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남자의 적은 3
"그, 여기에서 일하시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 보이시네… 혹시 어디 간 지 아세요?"
최재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볼품없는 모습으로 청소를 하고있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권지현 옆에서 팔짱을 낀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하아.
숨이 차오른다.
가슴이 답답하다.
'썸을 타는 게 그 새끼였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생각했다.
권지현 옆에 어떤 남자가 있던, 자신이 데려오면 그만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남자가 최재훈이란 걸 안 순간, 충만했던 자신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 열등감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최두산은 그걸 부정했다.
'성괴 새끼.'
그렇게 열등감은 또 다시 증오로 변질되었다.
'권지현 니도 결국 똑같은 계집년이었어. 성형하던 말던 얼굴만 잘생기면 아무래도 좋은, 발정난 창년 새끼. 창놈이랑 아주 끼리끼리-'
겉잡을 수 없는 증오로.
"저기요?"
권지현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 최두산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최두산은 말 대신 표독스러운 시선을 향함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어… 괜찮으세요?"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최두산은 커플룸에서 뛰쳐나왔다.
그렇게 어디론가 향하는 그에게, 좌석에 앉아 있던 어떤 여자 고객이 말했다.
"저기요? 저라면 시켰는데 언제- 저기요!?"
그걸 깔끔하게 무시한 최두산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최재훈 앞에 섰다.
여전히 볼품없는 모습을 한 그를 내려봤지만, 그전과 같은 우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 제어가 안 될 지경에 이르려던 그때-
그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문득하고 떠오른 어떤 생각에 그렇게 되었다.
견고하게 굳어 있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가 최재훈을 내려봤다.
"재훈씨, 누가-"
찾아왔는데요, 라고 말하려던 걸 끊었다.
그렇게 말하면 최재훈이 저 흉물스러운 것들을 벗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선 곤란하다.
때문에, 최두산은 말하는 대신 최재훈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더러운 고무장갑이 감싸지 않는, 팔의 위쪽을
"잠깐 이리로 와 보세요."
"청소 아직 안 끝났는데요."
"이 괜찮아요, 나머진 제가 할 테니까 이리 와봐요."
"아니 됐어요. 제가 시작한 거니까 제가 끝낼 건데-"
"아 일단 와 보라고!"
최두산이 신경질적으로 최재훈의 팔을 끌었다.
"하…."
최재훈은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인내심에게 약속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최두산이 최재훈을 끌고간 곳은 커플룸 앞이었다.
"여기 뭐. 설마 지금부터 여기 청소하라는 건 아니죠?"
싫은 티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최재훈.
최두산은 그를 무시하고 커플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권지현을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둘을 대면시켰다.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다 나온 최재훈의 모습과, 막 런웨이에서 내려온 듯한 권지현의 모습이 대비됐다.
최재훈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권지현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최두산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유, 오늘 남자 화장실 '진짜' 더럽던데. 고생 많으셨어요 재훈 씨."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러지?'
최재훈은 갑자기 살갑게 구는 최두산을 의아하게 느끼며 권지현을 쳐다봤다.
그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처음 봤었던 권지현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얼핏 봤을 때 진짜 무슨, 촬영 나온 연예인인 줄 알았다.
"어디서 뭐 촬영하다 오셨어요?."
"아, 네. 뭐…."
권지현은 일단은 그렇게 답했다.
방민아를 보고 열등감이 폭발해서 아닌 밤중에 20만 원이나 주고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는 친구를 불렀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
-도대체 이 시간에 웬 난리야. 이 시간에 영상이라도 찍게?
-남자 만나러 가게.
-미친년인가.
친구와 했던 대화가 떠올린 그녀가 역시 너무 호들갑을 떨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이야… 완전 모델이시네 그냥."
아니었다.
방민아를 봤을 땐 없었던 감탄스럽다는 반응.
그런 최재훈의 반응에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저는 이러고 있으니."
최재훈이 허탈한 얼굴로 고무장갑 낀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푸훗!"
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린 권지현이 당황하며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아뇨, 그… 열심히 일하고 계신 것 같아서 멋지신데요. 보통 남자분들은 그런 거 잘 안 하려고 하시잖아요."
진심이었다.
권지현은 지금 최재훈의 모습이 볼품사납다 느끼지 않았다.
"이런 게 멋지다고요?"
"네, 네!"
최재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뚫어뻥도 들고 올 걸 그랬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푸흡!"
"큭큭큭, 저 어쨌든, 이거 청소 좀 마저 끝내고 나올게요."
"아, 그럼 나오시면 그때 뭐 좀 시킬게요."
"화장실 청소하고 나온 사람한테 요리를 시키신다고요…?"
…
"혹시 홍어 좋아하시나?"
"큭큭큭큭."
"헤헤헤, 어쨌든, 이따 봬요."
"아, 네. 이따 봬요."
권지현은 최재훈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난 뒤에야 최두산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아, 그. 최재훈 씨 찾아와 주셔서 감사- 어? 저기요?"
둘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최두산이 그녀를 무시하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멍하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저기요! 저 라면시킨 지 한참 됐는데 언제 나와요? 말해도 무시하-"
다소 흥분한 여자가 언성 높여 말했지만 최두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생각했다.
'최재훈은 권지현이랑 약속 잡혔는데 나는 이런 병신이랑….'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 시발 진짜 개같아서.
"뭐? 시발!? 너 뭐랬어 지금!"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지랄하지 마 너 지금 시발이라고 했잖아!! 다 들었어!!"
"하, 씨. 개귀찮아."
"뭐 이 새끼야!?"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으려던 그 때.
"무슨일이에요!?"
최재훈이 소란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다.
그는 아직 청소할 때의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여자의 표정이-
"무슨 일이세요, 손님?"
돌변했다.
최재훈이 붙임성 좋은 표정과 목소리로 묻자, 여자의 얼굴에 서려 있던 분노가 너무나도 쉽게 누그러졌다.
둘이 뭔가 대화를 나눈다.
최두산은 가만히 지켜봤다.
여자가 자신에게 뭐라 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최두산은 가만히 지켜봤다.
최재훈이 카운터로 들어와 주문을 확인하더니 표정을 찡그렸다.
최두산은 가만히 지켜봤다.
최재훈이 말했다.
"아니, 최두산 씨. 저거 라면이 20분 전 주문인데 그동안-"
"니가 하던가 시발아."
"-뭐… 잉?"
"그렇게 불만이면 니가 하라고 시발아."
더이상 담아놓을 수 없을 만큼의 증오. 혹은 열등감.
최두산은 그걸 고스란히 최재훈에게 부딪혔다.
"화장실 청소 빨리 끝내고 그 주문들 처리해. 니가 데려온 여자랑 놀고 싶으면."
최재훈의 인내심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약속했지…?'
최재훈이 답했다.
'아… 그래….'
인내심의 빙긋 미소지었다.
점점 희미해져서 사라지기 직전, 말한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인내심이 완전히 사라진 걸 느낀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후련한 기분으로, 최재훈은 말했다.
"양심 뒤졌냐?"
비아냥거렸다.
여지껏 보지 못한, 최재훈의 공격적인 태도에 최두산이 마침내 폭발했다.
"뭐라도 되는 양 지랄하지 마!!! PC방이 니 놀이터야? 사람은 왜 부르고 지랄이야!!!
시발 그리고 니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PC방 한산했어! 난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건데 니가 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러니까 시발 니가 다 알아서 하라고!!!"
끈적거릴 정도의 열등감. 적개심.
소란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안엔 권지현도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최두산이 아닌 최재훈한테.
최두산은 다시 또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외쳤다.
"성괴 새끼! PC방에서 남왕노릇 하니까 좋아!? 저런 듣보잡 유튜버 데려와서 자랑하니까 좋냐고!!!"
그 말을 들은 최재훈이 깊은 한숨을 내신 뒤 말했다.
"하… 두산 씨. 제가 미안해요."
"…뭐라고?"
"제가… 미안하다고요."
갑작스러운 사과에 최두산은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막상 또 최재훈이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우쭐해져서 고자세로 말했다.
"뭘 잘못했는데요?"
"제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곤 최두산의 눈을 직시하며 말한다.
"형이 너무 잘생겨서 미안해."
"…뭐?"
"너 형한테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거, 형이 잘생겨서 그런 거잖아."
"뭐, 뭐, 뭐… 뭐라고?"
"근데 그거 임마, 어? 열등감 느낄 필요 없어. 형이 너무 잘생겼을 뿐이지, 너도 충분히 잘생겼잖아 임마. 왜 쓸데없이 경쟁심을 가져서 괜히 열등감 느끼고 그러냐~ 응?"
"뭔 개소리야!! 성형한 주제!!!"
"그래… 형이 성형한 것처럼 완벽하게 잘생기긴 했지."
"미친놈 아니야!!"
"그래!!! 형이 미친듯이 잘생기긴 했지!! 두산아!"
최재훈은 최두산을 따라 언성을 높이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은 왼쪽 손으로 말이다.
"꺄악!!! 미친 거 아니야!!!!"
최두산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 미안. 깜빡했어."
어깨에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은 최두산이 울상을 지었다.
"이 미친놈!!!! 정신 나간 새끼 아니야 진짜!!!!"
"그래!!! 형이 정신 나간듯이 잘생기긴 했어!!!"
"닥쳐 좀!!!!!!!"
"아니!?! 못닥치겠는데!!! 형이 더 이상 이 부당한 대우를 참을 수가 없다!!! 응!?! 아니!!!!!! 힘든 건 참을 수 있어!!! 그런데!!! 니가 나랑 같은 시급 받는다는 건 못참겠다 진짜!!!!! "
"닥쳐!!!!!!"
"두산아!!!!! 적어도 시발 열심히 하는 티라도 내자!!!!!!"
"닥치라고!!!!!!!!!!"
"출근은 정시에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엉!?! 힘든 일은 좀 나눠서 하자!!! 잘생긴 게 죄면 형이 사형은 맞긴한데, 죄가 아니잖아!!! 잘생겼다는 이유로 형 좀 그만 괴롭혀!!!"
"닥치라고 좀 미친놈아!!!!!!!"
최두산이 최재훈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두산아!!!!!"
최재훈은 가볍게 몸을 젖혀 그걸 피한 뒤 말을 이었다!!!!!
"너 임마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남자'라고 주먹 함부로 쓰면 나중에 크게 된통 당하는 수가 있어!!!"
"닥쳐! 닥쳐! 닥치라고!!!!!!"
최두산이 계속해서 팔을 휘둘렀다!!!!!
온 힘을 다해 미친듯이!!!!
"이거 봐!!! 형이 복싱 좀 배워서 빵댕이 좀 흔들거든!?! 여기서 주먹 한 대만 꽂으면 너 그 순간 치과 VIP되는 거야!!! 임플란트고 틀니고 시발 그냥 다 플렉스해버리는 수가 있다니까!!!!! 너 혹시 그거야??!!? 그걸로다가 치과 의사 함 꼬셔 보려고!?!!"
그런데도 최재훈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걸 피해가며 말로 최두산의 속을 긁었다!!!!
미치기 직전!!!!!
최두산은 정확하게 그런 상태가 되었다!!!!
그때였다!!!!!
"아아아앍!!!!"
최재훈에게 다가가며 팔을 휘두르던 그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앞에 팔을 깐 채 바닥에 넘어져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코가 아리다.
뭔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그는 그게 코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흐엉엉엉엉엉!!!!!!!! 시발!!!!!!"
대뜸 서러워져, 그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또 울어!?!!?!!"
그러자 최재훈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도대체가 !!!! 왜 다 기승전즙이야!!?!!?! 아니 미친 진짜!!!! 너넨 니들 눈물이 무슨 레테의 강물이라도 되는 지 알아!!?!!?! 시발 드래곤볼이야!!?!!?!!!!!!! 그냥 눈물 질질 짜면 다 해결되는지 아냐고!!!!!"
"뭐라는거야!!!! 미친 또라이 새끼 흐어어어!!!!!!!!!!!!!"
"뭐라는 거긴 울지 말라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꺄아아아악!!!!!!! 닥쳐!!!!!!!!!!!!!!"
최두산이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질세라!!!
최재훈이 자리에 쭈그려앉았다!!!!
그렇게 바닥에 엎어져 있는 최두산의 바로 옆까지 얼굴을 갖다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운다고 다 해결되면 임마!!!!! 경찰이 왜 있고 소방관이 왜 있고-"
"꺄아아아악!!!!!!"
"의사가 왜 있고 판사가 왜 있고 변호사가 왜 있고-"
"안들려 꺄아아악!!!!!!!!!"
"안들리긴 시발!!!! 다 듣고 있잖아!!!!! 빨리 일어나서 형이랑 마주보고 이야기해!!!!!!"
"꺼져 미친놈아 제발!!!!!!!!!!!"
"꺼지라고!!?!! 형도 그러고 싶다!!! 도대체 이 상황 어떻게 하냐!!!!! 여러분!!! 신경 쓰지 말고 볼일들 보세요!!!! 그런데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시끄럽긴 하죠!!??!?!!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꺼지라고!!!!! 니 여친 데리고!!!!"
"진짜 꺼져도 돼!!?!!?!! 니 혼자서 이 상황 수습할 수 있겠어!!?!?!!!"
"꺼져!!!!!!!!!"
"진짜!!!?!! 진짜야!!?!?!?!! 꺼져도 돼!!!?!?!!"
"꺼지라고!!!!!!!!!!!!!!!!"
"그러면 형한테 확신을 줘!!!!!"
"뭔 확신 미친놈아!!!!!! 흐어어어엉!!!!"
"형이 꺼져도 된다는 확신!!!! 너가 이 상황 다 책임져 주는 거지!!?!!?!?!"
"아 알겠으니까 제발 꺼지라고!!!! 제발!!!!! 흐어엉어어엉어엉엉!!!!"
"알겠어 두산아!!!! 너만 믿는다!!!!"
최재훈이 오른손으로 최두산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말았다!!!
고무장갑을 낀 왼손으로 두드리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다!!!!!
"허어어엉!!! 미친 또라이 새끼!!!"
통곡하는 최두산.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최재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권지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진지하게 말했다.
"허락 받았으니까 튀죠."
"네?"
얼이 빠진 그녀의 손을 잡고 최재훈은 달렸다!!!!!
-흐어어어엉!!!!!!!!!
두산이의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