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밑집 남자 최재훈 2
"권지현니 님이 삼십만,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이고 재훈 씨, 우리 지현이랑 조금이라도 좋으니 같이 좀 놀아 주십쇼 ㅠㅠ"
가공할 위력을 지닌 그 말에 마치 장소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다.
"아이고~~~ 회장님~~~!"
그 위로 권지현의 환희가 흘렀다.
"우리 권지현니! 회장님께서!! 최재훈 씨의 출연료로 무려 30만 원을 쾌척하셨습니다!!! 최재훈 씨를 대신해서 이렇게 감사 인사 올립니다!!!"
권지현이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을 향해 있는 힘껏 절을 올렸다.
일어나서는 한 번 더.
정말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기쁘고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절이 나와 버린 것과는 별개로.
'최재훈 씨의 출연료로 무려 30만원을 쾌척.'
'최재훈 씨를 대신해서 이렇게 감사드립니다.'
저 두 가지 사실을 말로 언급한 뒤, 이렇게 행동으로 강조까지 해 버리면 최재훈이 거절하지 못할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권지현의 동작은 전에 없을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해애장니임~~~~~!!]
[와 ㅅㅂ 소름돋았음 ㄷㄷ]
[30만원 쿨도네 미쳤네 진짜]
[저희 리수들을 대신해서 지갑을 여시는 ㅠㅠㅠㅠ]
[아빠 지갑에서 5천원 빼왓는데 늦었누;]
[앗뜨거]
[5천원 600장만 더 빼오면 니가 이김]
[과연 지폐가 불속성 효녀의 온도를 버틸 수 있을까 ㄷㄷ]
[마그마효녀 ㄷㄷ]
[와근데 우리오빠 일당 30만 미쳤누 ㄷㄷ]
[내 3일 일당 ㄷㄷ]
[시급 30만 ㄷㄷ]
[공부 왜 하냐 ㅋㅋ 잘 생긴 남자로 태어나면 시급 30만인데]
[ㄹㅇ 나도 걍 고시 준비 떼려치고 이세계 갈 준비나 해야지]
[일본어 배워야겠누?]
채팅이 갱신되는 속도가, 스크롤을 휠이 아닌 스크롤바를 끌어서 내리는 수준이었다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피해도, 이걸 읽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권지현은 최재훈에게 채팅창을 보라고 가리켰다.
읽지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읽지 못해도 그 폭발적 반응을, 분위기를 느끼면 충분하다.
최재훈이 오자 권지현이 자리를 비켜줬다.
채팅창을 보라고 그렇게 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런데 대뜸 그도 카메라를 향해 절을 하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권지현처럼 두 번씩이나.
[오빠!!!!!]
[오ㅜㅑ퍄!!!]
[와 ㅅㅂ 우리 오빠 미모 먼디]
[화장 안 한 것 같은데도 저정도누 ㄷㄷ]
[피부봐 ㄷㄷ 햇빛을 쫴 본 적이 없는 분인가]
[혹시 외국 살다 오셨나?]
[두유노우 지현퀀?]
[wehre r u from?]
[south korea]
[간첩도 보는 권지현 방송 ㄷㄷ]
[south 남쪽이야 ㅄ아]
[아니 근데 우리 오빠 개커엽네 ㅋㅋ 절하는 거]
[ㄹㅇ ㅋㅋ 왜 오빠가 절을 해]
-현자 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오라버님!
-권지혀 사냥개 님이 (3,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이 절 내꺼!
카메라에 최재훈의 모습이 가감 없이 비추어지며 후원창까지 난리가 나 버렸다.
돌발 상황.
권지현은 달가웠다.
이대로 흐름을 타면 자연스럽게 합방까지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라톡~
'응?'
그 때, 방송 송출용이 아닌, 주머니에 들어 있는 폰이 진동했다.
권지현은 뭔가 싶어 곧바로 확인했다.
톡은 그녀와 개인톡방을 개설할 정도로 친밀한 열성팬 중 하나로부터 왔으며,
[언니]
[지금 최재훈 씨 흰티 너무 얇음]
수신자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할 내용을 담고 있었다.
권지현은 다급히 최재훈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팬의 말대로, 최재훈이 입은 흰 티는 너무 얇았다.
하지만 속에 나시 등의 내복을 입으면 문제되지 않을 일이다.
[게다가 속에 아무것도 안 입어서 상반신 쪽 찍으면 큰일 날 것 같은데]
그런데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그래서 문제가 될 일이었다.
큰일.
바로 그의 티셔츠 위로 좌표 두 개가 찍히는 경우를 말했다.
'미친.'
권지현의 들떴던 얼굴이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
얼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다행히 최재훈은 절을 하고 곧바로 일어나, 바닥에 내려놓은 카메라에 상체가 찍힐 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권지현은 재빨리 리치 TV 본인의 채널로 가서, 다시 보기 기능을 켰다.
그리고 최재훈이 절하는 장면이 나오는 구간을 면밀히 살폈다.
"…휴."
다행히 그녀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 고맙다 큰일날 뻔했네]
권지현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야외방송용 장비를 집어 들었다.
캠의 자신의 얼굴만 나오도록
[아 뭔디 꺼져]
[우리 오빠 내놔요]
[너 누구야 우리 오빠 돌려내]
[변기 치워 ㅅㅂ아]
"변기? 너 나가."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변깈ㅋㅋㅋㅋㅋㅋㅋㅋ]
[선 씨게 넘누 ㅋㅋㅋ]
[아니 근디 ㄹㅇ 우리오빠 보다가 지현이 보니 화장실 가고 싶네]
[ㄹㅇ ㅋㅋ 저도 갑자기 폭력 욕구 느껴짐 막 뭔가 치고 싶네]
[변비약과 샌드백이 공존하는 얼굴 ㄷㄷ]
[성욕 뺴고 모든 욕구를 자극하는 얼굴 ㄷㄷ]
짓궂은 평소의 채팅을 보고 평정을 되찾은 권지현의 표정이 풀렸다.
"어쨌든 여러분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현이 얼굴보다 급한 문제가 있누?]
[south korea에서 핵이라도 날렸누?]
[북한에 핵이 있음?]
[모지 ㅄ인가]
"최재훈 씨께서 합방을…!"
그렇게 말하곤 최재훈을 쳐다본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마지못해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하셨습니다!"
[쎾쓰!!!!!!!!!!!!!]
[사실 개꿀잼 몰카였고 ㄷㄷ]
[와 시엔즈!]
[나오지마 ㅅㅂ]
[대서기관을 섭외하셨나보네 ㄷㄷ]
[오늘 섭외력 처돌았누]
"그렇게 됐으니, 2부 방송은 여기까지! 합방 준비해서 금방 다시 뵙겠습니다!]
[ㅅㅂ 가지마]
[아니 또 이렇게 되누]
[올 때까지 숨 참는다 흐읍]
[이렇게 또 한 명이 가버리누...]
[오늘 학원 뒤졌다]
[ㄹㅇ ㅋㅋ 이번 수능도 거른다]
[ㄹㅇ루다가 수능은 또 보면 되는데 이건 오늘밖에 못보자너 ㄷㄷ]
[여기 채팅창 너무 온도가 높네요]
[불속성 효녀들이 많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방송이 종료되었다.
그저 채팅창을 껐을 뿐인데 주변이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권지현이 최재훈을 쳐다봤다.
방송을 끄고 정말로 둘뿐이 되었다 생각하니 입이 삐적삐쩍 말랐다.
방송할 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그녀가 쭈볏쭈볏 입을 열었다.
"아 그, 당황스러우셨을 텐데. 이렇게 잘 호응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꾸벅,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도 덕분에 신선한 경험해서, 재밌었어요."
그러자 그도 꾸벅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때, 권지현의 눈에 뒤늦게 남자의 상체가 들어왔다.
권지현의 깜짝 놀라며 시선을 숙였다.
"아, 저기 그… 위에가…."
"위에요? 아."
부스럭.
"됐습니다."
조심스럽게 다시 시선을 올린다.
한쪽 팔을 일자로 해서 가슴을 가린 최재훈.
나머지 팔로는 엄지를 치켜들며 씨익 웃었다.
권지현 또한 한쪽 팔로 엄지를 치켜들어 줬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팔로는 입가를 가렸다.
그를 보고 완전히 풀려버린 입가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거죠?"
최재훈이 먼저 주제를 꺼냈다.
"그… 컨텐츠 부터 정하려고 하는데. 최재훈 씨도 레오레 한다고 하셨으니, 아무래도 레오레가 무난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전 뭐든 괜찮습니다. 방알못인데, 시키는 대로 해야죠."
또다시 엄지를 치켜들며 씨익.
'아이씨….'
그만 좀 실실거려라.
표정관리 미치겠네.
권지현은 온 신경을 안면 근육에 집중했다.
그래야 간신히 피식, 하는 정도로만 웃을 수 있었다.
"그럼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컨텐츠는 일단… 예. 레전드 오브 레전드 위주인 걸로."
"좋습니다."
"그러면 디테일적인 걸 정해야 하는데…."
문득 권지현의 시야에 주변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빌라 복도에 서 있다는 사실이.
그러한 속내를 읽었는지, 먼저 말을 꺼내는 최재훈.
"아, 내 정신 좀 봐. 그, 괜찮으면 들어오실래요?"
"예? 아!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남성분 집에 그렇게 들어가는 건 좀….'
-폐가 되지 않을까요?
-전 괜찮아요. 아니, 좋아요.
-오우 예아! 엄마! 나 시집가! 아버지! 사위 데려갈게요!
-씬난당~
"아, 역시 좀 그렇겠죠?"
"아. 네, 뭐…."
음습함 가득 담긴 망상이 최재훈의 수용적인 자세에 의해 곧바로 물거품이 된다.
'아… 그냥 알았다고 할 걸…. 아니, 아니 역시 그건 너무 진도가 빠르고….'
"그럼, 음… 카톡으로 대화하실까요? 아무래도 근처 사시는 것 같은데."
"아! 저 위에 살아요."
"아…! 그래서 택배가."
"예예."
그렇게 둘의 시선이 자연스레 택배로 향했다.
남자와 여자의 그늘이 인접하여 만들어진 말 그대로 'X'같은 존재가 봉인되어 있는 상자로 말이다.
"…."
"…."
최재훈이 무표정하게 상자를 건넸다.
권지현이 무표정하게 상자를 받았다.
끄덕.
끄덕.
최재훈이 무표정으로 라톡 아이디를 불렀다.
권지현이 무표정으로 라톡 친구 추가를 한 뒤 화면을 그에게 보여줬다.
끄덕.
끄덕.
3자가 봤다면 영락없이 불법 거래 현장으로 유추했을 분위기 속에서, 둘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