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밑집 남자 최재훈 1
"권지보 현지털 님이 천, 원을 후원했습니다."
"오빠, 저… 가 이상해요… 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
때마침 오류까지 나 버려서 말 끝을 병적으로 저는 인공지능.
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
'제발 닥쳐 찬우야….'
권지현이 속으로 인공지능 목소리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부탁햇다.
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해액-
소용 없었다.
"…."
"…."
서로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권지현은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신속하게 핸드폰을 조작했다.
권지보 현지털, 영구 차단.
가장 큰 제제를 가했는데도 분이 안 풀린다.
애초에 영구 차단을 감안하고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차단 되건 말건, 지금쯤 화면을 보며 낄낄대고 있겠지.
서로 한 대씩 주고받았지만 피해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실명이냐 익명이냐의 차이.
애초에 일방적인 딜교환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부당한 시스템인 것이다.
이처럼 스트리머는 때때로 철저한 을의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분위기 뭔디 ㅋㅋㅋㅋㅋ]
[미쳤누 권지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악질새끼 보나마나 영구 차단 먹었겠누 ㅋㅋ]
[권지보 현지털 컷!]
[어허]
[권지보 현지털입니다 유사상품에 주의해주세요]
[권지보 현지털 영구 차단 ㄷㄷ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권지현?]
[속보) 권지현 레이저 제모]
[내면을 가꾸는 여자 권지현 ㄷㄷ]
[그게 어떻게 내면이누 미친년아]
[아 ㅋㅋ 점마는 안에 나나 '보지']
[채팅창 봊창났네 ㅋㅋ]
권지현이 불행해 할수록 시청자들은 행복해한다.
이럴 때마다 이것들이 정말 자신의 팬이 맞나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오늘따라 특히나 큰 의문을 느끼며, 권지현은 조심스럽게 남자의 눈치를 봤다.
남자 또한 권지현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어색한 시선이 마주쳤다.
이내,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 그. 시청자분이 좀 많이 짓궂으시네요…. 음…."
불쾌한 기색 하나 없다.
느껴지는 건 배려.
남자가 장난스럽게 실소하는 순간, 권지현은 구원받는 느낌을 받았다.
구사일생한 기분으로 안도하며 말한다.
"아으… 죄송합니다…. 진짜로 미안해요."
"에이, 그쪽 분이 그러신 것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음성 후원 끌게요!"
신나서 핸드폰을 조작하려는 권지현.
"아, 괜찮아요."
그런 그녀를 남자가 만류했다.
"그거 제가 알기론 방송하시는 분들 주 수입원 중 하나일 텐데, 저 하나 때문에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일하시는 건데 뭐,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와….'
권지현은 생각했다.
[천산가]
[와 ㅅㅂ 천산가]
[ㅁㅊ;;]
[저런 천사보고 적셨던 새끼들 누구야!]
[천사보고 발정한 사탄의 자식새끼들 누구야!]
[아빠 보고도 적실 짐승새끼들 누구야!]
[선넘누]
[와 ㄹㅇ 잘생긴 남자가 성격도 좋다는데 ㄹㅇ이었네]
[잘생긴줄 어케알았노 시발년ㄴ아]
[아 ㅋㅋ 지현이 표정 보면 각 나오자너]
[권지현 ㅅㅂ년아 좋은거 같이봐]
[나도, 나도 볼 거야!]
"그리고 뭐,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고. 금방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잠시만요."
남자가 발로 도어 스토퍼를 내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권지현은 따라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견뎌냈다.
목을 비스듬히 꺾어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 또한.
남자에게 빠진 여자는 이렇듯 인내심이라는 종이 하나 차이로 범죄자와 일반인 사이를 오갔다.
머지않나 다시 나오는 남자.
그의 손에는 이 모든 일의 발단인 택배물이 들려 있었다.
택배엔 개봉한 흔적이 역력했다.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
"아, 이거… 진짜 죄송해요. 맨날 하던 버릇대로 저도 모르게… 어떻게 보상해 드려야 할지…."
권지현이 손사래를 쳤다.
"아, 괜찮아요! 잘못 보낸 사람 잘못이죠!"
어차피 이미 딜도 내놓으라며, 내용물이 딜도인 걸 동네방네 소문내 버린 마당에.
그보다도 권지현은 뒤늦게 찾아온 수치심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남자에게, 그것도 호감을 느낀 남자에게 자위 도구를 회수하는 상황은 전에 못 느껴 본 수준의 수치심을 유발했다.
짤랑.
그러던 와중 또다시 들려오는 후원음.
또다시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아, 씨! 역시 음도 꺼놨어야 했는데!'
그런 권지현의 뒤늦은 후회 따윈 아랑곳 않고,
인공지능이 딱딱한 목소리로 맡은 바 임무를 다 하기 시작했다.
"허허벌판이 된 권현지의 들판 님이 천,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라버님, 그렇게 보상이 하고 싶으시면 우리 지현이랑 합방 함 조져 주시죠."
권지현이 얼굴을 팍 구기며 성질을 냈다.
"아이씨, 오늘 도대체 왜들 이러실까."
공중제비 열여덟 번 돌며 '개쌉굿!'이라고 외치고 싶은 속내를 가까스로 숨기면서.
힐끔힐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을 잇는다.
"아니 뭐 '남의 택배' 먼저 뜯어 볼 수도 있는 거지. 그거 가지고 '보상'을 해라 마라, '전 신경 안 쓰니까' 여러분들 이분한테 '보상'하라고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경고했습니다. 이 분이 '실수' 하신 거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
슬쩍슬쩍 음습한 자아를 담는다.
말과는 다르게 남자가 부담을 느끼도록.
남자가 곤란한 듯 웃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합방 수락은 끝끝내 나오지 않고.
짤랑!
대신 후원음이 울렸다.
"권지현VS각지현 님이 삼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오라버님 이 돈 출연료로 드릴 테니 제발… 우리 찐따 지현이좀 잘 부탁드립니다. 태어나서 남자랑 처음으로 대화해 보는 아이에요…."
'각지현이 시발 나이스!'
"아이고 각지현님! 후원 삼만 원! 감사합니다."
이때다 싶어서 거드는 권지현.
평소처럼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려다 말았다.
남자 앞에서, 특히나 이 남자 앞에선 왠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왜 니가 감사하누 ㅋㅋ]
[이새끼 지가 꿉 하려고 ㅋㅋ]
[돈독 올랐누 지현아 ㅋㅋ]
[3천만 시청자가 보고 있다 ㅋㅋ]
[ㄷㄷ 대한민국 절반이 시청중]
[시청률 50% ㄷㄷ]
[나 일본 사는데 동향사람들 다 권지현 방송 본다]
[i'm from amarica thx kimchi]
[와 나 아마리카 사람 첨봄 ㄷㄷ 지구에서 내가 처음 봤을듯]
"아니 여러분 당연히 알죠~ 제 돈 아닌 거. 저기… 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 저 최재훈이라고 합니다."
"아 최재훈 씨!"
[이름이 재훈이 ㅋㅋㅋㅋ]
[서폿 잘할 것 같은 이름이누 ㅋㅋ]
[와 ㅆㅂ 우리 오빠랑 봇듀가고싶누]
[ㄹㅇ ㅋㅋ 암사자 새끼들 이해 못 했었는데]
[우리 오빠가 숫사자면 나도 바로 암사자 되지 ㄹㅇ;;]
암사자.
남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열성적인 구애를 하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무리를 이루는 숫사자는 사냥을 직접 하지 않고 전부 암사자에게 떠맡긴다고 한다.
그런 사자의 생태로부터 비롯됐다.
"저는 권지현, 편하게 불러 주시면 돼요."
"아, 네. 권지현 씨. 알고 있어요."
"네? 아! 혹시 제 방송이나 미튜브 본 적 있으신가!?"
"네? 아뇨, 방금 자기 소개 해 주셔서."
"아, 맞다."
[뭐하누 권지현이 ㅋㅋ]
[벌써 시동걸렸누 ㅋㅋ]
[잠깐이라도 찐따인 티를 못내면 죽어버리는 사람]
[와 시발 내 이불이다 시큰거리네]
[남자랑 처음 대화해 보는 사람]
[지현아 즉당히 하자... 우리까지 쪽팔리게 해서 죽일 생각이냐.]
[이불 PPL 들어왔누 ㅋㅋ]
고개 숙인 여자 권지현.
"제가 지금 너무 긴장해가지고.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남자가 피식피식 웃을 때마다 그에 맞춰서 심장이 크게 한 번씩 뛰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 들으셨죠? 저희 시청자 분께서 최재훈 씨에게 3만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치는 최재훈.
채팅창이 '짝짝'으로 도배되었다.
"저한테요? 아 출연료라고…."
"아이고!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받으세요!"
[미쳤누 권지현이]]
[그걸 왜 그냥줘 야발년아]
[아니 우리 오빠 출연료료 줬더니 지가 그냥 선심써버리네 ㅋㅋ]
[아니 ㅅㅂ아 우리도 오빠 얼굴좀 보자]
[좋은거 지만보네 ㅋㅋ]
[이집 상도덕이 없네]
'아니,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 새끼들아….'
입장이란 게 있지 않은가.
권지현은 시청자들과 달리 직접 대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행동의 결과는 결국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온다.
억지로 강요하듯이 부담을 주다가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렇게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낀다면?
권지현은 최재훈의 저 미소가 경멸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상상해 버렸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시청자 분들이 뭐라시는데요?"
"네? 아."
아까부터 수시로 핸드폰을 응시하는 권지현을 보고 흥미가 동한 걸까.
남자가 채팅창을 확인하는 권지현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아, 우리 시청자 분들이 최재훈 씨랑 같이 방송하는 거 보고 싶다고 아주 그냥. 한 번 보실래요?"
권지현은 옳다구나 이야기를 꺼내며 핸드폰 화면을 최재훈에게 향했다.
"저랑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채팅창을 쳐다본다.
[오빠!!!!!!]
[여기 봐 주세요!!!!!!]
[화면 나만 멈춤? 얼굴 나만 안 보임?]
[안보이는거 맞아 ㅄ아]
[합방 함 해주세요~~~]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채팅창 혼자쓰누 시발년아]
[저새끼 쳐내]
[우리 지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똥오줌을 못가리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해요...]
[합방 안 해 주면 물구나무서서 오줌쌈]
[똥싸면서 엉엉움]
[ㅋㅋㅋ ㅁㅊㄴ들 ㅋㅋㅋㅋ]
[화력보소]
"하."
최재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저를 왜… 당황스럽네."
"네? 이런 씨, 이상한 채팅 치는 년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너무 열렬히 반응해주시는데 이분들. 제가 뭘 했다고."
"아."
최재훈은 당황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좋은 반응.
이 기세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권지현은 빠르게 궁리했다.
짤랑.
"권현지의 오른쪽 젖꼭지 님이 천, 원을 후원했습니다"
"재훈씨 출연료 원기옥 기역?"
'와, 시발 그거지.'
이거다 싶었다.
완벽한 아이디어.
그리고 완벽한 지원 타이밍.
권지현은 속으로 감탄할 정도로 감동했다.
방금 전 시청자들에게 느꼈었던 야속함이 묵은 떼 벗기듯 떨어져 나갔다.
"아이! 모금은! 권지현 씨, 이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최재훈이 만류했다.
"그, 그런가?"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권지현이 당황한 척하며 우왕좌왕 사태를 방관하면 신난 시청자들이 알아서 흐름을 이어갈-
…
흐름을 이어….
…
흐름을 이어간다는 게 권지현의 생각이었는데….
[ㅈㅅ;;; 평균 리수라서 ㅠㅠㅠ]
[지현아 미안하다 ㅠㅠ 어제 치킨 먹어서 돈이 없다 남은 뻑살이라도 줄까]
[나 금방 취직하고 올테니 좀만 ㄱㄷ]
[아니 아빠 5천원 달라고 그냥 급하게 써야될 데 있다고]
[담배도 받나요?]
[메쇼도 받나요?]
[골드도 받나요?]
[제주도민 입니다 오렌지(제주도 화폐 5천원 짜리임 ㅎ) 택배로 스무 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이걸 어쩌지.
합방이 시시각각 멀어져 가는 분위기에 권지현은 초조함을 느꼈다.
'지성이한테 나중에 돌려줄 테니 빨리 들어와서 15만 원만 후원해 달라 해야 하나?'
남들 눈치 못 채게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내 도움을 요청할까 까지 생각한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던 그때.
권지현은 어떤 영화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판타지 세계.
수세에 몰려 위기에 처한 연합군.
마지막까지 분전하나, 결국엔 희망을 잃어버리는 주인공들.
모든 것이 끝나기 직전.
짤랑짤랑짤랑!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팔 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운다.
"권지현니 님이 삼십만,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어서 우렁찬 함성 소리가 천둥이 되어 하늘을 찢는다.
"아이고 재훈 씨, 우리 지현이랑 조금이라도 좋으니 같이 좀 놀아 주십쇼 ㅠㅠ"
대지를 울리고 전세를 뒤엎을 만큼 위풍당당한 지원군.
큰손의 후원은 흡사 영화관에서 그런 웅장한 클라이막스 씬을 관람하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권지현은 여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말하는 최상위격 감탄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 찌찌가 웅장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