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화. LIVE-ON2
[컽!!!]
[아니 뉴비 맞나 ㅋㅋ 컽 찰진거보소]
[남자 입으로 들으니까 또 다른 풍미가 있네 ㅇㅇ;]
[여기가 엄상희한테 인증받은 정품 지점인가요?]
[여기서 정품 신품 파나요 ]
아까 시청자가 많은 엄상희의 방에서 어그로, 그러니까 관심을 끈 게 통한 건지.
아니면 마이크를 켜고 남자PD라는 사실을 티낸 게 통한 건지.
첫 방송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시청자가 몰려, 어느새 시청자 50명을 달성한 채팅창의 반응이 뜨거웠다.
어쩌면 악질 시청자에 능숙하게 대처하며 보인 퍼포먼스가 통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이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나는 바로 레오레를 키고 골드1 계정으로 접속했다.
"그래서 티어 어디임?"
그러자 묻는다.
"이 계정은 골드1입니다~"
[아니 골드1이 레오레 방송 무쳤나 ㅋㅋ]
[남자라도 골드1은 선 넘었지]
[때려치고 걍 캠방이나 하자]
[ㄹㅇ ㅋㅋ 골드1겜 보여주느니 걍 캠 키고 숨이나 셔라]
[캠켜!!!!!!!!!]
"아니 여러분, 저 이래 뵈도 게임 전문 PD 지망 중인데요. 솔직히 캠 없어도 좋은 거 보여 줄 자신 있어요."
[됐고 캠이나 켜!!!!!!!!!}
[남캠이 좋은걸 보여주려면 캠으로 보여줘야지 ㅋㅋ]
"아니 나 남캠이라 한 적 없는데? 게임PD 할 거라니까?"
[그럼 방송제목에 적어 놓던가]
"방송에 남캠이라고도 안 적어 놨잖아."
[아니 그럼 괜히 마이크는 왜 켜서 우리 설레게 만드냐]
[ㄹㅇ ㅋㅋ 아 남자인거 티내서 꿀빨고는 싶고 그렇다고 또 얼굴은 팔리기 싫고 ]
[어딜 꿀만 쏙 빼먹으려고 ㅋㅋ]
[현실에선 몰라도 인터넷에선 어림도없지 ㅋㅋ]
[ㄹㅇ ㅋㅋ 비록 우리가 현실에선 7만원짜리 저녁사주고 손도 못잡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ㅇㅇ;]
[관심을 주면 최소 얼굴을 보여주고 우리의 돈을 취할거면 맨살을 보여줘라]
[벗방 가나?]
[ㅁㅊ 벗방 실화고?]
[머라고? 벗방한다고??]
[여기 옥수수TV인가요?]
[그래서 꼽냐?]
[존나좋은데요]
[벗어!!!!!!!!!}
[아 ㅋㅋ 캠을 키던가 벗방을 하던가]
[우린 뭐든 좋으니까 고르라고 ㅇㅇ;;]
"와, 미친."
방송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났다고, '남성'스트리머의 비애를 절절하게 느껴 버렸다.
아니면 그냥 얘네가 이상한 걸까?
제작자의 예상을 훨씬 추월한 추진력이었다.
내가 지금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건지,
발정 나 가지고 탭댄스 추고 있는 개새끼들 사이에서 홀로 개다리춤을 추고 있는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이거 시발, 어쩌냐.'
아무래도 내 방송은 벌써 분기점을 맞이해 버린 것 같았다.
앞으로 방송함에 있어 시청자들에게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지금 보일 대처로, 내 방송 캐릭터가 결정될 것이다.
내 방송 인생이 결정될 수도 있다.
재미 없는데 잘생기고 게임만 잘하는 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잘생기고 게임도 잘하는데 유쾌하기까지 할 것인지.
'아니 잠만, 잘생기고 게임 잘하면 충분한 거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나는 짧았지만 깊었던 고민에 충동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오케이, 벗으면 다들 불만 없는 거지?"
[ㅁㅊ]
[ㄹㅇ이고?]
[에반데]
[님 방송 정지당해요]
[찌찌파티!!!!!!!]
[옥수수TV비켜!!!!]
다양한 반응을 뒤로하고, 나는 마이크 앞으로 몸을 가져다 댄 다음, 웃통을 깠다.
그리곤 말했다.
"자, 벗었습니다 됐죠?"
[???]
[머임?]
[무슨일이고?]
"뭐요 시발/ 캠 켜던가 벗던가 정하라며. 그래서 벗었잖아."
[아니 아 ㅋㅋ]
[아니 ㅋㅋ]
[먼가... 먼가 억울한데 할 말이 없네]
[말의 맹점을 잘 이용했네 ㅇㅇ;]
[캠을 켜야지 ㅄ아]
"아니 시발, 또 이 흐름이네. 아니 내가 몇 번을 말해~ 캠을 안 켜는 게 아니라 못 켜는 거라고~"
[나 막 들어왔는데 ㅅㅂ아]
"그러게 누가 늦으래 시발?"
[ㅇㅈ ㅋㅋ]
[누가 늦으랬냐고 아 ㅋㅋ]
[우리 숨컷좌 첫방송 처음부터 못본 놈들 인생 절반 손해지]
숨컷.
내 방송 닉네임이었다.
수컷과 암컷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게 돼 버린 내 처지를 나타내기 위해, 피카소가 물감 섞듯 정교한 감성으로 두 단어를 엮어 만들어 낸 말이었다.
[첫방송 맞누? ㅋㅋ]
[이집 오늘 개업했는데 잘하네]
[야 그거 방송 설정 보면 화면에 문구 적어두는거 있음]
"아 그래요? 알겠어, 잠깐만…."
이내, 송출된 방송 화면 좌측 상단에
'캠 없음, 살 돈도 없음' 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사실, 캠 살 돈이야 있긴 하다.
권지현 씨에게 받은 50만 원.
대회 상금 65만 원에서 마이크값을 뺀 52만 원.
거기에 원래 있던 돈 10만 원 정도.
약 110만 원.
그리고-
-사장님 저 일 최두산 씨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저 업무 도중에 나왔는데 최두산 씨가 다 책임진다 했습니다 -그러니 어제 일급은 최두산 씨 거에서 빼가지고 두 배로 계산해서 지금까지 임금 입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재훈씨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일줄 몰랐는데
=다른건 몰라도 어제 일급은 못줘요
-저 지금까지 최두산 몫까지 제가 다 일했습니다
-화장실 청소랑 흡연실 청소 같이 힘든일 거의 다 제가 했고, 분담하는 일도 제가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거의 저 일 시작하고 지금까지 최두산 도움 없이 거의 혼자서 일한겁니다 -마음같아선 그거 다 계산해서 월급 달라 하고 싶은데 -사장님 봐서 이정도로 참는 겁니다 -제가 노동청가서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해주십쇼 서로를위해서
오늘 아침 입금 된 96+8만원.
그렇게 총 210만원 정도가 지금 내 통장에 있다.
그거면 대형 인터넷 방송인이 쓰는 하이엔드 급 캠도 살 수 있지만.
이 210만원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먼저 이번 주에 월세 50에 수도세와 난방비가 포함되는 관리비를 내면 150만 원 정도가 남는다.
그리고 전기세가 평균 10만 원 정도 나오네 최재훈2이새낀 뭐하는 새낀데 (전)프로게이머인 나랑 전기세가 똑같이 나오는 거지? 겜창 새낀가 진짜.
아무튼 그렇게 10만 원 더 빼면 140만 원이 남는다.
그리고 기본생활비 30만 원을 빼면 110만 원이 남는데, PC방 알바를 떄려친 지금 상비금으로 최소 다음달 생활비까지는 남겨둬야 한다.
그렇게 또 70만원에 30만원을 빼면?
짜잔.
10만 원이 남는다.
과연 10만 원으로 캠을 살 수 있을까?
있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캠은 못 산다.
내가 원하던 캠을 사려던 이번달이나 다음달 생활비에서 약간 돈을 빼 와야 한다.
그래도 방송 규모 키우기에 캠을 켜는 것만큼 좋은 수단이 없으니, 결국엔 빠른 시일 내로 결정해서 사려고 했다.
그럼에도 캠을 살 돈이 없다고 적어 놓은 건-
'이렇게 적어 놓으면 돈 줄 것 같아서.'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채팅창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돈이 없으면 방송하지 말고 나가서 돈을 벌어 엄자식아]
[ㄹㅇ 마이크 살 돈은 있는데 캠 살 돈은 없다? 각 나오죠?]
[ㄹㅇ ㅋㅋ 남자인거 밝혀서 꿀은 빨고는 싶지만 얼굴은 팔리기 싫다는 양아치 마인드자너]
['안'키는게 아니라 '못'키는 걸수도 있지ㅋㅋ]
[아 ㅋㅋ]
[치킹이 빻았누?]
[혹시 듀라한 지망이누?]
듀라한.
서구의 전설 혹은 신화에서 유래된, 지금은 뭇 판타지 매체에서 묘사되어 유명해진 머리 없는 기사의 명칭이다.
듀라한은 대상이 되는 존재의 머리가 없다는 특징 때문에, 인터넷 방송계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방송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얼굴이 못생겨서 자신이 없어 가지고 캠을 못 키는 거다. '는 모욕적인 편견이 내포된 멸칭이었다.
내가 아무리 못생겼어도 남한테 얼굴을 못 보여줄 만큼 자기애가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타인에게 얼굴을 노출하는 일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다.
미디어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는 일은 말이다.
미디어에서 자신의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일에는 특별한 위험이 있따른다.
익명성 뒤에 숨은 자들의 일방적인 평가 대상이 되는 위험.
바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에게 개인 신상이 노출되는 위험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경험하여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충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인터넷 익명성 뒤에 숨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무분별해질 수 있는지.
고로, 나는 특정 방송인들이 캠을 켜지 않는 이유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막연하지만 합당한 공포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2군 프로게이머였기에, 1군 프로게이머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이지만 가깝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어 네티즌의 평가 대상이 된 1군 프로게이머들이, 얼마나 큰 정신적 부담과 고통을 받는지.
터널 증후군도 이겨냈던 후배가 악플에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다.
기나긴 성적 부진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선배를 무너트린 건 악플이었다.
나 또한, 인터넷 네티즌의 장난감이 되어 소모되는 일이 두렵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내가 감수한 위험이기도 했다.
내가 프로가 되려고 했을 때, 이미 각오한 바였다.
시발, 프로 막 데뷔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포스트 FACE 라이벌이 되어 악플이란 악플은 다 쳐먹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속에 존나게 견고한 방공호를 지어 놨었다.
그런데 현실은 2군 듣보따리 듣보따여서 시발 욕은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새 방공호를 어찌, 돌고 돌아서 활용할 기회가 와 버린 것이다.
내게 얼굴이 못생겨서 캠을 킬 자신이 없냐고 묻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아니 뭔, 캠을 일부러 안 사. 나한테 그런 결정권 자체가 없다니까? 돈이 없어 계좌에! 마이크 비싼 거 사느라 다 써 버렸어."
[마이크 얼마 짜린데]
"13만 원."
[ㅁㅊ놈 아니야 ㅋㅋㅋㅋ]
[니가 무슨 ㅅㅂ아 대서기관이야?]
[목소리가 좋은 게 아니라 음질이 좋은거였누 ㅋㅋ]
[그걸로 뮤직인뱅크도 찍을수 있겠다 ㅄ아]
[하꼬쉑이 무슨 마이크에 13만원이나 썼누 ㅋㅋㅋ]
"내 포부를 보여주는 부분이지."
[캬 ㅋㅋㅋㅋㅋ]
[이게 그 사내대장부인가 뭔가냐 ㄷㄷ]
[남풍당당하누]
"솔직히 내가 캠 켜면 다 난리날 걸?"
[아니 또 뭔 개소리를 하려고]
[너무 빻아서요?]
[목소리로 사기친거 들통나서 폭동일어나누]
마이크를 통해 내 잘생김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람으로.
마치 캠을 보며 자세를 잡듯, 마이크를 보며 자세를 잡고 말했다.
"So Handsome 해서."
[ㅋㅋㅋㅋㅋㅋ 아니 걍 어이가 없네]
[캠이나 키고 말해 듀라한놈아]
[그래서 캠 언제사는데 ㅅㅂ]
"돈 모이는 대로 살게요. 그러니까 어? 이제 캠 켜라고 할 거면 후원하면서 말해. 아 이걸 적어놔야겠다.
좌측 상단에 적힌 문구가 수정됐다.
'캠 키라고 할 거면 캠살돈주셈.'
"내 잘생긴 얼굴 보기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아끼지 마. 진짜, 내가 보장하는데 후회 안 함. 후회하면 환불 가능."
[아니 ㅋㅋ 뒷감당 어케할려고 입을 이렇게 터누]
[아니 이 정도 되니까 ㄹㅇ 진짜 궁금해지는데]
[마, 자신 있나?]
"자신 있지. 후달리면 뒤지시던가."
[(귀여운 캐릭터가 손 들며 질문하는 이모티콘) 선생님, 후원하면 선생님 얼굴에 대한 소유권 주장 가능한가요?]
[면상주식 ㄷㄷ]
[면상주주 ㄷㄷ]
[주주클럽ON]
"아, 그렇게 되면 주식이 너무 비싸져서 아무런 의미도 없을걸요? 내 얼굴이 주식 종목이라 하면 주가 총액이 삼시온 전자, 아니, 삼시온이 뭐야. 아이플 정도가 될 거니까. 10조 후원하면 눈썹 한 가닥 정돈 되겠네."
[듀라한쉑 진짜 미쳤나 ㅋㅋ]
[업보 너무 씨게 쌓는디]
[진짜 캠 키는순간 뒤졌다]
[강남 성형외과에 예약 잡아 놔라]
"아무튼, 캠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 게임 시작-"
그때-
-찰랑!
너무나도 맑고 영롱해서 눈동자가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돼 버릴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후원 알림음이었다.
내 인생, 첫 후원이 터진 것이다.
"아이고!!! 후원 감사- 허어어억!!!"
후원 메세지, 그리고 액수를 확인하다가 눈알이랑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 님이 천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이걸로 나가서 캠 사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