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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9화 (9/361)

009화. 스트리머 권지현 2

'그래서 이제부터 어떡하지.'

'어떡하긴, 가서 딜도 찾아와야지.'

"에휴…."

마음 같아선 그냥 나몰라라 내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팬이 준 선물 아니던가.

그게 비록 Mr.George를 본따 만들어, 조지같다는 표현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말로 조지 같은 물건일 지라도 말이다.

라는는 표현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말로 조지같은 물건일지라도.

그때, 권지현의 뇌리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야, 각지현. 니 설마 택배 상자에 이상한 짓 해놓은 거 아니지? 진짜 거기에다 지랄해 놨으면 나 그거 그냥 손절할 거다?"

권지현이 말하는 지랄이라 함은, 내용을 특정할 수 있도록 택배의 포장에 표시를 해놓는 행위를 말했다.

성함에 '딜도워먼'을 적어 놓는다던가,

요청 사항에 '딜도가 타고 있으니 조심해 주세요'라고 적어 놓는다던가, 발송인에 '섹스파워 딜도 주식회사'같은 걸 적어 놓는다던가.

권지현은 당장 그 정도가 떠올랐다.

[각지현 너가 죽였잖아]

[살인자 ㅠㅠ 각지현 돌려내]

10분 채팅 금지를 했던 게 떠올랐다.

"아, 씨. 아직도 10분이 안 지났어?"

그때 울리는 경쾌하고도 기분 좋은 짤랑소리.

-권지현VS각지현 님의 영혼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뭐야 벌써 내가 보고 싶어진 거야?

[각지현좌!!!]

[제엔장 믿고 있었다고!!!]

[10분이 10년 같았ㅇ브니다 ㅠㅠ]

"그래 10분이 10년 같았다 이 텐련아. 대답이나 해."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ㄱㅊ 걱정마셈 아무 짓도 안 해 놨으니까

[각지현좌 자비로우신거 보소 ㄷㄷ]

[권지현 이년! 각지현 좌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근데 안 적어 놨어도 열면 알 수 있자너]

[그니까 그사람이 택배 열어봤으면 어떡함?]

"뭔 소리야. 택배를 확인도 안 하고 다짜고짜 열고 보는 년이 어딨어."

[손]

[나 그냥 일단 뜯고 보는디 ㅋㅋ]

[나도]

[이게 구조가 뜯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라니까?]

생각해 보니, 자신도 택배가 오면 일단 개봉하고 보는 것 같았다.

권지현의 행복회로에 쩌적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원만하게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생각보다 높았다.

"하…."

미간을 문지른다.

"어떡하긴… 내 딜도 내놓으라고 해야지."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여자 ㅋㅋㅋ]

짤랑.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님 미션 ㄱ?

미션.

시청자가 스트리머에게 요구한 특정 행동을 수행하는 데 성공하면, 스트리머에게 약속한 액수의 금액을 후원해 주는 걸 말했다.

권지현의 귀가 쫑긋였다.

"무슨 미션인데?"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밑집 문 두드리면서 진짜로 '내 딜도 내놔!!!'라고 소리질러서 받아내면 5만원 ㄱ?

5만원이란 액수를 들은 권지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미션 내용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린다.

"에라이."

[ㅋㅋㅋㅋㅋㅋㅋ]

[각지현좌 오늘 폼보소 ㅋㅋㅋㅋ]

[저지랄하면 잡혀가지 않겠누 ㅋㅋ]

그래도 액수가 액수인지라, 권지현은 일단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즉시 고민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결론을 내렸다.

이건 안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 그러면 방송에 아랫집 사시는 분 나오잖아. 안 돼."

마침 딱 좋은 변명거리도 있어서 방송 분위기를 죽이지 않아도 됐고.

[오 ㅋㅋ 권지현]

[5만원을 팽하네 ㄷㄷ]

[배려 보소 ㄷㄷ]

[이게 월 5천 버는 자의 여유인가 ㄷㄷ]

[돈 많을수록 착해진다는데 ㄹㅇ이었나 ㄷㄷ]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읍니다 ㅠㅠ

"그래 그래. 하, 어쨌든. 그렇게 된 거니까. 저는 아랫집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 때였다.

짤랑짤랑짤랑짤랑-

후원음이 들려왔다.

방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5만원 이상의 액수를 후원할 때 울리도록 설정돼 있는 후원음이었다.

방을 나서려던 권지현이 깜짝 놀라서 화면을 확인했다.

-권지현니 님이(5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큰손.

스트리머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엄청난 수준의 후원을 해 주는 시청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권지현니는 그런 큰손 중 한 명이었다.

"아이고 해장님!!!"

권지현이 반사적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에 뒤섞여 말해지는 후원 메세지의 내용.

"얹고 10만원 더."

[와 ㅁㅊ]

[해장님!!!]

[미션을 5만원으로 거네 ㄷㄷ]

[10만 ㄷㄷ]

[내 하루 일당이네 ㅅㅂ ㅋㅋ]

[5치킨 ㄷㄷ 저건 해야지]

[ㄹㅇ 중계각 서나?]

-권지현VS각지현 님이(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짧은 건 내 생각이 아니라 권지현 고민이었고 판돈 15만 됐는데 이래도 안 해? ㅋㅋ

15만원.

권지현의 이성을 아주 없애기 까진 못 해도, 잠깐 동안 마비 시키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주 없애기 까진 못 해서, 권지현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해장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미션은 좀… 부디 거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 밑에 사는 사람이랑 진짜 얼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습니다. 다른 거 내주시면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지현이 캠을 향해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짤랑짤랑짤랑짤랑.

그러자 또 다시 들려오는 휘황찬란한 소리.

-권지현니 님이(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에이 그러게 10만이 뭐냐 그냥 니 하고, 미션 성공하면 20만원 더 ㄱ

큰손의 무심한, 그래서 더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후원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채팅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광란이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된 이상 권지현은 미션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액수 때문이 아니다.

방송의 분위기.

프로 스트리머인 권지현에게 있어 어찌 보면 돈 만큼, 어쩌면 돈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이토록 방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여기서 내빼면 바로 식어버릴 터.

그녀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으…!!!"

그녀는 보란 듯 신음하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으! 알겠습니다! 해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와 씹 ㅋㅋㅋㅋ]

[해장님 사랑합니다!!!]

[나는?]

[5만원 따리는 짜져있엌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하네]

[각지현좌 ㅋㅋ 최단기 퇴물행]

-권지현니 님이(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이래야 우리 지현이지 ㅇㅇ;;

"아, 해장님. 다시 이렇게 후원 감사드립니다."

꾸벅.

[그런데, 밑집 남자면 어떡함?]

남자가 사는, 아마도 혼자 자취하는 집에 찾아가 내용물이 딜도인 걸 들킨 택배의 주인이 자신이라며 돌려달라고 한다.

그것도 '내 딜도 내놔!!!'라고 소리를 지르며.

'시발….'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어떡하긴 어떡해.'

권지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최악의 경우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무신론자인 주제에 말이다.

"야외 방송 세팅 준비해서 그때 다시 켜겠습니다."

권지현의 말대로 일단 방송이 종료되었다.

* * *

"뭐야, 왜 이렇게 많아?"

다시 방송을 킨 권지현이 깜짝 놀랐다.

아까 시청자들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는지, 방송을 껐다 켰는데도 시청자 수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났다.

[지현이 왤케 늦었누]

[딜도 원정대 드디어 출발합니까?]

[여기가 그렇게 맛집이라면서요]

아무래도 권지현이 야외 방송 준비를 하는 사이, 시청자들이 인터넷 방송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이야기를 퍼뜨린 듯했다.

[빨랑 딜도 압수하러 가즈아!!!]

[밑집 남자 뒤졌다 ㅋㅋ]

이야기가 퍼지며 와전된 건지, 아예 왜곡해서 이야기를 퍼뜨린 건지.

딜도를 잘못 받은 이웃의 성별이 남자인 게 기정사실로 되어 있었다.

[근데 이새끼 왤케 늦었나 했더니 꾸미나 늦은 거였네 ㅋㅋ]

[ㄹㅇ이네 아까랑 옷 다르네]

[화장도 했고 ㅋㅋ 아 대놓고 남자 꼬시러 가누]

권지현의 패션은 '집에서 입는 편한 차림'에서 '캐쥬얼한 차림'이 되어 있었다.

가벼운 화장의 도움으로 피부도 높은 톤으로 번들거렸고, 눈가의 인상과 눈썹도 진해졌다.

너저분한 머리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깔끔한 포니테일이 되어 있었다.

채팅창 내용대로 권지현은 꾸몄다.

채팅창 내용대로 남자를 꼬시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꼬시기 위해 작정하고 남자들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적극적이고도 활동적인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권지현이 치장에 기대하는 기능.

바로 충격 완화였다.

지금부터, 자신의 택배를 보관해 주고 있는 초면인 이웃에게 가서 대뜸 '내 딜도 내놔!!!'라고 소리쳐야 한다.

야외 방송 장비 때문에 방송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주겠지만, 그렇다고 이해까지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생긴 거라도 멀쩡하게 해서 덜 혐오스럽게 만들자.

상대방이 덜 혐오스러워하는 만큼, 수치심도 적어질 테니.

이게 권지현의 계산이었다.

[우리 지현이 또 인싸인 척하누 ㅋㅋ]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이 인싸긴 해 ㅋㅋ]

[ㄹㅇ ㅋㅋ]

[성격이 겜창 찐따라 그렇지 ㅋㅋ]

[그떄 남자 시청자랑 보이스챗 하자마자 후두암 걸렸던 거 떠오르누 ㅋㅋ]

"아 거~ 그냥 좀 잘 생겼다고 평범하게 칭찬 좀 해 주면 어디 덧나나."

[어림도 없지 ㅋㅋ]

[그러게 누가 억울하게 껍데기만 인싸하래? ㅋㅋ]

[누나 꾸미니까 개매력적이에요]

"'누나 꾸미니까 개매력적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거봐~ 이렇게 착한 남성 팬분들은 솔직하게 칭찬해 주신다니까?"

[나 여잔데 ㅄ아]

"그럼 나가 이 자식아."

[엌ㅋㅋㅋㅋ 출렁출렁]

[아니 님 방에 남청자가 어딨음 ㅋㅋ]

"아니, 미튜브 시청자 통계 보면 5%가 남자라니까?"

[그거 다 아빠주민임 ㅋㅋ]

"즐."

터벅.

권지현이 자리에 멈춰 섰다.

어느새 밑집 문 앞이었다.

애초에 문 열고 계단만 내려오면 되긴 하는 거리긴 했지만.

"후…."

권지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제발 남자라서 경찰불렀으면 ㅋㅋㅋ]

[엌ㅋㅋㅋㅋㅋ]

[연행당하면 쌉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

[권지현 뉴스타나? ㅋㅋ]

막상 눈앞에 닥치니 비로소 구체적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물러서기엔 이미 늦었다.

권지현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 딜도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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