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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53화 (50/361)

053화. CAM ON? 3

눈물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특정 신체적 자극이나, 정신적 자극에 의해 눈에서 분비되는 체액의 일종일 뿐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주인이 '남자'라면.

'남자'의 눈물이 향하는 대상이 '여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주입 받는다.

'남자'는 약자라고.

'남자'는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너희 '여자'들과 비교하면 철저히 약자라고.

그러니, '남자'를 조심히 대해야 한다고.

그러니, '남자'를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고.

절대로.

절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자'를 울려선 안 된다고.

상식을 넘어서 암시에 가까웠다.

낙인에 가까웠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눈물에 극도로 취약한 존재가 된다.

남자를 울린다는 사실에 절대적인 죄악감을 느끼게 되는 존재가 된다.

눈물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남자'의 눈물은 적어도 '여자'에 한해선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

그 점을 이용해서 여론을 휘어잡자는 게 바로 내 생각이었다.

"헝… 허… 허엉… 훌쩍…."

그렇게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짜로.

공들여서 울음 소리를 흉내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걱정이 됐다.

이게 정말로 먹힐까 싶었다.

[아니...]

[얘 우냐?]

[선생님... 울지 마십쇼 저희가 잘못헀습니다]

[아니 ㅅㅂ 내가 도배는 하지 말럤잖아 ㅄ들아]

[처음 오는 애한테 뭐하는 짓임]

먹혔다.

그냥 먹히는 것도 아니고 오예 시발 존나 잘 먹혔다.

'와, 이게 통하네.'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아, 하긴.'

인간은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할 때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표정을 봐야 하는 것이다.

화나셨을 때, 목소리는 덤덤하지만 얼굴을 보면 언짢은 티가 역력하던 어머니의 모습.

장난칠 때, 목소리는 심각하지만 얼굴을 보면 웃음을 참는 티가 역력하던 재은이의 모습.

여러 기억과 경험이 떠오르며 납득이 됐다.

확신이 들었다.

"흐어어엉…."

그렇게 본격적으로 즙을 짜기 시작했다.

[아니;; 니들 왜 애를 울림]

[니들떄문에 ㅅㅂ 옐로시티가 망하는거야 악질새끼들아]

[우리가 대신 사과할게요]

[울지 마요]

곧바로 반전되는 채팅창의 분위기.

반성하고 서로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된다.

사과가 나오기도 한다.

아, 이 불쌍한 것들.

이성의 눈물에 이렇게도 취약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 세계에 와서 '이성'의 눈물이라는 개념에 무적이 된 나로서는 우월감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동정심도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그 동정심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철저히 잔인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마음 독하게 먹고 생각했다.

'하하, 어리석은 새끼들 같으니.'

폭우에 화재가 수그러들듯.

내 즙에 의해 채팅창의 광기가 수그러들었다.

분위기가, 주도권이 완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된다.

"아뇨 헝헝헝… 여러분들이 미안할거 없어요… 그냥 허어엉… 속상, 속상해서 그래, 크흥."

이대로만 가면 된다.

[울지 마요;;]

[아니 장난친 건데 왜 울어]

[선생님 마음 약해지게 이러지 마십쇼]

"나는 여기 분들 다, 게임 사랑하는 분들이라서, 크흥, 게이머의 심경으로 설득하면 다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허어엉… 다 내 얼굴만 찾으시니까… 내 얼굴만 찾으시니까…. "

이대로만 가면….

"…아니, 시발 못 해먹겠네."

이대로만 가면 됐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뒤늦게 자괴감에 휩싸였다.

[???]

[머임??]

[우는거 맞음?]

"우는 거 맞지. 니들 꼬라지를 봐요, 어떻게 울음이 안 나올 수가 있어. 여러분 명색이 게이머 아니에요? 이스포츠 종주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게이머 아니냐고 시발. 근데 게임 방송에 와서 남자한테 환장해 가지고 이게 뭐하는 추태야.

내가 개 쩌는 플레이 보여준다는데 시발!!!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는 얼굴에 정신 팔려가지고!!! 내가 존나 챌린저만큼 잘한다고 !!! 이 발정 난 새끼들아아악!!!!!!! 니들이 그러고도 진짜 게이머야!!!!!!"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자괴감에 잠식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그걸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반쯤 미쳐서 남한테 공연히 지랄을 하게 된다.

[이새끼 또 왜이래 ㅋㅋ]

[아니 이새끼 우는거 연기였네 ㅋㅋ]

[진짜 상상이상으로 정신나간새끼네 ㅋㅋ]

[선생님 진정하십쇼]

"진정 하고 있어. 너희들 때문에 진정, 빡이 돌아서 정신이 혼미해져요. 니들이 그러니까 중국한테 한국 인재들 다 뺏겨서 렐드컵 1위도 쳐먹히는 거 아니야!!!"

[어허]

[선생님 팩폭은 선넘으셨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태권도가 남았다]

[렐컵 우승팀 에이스 두명이 한국인인데 그거면 한국 우승이지 ㅋㅋ]

"그렇긴 해! 아니 시발, 우승 MVP인 두 사람이 한국인인데 무슨 중국 우승이야. 시발 그냥 아이엇도 중국 회사라 하지."

[중국 회사 맞는데요]

"닥쳐!!!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공감을 해 주란 말이야 공감을!!!"

[아 ㅋㅋ;;]

[ㅈㅅ ㅋㅋ;; 저희가 모쏠찐따라]

"아니 그리고, 왜 렐컵에서 우승을 만드는 선수를 도대체 왜 빼앗기냐고!!! 왜인 줄 알아? 왜인 줄 아냐고!!! 대답해봐!!! 아니, 닥쳐 그냥. 들을 것도 없어. 바로 너희 같은 사람들 때문이에요!!!"

[ㄷㄷ]

[뭔지 몰라도 죄송합니다]

[우리가 뭔 죄를 저질렀다고 도대체 ㄷㄷ]

[너무나 많이 사랑한죄]

"아무튼! 여러분 보니까 지금 우리 대한민국 게임계의 현실이 얼마나 암담한지 느껴져서!!! 내가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가 없어!

!! 게이머라는 새끼들이 게임 방송 와서 남자 얼굴이나 찾고 있으니. 시발! 어디든 그래! 축구도 잘생긴 선수가 뜨고! 수영 선수도 잘생긴 선수가 뜨고! 배구도 잘생긴 선수가 뜨고! 여자 프로게이머라고 그냥 화제가 되고!!! 니들이 그러면 시발, 남자만큼 공들여서 여자 만든 하느님 입장이 뭐가 돼요! 니들 죽으면 지옥가서 사탄 만날 것 같지? 아니! 빠따 어깨에 두르고 있는 하느님들이 너희들 다 잡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미친놈아]

[ㄷㄷ 진정하세요]

[우리가 잘못했음]

[여자 프로게이머라고 어케 그냥 화제가 되누 ㄷㄷ]

[얼굴 공개 안 해도 되니까 진정하셈]

[저희 겜방 보러 왔어요 ㅇㅇ;; 얼굴 안보여주셔도 됩니다]

"…오옹?"

자괴감에 지배당해서 한바탕 지랄을 해 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즙 짜는 연기를 감내해 가면서까지 바라 마지않던 최선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달가운 한편, 왠지 모르게 무안해서 나는 다시 우는 소릴 내며 말했다.

"엉엉엉… 크흥, 분명, 말하셨어요. 겜방 보러 온 거라고… 훌쩍… 얼굴 안 보여줘도 된다고…."

[아니 씨발 ㅋㅋ 아까도 이렇게 우는척 하는 거였네

[아니 ㅋㅋ 왜 또 우는척인데]

[진짜 ^^ㅣ발 정신병 있으십니까?]

[진짜 종잡을수가 없는 새끼네]

[장혜환~장하겠네]

[죄송해요 저는 제 기분과 상관없이 갑자기 지랄하는 병이 있어요]

[알겠으니까 ^^ㅣ발 그만 찡찡대요]

시청자를 확인해 봤다.

캠 켜기 전에 160명이었는데, 지금 250명이다.

얼굴 캠 켤 것처럼 말 해 놓고 손캠을 켜서, 사실상 시청자들을 기만해 버린 결과 치곤 괜찮은 편이었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개 쌉 오졌다.

제갈공명의 후예(어릴 때 만화 삼국지 수십 차례 정독함) 최재훈.

이렇게 또 지혜롭게 난관을 극복해 내고,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이다.

짝짝짝.

매우 흡족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여러분!!! 숨컷의 방송 시청자가 무려! 250명을 돌파했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또 좋다네?]

[진심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숨컷아...]

[아니 진짜 이 새기 22아이덴티티인거같은데]

[(노란색 귀여운 캐릭터가 걱정하는 이모티콘)선생님의 정신상태에 대한 염려가 큽니다]

[게임도 좋지만 정신병동 내원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하! 역시 나 걱정해 주는 건 우리 시청자 밖에 없다니까. 저 숨컷, 감동이 큽니다. 이 감동스러운 기분을 레오레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숨컷의 캠방 아닌 겜방!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티어 어딘데]

"아!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제 티어 모르시는구나. 놀라지 마십쇼. 이 남자. 게임 존나 잘해요. 무려, 다이아1입니다!"

[대리받았자너 ㅋㅋ]

"헤헤헤. 실컷 지껄여두십시오 멍청한 대리무새 새끼들 같으니. 그 지랄이 가능한 것도 여기까지일 테니까."

[뭔 자신감이누 ㅋㅋ]

"뭔 자신감이긴. 제가 어제 대리 아니라고 직접 플레이해서 증명까지 했는데, 니들이 내 옆에서 여친이 대신 해줬다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바로 캠 사와서 킨 거 아니겠습니까! 쌉소리 원천봉쇄! 내가 이렇게 손캠까지 켜고 어제랑 똑같이 플레이 해 버리면, 여러분들이 할 말이 뭐가 있겠어?"

헵시홍보대사 호날두 - 오늘 팬티 무슨색이냐고?

gps5532 - 저녁 뭐 먹을까?

후두암걸린사람 - 치킨 추천좀?

"그렇죠! 헵시홍보대사 호날두 님이, 숨컷 대리 아니고 정말 게임 잘 하는 거였구나!"

"쥐피에스오오삼이 님이 남잔데 정말 그렇게 잘할 줄이야! 오해해서 미안하다!"

"후두암걸린사람 님이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음!"

"그렇지! 이거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지!

헵시홍보대사 호날두 - 누구야! 내 닉 사칭한 새끼 누구야!

gps5532 - 나 해킹당한것같은데

후두암걸린사람 - 정신조작능력 ㄷㄷ

"자 여러분, 여기 보십쇼."

레오레를 키코 치킨퀸치퀸, 다이아1 계정으로 들어가 점수를 보여줬다.

다이아1 100포인트.

5판 3승제로 구성된 승격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전적 0승 0패.

오늘 내 완벽한 데뷔전을 위해 어제 준비해 놓은 것이다.

"어제 제가 이렇게 마스터 승격전 찍어놨습니다. 어제 저 대리라고 하셨던 분들! 잘 보십쇼, 제가 이 승격전에서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오늘 새로 오신 분들! 제가 왜 대리 소리 들었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캬 ㄷㄷㄷ]

[미쳤다 ㄷㄷ]

[오빠 너무 먿져요...]

[이러고 3연패하면 레전드 ㅋㅋ]

[3연승하면 천원]

[천억연승하면 천억]

[3연패하면 어엌ㅋㅋ]

[남자가 마스터는 좀 레전드긴 하네]

그래.

이거지.

게임이라는 주제로 대동단결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아닌 게임 실력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분위기다.

내가 원하던 방송이다.

이보다 더 완벽해 질 수가 있을까?

-숨컷 가숨컷 님이 1, 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아 승격전 성공하면 10만원, 실패하면 얼굴공개 미션 ㄱ?

헬뻐킹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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