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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37화 (34/361)

037화. PC방 대회 6

"시흥에서 우승하러 왔습니다."

최재훈은 말해놓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런 쌈빡한 대사가 내 입에서 나왔다고라? 최재훈, 지금 잘 나가나?'

아무래도, 꼴에 전 프로게이머라고 방금 전, 대회의 열기에 감화되어 버린 듯했다.

그런데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조용해져서 다들 자신만 쳐다보고 있다.

[머임 얼굴 잘 못봤어]

[얼굴 보여줘]

카매라 앵글에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진 남자의 얼굴, 그리고 목소리 때문에 방송과 장소의 분위기는 어느새 어수선해져 있었다.

곽희영에게 주목돼 있던 관심이 분산되어 버렸다.

"저기여?

"아, 네. 네!"

멍하니 최재훈을 쳐다보던 방민아가 꺼졌던 전원을 킨 것처럼 반응했다.

"그,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제서야 방민아가 최재훈의 얼굴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와 개잘생겼네 ㄷㄷ]

[와 얼굴 정신나갔네...]

[근데 자기소개 이미 했자너 ㅋㅋㅋ]

[정신없누 뱅드림]

"예? 아, 예 뭐, 최재훈입니다. 시흥에서 왔고, 티어는 다이아2."

"다이아2! 아, 남성 분이신데 티어가 상당합니다!"

자기소개가 끝나는 즉시 방민아는 곧바로 최재훈에게서 카메라를 거둬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얼굴이 가진 파급력이 너무 쎄서 곽희영이 차지해야 할 관심을 독차지할 경우를 우려한 판단이었다.

[아니 ㅅㅂ 얼굴 더보여줘]

[아 쌍판치우고 저분 얼굴이나 보여줘]

[남자가 다2 ㄷㄷ]

[미쳤네]

[이름이 재훈이 ㅋㅋㅋㅋㅋㅋㅋ]

[숫사잔가본디? ㅋㅋ]

[그럼 대회 여까지 못올라왔지]

[아니근데 이름이 재훈이 ㅋㅋ 레전드네]

[아니근데 재훈이가 다 저러면 나도 바로 암사자되지 ㅇㅇ;]

[ㄹㅇㅋㅋ]

[다2면 그래도 괜히 결승에 진출한게 아니네]

"그렇죠! 다2면 괜히 결승에 진출하신 게 아니죠!"

그 말을 들은 최재훈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예, 뭐. 개뽀록으로 올라왔죠."

"네?"

갑자기 무슨 소린인가 싶었는데-

[이분 혹시 빵티인가 ㄷㄷㄷ]

[빵티 맞나본데?]

[빵티플레이보고 개뽀록이라 했었자너]

"아, 혹시… 치킨킨치킨님?"

"치킨퀸치퀸 맞습니다. 접니다."

[와 ㅋㅋㅋㅋㅋㅋ]

[소름돋았어]

[그게 남자였다고? 다3 바른 미드케잇도?]

[아니근데 판티불렀을때 여자가 대답했었잖아]

"그러니까, 아, 아까 판티온 불렀을 때 여성분 목소리가 들려서…."

"아, 그거. 제 동생이었어요."

"동생?"

성남에서 온 최재훈의 동생.

여동생.

'아.'

"혹시, 아까 그 오리안나 했었던 최재은 학생 말씀하시는…."

"예, 맞아요."

[아니 ㅅㅂ 유전자 또 너야?]

[남매끼리 겜잘하고 미남미녀네 ㅋㅋ]

[아빠!!!!!!!!!!! 내유전잔 왜이래!!]

[나도 저런 유전자 달라고!!!!!!!!]

[아 억울하네 효도 안함]

[안억울해도 안했었잖아요 ㄷㄷ]

[평소엔 뭐가 그리 억울했누? ㅋㅋ]

[그런데 이러면 리벤지전 성립이네 ㅋㅋ]

"어, 그러게요. 이거 이러면 최재훈 씨가 동생 분의 복수를 하게 되는 건가요?"

"복수요? 아, 그러게요?"

최재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곽희영을 쳐다보자 둘의 눈이 마주쳤다.

"잘 부탁드려요?"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보는 여자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실실 웃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남자.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짓자 곽희영은 헤벌레 바라볼 것만 같아 시선을 피했다.

"그, 어떨 것 같으세요, 재훈 씨.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글쎄요-"

이번엔 방민아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개뽀록 한 번 더 터져 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남자의 매력적인 미소에 넋을 잃는다.

자신이 했던 발언을 명백히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한 말에 당황스러워한다.

방민아의 표정은 뒤죽박죽이었다.

'시발, 왜 이러지.'

남자는 분명 잘생겼다.

하지만 방민아는 미남에 익숙했다.

BJ라는, 잘 나가는 BJ라는 특성상 잘생긴 남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아메키라TV의 남캠들 말이다.

타고난 얼굴과 몸매만으로 여 시청자들의 지갑을 열고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그들도 능숙하게 대할 수 있는 방민아였는데.

눈 앞의 남자에겐 그게 안 됐다.

여자를 끌어당기는 듯하면서도 꿰뚫어 보는 그 시선에, 혹은 분위기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오빠한테 둘다 맥 못추는거보소 ㅋㅋ]

[걍 찐따 돼 버리네 ㅋㅋ]

[허니뱅은 말할것도 없고 희영좌도 남자좀 후려봤을 텐데 ㄹㅇ]

[그정돈가? ㅋㅋ]

[그냥 좀 잘생긴 남캠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오버가 심하네]

[기억안나 더보여줘 ㅅㅂ]

[아니 왜 얼굴 안 보여줌?]

그때 누군가 외쳤다.

"오빠 잘 생겼어요!!!!"

그걸 시작으로, 실내 곳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던 찬사는, 최재훈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멈췄다.

그에 맞춰 말한다.

"게임 대횐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이기면, 그때 게임 잘 한다고 해 주세요."

"""""올~~~""""""

채팅창과 실내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이번 걸로 모든 관심은 완벽하게 최재훈이 차지해 버렸다.

곽희영은 더이상 안중에도 없었다.

방민아 또한 그 분위기 안에 빨려들어갈 뻔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기겁했다.

매력적이라서 뭐 어쩌란 말인가.

결국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남자 하나 때문에 중요한 계획을 망칠 수는 없었다.

"아~ 자신감 좋아요! 자신감만! 상대는 무려 챌린저를 이긴 챌린전데요! 희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방민아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게 곽희영의 옆구릴 쳤다.

"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방민아가 시선으로 재촉하자 그제야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었던 곽희영이 말했다.

"어, 그러면 힘드실 텐데요?"

"힘들다! 뭐가 말이죠?"

방민아가 카메라의 초점을 곽희영에게 맞췄다.

"게임 잘한다는 소리 듣는 거요."

-오~~~~~~

"이야! 원래 같았으면 좀 띠꺼울 법도 한데! 챌린저가 하는 말이라 그런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어요?!"

더불어 이목을 끌어모으기 위해 요란스럽게 말했던 방민아의 의도가 먹혀든 건지, 다시금 방민아에게 관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이아가 저랬으면 바로 대가리로 소주병 격파시켰지 ㅋㅋ]

[ㄹㅇ루다가 ㅋㅋ]

[오늘부터 내 이상형은 겜잘하는 여자다 ㅇㅇ;;]

[남자임?]

[여잔데]

[미침?]

"그러면 어떡하죠? 최재훈 씨에게 뭐, 해드릴 거라도? 미리 드리는 사과의 말씀이라던가?"

"음…."

곽희영이 사뭇 짓궂게 웃었다.

"핸디캡이라도 드릴까요?"

"아! 핸디캡!?"

"예 뭐, 다이아2인데 원하신다면 제가 그 정돈 해드릴 수 있죠. "

"이야~ 챌린저의 자신감! 핸디캡이라면 어떤 핸디캡을 말하는 거죠?"

"글쎄요. 음… 챔피언 뭐 할 건지 미리 알려주기?"

미드빵의 밴픽은 양측의 챔피언 선택이 모두 확정될 때까지 서로의 챔피언을 확인할 수 없는, 블라인드 픽에서 진행되었다.

레오레에서 캐릭터를 고르는 과정, 밴픽이 승리 확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했다.

그 비중을 수치화하자면 최소 50%이상.

어떤 캐릭터든간에 약점이 있고, 상성이 있었다.

실력차가 아무리 커도 상성에 의해 상쇄될 수 있었다.

게임의 승패여부는 픽벤 과정에서 반쯤 정해진다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곽희영이 제안한 핸디캡은 파격적이었다.

그만큼 곽희영의 자신감은 돋보였다.

[ㅁㅊ다]

[셀프 카운터 ㅋㅋㅋ]

[이게 챌린저의 자신감인가?]

[다2따위는 뭘해도 이긴다는 자신감 ㄷㄷ]

어느새 방송의 분위기와 관심은 곽희영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방민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방송을 이어갔다.

"오~!!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재훈 씨. 받아 들이시겠습니까!?"

핸디캡은 방민아의 우승에 명백히 누가 될 요소였다.

하지만 방민아와 곽희영은 괘념치 않았다.

다이아몬드2는 높은 수준의 티어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둘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챌린저였다.

대한민국 최상위 300위 안에 포함된 랭커.

챌린저들이 다이아몬드2를 대하는 느낌은, 다이아몬드2가 브론즈를 대하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해.

아주 깊은 바다속의 심해만큼이나 수준이 낮다는 의미의 단어인 그 말을, 챌린저들은 다이아2에게 서스럼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 챌린저와 다이아2의 격차는 엄청났다.

방민아는 곽희영은 그걸 아주 잘 알았고, 그렇기에 이 정도 핸디캡을 준다 해도 승패가 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 또한 아주 잘 알았다.

둘은 오히려 최재훈이 핸디캡을 받아들였으면 했다.

결과는 변함 없이 곽희영의 실력만 더욱 부각될 테니까.

"핸디캡이요?"

최재훈은 그 제안에 생각헀다.

'시발 개꿀띠?'

아무리 최재훈이 전프로에 챌린저 1위를 찍어 봤다곤 해도, 상대는 챌린저.

승률 100%를 보장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저 핸디캡을 받아들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최재훈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수락하려고 한 최재훈이었지만-

"…."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새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핸디캡? 좋지.

존나 좋지.

그런데, 이것도 명색이 대회다.

명색이 대회의 결승이다.

전 프로인 내가, 저 아마추어한테 핸디캡을 받는다고?

그것도 저렇게 잔뜩 우쭐해져서 제안하는 핸디캡을 좋다고 받아들이라고?

최재훈의 한쪽 입꼬리가 힐쭉 올라갔다.

"이렇게 생각해 보죠. 프로가 있어요. 진짜 잘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해 버린 프로가."

방민아는 갑자기 무슨 소릴 하나 싶었지만 일단 맞장구를 쳤다.

"진짜 잘하는데 왜 한계를?"

"그러게요…."

최재훈이 사색에 잠겼다.

남들이 보기엔 생각을 짜 내기 위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챔피언 폭이 드럽게 좁나 보죠."

FACE는 레오레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그런 FACE의 최대 강점을 뽑자면 무엇이 있을까.

레오레 유저들에게 묻는다면 엄청난 피지컬과 엄청난 뇌지컬.

가장 먼저 그 두 가지를 댈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선수들 역시 갖고있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FACE를 넘어서는 피지컬이나 뇌지컬을 보여주는 선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고는 항상 FACE였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

유연함.

즉, 챔피언 폭 덕분이었다.

무슨 챔피언으로, 어떤 성향의 플레이를 하든 최상위 프로리그라는,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할 수 있었다.

수십 번의 메타 변화를 거치면서도, 무수한 종류의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면서도 그는 항상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그렇게 FACE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FACE의 사례가 증명하듯, 챔피언 폭은 프로 선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자질이었다.

훌륭한 솔로 랭크 플레이어가, 프로에서도 마찬가지로 훌륭할 수 있으려면 그 자질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재훈에겐 그게 없었고, 그렇기에 2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대회에서는 그 자질이 요구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재훈은 얼마든지 1군이 될 자신이 있었다.

최고가 될 자신이 있었다.

어떤 선수를 상대해도, 만족할 결과를 내놓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쨌든, 제가 그 프로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시는 걸로 하죠."

오만하다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다이아2한테 발리고 망신당하기 싫으면."

최재훈은 "아!"하며 말을 이었다.

"리벤지 매치라니까 이렇게 하죠, 제가 오리안나 할 테니. 그쪽이 쟈드 하시는 걸로."

그렇게, 다시 살아나려고 하는 분위기라는 불씨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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