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화. PC방 대회 3
실력파 레오레 전문 방송 BJ.
방민아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티어는 챌린저, 점수는 900점대, 포지션은 미드.
레오레 아마추어 방송인 중에서 가장 미드 포지션을 잘 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항상 거론되는 방민아였다.
그 뛰어난 실력과 방송 감각 덕에, 그녀는 아메리카TV에서 잘나가는 레오레 BJ중 한 명이었다.
미튜브 구독자는 26만 명.
평균 시청자는 무려 5천 명.
그녀는 BJ로서의 입지가 입지인 만큼, 그리고 솔로랭크 점수가 점수인 만큼 프로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프로의 플레이를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판티가 정말 렉톤보다 잘해 가지고 의도해서 이런 플레이가 나온 거라고 하면 문제가, 판티 수준이 너무 높아져 버려. 말도 안 될 정도로. 이런 정신 나간 플레이를 하는 건 사실상 라인전 레벨이 프로 수준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거든."
그것도, 라며 말을 잇는다.
"그냥 프로가 아니라, 라인전 실력으로만 따지면 프로 1군 주전이라 봐도 충분한 레벨."
미간이 구겨진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하고 침음을 흘린다.
좌석에 앉아 방송을 통해 방민아를 보고 있던 대회 참가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채팅창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오버하는것 같은데]
[ㄹㅇ ㅋㅋ]
[아무리 봐도 그냥 개싸움 같은데]
[그냥 상여자들이 사내새끼들마냥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거 본 기분인데]
[성격은 상여자 플레이는 남자를 얕보고 있다]
[지아좌 체면 살려주려고 너무 오버하는거 아냐?]
-성남이지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언니 나 괜차너 ㅇㅇ;
[지아좌도 괜찮다자너 ㅋㅋ]
[어째서 쪽팔림은 지아좌의 몫인가?]
[아 ㅋㅋ 친구가 내 얼굴가지고 놀렸더니 남자 선생님이 나 정도면 충분히 미녀라고 해서 남자애들 다 웃던거 생각나네 ㅋㅋ]
[어우 쒯 ㅋㅋ]
[으악 씹 ㅋㅋㅋ 차라리 빻았다고해 ㅅㅂ]
[아줌마 아저씨 특 = 얼굴만 달려 있으면 다 예쁘다고 함]
"참나."
방민아가 실소를 터뜨렸다.
장님들 사이에 있으면 괴로운 건 눈을 뜬 쪽이라 했던가.
"아, 어이없네. 지아야. 이리 와 봐."
[지아씨에서 지아야로 강등 ㅋㅋ]
[허니뱅 방송모드OFF 일상일찐모드 ON]
[지아좌 ㅈ됐누 ㅋㅋ]
"부, 부르셨어여…?"
방민아가 부리나케 달려와 굽신거리는 이지아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대로 더 가까이 다가온 이지아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지아야…."
"네, 언니."
[야, 놀아주니까 친구같냐? 맞먹겠다? 야 꼽냐? 한 대 치겠다? 쳐봐 쳐 보라고]
[지은아 그게 아니라...]
[효민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ㅠㅠ]
[보라야 내 패딩... 아, 아냐... 미안해...]
[트라우마 유발자 강퇴좀]
[일찐이 미쳐 날뛰고있습니다]
[그는 악몽의 지배자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피식 웃으며 어깨동무를 풀며 말한다.
"농담이고, 지아 씨. 우리 지아 씨가 처음에 오란 방패 스타트를 했잖아요?"
"네네."
[으 쌉레즈]
[그러니까 졌지 ㅋㅋ]
[ㄹㅇ ㅋㅋ 오란 검이었음 이겼자너]
"아니, 여러분. 이게 지아 씨가 오란 방패를 간 게 쫄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똑똑해서 그런 거야."
"진짜요?"
"아니, 니가 그러면 어떡해."
[엌ㅋㅋ]
[아니라는데? ㅋㅋ]
[빡대가리 최고 아웃풋 이지아 ㄷㄷ]
"오란 방패 그냥 생각 없이 산 거야?"
"아, 아니죠. 판티 상대로 초반에 버티려고 산 거죠."
"그렇지. 왜 버티려고 했어?"
"초반만 버티고 6렙까지만 무난하게 가면 렉톤이 바르니까요."
"그렇지! 것봐. 우리 지아가 다 계획이 있다니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한 템선택이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빌드]
[명징은 머고 직조는 머임?]
[명예의 징표랑 직감 조준]
[아하]
[아하는 머임?]
[아주개지랄 하네]
[아니 근데 그걸 알고 그렇게 하려던 새끼가 왜 2렙에 싸우다 뒤져줌?]
"'아니 근데 그걸 알고 그렇게 하려던 새끼가 왜 2렙에 싸우다 뒤져줌?' 그니까. 지아 씨, 왜 그랬어요?"
"어… 그게… 보니까 잡을 각이 나오겠다 싶어서…."
"그렇죠? 이 새끼 정신 나갔나? 왜 이렇게 깝치지? 내가 질 수가 없는데? 이렇게 생각했죠?"
"네, 네. 딱 그거에요."
“그렇게 눈 돌아가서 들어간 거고. 이것 봐. 언니들, 지아 씨가 보이는 것처럼 진짜 아무 생각이 없는 허접이라 그렇게 꼬라박은 게 아니라니까?
다 계획이 있고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판단하고 플레이했더니, 그런 결과가 나와 버린 거야. 그리고 그게 또 틀린 게 아닌 게, 내가 지아 씨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나도 리플레이를 보면서 '아니 시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알 수가 없어서 계속 돌려본 거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와… 뒤늦게 알겠더라고. 판티온이 얼마나 개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한 건지.”
[아니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뭐냐고 ㅋㅋ]
[같이좀 알자 ㅅㅂ]
[뭔 초능력이라도 썼나 ㅋㅋ 왜 니한테만 보이는데]
[선이―――――― 보인다―――――]
[점이..................... 보인다.......................]
[저거 먼드립임?]
[ㅁㄹ 씹덕아니라 모르겠는데 일단 공허의경계는 아닌듯?]
[도대체 머가 대단한건지 설명좀 해 줘바]
"아, 우리 시청자 심해 언니들이 설명해 준다고 알아들을진 모르겠는데. 알겠어, 일단 이거 보자."
방민아가 영상을 처음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건너 뛰고, 되돌리고 멈추고.
그걸 수차례 반복하며 판티온의 플레이를 세세하게 분석했다.
장장 10분에 달하는, 2분 길이 게임에 대한 분석이 끝났을 때.
채팅창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개 소름 돋네]
[아니 그게 그렇게 된다고?]
[무슨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음?]
[ㄹㅇ 복잡해서 겜 어케함?]
[아니 걍 CS먹으면 먹고 적 치면 치는 거지 ㅋㅋ]
[와 챌린저는 게임을 무슨 ㅅㅂ ㅋㅋ 고속카메라로 보듯이 보네]
[ㄹㅇ 아니근데 저게 진짜 실전에서 가능함?]
[그니까]
[저런 플레이를 의도적으로 한다고? 그건 너무 입레오렌데]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야. 이게 너무 입레오레급 플레이라고. 이런 게 가능하려면 입레오레급 실력이 돼야 하는데, 그 실력 커트 라인이 어느 정돈지 알아?"
[어딘데]
[챌린저지 당연히 ㅇㅇ]
[ㄹㅇ 챌린저는 되야지]
"챌린저? 아니야. 말했잖아 라인전 레벨이 프로 수준은 돼야 가능하다고. 그것도 그냥 프로 수준이 아니야. 프로 1군팀 주전급 라인전 수준은 돼야, 저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거든?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방민아가 카메라를 입술을 또박또박 움직이며 말했다.
개.
뽀.
록.
운이라는 말이다.
"프로 1군 미드 선수 나타났다? 이미 여기 난리 났을 텐데,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더 볼 것도 없어. 이건 그냥 뽀록이야."
[직접 확인해 보면 되잖아.]
"그럴까? 저기요! 지금 이 판티 플레이하신 분, 혹시 프로 1군이세요!?"
"아니요! 프로는 무슨 개뽀록이에요!"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신속한 답이 즉시 돌아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여자였다.
아까부터 있는 힘껏 입꼬리를 올리고 턱을 내밀어 우쭐 대고 있는 최재훈의 모습에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최재은이었다.
"것봐 아니라잖아."
[ㅋㅋㅋ개쿨한거보소]
[이러면 지아좌 뭐가 되는데 ㅋㅋ]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발려버리신 ㅠ]
"아니, 언니들. 이게 왜 내가 발린게 돼. 저 쪽에서 개뽀록이라고 인정했잖아."
[추하다 지아야]
[더 추해지기 전에 떠나라...]
[속보) 이지아 시장 레임덕]
[박수칠때 떠나자]
"자 박수~~~ 원래 다2 이길수 있지만 아깝게 개뽀록으로 져 버린 우리 다1 이지아 씨에게 다들 박수 한 번 쳐주세요~"
피시방 내부엔 소리로, 채팅창엔 글자로 '짝짝'이 도배되었다.
"헤헤, 감삼다. 그럼 전 이만."
이지아가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ㅋㅋㅋ 마지막까지 쌉호감]
[개커엽노 ㅋㅋ]
[다2한테 쳐발려놓고 좋단다 그쵸? ㅋ]
"큭큭,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좋은 분위기.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만큼 방민아의 표정은 밝았다.
'아, 잘 안 풀리네.
하지만 그녀의 지금 기분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그 밝은 표정은 곧바로 구겨지고 말 것이다.
대회는 잘 풀린 데에 반해, 그녀의 계획은 잘 안 풀렸기 때문이었다.
계획.
오늘 대회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점지 되어 있었다.
곽희영.
방민아가 키우려고 하는 BJ 지망생이었다.
한 마디로, 이 대회는 곽희영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준비된 무대인 것이다.
물론, 대회 자체는 PC방 홍보를 위한 순수한 의도로 개최된 게 맞다.
방민아는 단지 그 순수한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대회를 활용한 방법을 찾은 것 뿐.
방민아가 최초 탈락자를 추려내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계획의 일부였다.
원래대로였다면, 곽희영이 최초 탈락자를 만들어 낸 최초 승리자로서 지금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어야 했는데...
'습, 뭐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사소한 차질이다.
방민아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진정시키고, 그런 속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밝은 분위기로 대회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여러분! 아, 본의 아니게 대회 진행이 너무 지체돼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이제 2차전 진행하겠습니다. 설마, 아직까지 게임 중인 레전드들 없죠? 그렇지. 당연히 없지. 없어야지. 어떻게 미드빵을 20분 동안 하겠어. 자 그럼, 다시. 메모장에 적힌 대로 대회 재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실내가 조용해지면서 진중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1차전 때의 절반에 해당하는 조용함이었고, 진중함이었다.
인원 절반에 달하는 탈락자가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참가자들의 긴장이 어느정도 누그러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니 다2는 언제 찍은 거야?"
1차전 때, 게임 시작까지 굳어 있었던 최재은이 지금은 여유롭게 옆자리 최재훈에게 말을 붙였다.
"어제."
"어제? 엊그제까지만 해도 다4였잖아."
"그러니까 어제 찍었다고."
"그게 뭔 개소리- 아, 씨. 좆됐다."
"왜, 뭔데. 우리 여자인 동생아, 왜 좆이 되어 버린 거니."
"아. 그런 게 있어."
"뭐야, 아무래도 당첨된 적 티어가 꽤 높나본데 우리 재은이, 어떡하냐. 예티인 오빠보다 빨리 탈락하겠누?"
"응~ 어림도 없어~"
그렇게 말은 하지만, 최재은의 속은 타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2차전이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 즘, 방민아는 두 번째로 준비해 두었던 말을 던졌다.
"자, 그럼. 이번 이차전에선 자기를 이긴 상대가 지금 이 대회에서 가장 잘하는 것 같다! 확실한 우승 후보다 싶은 사람! 손 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머지 않아 인파 사이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방민아는 바로 가서 인터뷰를 진행시켰다.
"티어가 어떻게 되시나요?"
"골4요 언니!"
"골드4?"
[엌 ㅋㅋㅋ 골딱이 해맑은 거 봐]
[커엽누 ㅋㅋㅋㅋ]
[그렇지ㅋㅋ 골드4 이겼으면 우승후보지]
[ㄹㅇ루다가 ㅋㅋ]
싸했다.
방민아는 그냥 무시하고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고 물었다.
"상대방 티어가 어디였는데요?"
"플래3이요 언니! 아니 근데, 그냥 플3이 아닌것 같아. 개 잘해. 이 사람도 부캐가 아닐까 싶어."
"하..."
방민아가 들으란듯 한숨을 내쉬자 실내는 또 다시 폭소의 장이 되어 버렸다.
"언니! 제가 만난 부캐가 더 잘해요 플래1이야!"
"난 플래2인데 이사람도 부캐같아!"
"아 플딱이한테 진 사람들 다 조용히 해봐요 난 다4한테 졌으니까!"
그리곤 한 순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그때-
"챌린저!"
누군가 번쩍 손을 들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손의 주인으로부터 '하, 시발.' 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 왔다.
"저 챌린저 만나서 졌어요!"
'그렇지, 이번에야 말로.'
그렇게.
방민아가 최재은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