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재기
그래.
하필이면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리 게임.
남의 계정으로 대신 이겨줘서 돈을 받는, 쓰레기 같은 행위가 말이다.
'확실히, 대리를 하면 PC방 알바랑은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긴 한데···.'
그때, 또 하나의 최재훈(22세/악마/파인애플 피자가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함)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리는 아니지 미친놈아. 명색이 전프로게이머라는 새끼가.]
역시, 좀 그렇지?
아니, 잠깐.
이 세계에서 난 전 프로게이머도 뭣도 아닌데?
혼자서 자기가 전 프로게이머라도 믿고 있는 정신병자일 뿐인데?
[그런가?]
게다가 시발,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 딱이다.
꿈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좌절한 와중에, 불행한 일까지 겪어 모든 걸 잃어버렸다. 개새끼가 될 수 있는 완벽한 명분 아니냐고.
이런 날 존나 누가 욕할 수 있겠어?
[나 악만데 인정한다.]
물론, 평생 대리나 하자는 건 당연히 아니다.
PC방 알바를 할 바엔 대리를 하자 이거다.
PC방 알바와는 달리, 내 능력을 활용하는 일이다.
그리고 PC방 알바와는 달리, 이 시궁창 같은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마음 먹고 대리를 하면 한 달에 1천도 땡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한창 챌린저 점수 올릴 때, 챌린저 1승당 15만원 줄 테니 올려 달라는 놈들이 꽤 있었으니까.
그런데 PC방 알바는?
쌔빠지게 풀타임 돌려가며 쉬는 날 없이 하면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벌까?
물론, 150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 계좌에는 2300만원이 있었다.
부모님 빚 갚아 드리고, 전세 구하고 남은 돈.
지금은? 부모님 빚도 그대로인 채, 1천 짜리 학자금 대출까지 있는 상태로 16만 5천원이 전부다.
그런 상황에서 대리가 아닌 PC방 알바를 택하자고?
성실과 도덕이라는 미덕만 보고?
그때, 머릿속에서 또 다른 최재훈(22세/천사/민트초코충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함)가 말했다.
[나 천산데,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시발.
알바 조까.
"알바 조까!!! 끼요오오옷!!"
일단 대리로 생활비 문제부터 해결하자.
그렇게 여유를 되찾고, 차차 내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으로, 이 시궁창같은 상황을 하나하나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오케이, 이거지."
방금 전의 무력감은 온데간데없이 의욕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 의욕으로 곧바로 사장님에게 톡을 보냈다.
이번 달까지만 일할 거라고 말하기 위해.
[사장님]
답변을 기다리면서 대리 업체들을 검색한다.
시발, 졸라게도 많네.
이런 암덩이 같은 십새끼들.
아니, 아니지.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할 줄 아는 새끼들.
아니네 시발.
이 새끼들은 나 같이 슬픈 사연 없잖아.
이런 사회악 새끼들 같으니.
다 뒤져버려라.
지금 내가 '이용'하려는 새끼만 빼고.
이 새낀 나를 동료라 생각하겠지?
어림도 없지 얼빠진 새끼 같으니.
[저기요]
나는 기사를 구하는 업체 중, 나만큼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곳으로 톡을 보냈다.
[네]
[말씀하세요]
바로 답장이 왔다.
아주 돈에 환장한 새끼, 신나서는.
아니, 아니지.
너도 나처럼 구렁텅이에서 나오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거죠?
그렇죠?
[대리 기사 구인한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요]
[아하]
[네 반갑습니다]
[티어가 어떻게 되시나요]
[챌린저 1100점 입니다]
[와 ㄷㄷ;;]
[대단하시네요]
[혹시 간단하게 인증 가능하실까요?]
인증?
안 될 이유가 존나 없지.
본캐 계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티어를 확인하자, 거기에 찬란한 황금색 빛을 발하는 증표가 있었다.
챌린저의 황금색이 아닌, 골드의 황금색을 가진 증표가.
"아."
···
"깜빡했넹."
라톡.
[무슨 일이신가요?]
사장님에게서 답변이 와 있었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늘 야간은 어케 하나 해서용 ㅎㅎ]
[아~]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오늘은 안 나와도 되요]
[주말 오후 타임 완전 지옥이었죠?]
[고생 많았어요 쉬세요]
PC방 아르바이트의 위대하고 자비로운 지배자께선 베푸는 관용에 몸이 환희로 떨렸다.
[저기요?]
그러는 와중에 더럽고 역겨운 대리 업자의 톡을 보니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이 사회를 좀먹는 역겨운 쓰레기 같은 놈.
5700자에 달하는 욕설 문자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냥 말았다.
나중에 다시 찾게 될까봐는 절대로 아니었다. 내 전세집 걸고.
그냥··· 괜히 이런 데 감정 소모하기 싫었다.
"하 시발···."
괜스레 한숨이 나왔다.
자칫 악의 수렁에 빠질 뻔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다시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이리 기분이 무거울까.
이게 현대 사회에서 도덕과 규범을 준수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시 짊어져야 할 정의라는 가치의 무게인가?
라톡~
"응?"
사장님도 대리 업체도 아니었다.
톡의 출처는 권지현이었다.
* * *
"아, 몰라 씨! 그냥 보내!"
[재훈 씨, 이제야 연락드리네요. 어제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으아아아!!"
권지현은 핸드폰 화면을 두드려 톡을 보내는 동시에, 그게 곧 폭발하기라도 할 것처럼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도망갔다.
"···."
생각해 보니, 바로 답장이 올 리도 없으니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 필욘 없을 것 같다.
'뭐하는 건지 이게.'
그녀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핸드폰을 가지러 침대에 걸어-
[라톡!]
가려는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재훈 씨가 벌써 확인한 건가?'
생각해 보니, 때마침 다른 사람이 톡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 톡을 기다리고 계셨나?'
"···."
그녀는 언제 침대에서 도망쳤냐는 듯, 침대로 다이빙했다.
팡!
팡!
팡!
폰을 확인한 그녀는 격렬하게 침대를 내리쳤다.
[아 네]
[잘 해결됐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최재훈에게서 온 톡이었다.
'뭐라고, 뭐라고 보내지?'
방금 전 톡을 작성하는 데 5분은 걸렸다.
최재훈의 답장을 기다리며, 그 답장에 대한 답장으로 보낼 내용을 생각해 두려 했었다.
그런데 답장이 바로 와 버린 것이다.
좋은 것도 잠시, 그녀는 패닉 상태가 돼 버렸다.
이제는 관성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ㅎㅎ 아닙니당]
[어제 엄청 급해 보이셨었는데]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요]
[어제 갑자기 그래서 죄송해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문제라뇨]
[그냥 시청자 분들이 많이 아쉬워 하신 정도?]
'당신도 절 걱정해 주셨나요?'
'저보다 아쉬워 한 사람이 있을까요?'
'글쎄요. 확실한 건, 저를 가장 걱정해 준 사람은 당신이었음 하네요.'
"헤헤헤."
[으 ㅠㅠ 죄송해요 정말로]
망상에 빠져 바보처럼 웃던 그녀가, 진짜 최재훈이 보낸 톡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죄송하면 다음에 또 같이 방송이나 ㅎㅎ 아니면 식사라
'아, 이건 너무 갔지.'
[괜찮습니당 ㅎㅎ]
[아 맞다]
[재훈 씨]
[계좌좀 불러주실래요?]
[계좌요?]
[네]
[어제 그 출연료 기억나시죠?]
[그거 드릴려고요]
[저 그거 못 받는다 분명 말씀드렸어요 정말 괜찮습니다까지 적어 둔 최재훈은 잠깐의 주저 뒤, 그걸 지웠다.
30만 원.
아니, 33만 원.
현재 전 재산의 정확히 두 배 되는 액수.
신념의 무게는 지갑의 무게와 비례하곤 한다.
어제 30만 원을 거절했을 때 그의 무게는 2300만, 아니, 3억이었다.
지금 그의 무게는? 16만 5천, 아니.
마이너스 985만이었다.
33만 원은 마이너스 985만이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최재훈은 권지현을 향해 당장이라도 계좌를 활짝 벌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일단 한 번 정도는 튕겨 줘야 모양이 좋다.
[저 그거 못받아요
여기 까지 치면 단호한 느낌이 든다.
권지현이 부담을 느끼고 사실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 그거 못받아요 ㅠㅠ]
하지만 이렇게 문장을 완성 시키면?
[부담 느끼지 마시고요]
[어제 재훈 씨랑 합방하면서 받은 후원은]
[사실쌍 재훈 씨 덕분에 받은 거니까 그냥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시발, 사랑합니다.'
[으...]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ㅠㅠ]
[안 그래도 요즘 생활비가 많이 쪼달렸는데 ㅠㅠ]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말 감사히, 감사히 받겠습니다]
[지금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떨리는 마음으로 입금 문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지금 바로'라는 표현에 걸맞은 속도로 입금이 되었다.
"으악!!! 오늘은 치킨이닭··· 엥?"
입금된 금액을 확인한 최재훈이 한쪽 미간을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금 했습니당 확인해 주세요]
[아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래도 실수하신 것 같은데]
[네?]
[금액이...]
[얼마 갔길래요?]
입금액에 표기된 숫자는, 최재훈이 기대하던 숫자가 아니었다.
500, 000
입금액에 표기되어 있는 숫자였다.
[아 ㅋㅋ]
[맞아요 50만원]
[아 그... 33만원-
'아니지.'
[아 그... 3만원 아니었나요?]
[3만원이요?]
[아 ㅋㅋ]
[네 그거요]
[그 30만원 주신 분도 있었어요]
[절 하셨을 떄 기억 안 나세요?]
[아...]
'존나 나죠. 17만원이 어디에서 온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거고요.'
[그러면 33만원 아닌가요?]
[아 그런데 ㄷㄷ 이러면 너무 액수가 큰데]
[아이 부담 갖지 마세요 ㅋㅋ]
[시청자 분들 사실상 최재훈 씨한테 후원한 거니까, 최재훈 씨가 받는 게 맞아요]
[그 나머지 17만원은]
[그 30만원짜리 후원 터지고 최재훈 씨 돌아가실 때까지 자잘하게 터진 후원금들이에요]
30만 원짜리 후원 터지고 내가 갈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30분 만에 17만 원을 번 거라고?
입이 떡하고 벌어진 최재훈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시발, 나도 방송이나 해?"
***
[이렇게 큰 돈을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받아도 되는 겁니다 ㅎㅎ]
[이 이야긴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 정말로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저녁에 시간 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저녁 한 번은 사는 게 도리일것 같아서...]
[저야 좋죠!]
[그럼 제 쪽에서 시간이랑 날짜 정해서 연락드리면 되나요?]
[넵]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뵈요!]
[나중에 봬요~]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예쓰!!!!!! 예쓰! 예쓰! 예쓰! 예쓰! 호우!!! 아니, 메에!!!”
권지현은 한동안 미친듯이 발광했다.
그 날.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따위를 알아보다가 밤을 지새웠다.
* * *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권지현 씨는 꽤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니, 꽤가 아니라 상당히.
미튜브 구독자 15만.
리치TV TOP100 스트리머 중 한 명.
콘크리트라고 하는 매니아 층이 확실해서, 리치TV 대표 레오레 스트리머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스트리머 중 한 명이란다.
권지현 씨가 방송을 시작한 시기는 4년 전.
내가 저 정도로 성공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아니, 시간 문제가 아니다.
옛날부터 게임 하면서 돈 버는 직업은 급식충들의 존나 로망으로써 필연적인 시장 과포화 상태에 시달려 왔다.
프로게이머와 비슷했다.
하고 싶은 사람도, 하는 사람도 존나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인터넷 방송은 프로게이머에 비해 진입 장벽도 낮으니 그러한 경향이 더더욱 짙을 테고.
그런 인터넷 방송 시장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
'있지 않을까?'
나는 어? 거 뭐냐.
일단 잘하잖아?
게임을?
그리고 나름대로 어···.
재미도 있지 않나?
그때,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최재훈(22세/악마/목욕하고 고양이 코에다 대고 방구 꼈다가 똥꼬 두 개 될 뻔한 적 있음)이 말했다.
[니 찐따 새끼야, 니가 재밌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나 재밌다고 했거든?
[잘생겼다고도 하셨지]
이젠 진짜 잘생겨졌으니까, 재밌어지기도 하지 않았을까?
[올]
막연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래.
한번 해 보는 거다.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