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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35화 (32/361)

035화. PC방 대회 4

예상과, 그리고 기대와 달리 너무 빨리 탈락해 버린 최재은은 몹시 분했다.

하지만, 평소 자기가 즐겨 보던 방송에 자기가 좋아하는 BJ 허니뱅과 같이 나올 거라는 설렘에 그 분함은 금방 진화되었다.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 그녀는 지금 몹시 설레 보였다.

최재훈은 옆에서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귀여운 시끼.'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읽은 그는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화면에 얼굴을 고정시켰다.

귀여운 동생이 방송에서 조금이라도 더 주목받을 수 있게.

"자, 먼저 어디서 온 누구고 티어는 어떻게 되는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방민아 앞에 온 최재은이 야외 방송 장비에 달린, 핸드폰의 카메라 부분을 갖다 댔다.

최재훈이 쳐다보고 있던 화면, BJ허니뱅의 방송 화면에 동생의 긴장한 모습이 떠올랐다.

귀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저, 시흥에서 BJ허니뱅 언니 보러 온 최재은이라고 합니다! 저기 그…."

"네?"

"한 번 안아봐도 돼요, 언니?"

"아유, 고롬. 이리 와요."

방민아가 벌린 팔 안으로 최재은이 빨려 들어갔다.

"와 씨, 언니 진짜 팬이에요!!!"

행동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팬심에 방민아 또한 수수하게 기뻐하며 미소지었다.

"아이고~ 고마워요!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재은 학생."

[고딩인가? 개커엽네 ㅋㅋ]

[허니뱅 방송할 맛 나겠누 ㅋㅋ]

"그러니까. 내가 이럴 때 진짜 방송하는 보람을 느낀다니까?"

포옹을 끝낸 최재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방송 수익 통장에 꽂힐 때보다 더요?"

"그건 아니고."

[그건 선 넘었지ㅋㅋ]

[욕심 그득하누 ㅋㅋ 월3억을 이기려 하네]

[ㄹㅇ ㅋㅋ]

방민아가 실실 웃으며, 마냥 좋아 죽는 상태의 최재은에게 말했다.

"어쨌든, 우리 재은 학생. 티어는 어떻게 돼요?"

"다2요."

"오~"

[올ㅋㅋㅋㅋㅋㅋㅋ]

[고딩인데 다2 ㅋㅋㅋ]

[쌉재능충이고 ㅋㅋ]

"고2인데 다2? 고3되면 그럼 다3되는 건가?"

"고3 되면 당연히 마스터 찍죠~"

"오~ 수능은 안중에도 없는 발언~"

[아빠 판사 검사는 못 됐지만 마스터가 됐어요]

[아빠 챌린저만 찍고 효도할게요]

[검투사의 의지가 이렇게 이어지네 ㄷㄷ]

"근데 우리 재은 학생, 다2면 혹시 아까 그 판티온이신가?"

"아뇨 그건-"

그건 제 오빠요.

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듯,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 놓은 상태.

오늘 화장도 안 하고 복장도 프리하긴 했다.

명백히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건?"

"아, 저 아니에요."

"아하…."

'아깝네.'

만약 최재은이 아까 그 판티였으면 그녀를 이긴 챌린저, 곽희영에게 더 많은 관심이 쏠렸을 텐데.

'뭐,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우리 재은 학생. 다2면 상당한 실력잔데, 아까워서 어떡해요. 우리 지아 씨도 그렇고, 원래면 4차전까지는 올라갔어야 할 실력자분들인데 오늘 대진 운이 안 좋은 건지, 참가자들 수준이 높은 건지. 너무 빨리들 떨어져 버리시네, 아깝게 말이야."

[다이아쉑들 개불쌍하네 ㅋㅋ 자기 정도면 일반인 중에서 최고라 믿고 싱글벙글해서 대회 참가했을건데]

[다이아들 생각하는 게 다 똑같나보네 ㅋㅋ]

[다이아인거 자랑하려고 전국 다이아란 다이아는 다 몰려왔누 ㅋㅋ]

[신나서 양학하러 왔는데 이게왠 ㅋㅋ]

[ㄹㅇ ㅋㅋ 챌린저 있는지 알았겠냐고 ㅋㅋ]

['부캐같은 다2'도 잊지 말자고 ㅋㅋ]

[여기가 BJ허니뱅X라온PC방배 다이아 단체 장례식 맞죠?]

[맞습니다... X를 눌러 다이아에게 조이를 표해 주세요]

[X]

[SE]

[어허]

"하… 오늘 못해도 3등은 할 줄 알았는데. 대회 수준이 왜 이렇게 높은 거야."

"대회 수준이 왜 이렇게 높냐고요?"

방민아가 카메라를 조정해 자신의 모습을 원샷으로 잡았다.

방민아는 카메라를 향해 있는 멋들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내, 대회잖아?"

[개띠껍네 ㅋㅋ]

[아 새끼 ㅋㅋ 진짜 ㅈ같이 생겼네]

[이새기 얼굴 보니까 갑자기 또 기분 더러워지네 ㄹㅇ;]

[와꾸 하나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새끼]

[근데 인정할수밖에 없긴해 ㅇㅇ]

[ㅇㅈ 허니뱅이 대회 열면 피시방대회라도 이정도지]

"재은 학생도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좋구요~ 재은 학생. 챔피언은 뭐로 고르셨나요? 설마 또 렉톤 같은 개졸렬한 탑신병자 챔 나오는 건 아니겠죠?"

말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본심은 졸렬한, 그러니까 미드빵에서 비양심적일 정도로 강력한 챔피언을 골랐으면 했다. 그럴수록 곽희영이 더욱 빛나게 될 테니.

"오리안나요."

강철 구체를 조종하는, 강철 인형 오리안나.

미드 라인에서 고리타분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정석적이고 무난해서, 방민아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챔피언이었다.

'쯧.'

방민아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어떻게 아까부터 바람대로 흘러가 주는 일이 없다.

"오리안나!"

여러분! 드디어! 대회 취지에 맞는 유저를 찾은 것 같습니다! 황족 미드! 황족 미드에 어울리는 근본 픽 오리안나!"

[그래... 이래야 옳게 된 미드지]

[아까 렉톤이랑 판티 부대끼는 거 어우십 ㅋㅋ 격떨어져서]

[ㄹㅇㅋㅋ]

[근본픽이면 뭐해 졌는디]

"'근본픽이면 뭐해 졌는디' 아, 그러게요. 진짜 이런 유저가 올라가야 되는데, 재은씨. 어쩌다가 챌린저를 만나셔서!"

"하… 운빨 좆망겜."

[우리 지아좌도 운 안 좋게 '부캐 같은 다2'만나서 져 버렸자너 ㅋㅋ]

[아 ㅋㅋ 운이 좋은 건 도대체 어느쪽이냐고]

[운이 아니라 운명인 거지... 세상에 우연이란건 존재하지 않아 다 운명이라는 굴레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 거지]

[중2병새끼 쳐내]

[저새끼 몇신데 벌써 치고 현탐갖고있냐]

[발전소 빡씨게 돌리네 ㅇㅇ;;]

[근데 ㄹㅇ 운빨 좆망겜이긴 하네 ㅋㅋ 어케 딱 챌린저를 만나냐]

"그러게요, 하필이면 딱 챌린저를 만나가지고… 상대방 챌린저는 캐릭터가 뭐였어요?"

"쟈드요."

"아, 쟈드!!!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챔피언이죠?"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챔피언이다.

그런 챔피언으로 승리했으니 대단하지 않냐?

방민아는 그런 식으로 바람을 잡았지만-

[챌린저가 다2 오리 상대로 쟈드 ㄷㄷ]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ㄷㄷ]

[승리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악마에게 기꺼이 내줄새끼 ㄷㄷ]

[내티어 애들은 악마한테 줄 부모도 없어 보이던데 ㅋㅋ]

[어허]

[매판마다 팀이 죽이려고 난린데 어떻게 살아남겠어]

[ㄹㅇ ㅋㅋ 챌린저 사람들은 패드립 안칠거아냐 부모님들 다 만수무강하실듯]

채팅창에는 방민아가 원하던 것과 상반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어둠 암살자, 쟈드.

쟈드는 분명 다루기가 까다로운 챔피언이 맞다.

하지만 워낙 화려하고 강렬한 암살 챔피언이다 보니 실질적인 성능을 차치하고 인식만으로 OP소리를 듣곤 했다.

밸런스를 해칠 정도로 강한 챔피언을 뜻하는 말인 OP(Over Power)소리를 말이다.

다이아몬드는 정직한 챔피언을 골랐는데, 정작 챌린저가 졸렬하게 쟈드 같이 쎈 캐릭터를 고르냐.

그런 식의 여론이 형성됐다.

방민아는 다급히 말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한다!'"

자신의 의견을 시청자 중 한 명의 의견인 양 말이다.

"그렇지. 다이아2라도 전력을 다해야지. 봐주면 오히려 더 기분 나빠. 안 그래요?"

"그렇긴 해요. 제가 언제 챌린저 쟈드랑 해 보겠어요. 좋은 경험한 거죠. 그리고 캐릭터가 뭐였든 간에, 제가 졌을 것 같아요. 실력 차이가 워낙 커서."

"이야~ 너무나도 쿨한 인정! 이게 황족 미드의 품격인가요?"

[아 ㅋㅋ 그러면 이지아가 뭐가 되냐고]

[탑신병자에겐 없는 품격 ㄷㄷ]

[ㅈ지아 재평가 시급]

-성남이지아 님이 달풍선 백 개를 후원했습니다.

=아니 나도 챌린저였으면 쿨하게 인정했지 ㅋㅋ

[추하다 ㅈ아야]

[성남의 수치 이지아 ㄷㄷ]

[속보)성남 시장 이지아 탄핵안 가결]

[속보)성남시 고민 끝에 이지아 소송 결정]

[속보) 전국 악어협회 이지아 선처 생각 없어]

'하.'

한시름 넘겼다.

다시 곽희영을 띄워줄 차례다.

"챌린저 쟈드, 상대해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다2에서 만난 쟈드들랑 비교해서요."

"어… 그냥 전혀 다른 캐릭터던데요. 딜도 무슨 같은 캐릭턴데 더 쎈 것 같고."

"전혀 다른 캐릭터다! 딜이 더 쎈 것 같다! 언니들, 우리도 리플 영상 함 보실까요?"

[ㄱㄱ]

[다2 양학영상 ㅋㅋ]

[이쉑 또또 패배자 부관참시하네 ㅋㅋ]

"앗, 그 재은 학생. 괜찮겠어요? 혹시 기분 나쁘세요?"

"아유~ 아닙니다. 제 캐릭터가 허니뱅 방송 타면 저야 영광이죠."

'이 기특한 자식.'

어쩜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반응만 쏙쏙 골라서 보여줄까.

방민아는 진심 어린 호감을 담아 최재은의 팔뚝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면 자, 같이 갑시다! 이번엔 재은 학생만 따라와 주세요~ 아까 너무 어수선하더라."

그렇게 자리로 되돌아온 방민아의 화면에 최재은의 게임 영상이 틀어졌다.

그 영상은 그대로 방송에 송출되어-

[와, 정신나갔네 ㅋㅋ]

[저게 킬각이 나온다고?]

[와 역시 챌린저는 챌린저네]

[나 골드 쟈드 장인인데 쟈드 더 못하겠다 접어야지]

[내 쟈드가 쓰던 건 어둠 비급이 아니라 어둠B급이었네;;]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얘가 ㄹㅇ 우승후보네]

[ㄹㅇ 걍 우승자 정해졌네]

[누군지 궁금하네]

[프론가?]

방민아가 원하던, 곽희영을 향한 호기심 어린 긍정적인 반응도 같이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최재은을 곽희영 띄워주기에 몇 번 더 사용하곤 자리에 되돌려 보낸 뒤 3차전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기가 끝날 때쯤을 가늠해서 말했다.

"이번엔 자기가 가장 특이한 챔피언한테 죽은 것 같다, 손!"

곽희영에게 장인상을 안겨주기 위해 준비해 둔 대목이었다.

'희영이가 긴을 한 댔었지?'

장전이라는 특이한 일반 공격 방식을 가진 원거리 딜러 캐릭터.

그걸로 미드에서 이기고 장인상을 수상하면 충분한 만큼의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으리라.

"저요!"

곧바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아까 일도 있어서 방민아는 간결하게 물었다.

"무슨 챔피언?"

"르시안이요!"

[미드 르시안이 뭐가 특이해 ㅋㅋ]

"응~ 전혀 안 특이해~"

"언니 저요!"

"챔피언?"

"티오라요!"

[또 탑신병자야?]

"'또 탑신병자야?' 그러게요."

[저 없는 챔프를 미드에서까지 볼 순 없지 ㅋㅋ]

[ㄹㅇ 탑에서만 봐도 수명이 뭉텅뭉텅 깎인는 기분인데]

"티오라는 여론이 안 좋으니 티오라도 패스! 다음?"

"언니!!! 나! 나! 나! 나! 나 미드 케이슬린한테 영혼까지 쳐발렸어!"

'케이슬린?'

봇 라인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걸 상상하기 힘든, 순혈 원거리 딜러 챔피언이었다.

방민아가 내세운 질문의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녀는 딱 집어 '긴'을 기다리고 있었다.

곽희영의 긴을 말이다.

그래서 이 또한 넘기려고 했으나-

[와 미드 케잇 ㅅㅂ]

[미드케잇은 뭐고 또 ㅋㅋ]

[별게 다 나오네]

[이거다]

[이거 리플 ㄱㄱㄱ]

채팅창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었다.

'시발….'

방민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와 미드 케이슬린! 특이하긴 한데, 혹시 양학 당하신 건 아닌가요?"

"아니 언니~ 나 그래도 다3이야~"

[다이아 또 너야?]

[그만좀 죽어 다이아!!!]

[dia가 아니라 die ya 였누 ㅋㅋ]

"그리고 언니 이거 내가 져도 당당한 게, 이 케이슬린 그 사람이야."

"뭐? 누구?"

"치킨퀸치퀸! 아까 그 언니가 존나 잘한다던 그 판티!"

"오!"

방민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겉으로만 말이다.

'시발, 또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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