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0화 (28/361)

030화. 여동생의 간장게장

어랏 오브 머니.

PC방 알바야, 넌 그게 뭔지 아니?

[PC방 알바 : 그게 머에여?]

그렇지.

어랏 오브 머니는 PC방 알바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

PC방 알바로 버는 돈이라 봐야 월세랑 생활비 겨우 충당할 수 있는 수준.

별도의 부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또 떠오르고 만다.

대리.

'이걸 진짜 해야 하나….'

마침,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높은 인증용 계정 없이도 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하."

시발, 그래.

해 보자.

인터넷 방송은 어중간한 각오로 도전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프로게이머가 됐을 때처럼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주님, 정의로운 대리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안 되면 부처님이나 아무튼, 누구라도 좋으니 허락해 주시는 분 종교 믿음.

잘 생긴 전프로 남대생 대기 중. 선착순.

"아."

무의식적으로 캔 음료를 들어 마셨는데 비어 있었다.

다시 내려놓으려는데, 문득 생각난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며 봤던, 어제의 그 일찐녀.

아니, 알바녀.

무서운 외모를 가졌고 태도도 무뚝뚝하지만, 성격 자체는 원만한 게 느껴졌었던 아가씨. 어제 그 아가씨는 왠지 당황해서는 내게 2만 원 어치의 장거리를 쾌척하는 행동을 보였다.

아마도 당시 남녀역전 세계인 걸 자각하지 못했던 내가 한, 무신경한 개지랄에 당황해서 그랬던 거겠지.

2만 원은 큰 돈이다.

치킨과 광란의 밤을 보낼 수 있는 돈이며,

평범한 알바라면 2시간 30분을 일해야 들어오는 돈이다.

내가 방금 피방에서 5시간 동안 한 개지랄에 대한 보상이 반 토막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에이 시발 조깠네!"

'어맛, 내가 이런 천박한 말을.'

나와는 인연이 조금도 없는 천박한 말을 나도 모르게 할 만큼, 끔찍한 상황인 것이다.

내가 가고 난 뒤 알바녀는 얼마나 후회했으며 또 고통스러워했을까.

알바녀에게 당장 돈을 돌려줘야 할 의무감을 느끼고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난다.

'그냥 계좌입금 하면 되잖아.'

최재훈, 그는 천재인가?

'그러고 보니, 어제도 패딩이고 핸드폰이고 지랄이고 그냥 계좌로 입금하면 됐네? 아니, 잠깐. 계좌를 어떻게 알고 입금해?'

최재훈, 그는 병신인가?

역시 나가야겠다.

사고를 거치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먼저 나가야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니.

최재훈 그는 천재인가?

아, 잠깐.

그러고 보니 어제 알바녀가 내 핸드폰에 번호 찍어줬었지 참.

최재훈, 그는 병신인가?

통화 내역을 보자 바로 알바녀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 번호를 라톡으로 친구추가를 보내기 위해 친구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익었다.

'어?'

왜 눈에 익은가 했더니 NCS의 로고였다.

NCS.

다름 아닌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팀이었다.

중국 2부 리그의 팀.

그래서 한국에서는 개 듣보잡일 팀.

그런 팀을 어떻게 최재훈이 알고 있는 거지?

[최재훈2의 기억 : 좋아하던 선수가 들어가서 응원 중.]

좋아하던 선수?

[최재훈2의 기억 : 마이틱선수.]

마이틱?

아.

'이 새낀 왜 모델이 아니라 프로게이머가 돼서 여자팬들을 독식하시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던 그 친구.

'이 세계에서도 존나게 예쁘구만.'

최재훈2의 기억을 보자, 단번에 납득됐다.

원래 세계에서도 몇 없는 여자 팬들을 독식하다시피 하던 마이틱은 이 세계에서도, 몇 없는 남자 팬들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

그런데 이거 재밌네.

지 멋대로인 규칙성에 의한 근본 없는 공통점 중에 이런 게 있을 줄이야.

처음으로 유쾌하게, 그리고 또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 많고 많은 팀 중에 고른 게, 내 팀이라니.

내 팀을 응원하는 또 다른 세계의 나라니.

"큭."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그나저나….'

감독님, 코치님, 팀원들

다 잘 계시려나?

이 세계의 NCS의 구성원은 남녀가 역전되었음에도 닉네임 덕분에 알아볼 수 있는 팀원 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른 사람들이었다.

남녀역전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거나,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어찌 됐든, 이 세계의 최재훈2와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이겠지.

괜히 또 기분이 심란해진다.

그런 기분으로 알바녀에게 뭐라고 톡을 보내야 할지 잘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대충 보냈다.

"하 시발, 또 시작이네."

물질적인 것들을 잃었을 때와는 또 다른 상실감이었다.

울컥하지는 않는다.

울컥하지는 않아서, 한 번에 풀리지도 않는다.

가시가 목에 걸린 듯한 기분이다.

'근데 시발 이거 완전 죽은 사람들 떠올릴 때 기분 아니야.'

이 새끼 또 비극의 주인공인 양 지랄하고 있네

정신 차려 병신아.

너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사람들이야.

'잠깐.'

그렇다면 원래 세계의 나는 어떻게 된 거지?

거기엔 또 최재훈2가 들어가 있는 건가?

"큭큭큭큭큭."

나처럼, 내 세계에서 얼 타고 있을 최재훈2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니도 한 번 엿 돼 봐라.

그렇게 다시 또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 와서 조울증이라도 생긴 것 같다.

기분이 완전 미친년 널뛰듯 하네.

아니, 이제는 미친놈 날뛰듯 한다고 해야 하나.

"후."

짝짝.

양쪽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리자.

뭘 하려 했더라.

그래, 대리.

대리를 하려고 했었지.

계정 인증 없이 할 방법이 떠올라서.

'어디 보자, 그러면 필요한 게….'

일단.

인터넷 방송을 할 거니까, 내가 대리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선 안 된다.

레오레 방송인이 대리를 했다는 이력이 밝혀지는 순간, 그 방송인은 곧바로 매장당할 것이다.

레오레 유저라면 누구나가 알 정도로 유명한 대리 경력이 있는 유저인데도 방송 잘만 하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 모델로 삼기는 부적합하다.

내겐 그 사람처럼 개썅마이웨이를 걷고도 대성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필요하다.

계좌가.

내 명의가 아닌 다른 명의의 계좌가.

그게 바로 대리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일한 준비물이었다.

그걸 구하기에 딱 적당한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한다.

나는 라톡 친구 목록을 확인했다.

역시나 있었다.

최재은.

마이 시스타(걸그룹 아님ㅎ).

라톡을 켜 보니 최근 대화 날짜가 2일 전이고,

그 대화의 내용이

[야 용돈좀]

[ㅗ]

이다.

이 세계에서도 우리 남매는 여전히 돈독한가 보다.

저 대화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주고받은 게 없으니, 결과적으로 의좋은 형제와 동급인 것이다 동화에 수록될 만큼 모범적인 남매상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편하게 톡을 보냈다

[야]

[있냐]

[뭐]

메시지 확인 상태를 알리는 숫자가 지워진 지 한참이나 지나서 도착한 답변.

그렇게 도착한 답변이 고작 저 한 글자라니.

'여자'가 되어 안 그래도 몇 없는 애교 세포가 완전히 전멸해 버리고 만 것일까?

'오빠는… 슬프구나….'

[잘 지내냐?]

[뭐임]

[ㅄ]

[술마심?]

그래.

녀석.

오빠도 사랑한다.

[야]

[오빠가 부탁 하나만 하자]

[응 ㅈ까~]

[용돈 줄게]

[ㅁㅊ]

[나 없는 사이 고양이가 채팅침]

[머야 오빠 왠일이야]

[너무 반갑고 ㄷㄷ]

[부탁?]

[당연히 들어줘야지 다름아닌 우리 오빠 부탁인데]

"참나."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자식.

'여자'가 돼도 변함없는 최재은이구나.

왠지 안심이 됐다.

[니, 안 쓰는 계좌 있냐?]

[ㅇㅇ]

[그 계좌좀 줘봐바]

[왜]

[뭐에 쓰게]

[있어 임마]

[아니 ㅅㅂ]

[개불안한데]

[내 계좌로 먼짓하고 다니려고]

[일주일 지나면 중고월드에 내 이름 대사기꾼으로 유명해져 있을듯]

[오빠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니?]

[존나 네]

[용돈 안 줄 사람으로 보이나보네]

[존나 아니오?]

[그래서]

[알겠다고 말았다고]

[얼마줄건데]

고1한테 얼마가 적당하려나.

너무 많이 주면 임마 버릇 안 좋아지는데.

[2만원]

[다음주 월요일에 줌]

[ㅁㅊ]

[아니 그런 거금을]

[도대체 제 통장으로 뭘 하시려고]

[ㅎㅎ 우리 덩상]

[오빠 일이 많이 궁금한가 보구나]

[오빠가 얼마나 걱정되고 또 존경스러우면 그럴까]

[으악 ㅅㅂ 머라는거야]

[현피 뜰래?]

[현피?]

[그렇게 오빠가 보고싶니?]

[알았다 조만간 찾아가마]

진짜다.

부모님도 한 번 뵙고 싶었다.

우리 상남자 아버지께서 어떻게 변하셨는지 졸라 궁금하다.

아버지의 역변에 복잡한 기분이 들겠지만 그보다도 일단 졸라 재밌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 ㅅㅂ]

[개역겹네 진짜]

[술 마셨음 ㄹㅇ?]

[술 한 잔 마셨습니다...]

[계좌를 안 빌려줘도 좋습니다]

[하지만 최재훈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최복동ㄷㄷ]

[근데 진짜 왜 술 마심?]

[술 사줘도 안 먹는 찐따가]

[뭐 안 좋은 일 있음?]

[역시 오빠 걱정해 주는 건 너밖게 음다...]

[뭔일인데]

[랭겜 점수 존나떨굼...]

[ㅁㅊ]

[그런 셰익스피어도 저탱이를 탁 칠 비극이 있나]

머라고 시발?

뭔 탱이?

셰익스피어 선생님께서 뭔 탱이를 쳐?

[얼마나 떨궜길래 ㄷㄷ]

[챌린저에서 골드1됨]

[에라이 ㅄ]

[술 안마셨구만 ㅅㅂ]

[계좌...]

[2만원...]

[싫으면 어쩔 수 없고...]

[내가 언제 싫댔음 ㅅㅂ]

[아 근데 진짜 위험한 거 아니지?]

[오빠가 그렇게 못미덥워?]

[아니 ㅅㅂ 그걸 말이라고]

[널 믿느니 차라리 아빠 말을 듣고 말지]

[아이고 우리 덩상]

[말을 어쩜 그리 기특하게 할까]

[부모님도 너가 많이 자랑스러우실 거야]

[오라버님만하겠습니까]

[허허 욘석]

[하하]

[ㅎㅎ]

[ㅋㅋ]

[계좌]

[ㅇ]

그렇게 나는 목적대로 차명계좌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차명 계좌라니깐 왠지 금융 범죄라도 저지르는 듯한 기분이다.

배덕 어린 스릴감을 느낀다.

하지만 생활비로 줄타기를 하고, 인생 걸고 인터넷 방송에 도전하며, 인터넷 방송과 대리를 병행하고 있는 나는 이미 미친 스릴 중독자였다.

과유불급.

재산 말고 모든 개념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더 이상의 스릴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한 균형을 위한 안정감이 필요할 때다.

그렇기에 이 계좌를 차명계좌가 아닌 간장게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 * *

원래는 오후 5시에 도착했어야 할 교대가 늦어서 5시 30분에 도착했다.

때문에 퇴근 시간이 30분이나 늦춰진 이서윤이었다.

"죄송합니다! 진짜, 아, 진짜 늦잠 자는 바람에…."

이서윤에게 사과하는 교대는 특히나 위축되어 있었다.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이서윤을 잘 모르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이서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외모만을 보고 그녀를 불량하게 느끼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정말로 미안하다면 지금 당장 바닥에 엎드려 신발 밑창을 핥아서 증명하래도 기꺼이 따를 정도로.

여자는 내리깔았던 시선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이서윤의 눈치를 살폈다.

'어…?

이서윤은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교대가 늦은 덕분에, 5시 10분쯤에 온 '그 남자'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이서윤은

'이런 게 운명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퇴근하고 편의점을 나선 이서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볍다 못해 다급했다.

그녀는 거의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옷도 안 갈아입고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낸다.

편의점에서 정리해 놨었던 남자의 특징, 크로키들을 컴퓨터에 옮긴다.

그리고 타블렛 팬을 잡았다.

머릿속엔 그림이 아닌 남자의 생각뿐이다.

그런데도 물 흐르듯이 움직여 멈출 생각을 안 하는, 타블렛 펜을 쥔 손.

'이게 뮤즈라는 건가?'

달리기를 멈추고 의자에 앉은 지도 어언 한 시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도 그녀의 호흡은 여전히 가빴다.

'한 번 제대로 된 만남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던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라톡!""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을 휘적거려 핸드폰을 집었다.

건성으로 톡을 확인하곤, 고개를 갸웃한다.

톡의 출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톡 목록에 있던가?

이서윤은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친구를 많이 만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재훈.

이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최재훈이 보낸 톡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돈 돌려드릴게요]

[계좌 불러주세요]

척 보기에도 수상하기 그지없다.

스팸 혹은 보이스피싱 같은 불순한 의도가 분명했다.

'내 카톡은 어떻게 알았대.'

재수 없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다시 또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최재훈의 카톡을 차단한 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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