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7화 (17/361)

017화. '억까' 2

"쓰으…."

최재훈은 억까를 할 때 지금처럼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가 지금처럼 시동을 걸었던 건 처음처럼 '억까'를 할 때였다.

뼈가 있는 억까를 할 때.

게임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며 기세가 등등하면 권지현이 당황하여 최재훈을 쳐다봤다.

"아~ 또 왜 그러세요, 무섭게."

[오빠 시동 걸었네 ㅋㅋ]

[이건 억까가 아니고 처음했던 그냥 까네]

[ㄹㅇ ㅋㅋ 뒤졌다 권지현]

[겜 이겼다고 끝인줄 알았누]

[안일한 버러지 컷!]

[머가리 딱 대]

"지금 그, 탑으로 가자고 오더를 하셨는데.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어서요."

"어떤 점이 아쉬우셨나요…."

[엌ㅋㅋ 권지현이 채점받누 ]

[남교사 ㄷㄷ]

[문제를 풀지 못한 학생에게는 벌을 줄 겁니다 ㄷㄷ]

[선생님 저 거기가 이상해요….]

[이 선생님이 어떻게 해 줬으면 하지?]

"…."

곁눈질로 채팅창을 본 권지현이 옆 송출용 컴퓨터의 마우스를 움직였다.

(해당 메세지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메세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키워드로 열띤 토론을 버리던 두 시청자가 종적을 감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제관계를 하토미로 배운 짐승새끼들 컷!]

[거기가 이상하면 씹련아 ㅋㅋ 비뇨기과에 가야지 왜 여깄누 ㅋㅋ]

[선생님이 어떻게 해 줬으면 하긴 ㅋㅋ 나가 씹련아!]

"일단 첫 번째론, 비셔 백작을 먹었는데도 굳이 위쪽 동선을 잡은 게 있겠네요. 용이 없었다면 상관없겠지만, 굳이 용이 있는데도 백작이 없는 위쪽에 가는 건 뭐라고 해야 하나… 상대적으로 이득이 적은? 낭비? 그러니까 잘못된 판단까지는 아닌데, 약간 아쉬운 거죠."

"아…."

최재훈의 말이 맞았다.

권지현도 좀만 생각해 봤다면 최재훈과 똑같은 판단을 내렸겠지만, 게임 중이라 그런지 관성을 따라 버렸다.

"그러면-"

-님들 그냥 탑 말고 아래쪽 가서 용부터 챙기죠

권지현이 채팅으로 오더를 정정한 뒤에 최재훈을 쳐다봤다.

됐지?

대충 그런 의미를 담아.

그러자 가볍게 웃는 최재훈.

"사실, 방금 전 위로 가는 게 세 번째로 좋은 수였어요. 이렇게 아래쪽으로 가는 게 두 번째 수고."

"네?"

"그럼 첫 번째는 뭘까요?

"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ㄹㅇ 이거 그냥 강의자너]

[ㅓㅜㅑ 남교사의 1:1 롤강의]

[개부럽네 ㅅㅂ]

[내 전재산 내서라도 듣고싶다 ㄷㄷ]

[ㅁㅊ 얼만데]

[3천원]

[와우]

[아니 근데 저게 베스트 아니었음?]

[ㄹㅇ 나도 그런줄 알았는디]

[머임? 용말고 더 크게 이득볼 게 있음?]

[울 오빠 그냥 막 던지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위도 아래도 아니면?"

"…설마 미드예요?"

권지현의 의아함을 느꼈다.

처음으로 최재훈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고, 그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미드는 이미 억제기도 밀어서 이득 볼 것도 없는데요?"

[우리 오빠 ㄹㅇ 그냥 막 던진 거였네 ㅋㅋ]

[ㄹㅇ 지금 미드가서 뭐해]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최재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한 번만 믿고 미드로 가 보실래요?"

"…."

-이제 미드 가죠 ㄱ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최재훈의 지시를 따르는 권지현.

[레바타여 뭐여]

[ㅋㅋㅋ 아니 억까하라니까 조종을 하고 있네 우리오빠]

[고스트 레오레왕 ㄷㄷ]

[그렇지 ㅋㅋ 다딱이면 챌린저 말 들어야지]

[입롤 챌린저 오빠한테 오더 받누 권지현이 ㅋㅋ]

[자기가 마스터인줄 아는 사람과 자기가 챌린저인줄 아는 사람의 합동솔랭 ㄷㄷ]

[마+챌 미드 ㅋㅋ 다4들 ㅈ됐누]

[ㄱㅊ 다4 새끼들도 다 지가 마스터라 믿고 있음 팀운때문인줄 암]

[니가 어케아누]

[내가 다4거든]

[엌ㅋㅋ 개판이누 다이아]

-미드를 왜 감?

-아까 억제기 밀었잖슴

-걍 봇가지

말없이 따르던 팀원들에게서 반발이 일어났다.

-나도 몰라 ㅅㅂ

권지현은 그리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최재훈을 쳐다봤다.

"마스터, 지시를."

"예?"

[엌ㅋㅋㅋ]

[이거 골때리는 련이네 ㅋㅋ]

[아! 테이트 아시는구나!]

[ㄷㅊ 씹덕련아]

[넌 그게 씹덕인줄 어케 아누 ㅋㅋ]

[씹적씹 ㄷㄷ]

"아, 그, 일단 미드로 그룹한 다음 라인 따라 올라가면서 적 미니언 정리한 다음, 라인 양쪽 시야 잡고 슈퍼 미니언 기다리죠."

최재훈이 직접 화면을 가르켰다.

권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제 옆에서 챌린저 분이 오더해 주시는 중

[엌ㅋㅋㅋ]

[입롤 챌린저 계시잖아 ㅋㅋ]

[거짓말 아님 암튼 아님]

-ㄹㅇ임 저 지금 이 분 방송 보고 있음

-BJ였음? 누구임?

-권지현

-ㅁㅊ ㄹㅇ 권지현임?

-재훈 오빠 사랑해요!!!

[지현이 언제 아메리카 TV 진출헀누 ㅋㅋ]

[지현이 언제 BJ됐어 ㅋㅋ]

[리수들 껴 있었누 ㄹㅇ ㅋㅋ]

[입 근질거리는 거 어케 참았누]

-네 저 권지현 맞으니까 일단 미드에-

"그룹이요?"

"아, 모이는 거요. 집합."

"아."

-네 저 권지현 맞으니까 일단 미드에 모여서 라인 따라 올라가죠-적 미니언 정리하면서 핑 찍은 곳들 시야 잡아요

"적팀 안 보이니까 계속 스킬로 부쉬 안 확인하면서."

-이렇게 안쪽 스킬로 확인하면서 시야 먹죠

-ㅇㅋ

-ㅇㅋ 굿

"여기랑 여기에다 핑와 박죠. 어라, 팀에 하나밖에 없네. 그러면 그냥 여기."

그렇게 적팀 본진으로 들어가는 미드 라인의 양쪽 시야가 밝혀졌다.

"이제 미니언만 기다리면 되네요."

-이제 미니언 기다리죠

-기다려서 뭐 어쩌게

'기다려서 뭐 어쩌게.'라는 채팅을 담은 눈을 그대로 최재훈에게로 향한다.

"미니언이랑 같이 가서 타워 부수는 거죠."

-미니언이랑 같이 쌍둥이 타워로 가서 밀죠.

"그게 돼요?"

손으론 그렇게 채팅을 치면서도, 입으론 그렇게 말한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타워 두 개 다 남아 있는데? 너무 위험하지 않나?

-그게 됨?

-타워 두 개 다 남아 있는데?

-오빠 이거 맞아?

-봇가는게 나아 보이는디

레전드 오브 레전드에서 있기 힘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섯 팀원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 것이다.

권지현과 팀원이 완전히 일치하는 의문을 표했다.

[너무 급한 거 아니야?]

[ㄹㅇ 그냥 봇이나 탑 밀고 정비한다음 나머지 밀어서 3억제기 하면 될 것 같은데]

[오빠 빨리 방송 끝내고 집에 가고 싶으신가 본데 ㅋㅋ]

[아 ㅋㅋㅋ]

[근데 오빠 이러면 오히려 더 방송 길어져요 ㅋㅋ]

시청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

최재훈이 침음을 흘렸다.

"그, 탭 좀 길게 눌러 주실래요?"

탭.

상황판을 여는 단축키였다.

권지현은 최재훈의 부탁대로 그걸 길게 눌렀다.

상황판을 자세히 쳐다보던 최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돼요."

확신에 찬 확고한 자세로.

"양쪽 성장 수준이랑 캐릭터 상성 따져 보면, 아슬아슬하지만 충분히 가능해요. 힘 싸움도 충분할 만큼 우세하고, 적팀도 라클(라인 클리어)이 안 되는 조합이라. 급하게 하지 말고, 미니언 지켜주는 식으로 진영 유지하면서 계속 웨이브 박아 넣으면 타워 깨지기 전에 적팀이 먼저 무리하게 걸어 줄 거예요. 그때 싸우면 돼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입렐 아닌가?]

[ㅇㅇ; 너무 도박수임]

[적이 그렇게 해준다는 보장이 어딨어]

[아무리 오빠지만 이건 좀 아닌것 같아]

채팅창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권지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ㄱ

-진영 유지하면서 미니언 지켜주는 식으로 하죠

-적 미니언 나오는거 정리하면서 계속 미니언 타워에 박아넣다가 적팀이 무리하게 걸면 그떄 쌈 ㄱ

그래도 일단은 따른다.

권지현의 팀이 곧이어 도착한 미니언들과 함께 진격했다.

적팀은 넥서스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이대로 쌍둥이 타워에 무리하게 들어가 싸운다면 패배할 게 뻔했다.

하지만 최재훈의 지시는 천천히, 진영을 유지하며, 미니언을 지켜주는 식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권지현의 팀은 그 지시를 최대한 따랐다.

몇 번 위기가 있었지만, 권지현의 적극적인 리더로 방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적팀은 권지현의 팀과 달리 행동 방침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듯싶었다.

다섯 챔피언의 행동이 따로 놀았다.

누군가는 싸움을 걸고 싶어하는 듯 보였고, 누군가는 타워를 지키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났다.

적팀은 기지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일단은 말이다.

양쪽 쌍둥이 타워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크게 깎인 상태였다.

[어?]

[뭐야 이거]

[가능한가 ㄹㅇ?]

[되겠는데?]

이대로 가면 다음 웨이브에서 무난하게 타워를 철거하는 게 가능해 보였다.

적팀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은 싸움을 걸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권지현이 여기부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으나-

"지금 싸워 주지 말고 일단 뒤로 뺐다가… 오케이, 지금 각 주세요."

어느새 몰입한 최재훈이 주도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 지시에 따라 권지현의 진드라가 의도적으로 진영에서 이탈한 순간.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원이 나타나 권지영과 진영 사이를 파고들었다.

시야에서 사라졌던 판티온이 궁극기인 대낙하를 시전한 것이다.

그것을 신호로 적팀이 달려들었다.

"바로 황금시계 쓰시고… 오케이."

하지만 황금시계를 사용한 권지현의 진드라가 무적상태가 되며, 적팀의 공세가 지체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진영이 재정비되었다.

더불어 막 도착한 미니언이 진영에 합류했다.

이전처럼 자쿠의 극적인 이니이에이팅도, 판티온의 실수도, 진드라의 완벽한 프리딜 각도 없었다.

대신 백작의 버프와, 백작의 버프를 받은 슈퍼 미니언 웨이브가 있다.

교전이 시작되었다.

판티온은 가장 먼저 죽었지만, 죽기 직전 플래시를 사용하여 아군의 원딜러에게 스턴을 넣는 데 성공했다.

그를 놓치지 않고 텔론이 플래시로 파고 들어오며 원딜을 암살했다.

하지만 서포터인 실리언의 궁극기, 부활이 원딜이 죽기 전에 들어갔다.

텔론은 아쉬운 대로 옆에 있던 서포터의 피를 최대한 깎아가며 죽기 전까지 맡은 바 임무를 다 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에이스!"

한 팀의 전멸을 알리는 음성이었다.

전멸한 팀.

"후…."

권지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도의 집중을 마친 피로감이 담긴 한숨이었다.

그녀는 십 수 초의 한타가 이어지는 동안 호흡하는 것도 까먹고 몰두했다.

그리고, 아쉬움이 담긴 한숨이었다.

그녀는 끝끝내 한타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흥분이 담긴 함성이었다.

그 흥분은, 승리의 흥분이었다.

팀의 마지막 생존자이던 원딜러 애티쉬가, 적 팀의 마지막 생존자인 에즈리얼을 처치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

투두두둑-

투두두둑-

자유롭게 넥서스를 향해 화살을 연사하는 애티쉬.

이윽고 넥서스가 파괴되며-

<승리>

게임의 종결을 알리는 창이 떠올랐다.

"허."

권지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얼떨떨하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되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