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6화 (16/361)

016화. '억까' 1

두 번째 웨이브.

권지현은 이번에도 일방적인 딜교환을 걸기 위해, 텔론이 근접 미니언을 먹으러 앞으로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텔론이 나오는 그때, 예정대로 평타를 날리는데 갑자기 텔론이 Q스킬인 그들식의 외교로 달려드는 게 아닌가.

'미친 건가? 아니 잠깐.'

권지현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곧바로 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어느새 좌측 사각에서 나타난 적 정글 판티온.

권지현은 다급히 플래시를 썼지만, 이미 몸을 날렸던 판티온의 W스킬 방패 강타 판정으로 인해 기절에 걸렸다.

곧바로 따라 플래시를 써서 거리를 좁힌 뒤 딜 연계를 하는 판티온과 텔론.

권지현의 화면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선취점! 이라는 말 위로 적팀 텔론의 초상화가 표시됐다.

-아니 ㅋㅋ 그걸 당해주네

적 정글과 격차가 벌어져 버린 정글이 분한 마음에 권지현을 비난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가 마스터인줄 아는 정신분열증 걸린 다1 버러지 컷!]

[와 권지현이 텔론이죠? ㄷㄷ 1렙에 진드라를 따 버리네]

[어케 했노 시발년ㄴ아]

얘네는 그냥 신나서 비난했다.

권지현의 얼굴이 와락 찌그러졌다.

"아니 이걸… 하,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적팀이 스펠 다 박아 가면서 어거지로 들어와 가지고. 그래도 플래시 두 개 뺐으니, 오케이. 나쁘지 않았다."

[ㄹㅇ 개어거지긴 해 ㅋㅋ]

[판티 2렙갱은 천재지변이지 ㅇㅇ;; 알고도 뒤질 수밖에 없음]

[ㅇㅈ ㅋㅋ]

사람들도 권지현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음…."

한 사람만 빼고.

최재훈.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권지현이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아니 또 왜요~"

[이걸 억까 각을 잡는다고?]

[억까각 날카롭네 ㄷㄷ]

[이집 억까 잘 굽네 ㄷㄷ]

[억까 췔렌저 ㄷㄷ]

"방금 전 지도 보면, 적 팀 탑이랑 봇이 둘 다 리시를 안 했었잖아요?"

"예? 네."

확인 못 했다.

어떻게 지도만 보고 그 정도의 정보를 얻겠는가.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억까라고 생각한 권지현이 유쾌하게 반응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아마도 판티온이 선 시작이 어딘지 안 들키려고 팀들에게 리시를 안 해 줘도 된다고 했을 거예요. 판티가 초반에 이득을 못 보면 안 되는 캐릭이라, 아마도 버프 먹고 2렙 찍자마자 갱을 갈 생각으로. 그런데 판티 특성상 1레벨에 혼자서 버프몹을 혼자 잡기가 많이 힘들거든요?

블루 상대론 진짜 피 관리가 아예 안 될 정도라, 무의식적으로 상대적으로 잡기 쉬운 레드를 먹을 확률이 높아요.

그렇게 레드를 먹고 2렙갱을 간다면? 당연히 탑이나 미드 둘 중 하나겠죠. 여기서 첫 번째 아쉬운 점이, 그래서 적 레드 캠프 밑쪽에 와드를 박아 놨으면 어땠을까.

사실 2렙 갱 쎈 애들이 정글일 땐 여기에 반드시 와드를 박아 놔야 하거든요. 그래야 적 정글이 정말로 선 레드를 해고 곧바로 내려와서 미드에 갱을 오는지, 아니면 레이스 쪽을 그대로 지나쳐 블루를 가는지, 아니면 또 블루를 먹고 그대로 레드를 먹으러 가는지 위치를 캐치해서 적팀 정글의 초반 동선을 크게 제한시킬 수 있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아군 정글이 자쿠잖아요? 초반이 엄청 쎈 판티 상대로 주도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성이라, 미드에서 2:2 싸움이 나도 이기기가 힘들어요.

4레벨 전까지는 갱 오기도 힘들고. 그래서 굳이 라인전을 강하게 나가면서 라인을 밀고 교전을 유도하는 것보단, 최대한 수비적인 쪽으로. 그러니까 수비적으로 하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그게 더 위험부담이-"

그러나 이어지는 일장연설에, 그녀는 또다시 얼빠진 표정이 돼 버렸다.

최재훈이 그저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주절거린 거였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거침없이 내뱉는 말에 논리가 담겨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

상대방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논리가.

그건 더 이상 억까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적.

억까와는 정반대 성향을 띠는, 근거가 담긴 냉철한 지적이었다.

그걸 잠자코 듣는 권지현은 멍하니 키보드와 마우스에 얹은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와 뭔디 ㄷㄷ]

[오빠 뭐라는 거임?]

[아니 저거 미쳤는데? 브실골플은 이해 못함]

[ㄹㅇ; 아니 오빠 씹겜잘알인데?]

대체로 최재훈의 수준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최재훈은 한껏 말해 놓고는 뒤늦게 부끄러운 기색으로 눈치를 봤다. 주로 말문이 막혀 버린 권지현의 눈치를.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겜창 찐따라서… 아는 거 나왔다고 신나서 떠들어 버렸네요."

"예? 아! 아니에요! 아이고, 최재훈 씨. 깜짝 놀랐어요. 왜 이렇게 레잘알이셔?"

[ㄹㅇ;;]

[레잘알 그 자체]

[아니 우리 오빠 ㄹㅇ 챌 아님?]

[ㄹㅇ ㅋㅋ]

[LPK좀 보셨나 본데? ㄷㄷ

[ㄹㅇ 입롤 챌린저 급이시네]

[권지현이보다 레잘알 같은데 ㄷㄷ]

최재훈이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게 원래, 할 때랑 볼 때랑 많이 달라서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니 집중할 수 있는 거지, 권지현 씨처럼 캐릭터 조종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렇긴 해 ㅋㅋ]

[ㄹㅇ ㅋㅋ 리수새끼들 마스터 이상 스트리머들한테도 훈수두자너]

[ㄹㅇ ㅋㅋ]

[LPK 보면서도 선수 욕하자너 ㅋㅋ]

[레드컵 볼때도 ㅋㅋ]

[가끔 내 리플 보면 ㄹㅇ 이게 내가 맞나 싶음]

[ㄹㅇ ㅋㅋ 개역함]

네가 못하는 게 아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 의미를 함유해서 자연스럽게 체면을 세워 주는 최재훈의 말에 권지현이 다시금 기세를 되찾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긴 하죠?"

[이새끼 우두루인가 태세전환보소 ㅋㅋ]

[냅다 주워먹누 ㅋㅋ]

[뭘 그렇긴 해 ㅄ아 ㅋㅋ]

[야 코렇긴 하죠 ㅋㅋ]

[지 칭찬이면 코 긴 목각인형이 해도 믿을 새끼]

[퍼블 따였는데 좋아 뒤지는 거 보소 ㅋㅋ]

[실리보다 자존심을 챙길 줄 아는 새끼]

[맷집 칭찬해 주던 일찐한테 신나서 맞던 새끼 ㄷㄷ]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줄곧 화면을 응시한 채 집중하고 있었다.

"나이써!"

그런 그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글님 적 텔론 노플인데 함 ㄱ?

-ㅇㅋ ㄱㄷ

그런 대화가 오갔기에 아군 자쿠가 미드에 갱을 왔고,

(적을 처치했습니다.)

성공적으로 텔론을 처치한 결과였다.

[ㄵ]

[권지현 쳐발리고 갱부르누 ㅋㅋ]

[젖 떼라]

"아니 뭔~ 적팀 텔론도 갱 불렀었잖아요~ 이걸로 쌤쌤이야~"

[오빠 제발...]

[지금 억까각 섰는데]

[제발 정의구현좀...]

"예? 어, 음… 좀 추하긴 하네요. 신성한 미드에 백정을 들이다니."

[엌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황족 기거하는 궁궐에 백정새끼 들어오게 되있냐]

[ㄹㅇ루다가 근본없누 ㅋㅋ]

"예? 아니, 최재훈 씨까지… 너무하시네."

권지현과 채팅창의 반응을 살피던 그가 감을 잡았다는 듯 작게 고갤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아무리 적팀이 먼저 시작했다지만, 그렇다고 덩달아 품격을 잃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아쉽네요. 그냥 저 유사 미드, 도적놈 따라서 궁궐 버리고 밖에나 싸돌아 댕기죠."

"네? 아니…."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ㅋㅋㅋㅋㅋㅋ]

[ㄹㅇ 도둑년 새끼 마냥 벽 넘어 다니는 유사 미드 텔론 새끼랑 다를게 뭐누]

[속보) 권지현 미드 작위 박탈]

[이 잡종놈아! 어서 귀족의 라인에서 나오지 못할까!]

[누구야! 근본 AP들고 텔론마냥 플레이하는 역적새끼 누구야!]

"아, 이런 식으로."

권지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게임의 분위기는 몹시 살벌했다.

적 팀의 정글인 판티온은 게임 초반에 아주 결판을 보지 않는 이상 후반을 도모하기 힘들다는 본인 캐릭터의 한계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좋게 말하면 과감한 플레이를, 나쁘게 말하면 무리수를 초반부터 끊임없이 거듭하며 게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양쪽 진영에서 연달아 데스가 속출했다.

거의 1분에 2데스 꼴.

권지현 또한 그 난장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포션? 차라리 텔론한테 그 돈 주고 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죠."

[ㄹㅇ ㅋㅋ 학창시절때 잘 하던 거 아니누]

"와… 손목 보호대라니… 차라리 파수꾼의 갑주를 가죠. 그게 더 탱 잘 돼요."

[속보) 진드라 커밍아웃]

"자쿠한테 마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데 블루를 달라고 하세요."

[와 ㄷㄷ 자쿠 마나 텅텅 비어 있는데 그걸 뺐어 먹네]

"텔론을 왜 못 따라가요. 권지현 씨도 벽 넘으세요."

[ㄹㅇㅋㅋ 진드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벽도 넘으면 되는 거 아니누]

"판티온 W 왜 못 피하셨어요?"

[마스터라면서 다4 스킬 하나 못피하쥬? ㅋㅋ]

"용 W로 뺐어 와서 스틸했으면 됐을 텐데."

[W좀 아끼지 ㅉㅉ]

처음의 뼈 있는 지적과 같은 억까는 더 이상 없었다.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최재훈의 억까가 이어졌다.

권지현은 어느새 억울한 척을 하는 것도 깜빡하고 시청자들처럼 낄낄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신경 쓰는 채팅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권지현처럼 웃기 바빴다. 방송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이거 역전 가능하겠는데?"

게임이 이어지던 와중 권지현이 말했다.

초반 정글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적팀은 유의미한 이득을 얻어 게임의 분위기를 가져갔다. 그러나 그 사실이 무색하게, 어느샌가부터 게임은 팽팽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와 진드라님 개나이스

팀원 중 누군가가 말했던 대로, 권지현의 개나이스한 플레이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적팀 판티온과 텔론은 실수를 저질러 흐름을 잃어버렸다. 적팀을 이끌어 가고 있던 게 다름 아닌 그 둘이었다.

시간은 권지현 팀의 편이었다.

자쿠는 시간이 흐를수록 극단적으로 영향력으로 커지는 챔피언이었고, 판티온은 시간이 흐를수록 극단적으로 영향력이 적어지는 챔피언이었으니까.

판티온이 초조함을 느꼈는지 또다시 무리수를 던졌다.

그 무리수의 대상은 또다시 권지현.

그녀는 또다시 버텨냈고,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새.

진드라와, 진드라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자쿠.

그 둘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덩치가 타워만 해진 자쿠가 몸을 있는 힘껏 뒤로 당겼다.

그렇게 E 스킬인 새총 장전을 사용한 자쿠가 부당할 정도로 긴 거리를 날아가 적팀의 진영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덩치만큼 든든한 유지력으로 버텨내며, 진영을 완전 붕괴시키는 데 성공.

더군다나 적팀 판티온이 진드라의 어둠 물체에 두드려 맞아 뭘 해 보지도 못하고 삭제되면서 한타는 2:5 교환으로 대승을 거뒀다.

권지현의 팀은 억제기 타워와 억제기를 밀고 비셔 백작을 처치했다.

승기를 굳힐 시간이었다.

귀환하여 정비를 마친 권지현이 팀원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미드 억제기 밀었으니 모여서 탑 가죠

지극히 정석적인 오더였다.

그런데-

"쓰으…."

최재훈이 '억까'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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