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40화 (37/361)

040화. 주작이 비상하려 하고 있던 것이었던 것이다

방송을 끝낸 권지현은 어젯밤 늦게까지 몰두했음에도 끝내지 못한 일을 이어서 하려고 했다.

바로 최재훈과 저녁을 함께할 식당을 고르는 일이었다.

"하… 이거 어떡하냐…."

그녀는 어제 수 시간 동안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깨달았다.

혼자 머리 싸매고 '최재훈 씨는 뭘 좋아하실까…' 이미 수 시간 고민한 걸 몇 시간 더 고민하는 것보다, 그냥 10초 들여 톡 하나 보내는 게 10배는 낫다고.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니면 취향이 어떻게 되세요?'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 안 해 줘도 괜찮은 식당을 고르는 센스 있는 여자로 비추어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또 고민하고 있었다.

혼자서 계속 고민할지, 그냥 톡을 보낼지.

그때였다.

-라

권지현의 손에 이미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톡

라톡 수신음이 끝나기도 전에 말이다.

최재훈이 보낸 라톡이라 생각했기에 나온 반응속도였다.

"…."

그리고 지금의 찌푸려진 얼굴 또한, 최재훈이 보낸 라톡이라 생각했기에 나온 표정이었다.

라톡의 출처는 그녀의 친구였다.

"에이씨."

포장되어 있지만 실루엣만 봐도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

그런 선물의 포장을 뜯는 느낌으로 톡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물이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닌 줄 알고 있었음에도 표정은 한 층 더 구겨져 버렸다.

[야]

[지금 최재훈 오빠 허니뱅 방송에 나오는데? ㅋㅋ]

[NTR 각 날카롭고 ㅋㅋ]

게임기가 아닌 공책이었는데 심지어 헌공책이었던 것이다.

'허니뱅?'

아메리카TV에서 활동하는데도 리치TV에서 방송하는 권지현이 알 정도로 유명한 BJ였다.

'재훈 씨가 왜 허니뱅 방송에?'

권지현은 허니뱅에게 개인적 감정이 없었다.

애초에 접점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런데도 그녀와 최재훈이 같이 있다는 상황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권지현과 같이 레오레를 하는 방송인으로서, 같은 미드 유저였다.

그런데 훨씬 실력이 뛰어났고, 방송과 미튜브 규모도 상대적으로 더 컸다.

사회적 입지, 실력, 커리어, 재산.

방민아는 모든 면에서 권지현을 앞섰다.

한마디로 열등감에서 비롯된 불안함 때문이었다.

최재훈 씨가 '왜 방민아 말고 당신을 선택해야 하죠?' 라고 묻는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권지현는 절망했다. 전혀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인데 진짜 절망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심지어 최재훈이 방민아와 이미 그렇고 그런 관계일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려한다.

권지현는 공포마저 느끼며 허니뱅의 방송을 켰다.

"어?"

(BJ허니뱅X라온PC방배 미드빵 대회)

방송 제목을 보고 좋은 느낌의 '혹시?'를 느꼈다.

그렇게 방송에 들어가자 그녀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최재훈은 대회 참가자 신분으로서 방송에 나온 것이었고, 방민아와는 오늘 처음 만나는 눈치였다.

"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생각한 권지현이 화면에 나온 방민아를 보는 눈빛은 몹시 싸늘했다.

곱지 못한 시선으로 봐도 좋은 의미로 '오늘 진짜 정신 나갔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민아의 스타일 상태를 보고 내뱉듯 말했다.

'스타일링이랑 메이크업까지 따로 받은 건가. 게임 BJ란 년이-'

"지가 무슨 연예인인가."

자기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저 정도 비쥬얼을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안 할 뿐이다. 모종의 격렬한 감정으로 불타던 그녀의 눈은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 최재훈으로 바뀌자마자 돌변했다.

-최재훈입니다. 시흥에서 왔고 티어는 다이아2.

'시흥? 아, 시흥 출신이시구나. 그런데 다이아2라고? 어쩐지… 엄청 높으셨네.'

-그렇죠! 다2면 괜히 결승에 진출하신 게 아니죠!

"결승?"

'와, 대단하시네.'

-아, 그거 제 동생이었어요.

'여동생 있으시구나. 오빠 닮아서 엄청 예쁘겠네.'

-오빠 잘 생겼어요!

-게임 대횐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이기면, 그때 게임 잘한다고 해 주세요.

화면 속에서 최재훈이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었다.

"오~~~~~ 와 씨, 진짜 미치겠다."

표정을 완전히 무너트렸던 권지현은 화면이 방민아를 비추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정색했다.

-아~ 자신감 좋아요! 자신감만!

'말 개같이 하네.'

-상대는 무려 챌린저를 이긴 챌린전데요!

"헤엑."

'챌린저? 큰일나셨네.'

-어, 그러면 힘드실 텐데요?

-힘들다! 뭐가 말이죠?

-게임 잘한다는 소리 듣는 거요.

"아니, 씨."

'새끼들 말 진짜 개싸가지 없이 하네, 남자 상대로. 나랑 하면 개처발…리지 않겠구나. 이 병신, 맨날 게임만 쳐하면서 챌린저도 못 달고 뭐 하는 거냐 진짜.'

권지현은 자신이 마스터 티어 상위권 실력이라는 사실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부심이 철저히 무너졌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서, 저 마음에 안 드는 놈들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챌린저 도전해 볼까….'

-핸디캡이라도 드릴까요?

-글쎄요. 음… 챔피언 뭐 할 건지 미리 알려주기?

"오, 이러면 승산 있겠는데."

-오~!!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재훈 씨. 받아들이겠습니까!?

-핸디캡이요?

"당연히 받아들이지."

권지현은 고민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면에 다시 나타난 최재훈은 망설이고 있었고, 이내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죠. 프로가 있어요. 진짜 잘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해 버린 프로가.

-진짜 잘하는데 왜 한계를?

-그러게요… 챔피언 폭이 드럽게 좁나보죠. 어쨌든, 제가 그 프로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시는 걸로 하죠. 다이아2한테 발리고 망신당하기 싫으면.

최재훈이 도발적으로 웃었다.

"와하하하하! 아니, 진짜. 미치겠다. 어떡하냐."

다리를 사정없이 동동 구른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 권지현은 최재훈이 좋아서 말 그대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분이셨어?"

어제 봤던 얌전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느 쪽이나 압도적인 매력이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쪽에 더 마음에 들었다.

채팅창에는 권지현과 생각을 같이하는 의견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최재훈에 대한 찬사 말이다.

지금 누군가 권지현의 표정을 봤다면 '니가 왜 뿌듯해 하냐?'고 말했을 것이었다. 진짜 그 누구도 존나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지가 뿌듯해하고 있는가.

"아, 쟈드 오리전은 안 되는데 재훈 씨…."

그녀는 안절부절 못 하며 시작된 게임을 지켜봤다.

"오!"

처음엔 게임의 사소한 내용 하나하나에도 그리 요란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녀는 명확히 지루한 상황을 보낼 때의 표정과 기분이 되어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할 뻔 하다가 최재훈에게 실례일 것 같아서 가까스로 참아냈다.

'쟈드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건가?'

게임의 양상에 대한 권지현의 생각이었다.

쟈드는 상성상 오리안나의 우위였으며, 심지어 쟈드는 챌린저고 오리안나는 다이아2였다.

그렇기에 권지현은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오리안나의, 최재훈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게임 내내 최재훈이 저 뺀질거리는 챌린저 새끼한테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더라도 최대한 잘 버텨서 멋지게 질 수 있길….'

그런 소망을 담아 응원했다.

그런데, 오리안나는 너무나도 굴곡 없이 평이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쟈드를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렇기에 권지현은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쟈드가 봐주고 있다고.

만약 최재훈이 전 프로게이머 출신이자 솔로 랭크 실력으로만 따지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보이는 그대로의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단순하게 오리안나가 쟈드보다 잘해서 게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실력자라고 예측하는 건, 일반적인 성 관념을 가진 그녀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축구를 잘 하는 남자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여성 프로 축구 선수 만큼 축구를 잘 하는 남자는 있을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다.

게임에서 흥미를 잃기 직전인- 아니, 게임에 대한 흥미는 진즉에 잃었지만 최재훈에 대한 의리 때문에 억지로라도 흥미롭다 생각하고 있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채팅창에 시선을 향했다.

[아니 그만 봐줘 불쌍하잖아 ㅋㅋ]

[희망 고문 그만하셈]

[그냥 좀 끝내라 이제 지루하니까]

채팅창의 여련 또한 '쟈드가 오리안나를 봐 주고 있다'로 형성되었다.

권지현과 의견이 일치한 것이다.

그에 권지현은,

"뭐?"

불쾌함을 느꼈다.

'아니, 최재훈 씨도 열심히 하고 계신데 왜 그따구로 말하는 거지 얘네들은? 그냥 최재훈 씨가 잘 하는 거라곤 생각 못 하는 건가? 하여간 아메리카TV 년들, 삐딱한 건 진짜.'

어느새 태세 전환을 깔끔하게 마치고 최재훈의 유일한 이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격앙된 손짓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쟈드가 봐주는게 아니라 오리안나가 잘해서 버티고 있는것같은데요?]

그러나, 그 누구도 권지현의 진심어린 호소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리안나 친구냐 ㅋㅋ]

비꼬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권지현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그것과 화면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5만으로 아메리카TV의 후원 전용 화폐인 별풍선 500개를 충전한 권지현은 곧바로 후원 창을 띄웠다.

방송인이 정해 놓은 설정에 따라, 일정 후원액 이상부터는 후원자의 메세지가 후원 알림과 함께 방송 화면에 표시된다.

그 일정 후원액의 커트라인은 평균적으로 천 원.

그러니까, 보통 같았으면 별풍선 10개면 방민아의 의견을 방송 화면에 피력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개가 필요했다.

"돈에 눈 돌아갔나 진짜."

다른 게 아니라, 그냥 방민아가 그렇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미드 마스터 유저 님이 별풍선 100개를 후원했습니다.

=오리안나 챌린저 상대로 개잘버티네 ㄷㄷ 괜히 결승 진출한게 아니구만

[억빠 ㄲㅈ ㅋㅋ]

[벌써 얼빠년들 속출하네]

[누가봐도 제드가 봐 주는 건데]

[재훈이 겜 안하고 여기서 뭐하누 ㅋㅋ]

[아 ㅋㅋ 제드가 너무 봐주니까 저런것도 가능하네]

[ㄹㅇ ㅋㅋ 지뢰찾기하면서 해도 될듯]

"이런 씨."

그녀는 악에 받쳐 후원을 거듭했다.

그렇게 최재훈의 명예를 위해 사용한 돈이 10만원을 넘어가려 하던 때-

"아…."

드디어 승부가 결정났다.

오리안나가 너무나도 허무한 실수를 저질러, 게임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결정나 버렸다.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는데도 권지현은 격렬한 아쉬움을 느꼈다.

최재훈의 실망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걸 실제로 보고도 기분이 불편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아 맞다, 대회 상금이 100만 원이랬던가?'

권지현은 [최재훈][후원] 두 가지 키워드를 포함하는 일화를 떠올렸다.

'최재훈씨한테 100만 원 후원해드리면 좀 괜찮아하실지도… 아니, 좋아하실지도.'

그녀의 이성은 아까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 푼돈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야 미친년아!]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엄청난 결심을 하는 순간.

"어?"

방송의 전개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권지현은 넋을 놓고 상황을 지켜봤다.

"운 좋게 뽀록이 '또' 터져 버렸네요. 그럼 전 이만. 잘 놀다 갑니다~"

그리고 상황이 마무리 되자 흠칫하고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이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우승이라도 한 양, 격렬히 환호하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희열에 젖은 권지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마우스에 손을 갖다 댔다.

최재훈이 아무런 미련도 없이 허니뱅을 등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허니뱅 방송 따위에 더이상 볼일은 없었다.

주저 없이 아메리카TV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그런 그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주작이네]

[주작 ㅋㅋ]

[패작 너무 티나는데?]

[일부러 져주네 이걸]

[조작]

채팅창에 어떤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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