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위화감 2
내 눈을 의심했다.
'치킨킹치킹'
내 닉네임은 그대로였다.
기뻐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엔 너무 이상하다.
내 닉네임이 그대로라면, 납득이 안 되는 점이 너무 많아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는 상황은 말이다.
방황하는 내 시선에 클라이언트 중앙에 박힌 영상이 들어왔다
[자타공인 최고의 미드라이너 FACE 인터뷰]
FACE를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영상 안에는 TC1의 유니폼을 입은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여자였다.
리포터인가?
처음 보는 리포터네.
그런데 왜 TC1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아, TC1 인터뷰해서.'
지금 FACE의 인터뷰나 신경 쓰고 자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데 정체 모를 위화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이 시작되자, 아까 보았던 여자가 화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TC1의 미드를 맡고 있는 김 이리. FACE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영상을 뒤로 돌렸다.
"안녕하세요. TC1의 미드를 맡고 있는 김 이리. FACE라고 합니다."
다시.
"안녕하세요. TC1의 미드를 맡고 있는 김 이리. FACE라고 합니다."
다시.
"안녕하세요. TC1의 미드를 맡고 있는 김 이리. FACE라고 합니다."
"…?"
이 리포터는 도대체 왜 FACE 행세를 하는 거지?
아, 무슨 만우절 이벤트 같은 건가?
만우절이 아닌데?
만우절이 아닌데 만우절 이벤트를 하는 거라 만우절에 어울리는 만우절스러운 장난인 건가?
여자의 인사가 끝나고, 카메라가 줌아웃하며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같이 화면에 잡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질문을 하며 인터뷰가 진행된다.
FACE 없는 FACE 인터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와야 하는 영상을 보면서도, 심각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뭐지 이 위화감은?
왜 아까부터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드는 거지?
내 레오레 계정에 생긴 일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뭔가 존나 잘못된 기분이.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영상의 음성을 밀어내고 귓가를 가득 채운다.
내 숨소린가?
쿵!쿵!쿵!쿵!
이건 내 심장소리고?
뭐지.
모든게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몸 까지도.
잠깐.
이 몸은, 최재훈의 몸?
최재훈이 누구야 시발.
아니 나 말고, 이 최재훈.
이 최재훈은 도대체 누구냐고.
"!!!"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누군가가 두개골을 벌려서 뇌에 무언가를 쳐 박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니,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야 자각한 것뿐이었다.
그것.
바로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누군가.
그 누군가는 최재훈이었다.
나와 같은 최재훈이지만, 뭔가 다른.
다른 세계의… 아니, 원래 이 세계의? 최재훈?
이 세계?
내가 살던 세계와는 뭔가 다른?
어떻게 다른… 거지….
남자가….
여자들이….
거기까지였다.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피로감에 침대 쪽으로 쓰러졌다.
"끽."
* * *
꿈뻑꿈뻑.
막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천장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아는 천장이다.
쨍쨍-
밖은 아주 밝았다.
핸드폰이 어딨나 싶어 일단 팔을 휘적거리니 손에 잡혔다.
이 정도면 이제 그냥 신체 일부로 쳐 줘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11:40
'어제 내가 정신을 잃을 때가 오후 5시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나는 6시간 전으로 회귀한 것 같다.
사람이 18시간을 내리 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무튼 일단 좀 더 자자.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온 힘을 다해 잠을 청했다.
"…하, 시발."
하지만 장장 십팔 시간의 수면을 마친 몸뚱어리는 전에 없을 정도로 쌩쌩했다.
수면제를 쳐먹고 기아블로3를 해도 버티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렇게 잠들어서 현실도피를 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지고, 내게 단 하나의 선택지가 남았다.
정신 차리고 현실을 받아 들이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으로 레이버 e스포츠 뉴스 란에 들어가 보았다.
[세계 최초, 남성 리그 소속이 아닌 남성 프로게이머 탄생!]
"???"
이게 웬 개소리야.
아, 맞다.
싫다.
뒤늦게나마라도 저 기사 제목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FACE라는 제목을 보고 기사를 클릭했다.
큼직하게 떠오르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여자의 얼굴.
그 사진 아래에 적혀 있길-
(TC1의 미드 FACE, 김이리 선수.)
혹시나 싶어 다른 글도 다 확인해 본다.
여자.
여자.
여자
여자.
선수 여자.
코치 여자.
감독 여자.
구단주 여자.
내친 김에 정치 쪽도 확인해 본다.
야당 대표 여자.
여당 대표 여자.
드물게 남자 국회 의원이 보였다.
어디 보자….
'남성 가족부?'
으악 씨발 이게 무슨 씨발 혼종이야.
황급히 경제 쪽으로 도망쳤다.
경제 교수 여자.
대기업 이사 여자.
사장 여자.
회장 여자.
사회 쪽.
환경 단체 대표 남자.
남성 인권 단체 대표 남자.
스포츠 쪽.
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
골프에 간간히 남자 하나.
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
테니스에 간간히 남자 하나.
더 볼 것도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방금 핸드폰으로 확인했던 것들을 토대로,
그리고, 내 머릿속 한 켠을 불법 점거 중인 '또 다른 최재훈'씨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길.
아무래도 나는 다른 세계로 전이해 버린 듯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
남녀가 역전된, 남녀 역전 세계로.
그것보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후… 시발… 이런 것도 이세계로 쳐주나…."
인정하니 후련하긴 한데, 그만큼 또 심란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어떻게 해야 되돌아갈 수 있지?
그따위의, 내가 하등 고민해 봤자 답 안 나올 고민들은 제쳐두고.
나는 지금 내 상태가 궁금했다.
일단 멘탈 쪽.
내 정신은 온전한 데 반해, 이 세계의 최재훈인 최재훈2는 기억만이 남아 머릿속 한 켠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거 무슨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갑자기 두 번째 인격이 깨어나면서 미친 살인마가 탄생하는, 그런 식상한 전개의 복선이 되지는 않겠지? 갑자기 전이라는 존나 말도 안 되는 현상을 경험해서 그런지, 뭔 개지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어, 잠깐.
"상태창!"
"스테이터스!"
"스텟창!"
아.
안 되네.
까비.
어쨌거나 현재로썬 멘탈 쪽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
최재훈2의 기억은 내게 아무런 해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이 세계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최재훈2.
고맙다!
너의 기억.
쓸 만하다!
다음은 피지컬 쪽.
아무래도 이 세계 남자들은 여자보다 근력이 약한 것 같았다.
남자들의 평균적인 덩치는 내가 살던 세계와 비슷하고, 여자들의 덩치는 내가 살던 세계보다 약간 큰 수준인데도.
근육 밀도의 차이 때문이란다.
여자들은 근육 밀도가 높고, 남자들은 낮았다.
인간의 전반적인 근력 수준은 내가 살던 세계와 같았다.
고로,
여기 세계 여자들 = 원래 세계 남자들
여기 세계 남자들 = 원래 세계 여자들 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야말로 남녀 역전.
자,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의문.
이 몸뚱아리는 최재훈의 스펙을 갖고 있을까, 최재훈2의 스펙을 갖고 있을까.
만약에 최재훈2의 스펙을 갖고 있다면, 그건 꽤 곤란하다.
아니 꽤가 아니라 아주 매우 존나 많이.
평생을 남자의 근력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 '남자'의 근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평소 컴퓨터랑 핸드폰 쪼물락 거리는 게 일과의 대부분이라 당장 큰 변화나 불편은 없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그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진짜로 약해져 버렸구나 실감하게 되는 상황.
나는 정말 '남자'가 되어 버렸구나 라고, 통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내가 무거운 짐을 못 들어서 끙끙대고 있는데 다른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번쩍 들어서는 내게 우쭐거리는 표정을 짓는다면?
힘 쓸 일이 생겼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른 여자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면?
그 상황을, 나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내 남성성을 차츰차츰 갉아먹어서 끝끝내는 완전히 거세시켜 버릴 그 상황들을 말이다.
날 보고 편협한 성차별 주의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시발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모든 여자들이 자기보다 쏀 게 당연한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많겠지.
이 세계엔 말이다.
내가 살던 세계엔?
존나 적을 것이다.
나는 그 존나 적은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력을 측정하기에 마땅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생전 안 가 본 헬스장이나 그만둔지 한참 된 체육관에 대뜸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구석에 처박아 둔 15KG 덤벨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창 손목심 기르겠답시고 손에 달고 살았던 놈.
"여기쯤에 뒀을 텐데…."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잠깐.'
나는 고개를 들어 천천히 돌렸다.
그렇게 원룸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평소 내 방이 맞다.
얼핏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하게 달랐다.
곳곳에서 '남자'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집.
내 집이 아니다.
최재훈의 집이 아닌, 최재훈2의 집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세계가 다르다면 당연히 환경도 달랐을 것이고.
환경이 달랐으니, 당연히 인생도 달랐을 것이다.
너무 1차원적으로 생각했다.
'아니, 잠깐. 그러면 적어도 사는 집은 달라야 될 거 아니야? 같은 집에서 똑같이 해 놓고 살 확률이 말이나 되나?'
다시 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후, 시발. 진정하자 최재훈.'
문제점을 따지려고 하면 밑도 끝도 없는 이 정신 나간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자.
'그려려니 하자. 그려려니 하자.'
후….
심호흡을하며 침착함을 되찾는다.
그렇게 되찾은 침착함으로 최재훈2의 기억을 훑어본다.
최재훈2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곧 내 새로운 인생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니까.
최재훈2는 나와 비슷하다.
인간관계를 귀찮아하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
그런 주제 온갖 인간 군상이랑 부대끼는 레오레를 즐기는 것까지 똑같다.
'남자'치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적다.
딱 기본적인 관리만 하는 정도.
선호하는 패션도 비슷하다.
편한 거. 관리하기 쉬운 거. 가성비 쩌는 거.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멀쩡히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지금은 휴학 중인, 대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방은 그 대학교와 가까워 잡은 월세방이었다.
그리고,
'아니 시발 잠깐.'
대학교와 가까워 잡은 월세 방?
월세?
'썅?'
내 건 전센데?
그럼 엿 같은 내 전세금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잠깐.'
최재훈2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프로 활동을 하며 번 돈도 당연히 없는 게 된다.
조심스럽게 최재훈2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최재훈2의 기억 : 부모님 빚 안 갚아 드림.]
[최재훈2의 기억 : 대신 갚아야 될 돈은 있음. 여기 월세 계약금이 부모님께 빌린 거임.]
'시발?'
[최재훈2의 기억 : 갚아야 할 학자금도 1천 정도 있음.]
'개미친존나씨발?'
나는 간담이 서늘해져서 곧바로 계좌를 확인했다.
(잔액 : 21, XXX, XXX)
원래는 대충 그런 액수가 떠야 한다.
(잔액 : 165, 500)
"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