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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38화 (35/361)

038화. PC방 대회 7

곽희영은 영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쟈드는 상성상 오리안나의 우위에 있는 챔피언이었다.

한 마디로 카운터 픽이라는 건데, 챨린저가 다이아 2 상대로 카운터 픽이라니.

체면이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또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 진짜 쟈드 합니다?"

곽희영이 영 못마땅하여 물어오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준경승 때처럼 대회 중계는, 방민아의 자리에 앉은 곽희영의 화면을 방송에 송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 *

챌린저 대 챌린저에서, 챌린저 대 다이아2로.

게임의 수준은 명확하게 낮아졌다.

하지만 결승이고 또 최재훈이라는 캐릭터가 워낙 강렬한 탓에,

장소의 분위기는 준결승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반면에, 곽희영이 느끼는 부담감은 전 경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대가 챌린저에서 다이아2로 격하돼 버렸으니.

게다가 남자다.

지금 그녀는 결승이 아닌 이벤트 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진다는 경우 자체를 염두하지 않은 그녀는

어떻게 해야 이길까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이길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이겨서 대회를 마무리 지어야 그림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까 하고 말이다.

첫 웨이브가 도착했다.

곽희영은 상대가 챌린저가 아닌 다이아2이기에, 그것도 잘생긴 남자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했다.

봐준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Q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쟈드가 던진 표창이 오리안나를 향해 날아갔다.

"""오~~~"""

오리안나가 그걸 가볍게 피하자 주변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 일련의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곽희영이 적당히 스킬을 사용하고, 오리안나가 그걸 피하고, 관중들이 감탄하고.

그러자 마침내 곽희영에 입에서도 "오~"하고 감탄이 나왔다.

'무빙은 합격.'

가벼운 기분으로 최재훈에게 평가를 내렸다.

옆자리에서 최재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게.

'제대로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최재훈 또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길까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이겨줄까를.

어떤 방식으로 이겨 줘야, 이 건방진 친구가 자신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더 후회할까 하고.

* * *

게임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장소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준결승 때와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그때의 침묵이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침묵은-

"하암."

누군가 내쉰 하품이 관중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졌다.

그렇다. 지루함에서 비롯된 침묵이었다.

관중들이 너무나도 평이하게 진행되는 경기에 일일히 호들갑스럽게 반응해 주는 것에도 지친 탓에 자연스럽게 침묵이 찾아온 것이다.

"궁 좀 써 봐~~~"

마침내 참다 못한 누군가가 재촉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게 시발점이 되어 이곳저곳에서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뭐 좀 해봐~"

"킬각 나오잖아~"

"그만 봐줘~"

"슬슬 끝내지 좀."

그 볼멘소리는 이미 야유에 가까웠다.

모두 곽희영을 향한 것이었다.

쟈드는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그 플레이 스타일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챔피언이었다.

'다이아몬드2 쟈드와 완전 다른 캐릭터 같았다.'

방금 최재은의 발언도 있고 해서, 관중들은 곽희영에게 평소 자신들의 점수대에서 보지 못한 화려하고 현란한 쟈드 플레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쟈드는 6레벨 타이밍에 궁극기를 사용해 오리안나를 잡는 데 간발의 차로 실패한 이후 화려함, 현란함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고, 수동적을 넘어 수비적이기까지 한 플레이는 압도당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었다.

쟈드는 상성상 오리안나의 우위에 있는 챔피언이다.

게다가 그 쟈드의 플레이어는 챌린저 티어고, 오리안나의 플레이어는 다이아2 티어다.

그렇기에.

곽희영이 제대로 안 하고 있다.

최재훈이 잘생겨서 일부러 봐주고 있다.

같은 여론이 형성되었다.

'시발, 심해 새끼들이….'

하지만 곽희영은 봐주지 않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압도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 버린 것이었다.

즉, 그녀는 실제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다이아2인 최재훈에게 말이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답은 간단했다.

최재훈이 남자 치곤, 아니, 다이아2치곤 너무 잘해서였다.

다이아2이기에 초반에 적당히 봐줬던 걸, 챌린저에게 통할 정도의 유의미한 스노우볼로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즉, 최재훈은 본래 티어를 숨겨 상대방을 방심시키기 위해 부계정으로 출전한 것이다.

그게 곽희영의 결론이었다.

'시발놈.'

매력적인 외모와 분위기에서 얻었던 호감은 일찌감찌 사라져 있었다.

'졸렬한 새끼 처음부터 제대로 했으면 내가 발랐을 건데.'

'별것도 아닌 새끼가 빡치게 하네.'

등의 자만으로 가득찬 생각을 하며.

자신의 부진을 합리화시켰다.

상대가 잘해서,

상대가 자신보다 잘해서 지고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자신은 챌린저였으니까.

챌린저를 이긴 챌린저였으니까.

장차 유명 BJ가 될 몸이었으니까.

남자 따위에게 실력으로 지는 건 말이 안 됐다.

'어?'

그때였다.

새로운 미니언 웨이브가 도착하여 진영이 형성되는데, 드디어 오리안나가 빈틈을 보였다.

아까부터 숨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유지하던 거리 간격을 무의미하게 앞으로 나옴으로써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아니.

곽희영은 생각했다.

오리아나가 빈틈을 보인 게 아니다.

자기가 발견한 것이라고.

이 졸렬한 새끼의 운이 다 한 것이라고.

곽희영은 즉시 W스킬, 살아 있는 어둠으로 이동해 오리안나의 뒤를 잡았다.

그리곤 곧바로 평타와 E스킬인 어둠베기를 연계.

이 경우, 오리안나가 살기 위해서 보여야 할 대처는 정해져 있었다.

강철 구체를 자신에게 이동시킨 뒤 궁극기를 사용하여 쟈드의 궁극기를 유도한다.

그 틈을 타 플래시를 사용해서 거리를 벌리며 타워 쪽으로 도망치는 것.

허나, 지금 오리안나에겐 플래시가 없었다.

6레벨, 쟈드의 궁극기 타이밍에 죽지 않기 위해 사용했던 플래시는 아직 쿨타임일 것이다.

즉.

오리안나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쟈드를 죽일 방법 또한 없었다.

"오!"

"드디어!!"

관중들이 환호했다.

"어?"

"뭐하지?"

이어서 의문을 표했다.

그저 잠깐 앞으로 나왔을 뿐인 줄 알았던 오리안나가, 게임에서 튕긴 것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병신, 뭐하지?'

곽희영은 신경쓰지 않았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하면 죽는 건 저 쪽이었다.

오리안나가 궁극기인 충격파를 사용할 때 침착하게-

'지금!'

쟈드의 궁극기인 암흑의 표식을 사용하면 이렇게-

"오오."

"씹었다!"

오리안나의 구체가 충격파를 발하며 주변의 적들을 끌어당겼다.

그 안에, 죽음의 표식을 사용하여 일시적 타게팅 불가 상태가 된 쟈드는 없었다.

애꿎은 미니언들만 오리안나의 스킬을 맞고 죽어 나갔다.

미니언 다음은 오리안나의 차례였다.

퍽-

죽음의 표식이 폭발하는 동시에, 오리안나는 사망했다.

최재훈의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곽희영이 그동안 느꼈던 답답함이 승리의 환희로 변하는 걸 만끽하려던 찰나-

"하, 드디어 끝났네."

그런 소리가 들려 왔다.

그 한 명 뿐만이 아니라 관중들 대체로, 지루한 순간이 드디어 끝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곽희영의 기분이 단번에 싸늘하게 가라 앉았다.

'시발….'

곽희영이 속으로 분을 삭히고 있던 그 때,

"수고하셨어요."

반대쪽 결승석.

한 자리 떨어져 앉아 있던 최재훈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막상 또 게임에서 이기고, 저 매력적인 얼굴에 분위기를 접하니까 열등감에서 비롯됐던 혐오감이 희석되고 다시금 호감이 피어오른다.

'얘 방민아 언니 팬이겠지? 대회 끝나고-'

어떻게 해 볼까. 그런 추잡한 생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상쾌한 미소로, 손을 맞잡았다.

"재훈 씨도 고생하셨어요. 다이아2치고 너무 잘하시던데요?"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프로라 생각하고 제대로 하라고. 제대로 했으면 이런 식으로 지진 않으셨을 텐데."

"그러게요."

"…?"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곽희영이 미간을 구겼다.

"뭐라고요?"

"네? 뭐가요?"

"아니, 방금 뭐라고…."

최재훈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지진 않으셨을 거라고요?"

"…?"

곽희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졌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뻔뻔한 최재훈의 모습에 곽희영은 이내-

"큭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그러게요. 아, 아깝다. 이길 수 있었는데."

장소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

최재훈만 빼고.

그는 무슨 무표정했다.

'뭔 농담?'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곤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방민아에게 물었다.

"허니뱅님, 제가 진 건가요?"

방민아가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예, 아쉽게도… 최재훈 씨의 캐릭터가 오리안나였으니… 그렇게 되네요."

또다시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는 와중에, 최재훈은 아주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자리에 앉아 말했다.

"두 분, 와서 이것 좀 봐 주실래요?"

두 분.

방민아와 곽희영은 최재훈의 뒤로 가서, 그가 가리키고 있는 걸 봤다.

방금 전 결승전의 점수판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방민아가 물었다.

오리안나의 킬, 데스, 어시스트를 나타내는 숫자, 010.

쟈드의 킬, 데스, 어시스트를 나타내는 숫자, 100.

점수판에는 굳이 재볼 필요도 없이 명확하게 승부의 결과를 나타내는 스코어가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최재훈이 가리키는 곳이 이상했다.

킬, 데스, 어시스트가 표시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CS 수치를 나타내는 곳이었다.

오리안나의 CS 수치를 나타내는 곳.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00.

곽희영과 방민아의 눈이 같은 속도로 커다래졌다.

미드빵의 승리 조건은 네 가지다.

1. 상대방을 죽이는 경우.

2. 상대방의 미드 1차 타워를 파괴하는 경우.

3. 상대방과 CS 수치를 50 이상 벌리는 경우.

그리고, CS 수치 100에 먼저 도달하는 경우.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먼저 달성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오리안나는 죽으면 미니언을 죽일 방도가 없다.

그러니까, 오리안나는 쟈드가 자신을 죽이기 전에 CS 100을 달성한 것이다.

즉-

"뭐야, 오리안나가 이긴 거야?"

누군가 중얼거린 대로, 오리안나의 승리였다.

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와, 이백 명에 달하는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대회의 결승.

자신을 빛내기 위해 준비된 자리.

곽희영은 그런 자리에게 상대방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부캐라곤 해도 표면상으로 다이아2인, 심지어 남자인 상대에게.

그런 상황이 가져다주는 초조함과 압박감, 그리고 굴욕감에 의해 상황판을, 즉 CS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중계를 겸한 관전은 객관적 관측이 가능한 관전 모드가 아닌, 그런 곽희영의 화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CS라는 요소에 의한 결과는 정말로 난데없고 또 뜬금없는 반전으로 다가왔다.

[???]

[어케된거임?]

채팅창이 의문으로 도배되었다.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가서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최재훈만 빼고.

그는 방민아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쉽게도 제 캐릭터가 오리안나지만, 제가 우승인 걸로 해도 되겠습니까?"

"어, 어… 네."

방민아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훈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금은 현금으로 즉시 지급된다고 하셨었는데."

"아… 네. 잠시만요…."

방민아가 자리에서 준비해 두었던 봉투를 가져와 최재훈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예?"

"그, 솔직히 장인상 누가 봐도 제 미드 케잇틀린 거 같은데.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중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훈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방민아는 봉투를 하나 더 건넸다.

'이 기세면?'

최재훈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허니뱅님?"

"네?"

"그냥, 인기상도 저 합시다. 여러분 인정?"

관중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훈도 또다시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최재훈의 손에 봉투 세 개가 쥐어졌다.

'운이 좋군.'

"자, 그럼. 여러분. 저는 이만 알바 하러 가 봐야되는데, 아 혹시. 인터뷰 같은 거 해야 하나요?"

"어… 뭐… 승리 소감 한 마디…."

승리 소감 한마디라.

"운 좋게 뽀록이 '또' 터져 버렸네요. 그럼 전 이만. 잘 놀다 갑니다~"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한 최재훈이 나가고,

최재은이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나간 뒤에도,

PC방은 한동안 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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