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CAM ON? 2
깜깜하던 웹캠 창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캠이 담은 현실의 모습이 창으로 옮겨진다.
최재훈의- 아니, 숨컷의 실제 모습.
시청자들이 원하던 게 바로 거기에 있었다.
[????????????]
[머임??????????]
[머선129]
그런데 채팅창에 기호 ?로 의문을 표하는 시청자들이 속출했다.
[먼데 ㅅㅂ]
[미쳤누 숨컷이]
[첫판부터 장난질이야?]
[재훈이 그패봐바]
그들은 곧이어서 욕설이나 비난으로 불만을 표하게 됐다.
시청자들은 분명 숨컷의 실제 모습을 원했다.
캠 화면에는 분명 숨컷의 실제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아니 듀라한 미쳤나 ㅅㅂ ㅋㅋ]
[얼굴자랑 그렇게 해놓고 머하는 짓이야!!!!!]
[좋은거면 좀 숨기지말고 같이 봐 ㅅㅂ아]
[진정하죠 머리가 없는 새기일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생각도없는거임]
그렇다.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올려 놓은 남성의 상체.
바로 웹캠 창에 비춰지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분명 시청자들의 원하는 숨컷의 모습이었으나, 결정적인 누락이 있었다.
시청자들은 붕어빵을 요구했다.
숨컷은 붕어빵을 대령했다.
그러나 그 안엔 팥이 들어있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숨컷의 실체가 맞았으나 정확히 따지자면 숨컷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얼굴만 쏙 빼놓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종하는 손만 비추는, 소위 손캠 형식으로 캠을 켰다.
시청자들의 혼란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만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채팅창을 보던 최재훈이 짓궂게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짜잔~"
* * *
방송 시작 전.
막상 캠을 켜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이제와서 얼굴이 공개되는 게 무섭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고집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굴을 공개하면 분명 방송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빠르게 유명세를 타고 예상보다 훨씬 이른 기간 내에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정말로 내 성공이라 볼 수 있을까?
원래 얼굴의 주인인 최재훈2의 성공이라 봐야하는 거 아닐까?
물론.
그 경우, 내 게임실력이 받쳐줘서 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또 누구의 덕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걸까.
내 비중이 조금이라도 더 커서, 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에서부터 비롯된 고민들 때문에, 고집이 들었다.
역시.
나는 내 게임 실력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사람들이 나 최재훈, 숨컷하면 잘생긴 얼굴이 아닌 기가 맥히는 게임 실력부터 떠올렸으면 했다고.
잘생겼는데 게임까지 잘하는 놈이 아니라, 게임 잘하는데 잘생기기까지 한 놈으로 떠올렸으면 했다고.
안다.
나는 이미 최재훈2의 덕을 충분히 보았다.
최재훈2이 가진 '남성'으로서의 입장이 없었다면, 내 방송은 빠른 시간 내에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시청자 10명을 못 넘긴 '여'PD가 있었다.
그 PD가 '여자'가 아닌 여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남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 이제와서 내 힘으로 성공하고 싶다니.
정말로 같잖은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정말로 가당찮은 아집이 아닐 수 없다.
다 아는데도, 내 고집은 결국 꺾이지 않았다.
고집을 고집이라 부르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지극히 비합리적이었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손해를 보면 보지, 이득을 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마.
싸나이 아이가?
자존심 하나 때문에 차도 날리고 어? 집도 날리고 할 줄 알아야 그게 싸나이지.
그렇게 당면하게 되는 문제.
지금 내게는 대리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캠을 켜지 않으면 실력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해서 떠올린 게 바로 이- 손캠이었다.
이거라면 대리 의혹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내 고집을 관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캠을 켜달라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만족시켜 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짜짠은 ^^ㅣ발 진짜 미쳤나 ㅋㅋ]
[애비야 국이 짜잔아의 짜잔인가요? 썅롬아]
[우리가 ㅅㅂ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우리 진정하죠 이새기 아무래도 대가리가 없는 새기신거 같으니 안그럼 말이 안 됨]
[(귀여운 노란 캐릭터가 화내는 이모티콘)선생님 장난이 도가 지나치십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도 품격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않았네.
만족시켜주지 않았다.
만족의 'ㅁ'도 보이지 않는 반응이었다.
사실, 나도 안다.
얘네가 캠을 켜달라는 이유가 내 얼굴 보기 위해서라는 것도.
내가 잔뜩 얼굴 자랑 해 놨으니.
[뻔뻔함이 도가 지나치십니다]
아주 잘 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뻔뻔한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그래도 나도 아주 대책이 없던 건 아니다.
"잘생긴 '남자'는 솔직히 뻔뻔해도 된다, 인정?"
[ㅇㅈ]
[인정하니까 ^^ㅣ발 캠켜서 잘생긴거 인증하라고 뻔뻔하고 싶으면]
[나 진짜 듀라한인데, 우리 듀라한사이에서 이정도면 미남 듀라한 맞다 목 절단선이 고우시네]
[뭐 고아시네? 패드립은 자제해주세요]
[ㅋㅋ 선넘누]
[선은 숨컷이 먼저 넘긴 했지 ㅇㅇ;]
엄청난 반발.
이 정도는 예상한 바다.
그렇다면 이 시청자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그걸 알기엔 먼저 이 시청자들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이 시청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시청자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론 뭐가 있을까.
병신?
그래. 맞다.
발정?
그 또한 맞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게임.
얘네는 게임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방송을 찾아 들어온, 어엿한 게이머였다.
그렇다면 게이머란 자고로 어떠한 이들인가.
확장팩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라면 재수 한 번쯤은 시원하게 조질 수 있는.
검사나 판사보다 귀검사 혹은 검투사가 되길 원하는.
게임을 위해서라면 소중한 부모님의 골수도 기꺼이 빨아먹을 수 있는.
게임을 위해서라면 한 번 뿐인 인생도 기꺼이 꼬라박을 수 있는.
강인하고 영광스러운 게이머의 영혼을 지닌 이들이다.
"여러분. 지금부터는 하는 말 진짜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하는 말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안다.
"저 내세울 거 게임 실력 하나뿐인 놈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 없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제 게임 실력. 저, 이걸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걸로 제 이름 알리고 싶습니다."
이들이 지금은 이렇게 이성의 얼굴에 미친 발정 난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 근본은 겜창이라는 사실을.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다이아1이지만 금방 챌린저 찍어서, 여러분들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얼굴에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한번만. 한번만, 믿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진심을 담아 호소하면, 그들의 게이머 영혼이 응답해주리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러니 나는 진심으로 호소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화답한다.
그 화답으로, 채팅창이 폭발했다.
[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얼굴]
[가슴을보여주던가얼굴을보여주던가헤가슴을보여주던가얼굴을보여주던가헤가슴을보여주던가얼굴을보여주던가헤가슴을보여주여주던가얼굴을보여주던가헤]
[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후루꾸후구]
[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미칠]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
[알래스카 전역에서 풍부하게 발견되는 연어는 그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우수한 어종입니다. 영양과 맛 모두 우수할 뿐만 아니라 낚시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특히 알래스카 주는 법적으로 어류양식업을 금지하기 때문에 알래스카에서 어획되는 연어는 100% 자연산으로 건강에 매우 유익합니다. 알래스카 산 연어 5종은 왕연어-]
진짜 시발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존나 폭발해 버렸다!!!
광기와 원성으로 빡빡한 도배글들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채팅창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기억하기로 3천 명이 있었던 권지현 씨의 채팅방도 이 정도가 아니었다.
간간히 멀쩡한 채팅들이 보였지만 도배의 화력에 금방 파묻혀 도통 확인할 수가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내 방송이 시발 상상 이상으로 개판이 나 버렸다는 것 뿐.
제작자의 예상을 추월하는 추진력이었다.
나는 몹시 격렬하게 조져먹었음을 느끼며 다급히 외쳤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얼굴 공개할 테니까!"
[아 ㅋㅋ]
[진작 그럴 것이지]
[믿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ㄱㄱㄱㄱ]
[빨리 캠 올리셈]
"구라야! 근데 일단 진정하고 내 이야기 좀 들어봐요!"
-…님이 1, 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라이오방송켜!]
[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오우예다함께포린세스오이오우에쉬에이]
[일본어로는 '사케'나 '사몬'이라고도 하는데, 생물학적 구분 상으로는 사케의 연어나 사몬의 연어 모두 동일한 과이지만 일본 내에 서식하는 연어는 '사케', 북유럽 등지에서 수입해오는 연어는 '사몬'으로 구별해서 부릅니다.]
[얼굴안보여주면물구나무서서똥쌈얼굴안보여주면윈드밀돌면서오줌뿌림얼굴안보여주면줄넘기하면서엉엉웅얼굴안보여주면민트초코에파인애플피자말아먹음]
[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쟉스쟉스뾰삐털]
오.
시발.
좀비 떼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지옥에서 히틀러 저녁상 차려 주고 있는 괴벨스가 내려와 내 몸에 빙의해도, 이 새끼들을 말로써 설득하진 못 할 것이다.
결국 나는 대화로 얘네들을 설득하는 게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하… 알겠어요…."
나는 '그걸'하기로 했다.
"얼굴… 공개하겠습니다…."
[아 ㅋㅋ 진작에 그럴 것이지]
[왜 우릴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 아 ㅋㅋ]
[(노란색 캐릭터가 화내는 이모티콘) 꼭 저희를 이렇게 모땐 사람으로 만드셨어야 했습니까?]
"얼굴 공개… 크흥, 훌적…… 얼굴… 공개할게요 헝…."
[머임?]
[??]
[머임 얘 움?]
[야 우냐?]
'그거'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익힌 기술.
석훈이 십새끼와 두산이 십십새끼.
두 스승에게서 사사한 필살기.
'남성'이 '여성' 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 위력을 가진 기술.
바로 즙짜기였다.
정확히는 즙 짜는 연기.
"크허어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