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위화감 1
얼떨떨하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되네?"
[아니 뭐야 ㅅㅂ]
[이게 돼?]
[아니 ㄹㅇ 이게 되네?]
[오라버님 이 각을 보신 건가? ㄷㄷ]
[우리 오빠, 그는 남신인가?]
[남자 롤신 ㄷㄷ]
[남자 페이스 ㄷㄷ]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이거 그냥 적팀이 이상하게 한 거아님?]
[ㄹㅇ 이거 그냥 지현이가 어그로 ㅈㄴ 잘 뺌]
[ㅇㅇ 잘싸웠음 그냥]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도 몇몇 보였다.
이번에도 약간이지만 의견이 갈라졌다.
권지현은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각을 본 거지?'
미드 억제기를 밀어 행동의 중심이 되는 미드 라인을 슈퍼 미니언으로 압박함으로써, 행동 반경을 제한시킨다. 그를 통해 다른 곳에서 이득을 본다.
이는 레오레에서 적 기지를 파괴하는 전략의 기초이며 정석이었다.
정석이 뭔가?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최선에 가까워, 누구나가 따를 수밖에 없어 그렇게 굳혀진 것.
그게 바로 정석이었다.
최재훈은 그런 정석을 무시하는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결과는?
정석을 따랐으면 반드시 거쳤어야 할 중간 과정을 생략시키면서 성공적인 결과만을 도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가 의미하는 바.
바로 최재훈의 전략이 정석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이었다.
정석보다 최선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최재훈은 그런 전략을 적기에 즉석으로 떠올려 낸 것이다.
물론, 결과는 아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략의 부족함이 아닌 뛰어남을 부각시켰다.
한정된 자원을 극한으로 활용했다는 방증이었으니.
'정신 나갔는데…?'
권지현은 생각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어떡해야 할 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정석보다 뛰어난 전략을 적기에 즉석으로 떠올려 낼 수 있을지.
권지현은 마스터에서 강등당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과 게임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멀티테스킹에 약했다.
모든 정신을 오롯이 게임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마스터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다이아는 당연히 아니었다.
마스터 또한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
수백만에 이르는 국내 레오레 유저 중에서 단 천 명의 유저에게만 허락되는 티어.
진정한 천상계라 부를 수 있는 구간.
그래. 최소한 그쯤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 사람 진짜 챌린전가…?'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권지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제와 가정을 세웠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단순히 요행과 운, 우연이 거듭된 결과를 그녀가 제멋대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착각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재훈 씨."
권지현이 최재훈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최재훈이 그녀의 따귀를-
아, 그냥 하이파이브였다.
짝!
둘의 손바닥이 만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나이스! 완전 나이스! 마지막 한타 집중력, 와~ 크~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 그런가?"
헤헤.
진심 물씬 느껴지는 하이텐션 칭찬에 권지현의 표정이 녹았다.
[아니 권지현보다는 오빠 오더가 지렸는데요 ㅋㅋ]
[ㄹㅇ ㅋㅋ 오빠가 다 하셨는데]
[아니 권지현이 잘해서 오빠 말 대로 된 거지 ㅇㅇ;]
[글킨 해]
[권지현 아니라 미드가 현지인이었음 한타 지고 겜 뒤집혔을 수도 있음]
[애티쉬가 겜 끝냈는데?]
[진드라 덕분에 애티쉬가 겜 끝난 거지]
하지만 여러 의미로 과열되어 있는 채팅창을 보고 곧바로 정신을 차린다.
그녀는 이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을 알고 있지 않던가.
"어, 그… 최재훈 씨?"
"네?"
"그, 뭐냐. 오더가 너무 기가 막혀서…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진짜로 챌린저세요?"
최재훈이 여자 설레게 만드는 그 특유의 싱거운 미소를 흘렸다.
"그, 잠시 컴퓨터 좀 써도?"
"아, 예."
권지현이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움직여 옆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빈 컴퓨터의 앞자리를 최재훈이 채웠다.
그가 키보드를 두들겼다.
GOW.KR
주소창에 입력된 다소 특이한 주소는, 레오레 전적 검색 사이트의 주소였다.
아마도 자신의 아이디를 직접 검색해서 보여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려는 듯 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탁!
그가 경쾌하게 엔터를 누름과 동시에 몸을 돌리며 화면을 손으로 가르켰다.
실로 의기양양한 표정.
실로 위풍당당한 퍼포먼스.
그렇게 화면에 표시된 계정의 티어는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
골드였다.
그걸 자랑스럽게 가르키고 있는 최재훈.
그 모습과 지금까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주 진지한 자세로 레오레에 대한 지식을 설파하던 모습이.
"하."
권지현은 어이가 없고 또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엌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오빠 ㅋㅋㅋㅋㅋㅋㅋㅋ]
[짜잔! 지금까지 최재훈의 트릭쇼였습니다]
[아니 오빠 ㅋㅋ 진짜 챌린저인줄 알았자너 ㅋㅋㅋ]
[어우 눈부셔... 이게 챌린저의 휘광인... 골드자너?]
[아 ㅋㅋ 색은 똑같다고 ㅋㅋ]
[ㄹㅇ ㅋㅋ 둘다 금색이자너]
최재훈의 귀여운 허세는 권지현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완벽히 먹혀든 듯했다.
방송이 완전 뒤집어졌다.
그렇게 의도대로 엄청난 반전을 선사한 최재훈은-
"…?"
표정을 와락 구겼다.
* * *
내가 사실대로 챌린저라고 밝혔는데 아무도 믿어 주지 않자, 나는 미친듯이 설레기 시작햇다.
'시발, 이거 혹시 그 각인가?'
주인공의 힘을 알아보지 못한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의 힘을 확인하곤 경악하며 경외감을 느낀다.
흔히 힘숨찐이라 불리는 상황을 현실에서 실제로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하 니까짓 게 챌린저라고!?'
'말도 안 돼! 정말로 챌린저였다니! 레오레에서 300명 밖에 없는 티어잖아! 게다가 랭킹 두자릿수라니!? 엄청나다! 대단하다! 최재훈 너무 멋지잖아 젠장!'
웜메 시발.
상상만 해도 뿅가 죽을 것 같네.
찐따인 내게 미친듯이 흥분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권지현이 내게 정말 챌린저라고 물었을 때.
나는 황홀함마저 느끼며, 내 챌린저 계정을 GOW, KR에 검색했다.
이제 남은 일은 힘숨찐 상황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만끽하는 것 뿐이었다.
"풋."
그런데 권지현과 채팅창의 반응이 심상찮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해서 곧바로 화면을 확인했다.
치킨킹치킹
일단 내 아이디는 맞았다.
솔로랭크
[Gold 1]
근데 씨발 내 티어가 아니네?
"…?"
뭐지.
오타 났나?
나는 다시 내 아이디를 입력했다.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ㅊ, ㅣ, ㅋ, ㅣ, ㄴ, ㅋ, ㅣ, ㅇ, ㅊ, ㅣ, ㅋ, ㅣ, ㄴ'
그리고 엔터를 눌렀다.
솔로랭크
[Gold 1]
'뭐예요, 시발.'
휴면강등 당했나?
아니, 휴면 되려면 아직 며칠 남았다.
아니 그리고 챌린저 천 점대에서 골드까지 강등되는 게 말이야 발이야 시발이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에 뇌기능이 완전 정지했다.
"최재훈 씨?"
이번엔 본계정 대신 또 다른 챌린저인 슈퍼계정의 닉네임을 검색해 보았다.
[GOW.KR에 등록되지 않은 소환사입니다. 오타를 확인 후 다시 검색해 주세요.]
'뭔데. 뭔데, 시발.'
천천히 신중하게 부계정을 다시 입력해 보려는데 흥분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너무 빨랐다.
어쨌거나 확실히 맞게 친 걸 확인한 뒤, 재차 검색한다.
[GOW.KR에 등록되지 않은 소환사입니다. 오타를 확인 후 다시 검색해 주세요.]
"…."
"저기 최재훈 씨, 무슨 문제라도?"
"어, 네?"
"그…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
있습니다.
존나 큰 문제가.
진짜 존나 미친 큰 문제가.
사람 괴롭히는 게 삶의 목적이라 연쇄 살인을 본업으로 하고 부업으로 해킹을 즐기는 어떤 미친 가학성 성격장애자 새끼가 글쎄 제 인생 그 자체인 레오레 계정들을 모조리 아작을 내놓은 것 같거든요.
아니, 아작을 내놓으려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이 비극이 이미 일어난 게 아니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충분히 걷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내 계정들을 구하는 거였다.
여기서 힘숨찐 놀이 하며 남의 방송이나 도와줄 때가 아니었다.
"그 권지현 씨, 저 잠시 급한… 일이 떠올라가지고… 정말 죄송하지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아니, 그렇게 갑작스럽게…."
권지현의 얼굴에 압도적인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게임 계정에 목숨 거는 겜창 찐따 새끼라 죄송합니다.
사람이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까?
'존나 있지.'
지금 내가 작정하면 저것보다 백 배는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권지현보다 백 배는 슬픈 상태로, 남을 동정할 수 있을 정도로 태평한 처지가 못 됐다.
"정말 미안해요… 그, 아까 출연료? 그거는 당연히 안 주셔도 됩니다. 덕분에 정말 재밌고 신선한 경험하고 갑니다! 시청자 여러분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권지현 씨 방송 번창하세요!"
[오빠 무슨 일이에요 ㄷㄷ]
[표정 엄청 심각하시네;;]
[고생하셨어요]
[큰 일 아니길 빌게요 ㄷㄷ]
[가스 안 잠그셨나 ㄷㄷ]
"수고하셨어요 최재훈 씨. 그… 다음에 또 봬요!"
권지현의 집을 나선 뒤 미친놈처럼 달려 내 컴퓨터 의자로 돌아왔다.
쿵쿵쿵쿵!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발광하는 것 마냥 뛰고 있었다.
달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탁!
엔터를 누르자 전력 절약 모드로 인해 꺼져 있었던 모니터에 빛이 돌아왔다.
<승리!>
방금 권지현을 따라가기 전 마무리 지었던 게임의 결과가 그대로 띄워져 있었다.
이 판을 이겨서 약 20점의 점수를 받겠지.
이 계정은 다2.
챌린저 천 점대를 복구하려면 20점을 몇 번 얻어야 할까?
엄멤메 시발 거.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레전드 오브 레전드의 화면을 내리고, 인터넷을 켜서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챌린저인 본 계정으로 접속해 보았다.
해킹범이 개 지랄을 해 놔서 당연히 접속이 안 될 게 뻔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 보자는 생-
'어?'
된다.
접속이 됐다.
숨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희망이란 건가?
가장 먼저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다음은 개인정보들을 확인할랬는데, 딱히 바뀐 건 없었다.
"휴, 시발… 으아!!!!!!! 시발!!! 감사합니다 하느님부처님FACE님 모든 종교의 신님들 믿진 않지만 이런 기적 몇 번만 더 보여주시면 믿을 수밖에 없겠네!"
아무래도 닉네임을 바꿔 놓은 게 전부인가보다.
다행이다. 룬 시스템이 바뀌어서.
해킹범 십새끼가 지랄 깽판을 놓을 방법 하나가 미리 사라져서.
고마워요 아이엇.
그리고 시발 보안 존나 허술하네 아이엇 병신들아.
만약 이게 옛날에 일어나서 룬갈갈을 당해 버렸다면, 나는 아마 그 개새끼한테 복수하기 위해 프로게이머가 아닌 해커가 되었을 것이다. 해킹전 떠 시발아.
'어, 잠깐?'
문득 떠올랐다.
해킹범은 내 본계정인 '치킨킹치킹'의 닉네임을 바꿔 놓았다.
그런데도 GOW, KR에 '치킨킹치킹'으로 검색이 됐다.
그렇다면 그 '치킨킹치킹'은 누굴까?
'당근빳다 해킹범 십새끼지.'
나는 레오레 클라를 종료시키고 다시 켜서 본 계정으로 접속했다.
이 변태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개지랄판을 벌여 놓은 건지 한 번 들어나보자라는 생각에 친구 추가를 보내 보려고.
보통 같으면 해킹범이 해킹한 사람의 친구 요청 따위를 받을 리가 없지만.
저 해킹범 새끼는 그냥 해킹범이 아니다.
최재훈을 너무 흠모한 나머지, 최재훈의 정체성을 훔쳐, 최재훈 그 자체가 되고자 한 싸이코 변태 스토커 새끼다.
단순히 FACE도 탐낼 내 엄청나고 환상적인 닉네임이 탐났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는 내 스토커라는 쪽에 더 확신이 갔다.
그때, 내 안에서 또 다른 최재훈(22세/악마/친구 콜라로 헵시 사다 줌)이 말했다.
[어릴 적 행동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달되는 걸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었나?]
어허.
그 드립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 그래도 진정하자.
[근데 팬도 없는 해외 2부따리 좆밥 듣보잡한테 웬 스토커? 그건 너무 양심이 뒤진 망상이 아닐까?]
어허.
…
그런가?
아몰랑.
아, 그러고 보니.
그러면 내 닉네임은 뭐로 바꿔 놓은 거지?
최소한 약오르지QT아 같은 닉네임이 내 화들 돋우지 않길 바라며, 우측 상단 닉네임란을 확인했다.
'치킨킹치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