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스트리머 권지현 1
권지현은 캠을 보며 짐짓 거만하게 미소지었다.
"보셨죠?"
[ㄵ]
[ㅆㄵ]
[양학 하고 신난 거 보소 ㅋㅋ]
"아니 여기 플래티넘인데 뭔 양학이에요~"
[너한테는 플래티넘도 양민이잖아.]
"아~ 고렇긴 해?"
[억빠 미워, 억빠 나가]
[미쳤나 ㅅㅂ ㅋㅋ]
[속보) 권지현 똥꼬 주름 실종]
[내 똥꼬가 다 간지럽네]
권지현은 능숙하게 방송을 이어나가면서 수시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니 이 새끼, 남자라도 기다림?]
[얘한테 남자가 어딨어요. 치킨 기다리겠지]
[ㅗㅜㅑ 남고생 치킨 배달부 스페셜 메뉴 16만 ㄷㄷ]
"아니, 한 시간 전에 택배 기사 온댔거든."
[ㅗㅜㅑ 남고생 택배 배달부 배달 실수했는데 몸으로 보상하면 안 될까요? ㄷㄷ]
[저새낀 하토미 안 가고 왜 여기 있냐]
[무슨 택배? 뭐 시킴?]
"어떤 팬 분이 일본 갔는데, 선물로 사온 거 보내주신다고."
[일본 ㄷㄷ 씹덕 ㄷㄷ]
[일본=씹덕은 무슨 논리임]
[찔려버린 씹덕 하나 검거 ㅋㅋ]
[나 오타쿠 아닌데 일본은 ㅇㅈ한다]
[아니 그래서 무슨 선물이냐고]
"몰라. 그냥 '좋은 거' 라고만 하던데."
[일본의 '좋은 거'면 그거네 그거]
[엌ㅋㅋ 망가 ㅋㅋ]
[뭔 망가야 씹덕새끼야 당연히 av지]
[죄송한데 a 다음 b예요 발음때문에 햇갈리신 것 같아요]
[avcdefg ㅋㅋ 자연스럽누]
갑자기 불안해졌다.
'좋은 거'라는 팬의 선물을 막연하게 과자나 지역 특산품 같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채팅을 보니, 자신의 팬들 특성상 진짜 이상한 게 와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지. 이거 오히려 기회 아닌가?'
과연 프로 방송인인 권지현은 머릿속으로 이해타산을 마치고, 선물이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그래도 방송으로 택배 언박싱을 중계하는 상황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딱 이상한 물건이 나와준다면?
난리가 나겠지.
'미튜뷰 각이네.
생방송은 흥하고, 생방송을 편집해서 미튜브 개인 채널에 올릴 영상도 좋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것이다.
"아, 어쨌든. 이거 오면 언박싱 하는 거 보여줄랬거든? 그런데 택배기사가 한 시간 전에 온다 해놓고 아직도 연락이 없네?"
[두시간?]
[무슨 부산에서 오는 중인가 ㅋㅋ]
[일본 선물이라며 일본에서 오는 중인가보지 ㅋㅋ]
[아 ㅋㅋ]
[코런가 ㅋㅋ]
[저거네 ㅋㅋㅋㅋ]
[일본에서 오는 거면 2시간으론 안 되지 ㅋㅋ]
[일본은 ㅇㅈ이지 ㅋㅋ]
채팅창이 'ㅋ'로 도배되었다.
권지현도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큭, 아니, 아, 그런가? 진짜 일본에서 오는 중인가?"
권지현은 핸드폰에 방금 전 대화 내용을 띄워 캠에 갖다 댔다.
-쿠퐁맨입니다 고객님
-지금 집에 계신가요?
-네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건데, 뭐 어떻게 보내 볼까?"
[지금 일본 어디쯤이신가요]
[올 때 스시]
[사상검증 해보죠 독도는 누구땅이라 생각하시나요? ㄱ]
[나 한국인인데 솔직히 독도는 일본땅이지 ㅋㅋ]
"어허."
저런 위험한 발언은 그냥 놔두면 채팅창이 난리가 난다.
권지현은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해서, 해당 시청자를 채팅 금지 시켰다.
[매국노 컷!]
[저새끼 아까 그 십덕새끼 아닌가 ㅋㅋ]
[그거 난데]
[그럼 너도 나가 이자식아]
[십덕 혐오를 멈춰주세요]
[십덕 미워 십덕 나가]
[원나블도 십덕임?]
[그게 뭔데 씹덕아]
"아 됐고. 내가 알아서 보낼란다. 여러분들한테 문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물은 내가 바보지."
[ㄹㅇ ㅋㅋ 본인 라톡 대화창 세 갠데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 하나는 가족 단톡방임]
[남자 한 명이라도 있으니 리치TV 상위 1%네]
[리치TV 유저 99% 편모가정행 ㅋㅋ]
대화창을 보며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조작하는 권지현.
"언.제.쯤. 도.착.하.시.나. 요?'
시청자들을 의식하고 하나하나 낭독하며 문자를 작성한다.
답장은 거의 곧바로 도착했다.
그런데도 권지현은 눈가를 찌푸렸다.
답변 온 문자의 내용을 보고 그리 되었다.
[뭐야, 뭔데]
[후쿠시마래?]
[후쿠시마 ㅋㅋ 좆됐네 ㅋㅋ]
[방사능 묻어서 오는 건가 ㅋㅋ]
[속보) 권지현 X워먼 합류]
권지현은 핸드폰 화면을 캠에다 가져갔다.
-안녕하세요
[넹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시지 ㅋㅋ]
[후쿠시마보다는 한국이 안녕하긴 하지 ㅋㅋ]
그리곤 다시 회수해서 조작한다.
"네. 안.녕.하.세.요. 그.래.서. 언.제.도.착.하.시.나.요. 물음표."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시죠? 라는데?"
[택배 기사 당황스럽겠네 일본에서 가는 중인데 2시간마다 재촉하니까]
[ㄷㄷ 권지현 월3천 번다고 일반 시민 상대로 갑질하누]
[월 5억 번다던데?]
[속보)권지현 화성 매입]
[ㄹㅇ ㅋㅋ 일본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2시간 만에 가냐고]
[택배기사 빡쳐서 택배에 후쿠시마 잔뜩 묻혀 가겠네 ㄷㄷ]
[자살과 암살을 동시에 ㄷㄷ]
[거 권씨 느긋하게 2일 잡으쇼 2시간은 무슨]
채팅창은 이미 권지현을 놀려먹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녀의 사정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쯧쯧.
권지현은 다 들리라는 듯 캠을 보며 혀를 찼다.
그에 좋다고 'ㅋ'가 도배되는 채팅창을 뒤로하고 권지현는 말했다.
"아.까. 2. 시.간.전.에.온.다.하.셨.는.데. 얼.마.나.더.걸.리.나.해.서.요."
…
갑자기 늦어진 답변속도.
그리고 마침내 온 답변의 내용에 권지현는 한층 더 얼굴을 찌푸렸다.
[뭔데]
[무슨 일임?]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채팅창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택배가 아랫집에 갔다는데?"
권지현이 말하기 전까지는.
채팅창에 좋다고 자지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하…."
권지현가 들으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권지현 팬이 아니라 권지현 밑집 사람 팬이었나본데요 ㅋㅋ]
[권지현이 누군데 씹덕아 ㅋㅋ]
[밑집에 누구살길래 ㅋㅋ 유명한 스트리머라도 사나본데 일반인 권지현씨 싸인이라도 받으러 가죠]
권지현이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니 상황이 웃기긴 했다.
그때, 짤랑하고 경쾌한 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면에 후원 정보와 함께, 후원자의 메시지가 표기되었다.
눈에 띄게 발전해서 곧 있으면 평범한 사람 목소리와 구별이 안 될 듯한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후원자의 메세지를 음독했다.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님 ㅋㅋ 조조된 것 같은데요
아이디를 보니 다름아닌 택배를 보낸 예의 팬이었다.
"야이씨, 너는 주소를 어떻게 적은 거야?"
권지현이 성질을 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장난스러움이 느껴졌다.
권지현VS각지현 일명 각지현은 권지현의 열성 팬 중 하나로, 곧잘 후원을 해 주는 열성팬 중 한 명이었다.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아 ㅋㅋ 숫자 하나 틀릴 수도 있지 ㅋㅋ
[ㅁㅈㅁㅈ 틀릴 수도 있지 거 너무 뭐라 하네]
[이 방은 스트리머가 선물 주고 후원하는 사람을 조패나요?]
[ㄷㄷ 무섭다 후원하면 큰일날듯]
[만원을 후원했다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저도 오만원 후원했다가 짝젖 됐습니다 ㅠㅠ]
[지현 누나 무서워요 ㅠㅠ(출렁출렁)]
[ㄷㄷ 피해자 속출하는 거 보소]
[속보) 권지현 태권도 18단]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아니 근데 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님
"그럼 뭐가 문젠데."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그 택배 다른 사람이 열면 큰일남
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 도대체 뭘 보냈길래."
…
…
…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딜로 시작해서
…
…
…
-권지현VS각지현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도로 끝나는 물건임.
딜로 시작해서,
도로 끝나는 물건.
권지현는 있는 힘껏 떠올렸다.
딜도를 제외하고 딜로 시작해서 도로 끝나는 이름의 물건을.
"아, 아르마딜-로? 는 이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채팅창이 'ㅋ'로 도배되었다. 근래 들어 최고의 화력, 가장 좋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권지현의 안중엔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연했다.
자기한테 와야 할 성인용품이 이웃에게 잘못 배송된다.
택배라는 주제로 일어날 수 있는 최대급 참사 중 하나가 아니던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지금 시청자들이 미칠 듯 즐거운 만큼, 권지현은 미칠 듯 심란했다.
"너 나 일부러 맥이려고 그런 거지?"
[그, 그런가? 생각해 보니 저도 모르게 그랬을지도]
"나가 이자식아."
권지현은 각지현을 차단했다.
(권지현VS각지현 님의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물론 가장 약한 처벌인 10분 채팅 금지였다.
마음 같아선 진짜로 영구 차단을 해 버리고 싶었지만, 방송이다.
이건 방송이고, 저건 내 소중한 팬이라며 권지현은 스스로를 달랬다.
[각지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각지현좌 ㅠㅠㅠㅠㅠ]
[ㅋㅋㅋㅋ 각지현좌 미쳤누 ㅋㅋㅋㅋㅋㅋ]
[다크나이트 각지현좌 ㅠㅠ 방송을 살리기 위해 한 목숨 기꺼이 바치시네]
[권지현 VS 각지현 결과 각지현 판정승]
[벌써부터 그립읍니다 각지현님...]
[각지현 돌려내 악마새끼야!]
"으!!!"
방송이 잘 되는데 솔직히 기뻐할 수가 없는 상황.
미칠 지경이었다.
그떄 택배 기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최대한 빨리 택배 회수해서 고객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택배기사가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귀엽게 생긴 남자 캐릭터가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질 정도로 활짝 웃는 이모티콘이었다.
명백히 운송장에 주소를 잘못 적은 발송인의 과실인데도 이렇게까지 해 준다.
권지현은 택배기사의 투철하다 못해 고결하기까지 한 직업정신에 감동 받아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아닙니다
-주소 잘못 적은 사람 잘못이죠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잠시 뒤 택배기사로부터 답변이 왔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또다시 덧붙여지는 이모티콘.
방금 활짝 웃었던 남자 캐릭터가 이번엔 무릎 꿇고 낙심하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
일을 하는 내내 김이연의 머릿속은 방금 전 만났던 남자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온 문자.
'그 남자한테 보낸 택배가 잘못 간 거라고?'
보통 같았으면 자신의 과실 비율을 계산하며 불안한 생각부터 했을 김이연이 기대감을 부풀렸다.
우연과 운명이라는 두 개념의 연관성에 대해 고찰하면서,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이번에야말로 남자와 접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녀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문자를 작성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최대한 빨리 택배 회수해서 고객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신난 기분에 저도 모르게 그녀가 좋아하는 캐릭터 이모티콘까지 보내 버렸다.
귀여운 남자 캐릭터가 활짝 웃으며 김이연의 심경을 투영했다.
김이연은 다급히 인터넷 질문 사이트와 미튜뷰를 켰다.
그리고 검색한다.
(자연스럽게 남자 번호 따는 법)
(남자한테 좋은 인상 주는 방법)
(남자랑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방법)
김이연은 전에 없을 정도로 들떴다.
그리고-
-아닙니다
-주소 잘못 적은 사람 잘못이죠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전에 없을 정도로 실망했다.
'왜 이럴 때는 진상이 아닌 거야. 난리 피면서 나보고 당장 가져오라고 해야지….'
고객의 친절이 껄끄럽다.
야속함을 넘어서 원망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런 생소한 경험을 한 김이연은 생기 잃은 얼굴로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