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화. 미션 ON?
레오레는 기본적으로 5:5 팀게임이다.
한 명이서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랜덤 매칭 시스템으로 무작위 선정된 다섯 명이 팀을 이루게 되는, 솔로 랭크 게임의 승패 여부에서 운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게임 수준이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하는 다이아2에서부터 그 비중은 현격하게 늘어난다.
프로를 비롯한 상위 랭커들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숨컷이 가 숨컷? 으면 님이 1, 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아 승격전 성공하면 10만원, 실패하면 얼굴공개 미션 ㄱ?
그런데 다이아2보다 한 수가 아닌 한 단계는 높은 다1은 기본이며, 그런 다1보다 또 한 단계 높은 마스터들도 만나게 되는 마스터 승격전에서 저 미션을 진행한다?
내 자신감이 걸린 문제인 얼굴 공개를 걸고?
'참내.'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완전-
'개꿀띠.'
상위 랭커들일지라도 다이아2에서부터 팀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마스터 승격전에서 낙방한다는 것.
그건 다이아~마스터 구간에서 5판 기준 승률이 50퍼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그렇다면 상위 랭커가 다이아~마스터 구간에서 5판 기준 승률이 50퍼 밑으로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10프로 이하다.
마음 같아선 0프로라 하고 싶지만, 레오레에서 승부에 관하였을 때 반드시란 없었다.
어떤 팀원을,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길거리 다니다가 칼부림에 휘말릴 확률이 0프로가 아닌 것과 같았다.
지극히 낮을 뿐.
그래.
지극히 낮다.
내가 이 미션에서 실패할 확률이 그랬다.
저 미션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내게 돈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 뭐 할까요?
-뭐든지요.
-뭐든지요?
-날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거, 뭐든 해도 좋아요.
-오우, 예아.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Mrs.10만 원'과 아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미션에서 실패할 일은 추호도 없다는 자신감을 확고하게 느끼며 말했다.
"아, 얼굴 공개요…? 패널티가 너무… 쎈데…."
잔뜩 주눅든 목소리로.
상대의 지갑을 벌리려면 호구 연기 만한 게 없다.
연기자가 여자('남자')면 그 효과는 더더욱 뛰어났다.
진짜임.
도박 영화에서 봤음.
그때,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최재훈(22세/천사/대머리는 여름에 시원해서 좋겠다고 생각함)이 말했다.
[네 방송을 봐 주는 시청자를 너무 봉으로 보는 거 아니니? 못된 십새끼 헝헝.]
'윽.'
양심에 유의미한 타격이 왔다.
하지만 양심의 상처는 돈에 치유되기 마련이다.
양심 조까.
"쓰으… 어쩌지…."
나는 연기를 이어갔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망설이고 있는 게 느껴져서, 판돈 좀만 더 올리면 할 것 같은.
그런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짤랑!
-무등산재훈학살자 님이 1, 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10만원 받고 5만 더 ㄱ
"아, 이러지 마세요…."
곤란한 듯이 말하자-
-숨컷 첫 번쨰 겨드랑이털 님이 1, 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받고 1만 더
그렇게 총 22만 5천원의 판돈이 쌓이고 난 뒤에야 후원이 잦아들었다.
레이스는 여기까진가.
그렇게 판단한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도 하지 않고 말했다.
"후후후, 딱걸렸다 이 쉑들. 싸게싸게 미리 후원금 충전해둬라. 뒤졌다."
[? ㅋㅋㅋ 아니 이 새기 또 연기한 거였누]
[판돈 올리려고 연기한 거였누]
[(파란색 귀여운 캐릭터가 벌벌 떠는 이모티콘) 선생님의 심후한 정신병의 끝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선생님 돈 안 밝히면 뒤지는 병에라도 걸리셨습니까?]
[어제부터 한결같은 새끼 ㄷㄷ]
[양심 암 말기라서 치료비 마련중이십니다 욕하지 말아주세요]
[양심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놀랍네요]
[근데 대리쉑 무슨 자신감이고 ㅋㅋ]
[이번에도 말장난으로 개수작 부리면서 얼굴 공개 안 하면 그건 진짜]
[순정을 짓밟힌 여자의 슬픈 춤사위를 보게 될 겁니다 선생님]
"아~ 걱정 하덜덜 마쇼.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애초에, 내가 질 일 자체가 없을 테니까? 그런 행복한 걱정일랑 접어두시라고."
[아니 ㅋㅋ 미친 진짜 말하는거 개웃기네]
[숨컷오빠 말하는거 너무 섹시해요 ㄷㄷ]
[강한 남성 ㄷㄷ]
[아무리 봐도 여자가 남자 목소리 내고 있는 것 같은데]
[ㄹㅇ 이새기 아무리 봐도 여잔데]
[근데 손이랑 가슴보면 진짜 남자임 ㄷㄷ]
[나도 가슴만 보면 남자긴 해]
[범위공격 자중하시죠 선생님]
둥!
매칭이 잡혔다.
게임을 수락하는 순간이었다.
차랑!
방금 전까지 터졌던 것들과는 다른, 좀 더 묵직한 후원음이 들렸다.
-김해 건물주 님이 1억 원을 후원했습니다.
=무패 승격 50만원, 실패시 얼굴 공개 ㄱ?
그리고.
방금 전까지 터졌던 것들과는 다른, 좀 더 묵직한 메세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잉?"
50만원?
'에이, 당연히 구라지.'
싶다가도, 미션 제안을 후원 최소액인 천 원이 아닌 만 원으로 한 부분에서 왠지 모를 신뢰가 느껴진다.
[와 ㄷㄷ 해장님]
[해장님 왜 여기 계시누 ㄷㄷ]
[라이오 십새끼 방송 안 켜서 난민되셨네 ㄷㄷ]
게다가 시청자들이 저 미션 제공자, 김해 건물주라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도 심상치 않았다.
해장.
회장.
방송인들에게 거액의 후원을 일삼는 사람들을 칭하는 명칭이었다.
미션에 대한 의심은 어느새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방송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 방에 저런 큰손이?'
작은 플랫폼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남자라 그런 건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 미션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션금만 보면 곧바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미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무패 승격이라니.
3전 3승.
즉, 다전 승률 100%
운빨좆망겜인 레오레에서 다전 승률100%이 갖는 난이도는 엄청났다.
실력 문제를 떠나서, 승패 여부에 운이 관여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 버린다.
나도 그렇고 심지어 FACE도 그렇고.
다이아~마스터 구간에서 100판 승률 90퍼를 보장할 순 있어도, 3판 승률 100프로를 보장하진 못할 것이다.
실력이 아닌 운에 맡겨야 하는, 이 미션은 말 그대로 도박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거절하고 싶었다.
50만 원은 크다면 큰 액수지만, 적다면 또 적은 액수다.
가까스로 결정하고 또 해결한 얼굴 공개 유보 문제를 판돈으로 걸어가면서까지 욕심낼 만한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쫄았누? ㅋㅋ]
[쫄? ㅋㅋ]
[아ㅋㅋ 이거 안 받으면 방송인 아니지 ㅋㅋ]
[ㄹㅇ ㅋㅋ 이런 미션 안 받을 거면 방송 왜 하냐고~]
시청자들의 반응이 문제였다.
내 자존심을 툭툭 건드리는 건 신경 안 쓴다.
내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저런 도발에 걸려들 정도면 프로게이머 도전 못 했지.
내가 신경 쓰는 건, 시청자들에게서 강하게 느껴지는 기대감이었다.
저 미션에 대한 기대감.
게다가-
'다 해장님이란 걸 알아볼 정도면 옐로시티에서 상당히 유명한 큰손이겠지?'
그런 큰손의 미션을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으….'
더군다나, 나는 이미 커다란 기회를 한 번 차 버렸다.
얼굴 공개라는 기회를.
이미 한 번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이번에도 저 기회를 차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실망시킨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다.
다시는 안 올 지도 모른다.
'시발, 모르겠다.'
"무패 승격 미션 콜!"
충동적으로 내뱉자마자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폭발적인 채팅창의 반응을 보니, 마냥 후회되진 않았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차근차근 진행되던 픽밴이 끝나고,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옐로우TV갤러리.
플랫폼 특성상 작은 규모에 맞게 방송인도 적어서, 평소 언급되는 PD들만 언급되는 그곳에 낯선 PD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제목 : 속보)숨컷 방에 해장님 출몰
내용 : 50만원짜리 얼굴공개빵 미션 레전드 ㅋㅋ
ㄴ : ㅋㅋㅋ 해장님 라이오 뒤지니까 난민되셨네
ㄴ : 라이오 살려내 ㅠㅠ
ㄴ : 근데 왜 하필 걸로가셨다냐 남PD가 걔 하나도 아닌데
ㄴ글쓴이 : 목소리 좋음
ㄴ : 목소리도 그렇고 말하는게 뭔가 ㅈㄴ 털털해서 매력있음
ㄴ : ㄹㅇ 남자들이 털털하게 말하면 뭔가 어색한데 얘는 ㅈㄴ 자연스러움
ㄴ글쓴이 : ㅇㅈ
그 낯선 닉네임인 '숨컷'은 해장님이라는 키워드와 엮이며 언급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해장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으나.
시간에 흐름에 따라 그 관심은 차차 숨컷에게로 옮겨갔다.
제목 : 근데 숨컷 얘 ㄹㅇ 정신 오락가락하던데
아까 갑자기 즙짜는 연기 했다가 화냈다가 다시 즙짜는 연기하곤 마지막엔 좋다며 박수치는데 ㄹㅇ 나까지 정신나가는줄
ㄴ : ㄹㅇ 조커보는줄
ㄴ : ㄹㅇ ㅋㅋ정신병 있는줄 알았음 근데 남자가 그 ㅈㄹ하니까 귀엽더라
ㄴ : ㄹㅇㅋㅋ 여자가 즙짜는 연기했다? 어우쒯 ㅋㅋ
ㄴ : 목소리 좋고 말투도 재밌어서 뭘해도 귀엽더라
ㄴ 글쓴이 : 글킨해 ㅋㅋ
제목 : 아 숨컷 얼굴 개궁금하네 ㅅㅂ
내용 : 근데 또 한편으론 공개 안했으면 하기도 하고 ㅋㅋ지금 목소리랑 성격 개꼴리는데 얼굴 상상한거랑 다르면 너무 슬플것같음
ㄴ : ㄹㅇ루다가
ㄴ : 페카 남자 버전으로 가자 ㅇㅇ;
ㄴ : 페카가 머임?
ㄴ : 옐로시티 대표 듀라한 페카를 모른다고? 이, 이, 첩자새끼 잘 걸렸다
ㄴ글쓴이 : 첩자새끼 쳐내
숨컷은 게임PD였다.
그런데 그에 대한 관심 대부분은 그의 남성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었다.
제목 : 승격전 시작됐다
그 글을 기점으로 비로소 그의 실력에 대해 관심을 표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목 : 야 숨컷 대리받았다며
오늘첨보는데 ㅈㄴ잘하는데?
왜 대리받았다는 소리 나왔던거?
ㄴ : 몇달동안 다4다가 3일전에 갑자기 승률90프로로 다1 올라와서
ㄴ : 어제 다1에서 캐리하면서 실력 인증하긴 했는데 남자치고 너무잘해서 옆에 여친끼고 한다는 소리 나왔었음 ㅋㅋ
ㄴ글쓴이 : 아 ㅋㅋ 근데 지금 하는거 보니 ㄹㅇ 대리 소리 나올만 하네 남자가 무슨 다마게임을 양학하듯하냐
ㄴ : 저거 숨컷이 아니라 가슴없는 여친일지도 모름 ㅋㅋ
ㄴ : ㄹㅇ ㅋㅋ
ㄴ 글쓴이 : ㅋㅋ 미쳤누
제목 : 와 숨컷 얘 진짜 뭐임?
다마게임에서 그냥 브론즈애들 양학하듯 하네?
이미 한번 빡캐리해서 1승챙겼는데 이번겜도 빡캐리하고 사실상 겜끝나서 2승인것같은데 진짜이거 3연 빢캐리 가는건가?
ㄴ : 다마게임 양학좀 할수도 있지 겜잘하는년 첨보나 ㅋㅋ
ㄴ 글쓴이 : 년이 아니라 놈임 ㅄ아
ㄴ : ?? 남자라고?
ㄴ 글쓴이 : 숨컷 검색 ㄱ
ㄴ : 지금까지 숨컷 방송 안 보고 뭐했냐고 아 ㅋㅋ
ㄴ : 인생 절반 손해봤네 ㅄ ㅋㅋ
제목 : 숨컷 얘 이게 본캐임?
다1이 본캐임?
ㄴ : ㅇㅇ 그렇다는데 아무리 봐도 부캐같긴함
ㄴ : 최소 마스터임 그냥 하는거보면
ㄴ : 아니 씹 ㅋㅋ 남자가 마스턴데 난 뭐한거지 ㄹㅇ
ㄴ 글쓴이 : ㄹㅇ;; 자괴감 씨게 드네
숨컷은 어느새 갤러리 내에서 옐로우TV의 대표 인기 PD들과 비슷한 빈도로 언급되고 있었다.
그때, 숨컷과 관련된 글이 또 하나 올라왔다.
제목 : 어 ㅋㅋ 나 숨컷 승급전 막판 저격 성공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