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59화 (56/361)

059화. 주작을 잡아라 1

강제 방종을 당한 직후는 진짜 세상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이런 식으로 방송을 마무리한 거 말이다.

방송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상황에서 컴퓨터 다운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방송 종료.

당사자인 나조차도 너무존나 당황스러워서 풀악셀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였는데, 시청자들은 어떻겠는가.

더는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 근데 미션금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다행히 잠깐 심정지가 왔을 뿐이지, 사망하지는 않은 컴퓨터를 다시 켜서 후원 프로그램, 또네이션을 켰다.

오늘의 후원 총액.

원래라면 50만 원 이상의 액수가 기재되어 있어야 할 거길 보니 절로 한숨이-

"후…오오옹?"

나오려다가 쏙 들어가 버렸다.

거기에 적혀 있는 액수.

세상에 육십 미친 육만 맙소사 이천 원이었다.

"뭐여?"

뭔 일인가 싶어 바로 후원 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김해 건물주 님이 50억 원을 후원했습니다

=어디가셨어 ㅋㅋ 급한일 생기셨나보네 오늘 고생하셨어요~ 또 방송 켜 주세요

"해장님 맙소사…."

나는 끓어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울부짖으며 팬티를 찢은 뒤 감사를 담아 동서남북으로 절을 올렸다.

내 절이 너에게 닿기를.

'해장님뿐이네….'

승격전 성공에 걸린 미션이 꽤 됐던 걸로 아는데, 그 미션금을 후원해 준 건 해장님뿐이었다.

'하긴.'

LIVE - OFF 상태에서 후원을 해 주신 해장님의 경우가 특이한 편에 속하긴 했다.

자선 목적으로 기부를 해도 칭찬을 받으면 더 기분이 좋듯.

방송인 독려 목적으로 후원을 해도, 방송인과 시청자들의 반응과 관심을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은 거니까.

후원을 한다면 방송이 켜진 상태, 많은 시청자들의 앞에서 하는 게 맞았다.

아니면 그런 가능성도 있다.

먹튀.

거짓으로 미션을 걸어서 실컷 즐기다 미션금을 안 주고 도망가는.

책임 없는 쾌락을 추구해서 언젠간 이성 관련 문제로 크게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감동 휴먼 드라마 평생 라이브 방영할 새끼들.

미션을 건 사람이 그런 먹튀일 가능성 말이다.

뭐, 어쨌거나-

'약속을 지킬 의사가 있다면 내일 방송을 켜도 미션금을 후원해 주겠지.'

해장님께 받은 거액의 후원금 덕분일까.

미션금에 초연해져 미련 없이 방송 마무리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최고 시청자 400명, 수익 66만 2천 원.

오늘 방송의 실적이었다.

시청자는 어제의 두 배 가량 증가했고, 수익은 열 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의 반응은?'

오늘 방송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옐로우TV에 접속했다.

"오미…."

그러자, 예상이 들어맞았다 게 증명되었다.

오늘, 불의의 방송 종료가 좋게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이 말이다.

갤러리가 나에 대한 언급으로, 숨컷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했다.

제목 : 아니 오늘 숨컷 방송 ㄹㅇ 레전드네 ㅋㅋ

내용 : 아니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 ?ㅋㅋㅋ

ㄴ : 그니까 ㅋㅋ

ㄴ : 박수칠 때 떠날줄 아는 새기 ㄷㄷ

ㄴ 글쓴이 : ㄹㅇ ㅋㅋ

제목 : 와 숨컷 이새기 물건이네 ㅋㅋ

내용 : 오랜만에 괜찮은 PD 하나 들어왔누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옐로우TV는 숨컷으로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ㄴ : 어 ㅋㅋ 시청자 쌓이면 리치TV 동시송출 하다가 리치TV로 이적할 거야

ㄴ : ㄴ 진짜 지랄하지 마십쇼...

ㄴ 글쓴이 : ㅅㅂ 않되!!!! 리치TV십새끼들아!!! 이거까지 가져가면 우리 옐로시티는 어케 살라고

ㄴ : 좀 뒤지라고 ㅋㅋ 적폐고인물 좆소플랫폼

제목 : 와 오늘 숨컷 방송 못 본 새기들 인생 얼마나 손해본거냐 ㄷㄷ

내용 : 진짜 그냥... 불쌍하다... 왜사냐... 에휴...

ㄴ : ㄹㅇ ㅋㅋ

ㄴ : 인방 안 보고 현실사는 인생 패배자 새끼들 오늘 숨컷 방송 못 봤지? ^^ 꼴 좋다

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건가

ㄴ : ㄹㅇ ㅋㅋㅋ 숨컷 방송 볼려고 지금까지 취직 안한 거자너

제목 : 숨컷이 도대체 누군데 이 ㅈㄹ임

내용 : 얼굴 빻아서 공개도 못하고 손캠만 키는 듀라한 새끼 뭐가 좋다고 ㅋㅋ하여간 겜창 찐따새끼들 남자면 그냥 좋다고 목소리만 듣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겠누

ㄴ : 쓸래쉬님 ㅋㅋ 여기서 뭐하십니까

ㄴ : 숨컷 누군지 모르는데 손캠만 키는 듀라한새낀거 어떻게 아냐고 ㅋㅋ

ㄴ : 이새끼 아직도 불타고 있네 ㅋㅋ

엄청난 관심.

게다가 반응도 좋았다.

"음…."

그런데,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기쁘긴 한데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와중 발견한 글들.

제목 : 숨컷 얘 왤케 잘함?

내용 : 옐카 레카 얘네 각각 그마2, 300점 아님?

얘네 둘을 그냥 혼자서 박살내버리네?

애초에 쓸레쉬 ㅄ이 겜 안 던졌으면 케이슬린 안 던져도 숨컷이 캐리했을듯 내가 본 남자중에 제일 잘하는것 같음

ㄴ : ㄹㅇ 깜짝 놀랐음 보면서

ㄴ : 그래봤자 지금 마스터0점 아님? 남잔데 챌린저 찍은 애들도 있는 마당에 너무 오바하는데

ㄴ 글쓴이 : 걔네 거의 다 서포터고 암사자들이랑 듀오해서 올라간거자너 ㅋㅋ

ㄴ : ㄹㅇ 숨컷처럼 혼자 솔랭 돌려서 혼자 캐리해가며 게임 박살내고 점수 올리는 애 못 봄

제목 : 그래서 숨컷 방송 왜 보는 거임?

내용 : 말 들어보니까 남잔데 손캠이라며

무슨 재미로 보는 거임?

ㄴ : 그냥 게임 잘하고 입도 잘 텀

ㄴ : ㅇㅇ 그냥 재밌음

ㄴ 글쓴이 : 게임을 잘한다고?

ㄴ : ㅇㅇ 오늘 승격전에서 3연캐리해서 마스터됬고 심지어 막판은 그마저격듀오 바름

ㄴ 글쓴이 : ㄹㅇ이가

졔목 : 아 ㅋㅋ 오늘 숨컷 새기

내용 : 캠 킨다 해 놓고 손캠 ㅇㅈㄹ해서 개빢쳤는데

겜 잘하고 그냥 방송 재밌으니까 용서가 되네

ㄴ : ㄹㅇ 얜 솔직히 여자였어도 성공했을듯

ㄴ : ㅇㅈ

ㄴ : ㄹㅇ 얜 솔직히 여자였어도 귀여웠을듯

ㄴ : 선넘네 ^^ㅣ발

ㄴ 글쓴이 : 아 ㅋㅋ 그건 좀 ㅋㅋ; 얘 정신병은 남자니까 귀여운 거지 여자였으면 ㅋㅋ; 많이 역했지

ㄴ : 아 코런가 ㅋㅋ

시청자들이 말한다.

숨컷 걔 남자인 건 둘째 치고 그냥 방송이 재밌더라.

숨컷 걔 그냥 게임을 잘해서 방송이 재밌더라.

숨컷 걔.

'여자'였어도 성공했을 것 같더라.

최재훈2가 아닌 원래의 나였어도 방송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내 자존감을 위협하던 그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런 말들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헤헤."

비로소 부족했던 2%가 채워짐을 느끼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었다.

오늘 방송, 대성공이었다고.

앞으로도 잘될 것 같다고.

"호우예이아!!!!!!!!!!!!"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 * *

'송출용 콤푸타'

그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송 송출 따위에 왜 컴퓨터가 따로 하나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것도 그냥 컴퓨터도 아닌, 최신 게임도 가볍게 돌릴 초 고사양의 컴퓨터가.

그래서 그냥 성공한 방송인들이 부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개념인 줄 알았다.

"어~ 나 방송으로 돈 개 많이 벌었다~ 이 봐라, 황금 송아지랑 송출용 콤푸타인데. 느그 집엔 이런 거 업제잉?"

그런 식으로다가 말이다.

요즘 플렉스니 뭐니 돈 자랑이 유행이지 않은가.

하지만 직접 방송을 해보니 알 수 있었다.

왜 송출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탄생했는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 방송이라는 게, 정확히는 고화질 방송이라는 게 아주 그냥 컴퓨터 사양 먹는 괴물이었다.

그것도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암냠냠냠 얌전하게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주둥이 한껏 벌리곤 어걱거거거거걱 쑤셔 넣는다.

지금 내 컴퓨터 혼자서 고화질 방송과 고화질 게임 플레이를 동시에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너무 불안정했다.

방금 봐라.

이미 고화질 게임을 고화질로 방송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튜브 영상 하나 끼얹었다고 전조도 없이 '히힛, 오줌 발싸!' 판 뒤집어 엎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렇게 나는, 내 컴퓨터에게 동료를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방송이라는 고된 작업을 함께 해나갈 송출용 컴퓨터라는 동료를.

컴퓨터 견적 사이트에서, 권지현 씨의 송출형 컴퓨터 대로 견적을 작성해 보았다.

그렇게 나온 금액.

"험멈멤메 시발 거."

150만 원이라고여?

13만원 18만원 다음에 150만원이라니.

퀘스트로 고블린이랑 오크 잡았더니 다음엔 드래곤 잡으라는 격이었다.

게임에서조차 레벨 디자인을 이따구로 하면 망겜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출시 자체를 못 할 건데, 현실이 이 꼬라지라니.

이거 현실 누가 만들었어?

어? 누가 만들었기에 이딴 결과물이 나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 따위로 만들고 출시를 결정한 거야?

운영자 나와, 시발.

"하, 이걸 어쩌냐."

오늘 방송으로 번 돈 66만 원.

그 돈을 즉시 이출하면 수수료로 15프로 정도가 나가서 55만 원 정도가 된다.

거기에 다음 달 생활비 좀 빼서 살라 했는데.

다음 달 생활비로 남겨둔 돈이 100만 원 정도 되니까, 사려면 거기서 좀 빼는 수준이 아니라 그걸 올인해야 할 판이었다.

"어떡하지."

고민이 시작되려면 순간,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최재훈(22세/긍정맨/스티브 잡스도 자퇴했다며 고등학교 자퇴 독려함)가 말했다.

[긍정의 최재훈 : 다음 달 생활비 올인해도 괜찮지 않나?]

뭐가 도대체 어떻게 괜찮다는 것이지?

[긍정의 최재훈 : 오늘 하루 3시간 방송해서 66만원 벌었잖아.]

그렇지.

[긍정의 최재훈 : 그러면 송출용 콤푸타 사서 당장 내일부터 다음 달까지 방송하면 최소 1500만 원은 벌려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 생활비 걱정은 하덜덜 말고, 한 달 뒤 1500만 원으로 뭘 할지나 고민하자고!]

"음."

일리 있어.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어서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의견에 내 운명을 기꺼이 맡기기로 했다.

"올인."

(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내일 방송 준비가 끝났다.

끝났는데-

"음… 뭐지."

뭔가 찝찝하다.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기분.

"아, 맞다. 아 이런 병신아 그걸 깜빡하냐!!!"

허니뱅에게 연락해서, 미드빵 대회 결승전 영상에 나올 내 얼굴 좀 모자이크 해달라 부탁하는 걸 깜빡했다.

영상에 나온 내 얼굴이 캡처되어 커뮤니티에 퍼지게 되는 순간, 얼굴의 도움 없이 게임 실력만으로 성과를 거두겠다는 내 계획과 결심이 무너져 버린다.

방금 전, 내가 '여자'였어도 성공했을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오늘 시청자 4백 명을 돌파했는데, 적어도 1천 명은 돌파하고 얼굴을 공개하고 싶었다.

"조때따, 조때따."

다급히 허니뱅의 미튜브에 접속해서 최근 업로드 영상을 확인했다.

"아아아아앍!!!!!"

최근 올라온 영상 목록.

그 안에 대회 결승 영상은 없었다.

"살았다아아악!!!!! 너무좋아아악!!!!"

기쁨의 괴성이 절로 나왔다.

아, 잠깐.

아직 안 올렸을 뿐이지, 영상이 이미 완성돼 있다면?

다시 편집을 해야 될 텐데, 그 편집 비용을 내가 부담해야 되는 건가?

어쨌든, 지금이라도 바로 요청하기 위해 채널 정보에서 허니뱅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문의 전용 연락처로 이메일이 적혀 있었다.

나는 즉시 메일 작성에 들어갔다.

* * *

최재훈이 허니뱅에게 메일을 작성한 다음날 오후.

[제목 : 안녕하세요 저 피시방 대회 우승자 최재훈입니다]

[내용 : 이렇게 연락드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결승 때 녹화와 관련해서 요청드릴 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결승 영상을 미튜브에 업로드 하신다면, 영상에 제 얼굴이 노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상의가 필요하다면 라톡 아이디를 적어 놓을 테니, 여기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BJ허니뱅, 방민아.

메일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돼, 돼, 돼, 됐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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