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첫 경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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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권지현 이 새끼 롤 하는 거 한 판 동안 지옥의 억까 가시죠
[좋네]
[ㄱㅊ누]
[ㄹㅇ 괜찮네]
[엌ㅋㅋ 권지현 시청자가 돈도 주고 컨텐츠도 주고 방송 날로먹누]
[ㄹㅇ ㅋㅋ 나도 커서 스트리머 되야지]
[지금 몇살인디?]
[24 백수]
[와우]
억까.
억지스러울 정도로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하고, 실수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비난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권지현의 생각도 채팅창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컨텐츠 같았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컨텐츠 보다도.
그녀는 결국 자신이 준비해 둔 컨텐츠 대신, 시청자가 즉석으로 제안한 컨텐츠를 진행하기로 했다.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성적 판단이 대체로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거 안 될 텐데?"
[와 ㅅㅂ ㅋㅋ 이것도 거르는 건 좀 아닌데]
[지현아 이건 민심에 타격 크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플레이에 깔 부분이 어딨냐고. 최재훈 씨도 억까 하래서 열심히 찾아보긴 하시겠지만, 아니, 없는 게 찾는다고 나오냐고? 결국 하나도 못 찾으셔서 게임 한 판 동안 말씀 한마디도 못 하실 텐데, 여러분 그걸 원하는 거예요? 기껏 힘들게 모셔와 놓고?"
[또 또 ^^ㅣ발 저놈의 주둥이 ㅋㅋ]
[아주 그냥 입만 열었다 하면 ㅋㅋ]
[업보를 못 쌓아서 안달인 사람]
[디졌다 권지현 ㅋㅋ]
[그래서 한다고 만다고]
"갑시다! 물론, 최재훈 씨만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어… 여러분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오빠한테 기대하는 건 이미 다 이뤘어]
[ㄹㅇ 방송 나와준 순간 다 이뤘지]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제 권지현만 조져주면 됨]
[ㅋㅋㅋ 췔뤤저 억까 버틸 수 있겠누 지현이]
[맞다 ㅋㅋ 우리 오빠 챌린저였지]
[ㄷㄷ 너무무섭당]
"아, 여러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최재훈 씨에 대한 비방 일절 금지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수위 상관없이 발견하는 순간 그냥 아이피 영구 차단이에요. 보석금 내도 안 풀어 주고, 광복절 특사로도 안 풀어 줍니다. 아시겠죠?"
[까면 널 까지 우리 오빨 왜 까누 ㅋㅋ]
[별걸 다 걱정하누]
[ㄹㅇ 너 같이 패는 맛 좋은 샌드백 놔두고 왜 오빠를 건드리겠누]
[니 맞을 걱정이나 해라 지현아]
[지현이 보험사 뒤졌다]
"예, 예. 좋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억까는 최재훈 씨만 하시는 걸로. 여러분까지 억까 하면 채팅창 곱창나는 거 한순간이니까. 우리 오늘 최재훈 씨 계실 때만이라도 좋으니까 응? 화목한 모습 보여드리자고."
[아니 이거 얼탱이 없는 새끼네]
[교도소에 보냈더니 휴양지를 만들어 버리누?]
[니가 ^^ㅣ발년아 파블로야?]
[파블로프의 개겠지 ㅄ아]
[아니 모르면 좀 닥치고 있어요]
[위기를 기회로 만들줄 아는 새끼 ㄷㄷ]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재훈 씨한테 훈수 두지 마세요. 내가 많이 당해 봐서 아는데 훈수가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거 한순간이거든. 이건 어떻게 보면 1번이랑 비슷한 거긴 한데, 어쨌든. 아, 오케이. 정리하면, 우리 오늘만이라도 좋으니까 좀, 좋은 모습 보여드리자 응? 믿어도 되지?"
[우리만 믿으라고 지현쨩]
[우리가 언제 실망시킨 적 있냐고 ㅋㅋ]
[(대충 존나 믿음직스러운 말)]
[(대충 믿음직스러운 이모티콘)]
[ㅄ 뒤졌다 ㅋㅋ(우리만 믿어 지현아!)]
[선생님 바꿔서 말씀하셨습니다]
"에휴…."
권지현이 들으란듯 한숨을 내쉬며 보란듯 고개를 내저었다.
채팅창을 보지 않아도 'ㅋ'라고 도배가 된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대신 카메라를 보았다.
의자를 책상 쪽으로 최대한 끌어 앉아 보곤 어- 하고 신음을 흘린다.
"그, 최재훈 씨?"
"네?"
"그, 죄송하지만 여기까지 좀 와주실 수 있겠어요? 화면 안에 같이 들어오도록… 불편하시면 어쩔 수 없긴 한데…."
[이새기 수작부리는 거 봐 ㅋㅋ]
[사심 적당히 담자 지현아... 방송에서 땀내난다]
[왤케 축축하죠 여기?]
"아, 네 알겠습니다."
일어선 그가 의자를 권지현이 가리킨 곳까지 끌고 와 앉았다.
거의 바로 옆이었다.
"이러면 됐나요?"
최재훈이 고개를 돌려 권지현의 얼굴을 보는 대신, 카메라를 통해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 예! 됐어요."
권지현 또한 카메라를 보며 답했다.
카메라를 통해서, 둘의 눈이 마주쳤다.
최재훈이 멋쩍게 웃었다.
권지현 조금 더 멋쩍게 웃었다.
[ㅅㅂ 뭐하는 짓이야]
[우리 오빠한테 꼬리치지마 씹년아!!!]
[꼴값 그만 싸고 빨리 큐나 돌리자 지현아... 언니 빢치기 전에]
[우리 오빠랑 우결 찍기만 해봐 자결도 찍게 해줌]
"아~ 알겠으니까.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이런데. 아 참, 최재훈 씨."
"네?"
"저, 무슨 계정으로 할까요? 최재훈 씨가 정해주실래요? 아,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죠."
그녀가 검색 포털 사이트에 무언가를 검색했다.
그러자 결과로 사다리 게임이 표시됐다.
"최재훈 씨가 고른 사다리 결과 대로 플레이하겠습니다."
"아 1이 걸리면 다1 계정이고, 2가 걸리면?"
"네 맞습니다."
"그러면 이걸로 하겠습니다."
1이 적힌 사다리가 길을 타고 내려갔다.
꽝.
다음은 2.
역시 꽝이었다.
당첨은 4, 다이아 4 계정이었다.
레전드 오브 레전드에서 티어의 등급은 몰라도, 단계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단계에 따른 실력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려지고 또 추려져, 본격적으로 소수 상위권으로 취급되는 다이아몬드 티어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분화 작업은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4단계와 1단계의 격차는, 골드와 다이아몬드의 격차만큼이나 컸다.
평소 본 계정으로 다이아몬드 1티어와 마스터 사이를 오가는 권지현에게, 다이아 4는 진지하게 게임을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구간이었다.
권지현은 다이아 4 계정을 양학용 계정 혹은 즐겜용 계정이라 불렀다.
"아 이거 진짜 큰일났는데? 진짜 최재훈 씨 억까 거리 하나도 못 찾으시는 각 아니야?"
[ㄵ]
[ㄵㄵㄵㄵㄵㄵㄵㄵㄵㄵㄵ]
[이 새기 주작했네]
"아니 그걸 어떻게 주작해요."
권지현이 시청자들과 틱틱대는 사이 게임이 잡혔다.
대기실의 배경음이 흐르고, 픽벤이 시작된다.
"최재훈 씨, 뭐 보고 싶은 미드 캐릭터라도 있으세요?"
"글쎄요. 권지현 씨가 가장 잘하시는 거?"
"아, 제 모스트1은 이 다4 유사 다딱이들 패는 데 쓰기엔 너무 과잉 전력인데."
[또 시작됐누 ㅋㅋ]
[지현아 나대지 말고 그냥 진드라나 해라]
[누가 보면 마스터라도 되는지 알겠다 지현아]
"아니, 저 마스터라니깐요? 지금 잠깐 다1로 강등된 것 뿐이지."
[다1들 특 = 다 지가 마스터라 함]
[그 다1이 키로 치면 169 같은 거냐?]
[ㄹㅇ ㅋㅋ 대한민국에 여자중 키 168이랑 169없자너 ㅋㅋ 다 170임 ㅋㅋㅋ]
어쨌거나 그녀는 최재훈의 요구대로 모스트1 챔피언인 '진드라'를 선택했다.
머지않아 픽밴이 끝나고 로딩창이 떠올랐다.
"최재훈 씨, 저는 진짜 괜찮으니까. 진짜 '어, 이거 이상한데?' 싶은 거 있으면 바로 거리낌 없이 까 주시면 돼요. 아시겠죠?"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최재훈에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네 괜찮습니다."
"흠, 네. 알겠습니다."
로딩이 끝나고 게임이 시작됐다.
권지현의 진영은 밑쪽.
아이템을 구매한 캐릭터들이 각자 위치로 향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어…."
그때 최재훈이 침음을 흘렸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그…."
[ㅁㅊ ㅋㅋ 벌써 억까 시동 걸렸누]
[뭔데 겜시작하자마자 ㅋㅋ]
[오빠 스킨 마음에 안 드시나 본데?]
[아 ㅋㅋ ㄹㅇ 진드라는 TC1 스킨이나 노스킨이 국룰이긴 해]
[권지현 얼굴이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님?]
[저도 그 쪽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전 괜찮으니까 마음껏 말씀하세요."
"그, 룬이 좀 아쉬워서요."
"룬이요?"
"네."
즉시 룬을 확인한다.
주문력, 주문력, 방어력.
상대방 미드와 정글이 AD니 정석적인 선택이었다.
"뭐가 어떻게 아쉬우신가요?"
"상대방 미드랑 정글이 초반에 상당 강한 AD 조합이니까, 여기선 주문력 하나를 포기하고 방어력 하나를 더 올리는 게 나았을 것 같아서요. 진드라가 주문력 룬 하나에 라인 클리어 양상이 바뀌는 캐릭터도 아니고-"
걱정과는 달리 술술 발언하는 최재훈의 모습에 권지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엌ㅋㅋㅋㅋㅋㅋ]
[와 ㅋㅋ 우리 오빠 억까좀 하누 ㅋㅋ]
[아니 근데 이건 억까가 아니라 들어보니 ㄹㅇ 같은데?]
[ㄹㅇ 권지현이 표정 보소 한 방 먹었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권지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듣고 보니 최재훈 씨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곤 내심 놀랐다.
듣다 보니 정말로 최재훈의 말이 맞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라인적이 시작됐다.
상대방 미드, 텔론이 근접 미니언을 먹기 위해 앞으로 다가온다.
권지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타 한 대를 때림과 동시에 Q스킬인 어둠 물체를 탈론에게 적중시켰다.
크~ 일방적인 딜교환.
권지현이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쓰읍."
최재훈이 시동을 걸었다.
"잉? 방금 제가 뭐 실수했나요?"
[ㄹㅇ 딜교 개잘헀는데]
[이건 ㄹㅇ 억까네 ㅋㅋ]
[우리 오빠 이 갈았누 ㅋㅋ]
분위기에도 아랑곳않고 최재훈은 말했다.
"네, 실수하셨어요. 방금 그거 때문에 적 정글이 정상이면 플 빠지거나 죽으실 거예요."
"예?"
또다시 확신에 차서 상세하게 말하는 최재훈.
'이야, 엄청 적극적이시네.'
그 내용을 납득할 수 없었던 권지현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억까일 거라 확신하고 만족했다.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는 최재훈의 태도에 감동마저 받으며 고민에 빠졌다.
최재훈의 억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유쾌해 보일까.
그런 고민을 거쳐 권지현이 한 행동.
바로 얼굴을 와락 찌푸리는 것이었다.
권지현의 화면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최재훈의 말대로, 정말로 그녀는 죽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