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48화 (45/361)

048화. LIVE-ON 4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깃드는가.

철학사를 이분하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말한다.

심장이 위치한 가슴이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서, 이분된 철학 역사의 나머지 한 부분을 차지하는 플라톤은 말한다.

뇌를 담는 머리다.

고대부터 시작된 이 의문은 해결되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깃드는 걸까.

심장?

아니면 머리?

바로,

게임 점수다.

사람의 영혼은, 그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임의 점수에 깃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그런데.

그런 난데.

남에게 내 점수를 대신 올려달라고 부탁했단다.

대리를 받았단다.

"시발?"

이는 아싸에 찐따에 겜창이라 내세울 거라곤 게임 실력을 증명하는 게임 점수 하나밖에 없는 나, 최재훈에게 있어 더는 없을 모욕이었다.

심지어 빅뱅 이후, 찰나의 순간 동안이라도 존재한 역사가 없었던, 최재훈의 '누나'라는 존재에게.

게임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연상의 여친에게 '남자'처럼 앙탈 부리며 떼를 써, 대리 플레이를 부탁하기를 채택했단다.

단언컨대, 없을 일이었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 최재훈.

게임 점수를 올리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며 부모님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할지언정, 대리를 받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음해였다.

그러나.

다른 장소였다면 몰라도, 다름 아닌 내 방송에서 제기된 의심이었다.

내 방송 생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성적인 대응을 통해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일단 말로써 설득해 보기로 했다.

"아니 갑자기 깨달음 얻어가지고 실력 갑자기 오를 수도 있는 거지. 대리는 너무 간 거 아니야?"

[숨컷아... 내가 니 방송 500일동안 봤지만 이건 커버 못쳐주겠다]

"뭔 개소리레요 그건 또 시발. 500일은, 방송킨 지 500초 정도 됐겠구만."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실력 올라서 무려 다이아 구간에서 승률 90%로 다1에 안착했다? ㅋㅋ오우쒯]

[아 ㅋㅋ 소나카하다 의학에 통달해서 존스홉킨스 수석입학하는 소리 하고 있누]

[나 치킨먹다 애니비야 장인 됐다]

[미안하다 숨컷아 ㅋㅋ 우리 부모님의 자랑 나 이희정의 두뇌가 판단컨데 이건 대리 외엔 답이 없단다]

[아 대리좀 받음 어떄 ㅋㅋ 그래도 남자가 자력으로 다4까지 간 거면 충분히 대단한 거지]

[아 근데 다4도 대리받은거 아님? ㅋㅋ]

[아 ㅋㅋㅋ 그전 누나한테 ㅋㅋ]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아... 여성편력이 이렇게 난잡하면 우리도 마음주기가 힘들어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사랑했다 야발놈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아 누나가 비록 다이아2밖에 안 되지만... 다음 여친 후보에 입후보해 본다.

"아니… 하, 진짜."

나도 원래 세계에서 2일 전까지만 해도 다이아4였던 여자가 갑자기 승률 90프로로 다이아1에 안착한다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그 여자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

여자는 어떻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했을까.

'증명?'

그래.

생각해 보니 간단한 이야기였다.

그냥 증명하면 되는 거다.

다이아 1까지 승률 90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실력을.

'아니 근데, 어제 허니뱅 방송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나?'

허니뱅 방송을 봤다면, 내가 어제 다이아가 득실대는 경쟁률 160:1의 미드빵 대회에서 챌린저를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 사람의 증언이면, 내 실력은 어느정도 신빈성을 갖추게 될 건데.

어찌, 대회에 대해 언급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다른 플래폼이기로서니, 이 정도라니.

아메리카TV와 리치TV, 그리고 리치TV와 옐로우TV는 사이가 좀 안 좋은 수준이라고 들었다.

반면에 옐로우TV와 아메리카TV는 사이가 좋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관심이 자체가 없다던데, 정말인 듯했다.

'아, 그렇지.'

허니뱅의 미튜브 채널로 갔다.

그런 대형 이벤트를 벌이며 영상까지 찍어 놓고, 미튜브 채널에 안 올릴 리가 없으니까.

"아, 없네."

하지만 모종의 이유 때문인지, 어제 대회에 대한 영상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편집에 시간이 좀 걸리는 건가?

가장 최근인 방금 전에 올라온 [긴급)해명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은, 지금 나랑은 아무런 상관없는 영상이었다.

대회 우승 경력.

그걸 통해 내 실력의 신빈성을 주장하는 길이 막혔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그러면 직접 보여줘서 증명하면 문제없는 거지?"

마침 방송도 켜고 있겠다.

그냥 직접 보여줘 버리자.

그렇게 증명하자.

[뭘 보여줘]

[팬티?]

"아니 진짜. 발정 나던가 의심하던가 하나만 합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숨컷이 흥분했누?]

[퍄퍄퍄퍄]

[숨컷아 게임좀 못해도 괜찮다... 업계포상좀 자주 해 줘라]

[얘 욕은 뭔가 다른 남자애들 욕하는 거랑 달리 쫀득하네 ㅇㅇ;]

[ㄹㅇ 남자들 욕하면 왠지 눈쌀찌푸려지는데 얘가하면 걍 친근함]

[친구가 하는것같음 ㅇㅇ;]

명색이 게임 방송인데 '캠 켜 줘'와 '욕해 줘'가 시청자들이 내게 요구하는 사항 전부였다.

'남자'가 인터넷 방송 하는 게 정말로 꿀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시발, 내가 지금 솔로 랭크 게임 들어가서 승률 90퍼급 퍼포먼스 보여주면 문제없는 거냐고."

[다이아 1계정으로?]

"오브뻐킹콜스."

[올 ㅋㅋ]

[숨컷아 그냥 무리하지 말고 골드1계정이나 돌리자...]

[괜히 점수 떨궈서 누나 귀찮게 그만하고]

요구사항이 한 개 더 늘어났다.

존재도 하지 않는 여자친구를 귀찮게 하지 말란다.

접속해 있던 골드1 계정에서 로그아웃하고, 다이아1 계정으로 접속했다.

머지않아 매칭이 잡히고, 벤픽이 시작됐다.

다이아 1정도라면 방송을 위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포지션의 원하는 캐릭터를 플레이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목적은 방송의 재미 이전에 내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리를 받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레오레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캐릭터라 하면은 단연코-

-죽음은, 늘 내 곁에 있지.

[ㅁㅊ ㅋㅋ 야수오 선픽 ㅋㅋ]

[숨컷아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ㅋㅋ 닷지때리고 골드1하러 가자]

[숨컷아... 다이아에서는 그거 함부로 쓰면 안되]

[숨컷이 야수오충이었누 ㄷㄷ]

그렇다.

방랑 검사, 야수오.

레오레에서 조작 난이라도라는 스텟으로 평가하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챔피언이었다.

마찬가지로 퍼포먼스, 그러니까 겉멋이라는 스텟으로만 평가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챔피언이기도 했다.

때문에 성능이나 숙련도와는 무관하게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챔피언을 서택해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소위 '충'이라 말하는 부류의 유저들이 많이 플레이하는 챔피언이었다.

시청자들이 대리를 받은 남성 플레이어가 하기에 야수오는 너무 어렵지 않겠냐며 나를 그러한 충으로, 야수오충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레오레 아마추어씬에서 전설적인 입지를 가진 어떤 플레이어가 말한 적이 있다.

-레오레에서 가장 어려운 캐릭터는 야수오와 이렐리야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레오레에서 야수오를 완벽히 다룰 줄 아는 유저는 손에 꼽는다.

말 그대로, 정말로 손에 꼽는다.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혀 프로까지 포함시켜도 그 수는 백 명이 넘지 않을 정도다.

전 세계 수천만 레오레 유저 중에서 말이다.

나는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

야수오에 대한 내 숙련도는 최대 효율의 6~70%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일까?

그러나.

그거면 충분했다.

이 다이아1에서는 말이다.

"폭풍전야. 누가 틀렸는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숨컷어택2 ㄷㄷ]

[비장하누 ㅋㅋ]

[비장한 야수오충 ㅋㅋ]

솔로 랭크에서 팀원이 안 하던 야수오를 꺼내면 싫은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대기실은 조용했다.

어제 체험 혜지의 현장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킬 만큼.

대기실에서고 게임 안에서고, 아군이고 팀이고. 채팅이란 채팅은 그냥 시발 싹 다 차단해서 조져버렸다.

레오레에서 좋은 플레이를 하기 위해선 평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수단 중 하나.

바로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채팅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꿀팁이다.

레오레는 팀게임 아닌가요?

팀원과 소통해야 하지 않나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레오레를 별로 해보지 않았다면 가능한 말이다.

레오레를 많이 해봤다면 알 것이다.

소통이 가능한 지성인.

분명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나라에 살아, 같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생활양식을 공유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 신비롭고도 불가사의한 개새끼.

보통 이 게임에서 어떤 쪽을 팀으로 만날 확률이 더 높은지.

적어도 마스터 티어는 가야 전자의 확률이 후자에 비해 우세해 져 원활한 소통을 시도해 볼 법 하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렉톤 ㅋㅋ]

[과학 선생님ㄷㄷ]

과학.

야수오가 있는 팀이 패배하는 건 보편적인 진리이자 법칙이라는 의미에서, 야수오에게 따라붙는 별명 중 하나였다.

렉톤이 야수오의 대표적인 카운터 캐릭터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보편적 진리이자 법칙이 다시 또 한 번 입증될 거라는 소리였다.

저 과학 선생님이란 소리는 말이다.

그러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내가 당연히 패배하리라는 믿음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지금 내 목적은 가능한 강렬하면서도 확실하게 실력을 입증하는 거였으니까.

선입견을 뒤집고 명확히 우위에 있는 카운터 캐릭터를 도움 없이 자력으로 잡아내는 것.

그보다 실력을 증명하기에 좋은 그림이 있을까?

게임이 시작됐다.

라인전이 시작됐다.

머지않아, 협곡에 렉톤의 사망 소식이 울려 퍼졌다.

야수오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렉톤을 잡아냈다는 소식이.

[오 ㅋㅋ]

[뭔데 ㅋㅋ]

[남자치곤 좀 하네 ㅋㅋ]

처음은 기대대로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걍 레넥 상태가 이상하네 ㅋㅋ]

[쟤 왜저러냐?]

[정글이랑 싸웠누 ㅋㅋ]

[걍 던지는것 같은데]

[남자인거 어케 알고 대주네 ㅋㅋ]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렉톤을 압도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린다.

렉톤이 야수오에게 저렇게 일방적으로 발리는 건 말이 안 되니, 그냥 렉톤이 이상한 거라고.

[얘가 잘한 게 아니였네 ㅋㅋ]

더군다나 나 말고 팀원 네 명 모두 다 라인전에서 승리를 거뒀기에, 게임은 몹시 무난하게 끝나 버렸다.

덕분일까.

나는 다이아 1에서 야수오로 렉톤을 네 번 솔킬내서 완전히 압도하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대리를 받았다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아까 플레이가, 다이아4에서 승률 90%로 다이아1까지 도달하는 것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이번엔 록산의 암살자 텔론을 골랐다.

야스오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챔피언은 아니다.

단지 다루는 것만으로 엄청난 실력이 증명되는 챔피언도 아니다.

다만, 게임 장악력만으로 따지면 솔로 랭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챔피언이었다.

야마카시라 불리는, 지형을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특유의 '벽 넘기' 스킬.

그 스킬의 기동력을 이용한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기습하고 암살한다.

텔론은 말 그대로 '혼자서'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챔피언이었고, 난 그걸 증명했다.

2레벨에 적 미드를 혼자 힘으로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기지에 갔다와서는 적 미드를 한 번 더 죽인 뒤, 적 정글을 찾아 죽였다.

아군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사실, 한 게 없는 게 아니라, 할 게 없는 거였다.

적 팀의 챔피언이란 챔피언은 내가 다 죽이고 다녔으니까.

15분.

내 KDA가 13/0/0에서 15/0/0가 된 순간.

적팀이 항복을 선언했다.

자.

이래도 나를 대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플레이를 보고도, 내 실력을 의심할 수 있을까!!!

[ㅋㅋ 숨컷이 옆에 누나 있나 보네]

[아 ㅋㅋ 그래서 캠 못 키는 거였누]

[옆에서 여친이 대신 해주고 있누 ㅋㅋ]

[숨컷이 여친이 잘하긴 하네]

있군!!!!!

"히히히, 방종할게용. 다음에 봐용."

캠사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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