격적으로 일이 악화되기 시작한 어제부터는 무언가를 먹으면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최재훈을 만나고 그녀의 안색은 분명 나아졌으나, 그녀의 몰골은 그대로였다.

윤기 나고 깔끔했던 검은 생머리가 빛을 잃었다.

눈가 밑이 새까맣고, 피부는 푸석하고, 입술은 마르고, 볼이 들어간 듯 앙상했다.

대회에서 방민아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봤었던 최재훈이었기에 지금 그녀가 얼마나 피폐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안쓰럽게 쳐다보자 방민아는-

'….'

왠지 모를 충족감을 느꼈다.

그가 식탁 침대 위에 앉은 방민아에게 물이 든 컵을 건네준 뒤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아, 먼저-"

방민아가 운을 뗐다.

"이렇게 선듯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재훈 씨-, 아, 이렇게 불러도?"

"네네."

"네, 재훈 씨가 안 도와주셨으면 저 정말로 답이 없었어 가지고… 얼마나 감사한지…."

"아니 뭐, 어떻게 보면 제가 원인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원인이라뇨… 재훈 씨는 잘못 없으세요…."

"그렇긴 해요. 제가 잘못이 있다면 잘난 죄겠죠 뭐. 남자 주제 게임을 너무 잘하는 죄?"

"푸훗."

"헤헹. 어쨌든. 이건 저한테도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해서요."

"네?"

"제가 방송을 하는데-"

"어!"

"예?"

"아, 그게… 설마, 아메리카TV에서…?"

"에? 아- 아뇨. 옐로우TV예요."

"아, 휴…."

"무슨 문제라도?"

"아, 그게 사람들이 제가 대회 조작하고 재훈 씨한테 대리를 해 준 이유가, 재훈 씨를 BJ로 띄워주려는 거라고 해서…."

"아, 아~"

최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들을 봤던 기억이 났다.

"아 그런데, 혹시 방송인이시면-"

"네?"

"혹시, 이 일로 피해가 가셨나요…?"

"아~ 그건 아니에요. 아시죠? 옐로우TV랑 아메리카TV 애들 서로 어쩐지."

"아… 알죠. 서로 아예 관심 없는 거. 그나마 다행이네요… 정말로."

"그런데 계속 이렇게 논란이 커지다 보면 언젠가는 영향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에, 아무래도 그렇겠죠… 죄송합니다."

"아, 아니.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방민아 씨 자책감 갖고 또 풀 죽으라는 게 아니라~"

"네?"

"저도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는 주작의 피해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최재훈이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같은 피해자끼리 힘 합쳐서 잘 해결해 보자 이거죠."

"…."

주먹을 맞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아니 또 왜 울어요~"

"너무… 감사해서요… 미안해요 꼴사나운 모습 보여 드려서."

"아이고, 며칠 동안 마음고생 엄청 심하셨나 보네."

"흐윽… 네…."

"아이고, 내가 또 그맘 잘 알지. 어? 못댄 시청자 쉑들."

최재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툭툭.

다시 또 팔을 두드려 준다.

이번엔 팔을 벌리지 않았는데도 최재훈이 팔을 벌리기도 전에 그의 품에 얼굴을 묻는다.

그제야 최재훈이 그녀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

최재훈이 너무 잘 받아줘서 그런지, 평소 그녀의 성격과 달리 응석을 부려버리게 된다.

평소 '무서운 언니'인 그녀의 모습이 익숙한 이들이 알면 깜짝 놀라 뒤집어질 모습이었다.

"어때 좀, 진정이 돼요?"

"네…. 감사합니다."

품에서 나오자 이젠 그의 얼굴이 보였다.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그의 미소가 왜인지 인자하게 느껴진다.

포용적으로 느껴진다.

방민아는 저도 모르게 쓰다듬어 달라 머리를 내밀 뻔했다.

"그러면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 네."

"네, 지금 문제가 되는 게 그거잖아요? 제 플레이 영상이랑, 제가 그걸 플레이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잡힌 게 없어서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한테 트집거리를 준다?"

"아, 예. 딱 그거네요."

정말로 딱 맞는 표현이었다.

트집.

그들은 방민아의 실수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저 트집을 잡고 인신공격을 하는 것뿐이었다.

생각하니 또다시 설움이 복받친다.

"이 아가씨 또 울려고 하네."

"아니, 아. 이게 진짜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저 원래 안 이러거든요."

남자 앞에서 거듭 눈물을 흘리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뒤늦게 수치심을 느낀다.

느끼는데 왜인지 이 남자 앞에선 아무래도 좋다 생각된다.

더 응석부리고, 더 이해 받고 싶었다.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죠."

이렇게 말이다.

"저는 여자가 우는 거에 익숙해서 괜찮아요."

그런데 이건 말고.

'익숙해…?'

무슨 의미일까.

여자들 좀 울렸다는 의미인가?

'하긴 이 사람 정도면….'

방민아의 기분이 다른 주제로 복잡해졌다.

"아 그, 어쨌든 맞아요. 한 화면에 잡힌 게 없어서 트집을 잡는 거."

"네. 그래서 제가 그, 해결 방안을 제 나름대로 떠올려 봤거든요."

뜸을 들인 뒤 말을 잇는다.

"민아 씨."

"네?"

"그, 한예지란 사람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그-"

"솔직하게. 저도 그 사람 마음에 안 드니까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아메리카TV에서 예전에 BJ들끼리 팀을 짜서 경쟁하는 이벤트 대회가 열렸었거든요?"

"네."

"그때 그, 어떤 팀장 분이 있었어요. 그 한예지가 그 팀장 분이랑 팀 되고 싶어 했는데, 그 팀장 분이 저를 고르셨어요."

"아."

"그때부턴가, 괜히 저한테 열등감 갖고 사사건건 시비 걸어가지고,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죠. 어떻게 생각 하냐면, 솔직히 별 생각 안 갖고 있었어요. 그냥 좀 재수 없는 년이다 싶었는데…."

방민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선을 넘네요, 시발년…."

최재훈이 말없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 욕해서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 대신 해 주시네."

"네?"

"그, 말씀하셨던 저격 영상을 봤거든요."

"아, 네."

"솔직히 저 욕하는 건 뭐, 그럴수 있다 치는데. 제 여동생을 굳이 언급하면서 까 내리더라고요."

"아, 그, 재은 학생."

"방민아 씨."

"네?"

"이 사람이 한 말 기억하죠. '제 모든 걸 걸고 확신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아 네."

"방민아 씨."

"네."

"방민아 씨는 저 믿죠. 제 실력."

"아, 당연하죠!"

"방민아 씨도 한예지, 이 사람한테 크게 엿 먹이고 싶죠."

끄덕끄덕.

끄덕.

"방민아 씨."

"네."

"저 믿고 미친 짓 한 번 해보실래요?"

최재훈이 본인의 제안, '미친짓'에 대해 설명하자 방민아는 생각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미친짓이라고.

평소의 그녀였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방민아는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눈 앞의 남자를 실망시키기 싫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