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9화 (36/361)

039화. 대회가 끝나고 난 뒤 빰 빰 빰

"야, 같이 가!"

문을 나서자 마이 시스타 재은이가 뒤따라왔다.

"왜 그랬니."

"뭐가."

"왜 따라왔냐고. 아직 거서 더 놀 수 있는 거 아니야?"

"뭔 말에 두서가 없어. 그리고 그 분위기에 어떻게 있어. 니가 아주 개판을 내놓고 가 버렸는데."

"너랑은 상관 없지 않어?"

"니가 나를 동생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바람에 존나 있네요."

"아이고, 그런 실수를."

"미안하면 됐습니다."

"딱히 미안하진 않은데."

중지가 날라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녀역전 세계에서도 저 거시기한 거시기를 표현하는 거시기는 여전히 모욕의 제스쳐로 사용되는구나, 하고.

중지 욕이 가져다주는 손맛은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벌써 깜깜해졌네."

건물을 나서는 순간 재은이가 말했듯,

건물에 들어설 때 푸르스름해지기 시작했던 하늘은 완전히 어둑해 져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차갑게 식히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다시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쉴 때-

"워우!!!"

절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아, 씨. 깜짝이야. 뭔데, 갑자기 왜 그래."

"우승했잖아, 임마."

꼴에 전 프로게이머라고.

상금을 탔다는 사실보다, 규모도 별로 안 되는 대회지만 나름대로 우승 후보였던 놈을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에 더 고양감을 느꼈다.

"아, 우승하고 아무 말도 없이 쿨하게 있어가지고 잠깐 멋있다 생각했었는데."

"오빠는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멋지잖아."

"쯧쯧쯧, 아휴. 니 얼굴만 보고 잘생겼다 생각하는 애들은 진짜, 불쌍하다 그냥."

"대회는 재밌었냐?"

"어, 뭐 그냥. 그냥저냥이네."

"뭔가 실망한 느낌인데?"

"실망까진 아니고. 야 근데, 니 진짜 어떻게 한 거야?"

"뭘."

"챌린저 어떻게 이겼냐고."

"이세-"

"또 그놈의 이세계 말하면 진짜 차도에서 밀어버린다."

"트럭에 치이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이세계로 가 버릴지도 몰라."

"뭔 개소리야~ 어떻게 이긴 건지나 말해."

진짜 이세계에서 와 가지고 그런 건데 그걸 안 믿어 주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제까지만 해도 다4였던 놈이 챌린저를 미드빵으로 이기는 방법?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다른 세계의 또다른 최재훈과 알맹이가 바뀐다는 비현실적인 일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러니 이세계 얘기를 꺼내지 말라 하면, 나로선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냥 대충 둘러대는 것 외엔 말이다.

"어떻게 이기긴. 개뽀록 터져서 이긴 거라잖아. 니가 좋아하는 BJ가. 그리고, 초반에 그 챌린저가 게임 대충하더라고. 그거 덕분에 이긴 듯?"

"아니, 챌린저가 초반에 좀 대충했다고 그걸 이긴다고?"

"오빠가 그 뭐냐, 어제 아무래도 득렐을 해 버린 것 같아."

"득렐?"

"득도하듯이 레오레를 깨달아 버렸다고."

"오… 평소 같았으면 개쌉소리 같았겠지만 우승자 발언이라 뭔가 달라 보여."

"그래 동상아. 그게 직함의 힘이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함 달자."

"챌린저?"

"좋은 직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거니, 동생아? 진짜 쌉레전드구나."

"그럼 뭐가 있는데?"

"일단 의사, 판사, 검사는 챌린저보다 안 멋지고, 그치? 뭐가 있을까?"

"그것들보다 챌린저가 더 좋은데?"

"맙소사."

"집에 대졸자 하나면 충분하지."

"우리 부모님 자식 농사 개조지셨네. 근데 그거 아냐, 재은아."

"뭔데."

"오빠도 자퇴 생각 중인데."

"으아아악!!!!!"

"으아아아아!!!"

서로 실없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제 자취집 가는 거야?"

"어."

"와서 오랜만에 엄마랑 아빠 얼굴 좀 보지?"

"어제 화상통화로 봤잖아."

"으, 효자야 효쟈. 이런 효자가 없어."

"끌려가서 R을 눌러 봐요."

"뭐라는 거야, 갑자기."

"모른다니, 우리 재은이가 아직 순수하네. 어쨌거나, 말했었잖아. 나 알바하러 가야 한다고."

"아, 맞다."

"부모님한테 사랑스러운 아들 재훈이 요즘 잘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잘나간다고 전해 드려라."

"우리 부모님한테 사랑스러운 아들 없는데?"

봉투에서 심사임당을 해방시켜 드렸다.

이 세계에선 신사임당이 아니라 숙녀임당일 수도 있겠네.

신사아님당일 수도 있겠고.

'세상에.'

이 세계에서 나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빼곤 완벽한 드립이었다.

노벨 남녀역전드립상이 있다면 내 차지였을 것이다.

"이래도?"

60만원.

상금의 절반을 재은이에게 건넸다.

"헐, 미친. 실환가?"

"사실 꿈임. 뺨 졸라 쎄게 꼬집어 보셈."

"아니 이거 얼마야? 60만원? 이거 나 주는 거야?"

"부모님한테 드리는 것보다 니가 쳐먹는 걸 먼저 떠올린다니, 자랑스럽다 동생아. 계속 그렇게만 자라다오."

"아, 부모님. 오키오키."

"5만원은 니 용돈 하고."

"오오오올~~~~~~ 오빵~~~~~~~"

얘한테 500억 5조 년 만에 오빠 소리 들어본다.

여동생에게 오빠 소리 듣기는 무려 5만 원 상당의 존나 비싼 리액션인 것이었다.

스트리머나 BJ한테도 만원이면 충분할 텐데.

혹시나 싶어 시험해 봤다.

"사실 구라임. 만 원만 니꺼임."

"헐."

"오빠라고 안 불러 줘?"

"꺼져."

"이만 원."

"삼만 원."

"오."

"사만 원."

"옵."

"오만 원."

"빠."

"개창열이네."

"창열? 찬열?"

"그래 찬열. 어쨌든, 오빠는 들가 본다."

내가 기다리던 전철이 와서 타려는데-

"오빠!"

재은이가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재은이가 한 손으론 60만 원을 흔들며, 한 손으론 따봉을 하고 있었다.

"오늘 좀 멋졌다. 인정."

재은이가 배시시 웃었다.

입꼬리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도 지금 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 임마. 돈 간수 잘하고. 갈 때 사람 많은 밝은 곳으로 다니고. 골목으로 다니지 말고. 부모님 말 잘 듣고. 음식 꼭꼭 씹어먹-"

"아! 뭐라는 거야~ 빨리 가기나 해."

오랜만에 본 동생의 마지막 얼굴은 멋쩍게 웃는 모습이었다.

* * *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철이랑 지하철을 타는 동안 했었던 방송 장비 알아보기의 연장선이었다.

돈 오지게 벌었으니 조지게 써야지.

내일부터 방송할 때 최소한의 구색이라도 갖출 수 있도록, 오늘 최소한 마이크는 주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 시발, 그래서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데."

영 진척이 없었다.

진척이 없기는커녕,

A가 좋다는 마이크는 1이고, B는 1마이크 쓸 바에는 2쓰라 하고, C는 3마이크가 1보단 가성비가 좋지만 2보단 성능은 안 좋고 그렇다면 보석상이 얼마 손해인가 아주 그냥 다 하는 말이 존나 제각각이라서, 알아 보면 볼수록 아는 게 늘어나긴커녕 오히려 더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와중-

"이거다."

[미튜버 대서기관이 추천한 마이크]

말 그대로 이거다 싶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대 인터넷 방송+미튜버 시대를 연 대서기관.

국내 인터넷 방송계의 최고 성공인 중 한 명.

무려 그런 사람이 추천한 마이크니 이건 꼭 사야 된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대서기관'이 아닌, 미튜버XX가 사용하는 마이크. 라는 부분이었다.

지금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미튜버, 스트리머가 누구던가.

어제 BJ허니뱅의 방송국에 방송 장비들이 기재돼 있던 걸 떠올리고, 권지현 씨의 스트리머 방송국에 갔다.

"지금까지 나는 무얼 위해…."

내가 몇 시간 동안 모든 지성을 발휘하였음에도 근처에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지식의 정수가 그곳에 있었다.

구석에 표기된, 권지현 씨가 사용하는 방송 장비들.

이대로 구매하면 나도 포스트 권지현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예정대로 권지현 씨가 사용하는 마이크의 모델명을 검색해 보았다.

"엄멤메, 허벌라게 깔쌈한 거 쓰시네."

가격이 무려 약 13만 원이었다.

1만대의 제품이 널려 있어서, 권지현 씨가 쓰는 거면 5~6만원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프로뻬셔널의 세계를 너무 얕봤나 보다.

"어쩌지….'

오늘 번 돈 십 분의 일에 달하는 액수였다.

아니, 반은 이미 가족 줬지.

그러면 오분의 일.

지금 내 처지에서 돈 쉽게 벌었다고 쉽게 쓰면 생활비로 미친 데스게임을 즐기던 미친 스릴 중독자 미친 최재훈2의 미친 전철을 그대로 따라갈 터였다.

'권지현 씨 정도 되니까 이런 걸 쓰는 거겠지. 나 같은 초짜는 뭘 써봐야 티도 안 날 테고. 그러면 이것보다 좀 싼 걸로-'

구하다 보면 아까 그 지랄을 다시 반복할 게 아닌가?

"아몰랑."

그래서 그냥 지르기로 했다.

이건 그냥 소비가 아닌 투자다.

내 새로운 직업, 새로운 커리어, 새로운 퓨처인 방송을 위한 투자.

그러니 째째하게 굴지 말자.

"결제."

[결제되었습니다.]

그 창을 보는 순간,

모든 미혹은 머리를 감을 때의 탈모인들 머리털처럼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돈을 쓸 때의 쾌감만이 남아 절로 빵댕이가 흔들거렸다.

이 기세를 몰아 치킨을 시켰다.

뜨신 물로 목욕을 조지고 나오니 머지않아 도착한 치킨.

"와, 시발. 아이언 워먼 슈트 개간지네."

닭다리를 뜯으며 넷플리스를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럴 때면 인생 뭐 별거 있나 싶다.

"미친, 여자 펄크 오반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재은이에게서 온 화상통화였다.

"잘 드갔냐?"

"엉, 니는."

"치킨 조지는 중."

"우승자면 치킨 먹을 자격 있지."

"그렇지. 닌 뭐하냐."

재은이의 얼굴이 멀어지며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치킨집이었다.

"또 거기야?"

"아빠한테 돈 주러 왔서. 아, 그리고 아빠가 바꿔달래. 여기."

화면의 피사체가 여고생에서, 중년 아저씨로 넘어갔다.

"아들!"

"예, 아부지."

"재은이 얘가 아빠한테 60만 원이나 갖다 줬는데, 이거 뭔 돈인지 알아?"

"그거 제가 재은이한티 두 분한테 갖다 드리라고 준 돈인데유."

-거봐!

"아니, 돈이 어디서 나 가지고?"

"게임 대회에서 우승해서요."

-거봐! ~!

"왜요, 재은이가 뭐랬는데요?"

"아니, 대뜸 60만 원 갖다 주길래. 어디서 난 돈이냐 물었더니, 니가 준 돈이래지 뭐니."

"예, 예."

"그런데 니가 돈이 어딨다고 이런 큰돈을 주겠어. 그래서 사실대로 말 하랬더니, 니가 게임 대회에서 우승한 상금이래지 뭐야."

"예, 맞슴다."

"정말? 아들이 게임 대회에서 우승해서 탄 상금이라고?"

"맞슴다?"

"아니, 남자애가 무슨 게임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상금을 탄 대니?"

아버지의 반응에,

나도 원래 세계에서 재은이가 대회 나가서 우승했으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남자애가 게임을 잘 할 수도 있죠."

"무슨 남자애들 모아서 하는 대회같은 거니?"

-아, 젠틀맨스 리그? 그런 거 아니야.

'젠틀맨스 리그?'

맥락상 레이디스 리그의 남녀역전 버전 같았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연미복 차려입고 나와서 어마어마한 수준의 경기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명칭이, 개허접 고추들 대잔치의 대용어로 쓰이고 있다니.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성별 제한 없는 평범한 대회였는데, 오빠가 그냥 우승 후보였던 랭커까지 다 발라버리고 우승해 버렸다니까? 완전 대박이었어.

아버지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허 참나. 아들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어? 아니 그런데, 이렇게 상금 다 주면 우리 아들은 어떡하게?"

"130만 원에서 반 떼어 드린 거예요."

"130만 원이라고? 겨우 게임 대회인데 상금이 130만 원?"

어찌, 방금 전보다 더 놀라신 것 같다.

"아유, 겨우 게임 대회라뇨 아부지.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아빠, 렐드컵이라고 대회 있는데 거기는 상금이 30억이야.

"30억~?! 세상에나, 세상에나. 아들, 그럼 거기 나가서 한 번 우승해 봐."

"아니 아버지, 동네 축구 대회 우승했다고 월드컵 나가서 우승해 보라는 건 도대체 뭔."

"아 그래? 그게 월드컵같이 큰 대회야?"

"레오레에서 가장 큰 대회예요 아부지."

"오… 아무튼 신기하다 얘. 게임 대회 상금이 이렇게 큰 것도 신기하고, 거기에서 너 같은 남자애가 우승한 것도 신기하고."

"아무튼 그렇게 된 거니까, 그 돈 살림에 보태 쓰세요. 오늘은 영업 이쯤에서 끝내고 셋이서 같이 외식도 좀 하시고."

"그럴까?"

-오예~

"우리 아들 숨겨진 재능 덕분에 엄마랑 아빠가 난데없는 호강을 다 하네."

"그러고 보니 아부지- 아니, 어머니는요?"

"배달 가셨지."

"아하."

통화는 안부 인사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방금 아버지와 한 대화에 옛날 일이 떠올랐다.

NCS가 내게 제시한 계약 조건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가 말이다.

-무슨 프로게이머 2부 팀이 계약금을 억대로 줘! 너 2군 야구 선수들이 얼마 받는지 알아!?

-게다가 중국 쪽에서 기숙 생활을 해야 한다고? 아이고 이 녀석아! 딱 봐도 이상한 데잖아!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아! 계약서를 너가 본다고 알아?!

-정 포기 못 하겠으면 계약하러 갈 때 꼭 아빠랑 같이 가는 거다! 아빠 아는 형님이 법조계에서 일하시는데-

결국 당시 성인이었던 나는 부모님에 아버지가 아시는 변호사 형님까지 모시고 계약 현장에 갔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부모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큭큭…."

이어서 그 계약금으로 빚을 변제해 드렸을 때의 표정도.

"하…."

문득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었다.

방금 몇 시간 만에 130만 원을 벌어 놓고, 시급 수천 원짜리 일을 하려 나가니 도통 의욕이 나질 않았다.

또 개진상 손님을 만나게 된다면 무심결 '이런, 이런. 이 몸이 푼돈이나 벌자고 이런 미천한 것을 상대해야 한다니.' 라는 생각을 해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생각해 보니 대회로 상금 타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어쨌든 명심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인터넷 방송을 하려고 준비 중인 PC방 알바에 불과하다.

심취해야 할 곳을 착각해선 안 된다.

적어도, 아직은.

대충 준비해서 PC방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라톡!

[지금 대화 가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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