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첫 경험 1
툭.
"하…."
방에 들어온 권지현은 택배를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핸드폰을 쳐다본다.
방금 전 등록해서 친구 목록 안에 들어와 있는 이름.
최재훈.
"헤헤…."
칠칠치 못한 얼굴로 즐겨 찾기에 등록하곤 프로필을 확인한다.
조금도 꾸미지 않아 휑한 프로필창.
왠지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하나 설정되어있는 항목, 프로필 사진.
세 글자의 알파뱃이 그려진 사진이었다.
[NSC]
권지현은 혹시나 싶어 그 세 글자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예상대로 레전드 오브 레전드와 관련된 검색어가 주르륵 나열된다.
권지현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파랑 위키에 들어가 검색해 보았다.
중국 2부 리그인 LEL에 소속된 팀.
고작 그게 기재된 정보 전부였다.
전 세계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리그에 관심이 있는 권지현이었다.
그런 그년데, 이 NSC이란 팀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긴, 중국 2부 리그 소속이라니까. 모를 만도 하지.'
1류, 그러니까 최소한 1부 리그 소속은 돼야 해외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2부 리그 소속은 해외는 커녕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파다했으니, 그녀가 모른다고 해서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만큼.
상대적으로 리그에 대한 이해도나 관심이 적을 남성팬인 최재훈이 2부 리그, 그것도 해외 2부 리그 소속팀에 관심을 갖는 건 몹시나 특이한 일이었다.
'하~ 특이해?'
같은 여자가 그랬다면 '꼭 레알못 새끼들이 꼴값이란 꼴값은 다 떤다니까.'며 생각했겠지만.
그 남자, 최재훈이 그러니 왠지 신비롭게 느껴지는 권지현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된 걸까?
최재훈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그때-
라톡!
어느새 침대에 뻗어 있던 권지현이 벌떡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최재훈에게 정신이 팔려, 최재훈을 깜빡해 버렸다는 멍청한 상황이었다.
[잘 들어가셨어요?]
바로 윗층인데 잘 들어갔냐니.
딱 봐도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당황스럽고도 답답한 마음에 보낸 문자였다.
'이런 병신아!'
권지현은 스스로를 욕하며 다급히 문자를 작성했다.
[죄송합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톡이 늦었네요]
변명을 말한다고 말했는데, 곧바로 정신 나간 짓임을 깨닫는다.
처음 만난 이성에게 당신을 방치해 둔 이유가 배변활동 떄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아이씨….'
권지현은 반쯤 정신이 나가서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까 대화 이어서 하려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일단]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한데]
[복장 좀 바꿔주실 수 있으실까요?]
[방송으로 내보내기엔 너무 프리한 차림이셔서]
[아아]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 입으면 되려나요?]
"음…."
권지현은 최재훈에게 '지금처럼 다 보이지 않게만 입으면 된다.'를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그가 부끄럽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나쁜 인상을 받지 않을까 하고.
'섹시하지 않게? 아니고, 개방적이지 않게? 이것도 아니고. 노출도를 줄여라? 아, 이것도 아니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겨우 완성시킨 문장을 보낸다.
[그냥 편하게 입으시면 돼요]
[날씨도 쌀쌀하니 그냥 따듯하게]
그게 뭐라고.
권지현은 명작을 빚어낸 장인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하 넵]
[다 갈아입으면요?]
[일단 방송 장소부터 정해야 할 것 같거든요]
[방송 세팅이 다 돼 있는 제 집이 베스트긴 한데]
[지금 저 혼자라….]
[아]
[그건 역시 좀 불편하시겠네요]
[아니]
[저는 괜찮은데]
[최재훈 씨가 불편해 하실 것 같아서요]
[저는 권지현 씨만 괜찮으시면 상관 없긴 해요]
남자가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방문한다.
여자에게 충분한 호감이나 신뢰를 느껴야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초면인데도, 최재훈은 흔쾌히 방문 의사를 밝혔다.
그 사실에 깊은 고양감을 느낀 권지현은 과할 정도의 자신감을 얻고-
'날 좋아하나?'
[이거 완전 얼탱이 없는 년 아니야]
[남자가 손 잡아주면 임신도 하겠누?]
그녀의 시청자가 알았다면 거하게 한 소리 들었을 상태가 되었다.
'아,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닌가.'
다행히도 원상태로 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원만히 대화가 진행되어 상의된 바.
준비를 마친 최재훈이 톡을 보내면, 대기하던 권지현이 방송을 키며 그를 맞이하기로 했다.
라톡!
'어? 엄청 금방 되셨네.'
권지현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최재훈의 톡에 답장을 보냈다.
분위기 띄워 놓을 테니, 2분 뒤에 올라오시면 된다고.
[주인장 문 열어!!!!!]
[어?]
[어 켰다!]
[권하]
[권지현 왔누]
[우리 오빠 어딨어]
[오빠 어디다 두고 왔누 ㅅㅂ련아]
[우리 오빠 돌려내 ㅠㅠㅠㅠ]
시청자 수는 방금 2부 방송을 종료하기 직전과 비교해서 약간 줄어 있었다.
오히려 늘어났던 아까가 이상한 것이지, 원래는 이게 정상이다.
아니, 원래는 이것보다 더 줄어야 정상이다.
아무래도 최재훈의 임팩트가 상당히 컸나 보다.
이웃집에 내 자위기구를 돌려달라 깽판을 놓으러 가는 자극적 기행을 보기 위해 몰려 왔던 시청자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니.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닥치고 오빠 내놓으라고]
[오빠 내놔!!!!!]
[오빠 어쨌어 미친 살인마 새끼야!!!]
[저지금 11까지 눌러 놨음]
[권지현 줘패고 9누르죠]
"아~ 진정들 하세요. 지금 오려고 밑집에서 준비하고 계시는 중이니까."
[아 ㅋㅋ]
[우린 코것도 모르고]
[진작 말하지 ㅋㅋ]
"그런데 좀 섭섭하네. 그래도 이거 내 방송인데, 어떻게 나 봐주러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너가 누군데 씹덕아]
[우린 최재훈 오빠 보러 온 건데]
[이게 왜 니 방송이야 ㅄ아]
"아니 그럼 누구 방송인데."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권지현이 오빠한테 방송 뻇겼누 ㅋㅋ]
[아니근데 ㄹㅇ 오빠한테 채널 주면 더 잘 나간다]
[ㄹㅇ 지금 시청자가 증명하네]
[평소 두 배누 ㄷㄷ]
"내가 평소의 두 배 만큼 예뻐서 그런 거야."
[우리 지현이가 개소리를 잘하는 걸까 사람 흉내를 잘 내는 걸까]
[야 우리집 개 지현이 얼굴 보더니 갑자기 짖는데?]
[사람 흉내를 잘 내는 거였누 ㄷㄷ]
[그게 아니라 지영역에 다른 개가 똥 싸놓고 간줄 아나본데 ㄷㄷ]
[개똥까지 소화 가능한 천의 얼굴 ㄷㄷ]
[나 남잔데 우리 소대 사람들 다 권지현 매력적이라고 하더라]
"'나 남잔데 내 주변 남자들 다 권지현 매력적이라고 하더라.' 아~ 그렇다네요."
[이악물고 지가 보고 싶은 채팅만 보누 ㅋㅋ]
[심지어 그 채팅 안에서도 지가 보고 싶은 부분만 봄]
[심지어 그걸 또 왜곡시킴]
[남자한테 우리 소대가 어딨어 ㅋㅋㅋ]
[저게 그 군필 남고생인가 뭔가냐]
"아니 그래서, 여러분 우리 최재훈 씨 오실 때까지 뭐 할까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ㅄ아]
[이거 완전 얼빠진 련 아니야 ㅋㅋ]
[니 방송인데 그걸 왜 우리한테 묻누 ㅋㅋ]
"제 미튜브 영상이라도 보고 있을래요?"
[이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안사요]
[아줌마 여기서 영업하시면 안되요]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 사이에 대해 아예 생각을 안 해 놨어. 내가 방송 키고 최재훈 씨 기다리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대해서. 그러니까 나는 그냥 방송을 딱! 키면 최재훈 씨가 딱! 나타나 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방송을 킨 거란 말이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최재훈 씨가 남자잖아? 어? 그럼 남자면 편하게 꾸민다 해도 시간이 좀 걸리겠고? 뒤늦게 아차 한 거지."
[아니 ㅅㅂ ㅋㅋ 이새끼 뭐라는 거야]
[권소리 ON]
[여기 강아지 있나요? 해석좀 해 주세요]
[나 강아진데 이새끼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방 원래 이런가요?]
[예 원래 이렇게 얼빠진 련입니다]
[이 새끼 상태 보세요 우리가 채팅을 예쁘게 칠 수가 있나]
"나 지금 그래서 좀 패닉 상태야. 뭘 해야될 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최재훈 씨 다음으로 보고 싶은 걸 알려줘 봐. 내가 최대한 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해 볼게."
[아니 ㅅㅂ 이게 뭔 권소리야 ㅋㅋㅋㅋ]
[저 오늘 여기 처음인데 이분 평소에도 술 마시고 방송하나요?]
[놀랍게도 이게 평소 상태입니다]
[얘가 술을 마시면 취하는게 아니라, 술이 얘를 마시면 취해요 이새끼 고량주보다 도수가 높음]
[인간 알코올 ㄷㄷ]
[우리 오빠 보려고 기다렸더니 웬 술취한 아지매가 ㄷㄷ]
권지현은 말하면서도 수시로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한 2분이 이미 지났고,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똑똑.
'그렇지.'
그리고 마침내 들려 오는 노크 소리.
권지현이 놀라는 척을 하며 문 쪽을 쳐다봤다.
"어, 뭐지?"
[뭐여]
[오빠임?]
[오빠 늦는다며]
"진짜 최재훈 씨인가? 잠깐 확인해 보고 올게요. 누구세요~?"
누구인지 알면서도 모른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거기엔 당연히 최재훈이 서 있었다.
흰 티를 후드로, 반바지를 청바지로 갈아입은 최재훈이.
와, 진짜로 편하게 입으셨네.
권지현은 최재훈을 본 순간 입 밖으로 나오려는 그 말을 가까스로 삼키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아니 최재훈 씨!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예?"
니가 빨리 오라며.
그런 표정을 하고, 그런 말을 하려는 듯한 최재훈에게 작게 속삭인다.
방송.
방송.
"아."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최재훈.
"일단 들어오세요!"
"아, 예. 실례하겠습니다~"
두 남녀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