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캠방 ON
[쓸래쉬] : ㅇㅋ
쓸래쉬, 아군 서포터가 그 말을 남기곤 적군의 타워로 달려가 자살했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받아들이지 못할 뿐.
"님 머함?"
그래서 묻는다.
내 생각이 틀렸길 하는 바람으로.
[쓸래쉬] : 아 죄송.
[쓸래쉬] : 화면 내려갔음 ㅈㅅㅈㅅ
"아! 그런 거였구나! 휴~ 깜짝 놀랐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게임을 이어나갔다.
아군 서포터가 '실수'로 허무하게 죽어서 손해가 발생했지만, 괜찮다.
[SYSTEM : 아군(텔론)이 적군(냐미)을 처치했습니다!]
적팀 서포터도 똑같이 만들어주면 되는 노릇이다.
[전체채팅][냐미] : ?? 머임
[전체채팅][냐미] : 먼딜임
[전체채팅][냐미] : 울팀 주이 텔론한테 얼마나 대준 거임?
똑같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만들어 주면 되는 노릇이다.
저 봐라. 당황한 거.
반면에 우리 쓸래쉬 봐.
똑같이 허무하게 죽었는데 얼마나 의젓해?
어?
다행이다!
우리 팀 서포터가 쓸래쉬라 다행이야!
[애즈리얼] : ??
[애즈리얼] : 쓸래쉬 머함?
[애즈리얼] : 왜 그 미니언을 니가 쳐먹음?
[쓸래쉬] : 이거 치면 돈 오름
[쓸래쉬] : 님도 빨리 치셈
[애즈리얼] : 아니 이새끼 트롤하는데
그때 채팅창으로 전해져 오는 쓸래쉬의 트롤 실황.
(행복 회로 : 아 ㅋㅋ 못 해 먹겠 수고링 끼요오오옷!!!)
펑!
결정적이었다.
과부하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행복 회로가 유언을 남긴 뒤 폭발해 버렸다.
네모 바지 입고 세상에 긍정의 정신을 전파하는 모 선생님께서도 저 십새끼를 보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아니 미친놈아 진짜 뭐하시냐고."
[쓸래쉬] : 해야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 멋져. 트롤 새끼가 하는 말로는 너무 멋져. 왜 던지는 게 니 해야 할 일이냐고요, 이런 시발."
[쓸래쉬] : 보고싶으니까...
"아, 뭔 지랄이야 그건 또."
[쓸래쉬] : 니 얼굴이...
[SYSTEM : 아군(쓸래쉬)이 적군(케이슬린)에게 처치 당했습니다.
[ㄷㄷ 로맨틱한 거 보소]
"아니, 로맨틱 같은, 시발. 아니. 아니!!! 저건 진짜 아니지!!!"
[왜 아니에요 저게 ㅋㅋ]
[??? :아 저격 님들. 인심 썼습니다. 방플이든 뭐든, 다 하세요. 내 얼굴 보고 싶다며! 다 허락할 테니까, 뭐라도 해봐. 나 이제 게임 끝낼 거니까. 알겟지?]
[아 ㅋㅋ 시킨대로 하는 중이잖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군으로 저격해서 일부러 던지는 건 선 넘었지!!! 정도라는 게 있는 거잖아! 야이 시발, 니 듣고 있지? 이거 니도 같이 지는 거야! 니 점수도 떨어지는 거라고!!! 니 정지당해요!!!"
[쓸레쉬] : 대의에 내 영혼을 바친다.
[쓸레쉬] : 그렇게 하면 대의를 행하다 설령 내 육신이 바스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쓸레쉬] : 내 영혼은 대의와 함께 이어질 것이니
[쓸레쉬] : 당장 이 게임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쓸레쉬] : 그대의 얼굴이 공개된다면
[쓸레쉬] : 결국엔 나의 승리요
[애즈리얼] : 니에비
[애즈리얼] : 아 제대로 미친새끼한테 걸렸네
아군 원딜러의 채팅이 내 심경을 대변했다.
'아니, 이러면 방송도 망하는데?'
게임을 이런 식으로 망치면 아무리 내 패배를 바라고 있는 시청자들일지라도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ㄷㄷ 씹덕쉑 개멋지누]
[씹덕좌 비장한거 보소 ㄷㄷ]
[나 일찐인데 ㅇㅇ; 오늘부터 씹덕들 안 팰란다]
[씹풍당당]
[속보) 쓸레쉬 열사, 씹덕들 해방]
[잊지 않겟읍니다 ㅠㅠ]
[이제부터 점심시간에 당당하게 라노벨 읽는다]
[애니를 보며 당신을 떠올리겠습니다]
'아니 시발?'
내 우려와 달리 방송의 분위기는 다행히 멀쩡했다.
그런데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이것대로 문제가 많았다.
"아니, 여러분? 저 새끼 일부러 뒤져 줘서 트롤하고 있는데요? 니들 레오레 유저 아니였어요? 내 고통에 공감하고 화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ㅋㅋ아니야 ㅋㅋ]
[레오레 안하는데? ㅋㅋ 저런 새끼들 때문에 진작에 접었는데? ㅋㅋ]
[누가 레오레 아직도 안접으래? ㅋㅋㅋ]
[아 ㅋㅋ 이 맛에 레오레 접는다~]
[아직까지 레오레 안 접은 흑우 없제 ㅋㅋ]
[꺼어억]
"와, 징하다 진짜. 니들 그럼 이게 재밌어요? 니들 진짜 이런 거나 보자고, 이 게임 15분 동안 보고 있던 거냐고요."
[ㄴㄴ ㅋㅋ]
[우리도 이런 게임은 재미 없음 ㅋㅋ]
"그렇지?"
[그런데 우리는 니 얼굴 보려고 이틀 동안 기다리고 있던 거라 ㅋㅋ]
[ㄹㅇ ㅋㅋ 이정도 손해는 감수할 수 있지]
[이판만 참지 뭐 ㅋㅋ]
"와, 씨. 진짜 징하네. 그 정도로 내 얼굴이 보고 싶다고?"
[ㅇㅇ]
[말이라고 ㅋㅋ]
"…그래. 여러분이 그렇게 원하니까."
하.
한숨을 내쉬고 말한다.
"이판 목숨 걸고 이긴다. 십새끼들."
[엌ㅋㅋㅋㅋ]
[힘.내.라!]
[4:6 게임 승리 선언 ㄷㄷ]
[니 목숨 필요없으니까 얼굴 공개나 제대로 하라고 아 ㅋㅋ]
[아 ㅋㅋ 숨씨~ 발악하지말고 그냥 지금 얼굴 공개하지?]
진정하고.
침착하고.
상황을 파악하다.
트롤은 다행히 쓸레쉬, 서포터다.
게다가 0킬2데스1어시스트로, 애당초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고 있지 않던 놈이다.
그런 쓸레쉬가 당장 몇 번 더 죽는다고 해서, 게임의 양상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니까.
적팀이 쓸레쉬라는 발판을 밟고 올라오기 전에, 게임을 끝내면 되는 일이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주이를 암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새끼.
움직임이 이상하다.
방금 전과 비교해서 확연히 움직임이 달라졌다.
좋은 쪽으로.
그렇다고 갑자기 실력이 상승했다고 보기에, 그 움직임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자신의 것이 아닌 실력을 외부에서 빌려온 것 같았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아니, 이 새끼 방플 하란다고 진짜 하는데?"
이 저격러 새끼가, 진짜로 방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ㅋㅋ 아~ 선생님이 하라면서요]
[근데 그마300이 다이아겜에서 방플하는건 많이 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ㄹㅇ ㅋㅋ]
[전체 채팅][주이] : 방플 아닌데 개솔 자제좀 ㅋㅋ
[ㅋㅋㅋㅋㅋ 아니라네요]
[아~ 마이크로 말하는 거 다 듣고 있지만 방플은 아니라고~]
[레카 ㄹㅇ 개역겹누 ㅋㅋ]
[근데 오늘만큼은 든든하네]
[ㄹㅇ ㅋㅋ]
[듀라한 학살자 ON]
[듀라한 님 ㅋㅋ 구석에 짱박아둔 대가리 미리 찾아 두세요]
[듀라한 머가리 딱 대]
"하…."
그래.
이 정돈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 정돈 이미 감수하고 있었다.
표적을 변경했다.
아까부터 계속 밟아 놔도 한사코 우리 정글을 압도해서 괴롭히는 적팀 정글, 니덜리로.
그런데 얘도, 갑자기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어떤 식으로 이상해졌냐면, 주이처럼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즉슨 이거다.
"아니 니덜리, 이 새끼도 방플 같은데?
[선생님 마음에 안 들면 다 방플입니까?]
[저희도 맘에 안 들면 방플이라 하실 겁니까?]
[우리 방플하고있는거 맞잖아]
[아 ㅋㅋ 그럼 니덜리 방플 맞네]
[기적의 논리 ㄷㄷ]
"아니 농담이 아니라. 얘, 플레이 진짜 갑자기 이상해졌다니까? 야 니덜리. 너 듣고 있지. 듣고 있으면 대답해 봐."
…
[아무런 대답도 없는데요?]
"아니 그럼,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없지. 너 방플이냐? 물으면 그렇소. 나 방플이오~ 대답하는 새끼가 어딨어."
[아니 그러면 왜 그런 말 한 건데요 ㅋㅋ]
[니가 듣고 있으면 대답해 보라며 얼탱이 없는 롬아 ㅋㅋ]
"아니 근데, 얘 진짜 방플 맞아. 얘 방플 맞다는 데에 내 얼굴 공개 걸 수 있어."
[다른거 거시죠 ㅋㅋ 어차피 이판끝나면 얼굴공개 해야될 텐데]
[어 잠깐 쟤 옐카 같은데?]
[옐카?]
[그 레카랑 같이 다니는 니덜리만 하는 애?]
[ㅇㅇ]
[전적 보니까 맞는것 같네 ㅋㅋ 레카랑 둘이 두오중인듯?]
"뭐야. 레카 친구 옐카는 또 누군데. 너희끼리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줘 봐."
[걔도 저격충인데 그마 200점 정도 됨]
"거봐. 거봐! 내가 뭐랬어! 저 새끼 방플 맞다니까!? 그리고 그마 200점이라고? 하 씨. 어쩐지 이 구간 애 치곤 잘하더라."
[그래서 뭐 어쩔 건데요 ㅋㅋ]
[선생님꼐서 방플 하시라면서요 ㅋㅋ]
"아니, 아무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우리 팀에 일부러 던지는 트롤 까지 있는데, 방플까지 하는 건 아니지."
나는 답답한 심경으로 채팅을 쳤다.
[전체 채팅][텔론] : 니덜리야...
[전체 채팅][텔론] : 우리팀에 던지는 애까지 있는데 방플까지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전체 채팅][텔론] : 너에게도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다면 자중하자...
[전체 채팅][니덜리] : 방플 아닌데 ㅋㅋ
[전체 채팅][주이] : 이상한 사람이네 ㅋㅋ
[아니라잖아요 ㅋㅋ이상한 사람 씨 ㅋㅋ]
[왜 생사람을 잡아~]
[저격이면 다 방플이냐고 아 ㅋㅋ]
[숨씨... 추하게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지금 얼굴 까]
[SYSTEM : 아군(쓸레쉬)가 적군(케이슬린)에게 처치당했습니다.]
[쓸레쉬] : 애즈님 뭐해요? 같이 안 싸움?
[애즈리얼] : 너희 부모님 영혼이면 충분할줄 알았지 3:2잖아
[쓸레쉬] : 우리 부모님 살아계신데요
[애즈리얼] : ㅇ 히틀러랑 산타클로스도 살아있음
[자쿠] : 아 니달리 왤케 잘해
[쟉스] : 아 탑좀 와봐 적 니달리 계속 오는데
[자쿠] : 저도 지금 발리고 있어서 갱 갈 여유가 없음...
니덜리는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를 압살하는 데에 특화된 챔피언이었다.
지금 니덜리의 조종사는 그랜드 마스터 200점.
다이아~마스터 게임에서 그마200점 니덜리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방플에 의해 내 움직임이 방해 당하자, 내가 억제하고 있던 그 재앙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쓸레쉬의 쌉지랄은 계속되고 있다.
"아, … 환장하겠네."
정말 그 말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아~마스터 게임에서 방플을 하는 그랜드 마스터 2~300점 미드정글 듀오인 적팀 저격.
아군에서 고의적으로 던지는 아군 저격.
아무리 나라도 이 두 쓰레기들을 동시에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이 게임을 어떻게 하려면 적어도-
'적어도 방플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어?"
방플 막는 방법.
있었다.
존나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
* * *
"아, 진짜 개답답하네."
숨컷의 텔론에게 또다시 주도권을 빼앗긴 한지민이 내뱉듯 말했다.
"하, 시발. 처음에 방심해서 대준 것만 아니었어도 진짜 내가 개발랐는데."
한지민은 생각했다.
초반, 방심해서 숨컷에게 기회를 주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이렇게, 방플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아, 걱정 마 새꺄. 이 판은 언니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알아서 해 준다는 말 대로.
방플을 시작한 이후로 게임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듀오의 말에도 한지민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게임의 승패 여부를 떠나서, 그마300점인 자신이 다이아~마스터 게임에서 방플을 해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굴욕적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개같은 판이네. 그냥 빨리 끝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지민은 또 다시 옆 모니터에 시선을 향했다.
라인을 클리어하고 사라진 텔론의 동선을, 방송 화면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
그런 그녀의 눈동자가 방황했다.
초점을 잡지 못하고 검은 화면 위를 떠돈다.
그래.
검은 화면.
숨컷의 레오레 플레이 화면을 비추고 있어야 할 화면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버그.
오류.
렉.
그것들을 원인으로 거론하기에는, 좌측 하단에 위치한 자그마한 캠 창만은 멀쩡했다.
캠 창은 아직 멀쩡하게 송출되고 있었다.
한지민이 사태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화면 송출 끈 건가?'
그렇다.
방송 화면이 검은 이유.
한지민의 말 대로, 숨컷이 화면 송출을 중지한 결과였다.
방송인이란 작자가, 방플을 막겠답시고, 화면 송출을 중지한 것이다.
"아니 미친…."
숨컷이 비어 버린 화면을 캠 창의 크기를 키워 채웠다.
그렇게, 숨컷의 방송은 겜방에서 캠방이 되었다
그것도 그냥 캠방이 아니다.
무려, 손캠방이다.
게임 없는 겜방이자, 얼굴 없는 캠방의 탄생이었다.
큭큭큭.
얼굴이 안 보여도 어떻게 웃고 있는지 상상이 되는 목소리로, 숨컷이 말했다.
"저격 쉑들 분명 방플 아니라 했는데, 자. 어디. 지금부터 한 번 보자고."
한지민이 넋이 나가서 중얼거렸다.
"진짜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