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남자의 적은 2
카운터로 돌아온 최두산은 곧바로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확인해 보니, 여자가 주문한 건 정말로 짜장 라면이었다.
정말로, 자신의 실수였다.
'개같은 새끼들.'
그럼에도 그의 분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자신을 볼 때의 짜증 섞인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얼굴이 최재훈을 보자 어떻게 됐는지 떠오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딴 새끼가 뭐가 좋다고.'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진한 눈썹, 눈썹 문신을 했겠지.
동양인의 것으론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눈과 코, 딱 봐도 칼 갖다 댔고.
양악도 했을 것이다.
얼굴에 성형한 흔적이 가득했다.
성형 안 했을 것 같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게다가 딱 보면 피부 관리도 따로 받고 있다.
'그렇게 얼굴에 돈 쏟아붓고 한다는 게 PC방 알바라고?'
의도가 불보듯 뻔했다.
PC방에 다니는 인생 밑바닥 년들 상대로 관심이랑 인기 좀 끌어 보려는 수작이다.
그런 년들 아니면 자신이 없으니.
그렇게 PC방남인지 뭔지로 유명세 타서 미튜뷰던 SNS던 시작해서 승승장구하겠지.
무심결에 유명인이 된 최재훈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변에 유명인들이 있고, 명품을 입고 있고, 웃고 있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답답했다. 불쾌했다.
'병신들 진짜.'
모든 게 혐오스러웠다.
부모 잘 만나 성형 잘 받는 얼굴이랑 돈, 둘 다 물려받아 마음껏 누리는 최재훈.
그런 최재훈의 여우짓에 놀아나는 병신같은 년들.
생각을 이어갈수록 최재훈을 향한 혐오가 더욱 강해졌다.
최두산 스스로는 모르지만, 아니, 인정하지 않지만 열등감에서 비롯된 혐오였다.
상황을 수습한 최재훈이 카운터로 돌아왔다.
최두산은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놈에게 빈틈을 보여주긴 싫었다.
빈틈이라 보일 수 있는 것도.
자신이 놈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평소의 태평하고 여유 넘치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재훈 씨."
"네?"
"주문도 거의 다 해결했겠다, 지금 남자 손님들 없을 때 남자 화장실 청소해 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화장실 청소요?"
최재훈이 내키지 않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최두산은 눈에 힘을 주고 빙긋 웃었다.
"그럼 내가 할까요?"
최재훈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결국 청소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지금부터 로테이션 돌아가는 거다, 다음도 최재훈2한테 그랬듯이 안 하려고 하면 그땐 진짜 니 뒤지고 나 뒤지는 거야.'
최재훈의 그런 속내를 모르는 최두산은 생각했다.
역시 이놈은 자신한테 아무런 반항도 못 하는,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고.
내 밑에 있어서,
내가 지각을 해도, 일을 대충 해도, 궂은일을 도맡아 시켜도. 아무런 반항도 못 한다고.
그렇게 우위를 느낌으로써 우월감을 느낀다.
그가 열등감을 부정하는 동시에 해소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왔다.
짤랑-
'아 씨, 진짜. 저놈 때문에 존나 바쁘네. 원래 여기 야간 개꿀이었는데 진짜.'
최두산은 한숨을 내쉬며 입구 쪽을 쳐다봤다.
"어?"
그런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이 포니 테일의 헤어스타일과, 커다란 눈을 부각시키는 스모키 메이크업에서 느껴지는 정갈함은 전문가의 손길을 느껴지게 한다.
명품 특유의 과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부티가 물씬 느껴지는 모던 룩.
그 둘이 조화를 이루어 차가우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준다.
당장 런웨이 위를 걷거나 화면 너머의 연예들 옆에 서 있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그래서 PC방에 있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여자가 거기에 서 있었다.
최두산이 반색헀다.
분위기만 보고 당연히 유명인일 거라 생각해서 일단 아는 척부터 하고 보자는 의도는 아니였다.
최두산은 그녀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즐겨보는 미튜브 채널 중 하나인 권튜브.
권튜브의 주인이 다름아닌 그녀였다.
한마디로, 최두산은 그녀의 팬이었다.
저놈이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더러운 화장실이나 청소하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 유명인을 만났다.
최두산의 표정이 우월감으로 인한 희열에 젖었다.
그가 호들갑스럽게 권지현에게 다가갔다.
* * *
"권지현 씨!"
반가움이 물씬 느껴지는 호명에 권지현은 좋다가, 말았다.
최재훈이 자신을 반겨준 거라 생각했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처음 보는 남자였다.
초면인데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자신이 어느정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권지현에겐 익숙한 상황이었다.
권지현은 실망한 티를 내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권지현 씨 맞죠?"
"네, 맞습니다."
"와! 저 완전 팬이에요! 유튜브 영상 완전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악수 한 번."
남자는 권지현이 내민 손을 양손으로 잡고 격렬하게 흔들었다.
"사진도 한 번."
"네네."
그렇게 사진까지 찍은 뒤에야 최두산은 만족하고 권지현에게서 떨어졌다.
"와, 진짜. 저 연예인 처음 봐요."
"연예인이라기엔 좀…."
권지현이 멋쩍게 웃었다.
"저희 PC방엔 왜 오셨어요? 아, 혹시 촬영하시나요? 엄청 예쁘게 차려입으신 거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아,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저 결제 좀 할게요."
"아! 네네!! 저기 결제기 가서 하시면 돼요."
입구 옆 쪽에 놓인 결제기 앞에 선 권지현이 지갑을 꺼냈다.
그렇게 결제하는 과정을 지켜본 최두산이 눈을 빛냈다.
권지현의 명품 지갑과 시계.
그녀가 방송 전성기 시절 매달마다 수천만 원의 수입을 올릴 때 무리해서 구입한, 하이엔드 급 명품들이었다.
수익이 나쁜 의미로 안정화되자 감히 함부로 쓰지도 못해서 평소 봉인해두다시피 한 것들을, 겨우 PC방에 오는 데 꺼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최두산은 단순히 두 명품의 자태에 놀랐을 뿐이었다.
'방송하는 사람들 돈 엄청 많이 번다더니 진짜였나보네?'
권지현을 향한 최두산의 호감이 더욱 커졌다.
커지는 동시에, 약간 변질되었다.
그건 더 이상 순수한 팬심이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지현 씨."
"네?"
"지현 씨는 아무래도 유명인이니까 주변에 사람 많으면 좀 그렇죠?"
"아이, 유명인 아니에요."
"에이, 겸손하시네. 아무튼, 이리로 와 보세요."
최두산이 권지현의 왼팔에 오른팔을 걸었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그녀를 이끌었다.
권지현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두산은 그게 쑥스러워서라고 생각했다.
여중여고군대 테크를 탄 뒤 방송만 해서 남성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밝힌 권지현.
그런 그녀를 시청자들은 남자 한 번 못 만나 본 찐따라 놀린다.
그런 분위기의 영상을 수차례 보고 생긴 편견 때문이었다.
권지현은 남자에 익숙하지 않다.
어느정도 사실이긴 했다.
최두산이 권지현을 데리고 간 곳은 구석진 자리에 놓인 별실, 커플룸이었다.
"짜잔~ 여기 딱이죠?"
권지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근데 저 혼자 앉을 건데, 여기 써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지금 쓰는 사람도 없어요~"
"아,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곤 일단 커플룸에서 나온 최두산은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며 몸단장 상태를 확인했다.
앞치마, 고무 장갑, 고무 장화.
뒤에서 화장실 청소용 풀세트를 착용하고 쭈그려 앉아 청소를 하고 있던 볼품 없는 모습의 최재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최두산의 입가에 우월감 가득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비웃음이라 분류되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최재훈이 변기에 묻어 있는 신발 자국을 닦으면서 이미 구겨져 있었던 얼굴을 한 번 더 구겼다.
'아니 진짜, 뭐하는 정신나간 새끼지?'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처음 격어 보는 '남성'의 음울한 괴롭힘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최재훈에게서 등을 획 돌리곤 화장실을 나온 최두산은 음료를 만든 뒤, 그걸 갖고 커플룸으로 향했다.
"지현 씨, 제가 사는 거에요."
"아, 아니에요. 여기 돈-"
"아! 제가 사는 거라니깐요! 괜찮아요!"
최두산이 단호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마지못해 음료를 받아 든 권지현이 쓰게 웃었다.
팬의 과한 호의가 부담스럽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 최두산이 앉았다.
"그런데 권지현 씨, 진짜 그냥 게임만 하러 오신 거예요?"
"아, 예 뭐…."
"그런 거 치곤 너무 풀세팅이신데?"
"아 그… 뭐 좀 하고 오는 거라."
"아~ 아! 혹시 무슨 광고 같은거 찍으셨어요?"
"그런 건 아니고…."
옆에 앉은 최두산이 점점 더 가까워지며 달라 붙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 잘생겼다 싶은 수준이 아니지만 전체적인 비율이 좋았고 자기관리도 하는 티가 많이 났다.
최두산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잘생긴 측에 속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명백히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었다.
권지현도 엄연히 여자였기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팬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그녀는 최재훈 외의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최재훈이 대회에서 보였던 모습들이 아직도 권지현의 눈에 선했다.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줄래야 줄 수가 없었다.
권지현이 최두산에게서 부자연스럽지만 정중하게 멀어지는 동시에 말했다.
"그, 제가 사실 여기에 누굴 좀 만나러 와서."
"아, 혹시 남친이랑 데이트 약속!?"
"아… 그런 건 아니고…."
남친이라는 키워드와 최재훈을 엮은 권지현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에이, 표정 보니까 아닌데~ 완전 풀세팅하신 것도 그렇고~ 남친 맞는 것 같은데~"
최두산은 그리 신나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혀를 찼다.
반응을 보니 남자친구는 아니여도 명백히 호감을 갖고 만나고 남자가 있어 보였다.
'썸 타고 있는 놈이 있나….'
하지만 괜찮다.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진 않으니.
그는 몇 번이고 임자 있는 여자를 뺐어온 경험이 있었다.
"아, 진짜 아니에요."
"정말요? 그러면 남친 아니면 뭔데요?"
"안 지 별로 안 된… 그냥 지인분이에요."
"응~? 그럼 만나러 왔다는 사람이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닌'거네요?"
"아, 예,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죠."
"오~ 혹시 그럼 권지현 씨 지금 남친 없으세요?"
"아, 그건… 노 코멘트 할게요."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기론 권지현은 남성 경험이 적었다.
"그런데 그 만나러 왔다는 분은 어디 계세요? 약속해 놓고 늦으시는 건가? 너무하시네~"
남성 경험이 적은 여자는 어떤가?
"아, 사실…."
너무나도 간단한 계기로 남자에게 빠지곤 한다.
"사실?"
그렇기에 좀만 흔들어 놓으면 자신에게 넘어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여기에서 일한다 하셨는데… 안 보이시더라고요… 혹시 어디 간 지 아세요?"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진.
최재훈.
경쟁 상대가-
아니, 자신보다 먼저 권지현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최재훈이란 걸 깨달은 최두산.
그는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