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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97화 (197/200)

제197화

-크워어억!

콰앙-!

나무 둥치만 한 팔뚝이 바닥을 한 번 쓸고 지나갈 때마다, 병사 너덧이 곤죽이 되어 허공을 날았다.

“히이익! 괴, 괴물….”

“비켜라.”

훅-

키메라에게서 도망치느라 앞에서 걸리적거리던 병사를 잡아 뒤로 물린 나는, 코끝까지 다가온 주먹을 보며 조용히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녀석의 팔이 허공에 멈췄다.

-크웍…

푸쉿-

투두두둑-

무슨 영문인지 움직이지 않는 제 몸을 보며 고개를 갸웃 돌리던 놈은, 이내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작게 동강 났다.

“쯧. 이건 뭐 유흥거리도 안 되는군.”

아무리 생체 실험을 통해 수십 수백의 생명을 끼워 붙였다 해도, 본판이 떨어져서야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기껏해야 병사들이나 천인장 수준에 머물 놈들이었다.

물론 농노에 불과한 인력을 가져다 써먹었으니만큼 효율이야 대단하겠지만, 이 정도로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네놈은….”

가볍게 하나를 정리한 나는, 저 멀리 뒤쪽에서 넓게 전황을 살피고 있는 뱀파이어를 보며 보란 듯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놈 또한 이쪽을 발견한 듯 조용히 눈살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에릭 가이오스…. 그 반푼이가 배신자 체르페슈의 뒤를 이었다더니. 참 웃기지도 않는군. 어서 저 건방진 것을 잡아다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크워억?

-크와아악!

녀석은 이내 마력을 끌어 올리며, 사방에 퍼진 키메라들을 향해 일갈했다.

이성이라고는 단 한 줌도 보이지 않던 놈들이었지만, 어찌 그의 명령을 이해한 듯 다들 이리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바보 같긴.”

이런 놈들은 얼마나 모여 봤자 내 상대는커녕 시간을 벌어 줄 미끼조차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잘됐군.

수고를 덜었어.

이렇게 잡기 좋게 한곳으로 모아 주다니 말이야.

따악-

손가락이 튕기며 경쾌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위험을 감지하고 사방에서 몰려들던 키메라들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멍청한 놈들, 가만히 뭘 하고 있는 거냐!”

-크, 크웍…

촤악-

키메라들은 잠시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이내 거죽을 이어붙인 자국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뭣! 내 키메라들이… 이, 이 빌어먹을 반푼이 자식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수작?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를 악무는 놈을 보며, 조용히 코웃음을 쳤다.

방금 내가 무슨 수로 키메라들을 쓰러트렸는지, 뱀파이어인 녀석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놈들의 몸 안에 흐르는 피를 내 지배하에 두어, 단번에 혈관을 역류시킨 거였으니까.

“무얼. 네놈이 생각한 그대로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라! 말도 안 돼. 어떻게 반푼이 따위가!”

덤덤히 내뱉은 대답에, 녀석은 도리질 치며 부정했다.

그래, 인정할 수 없겠지.

쭉 마계에 남아 있던 놈의 머릿속엔, 아직 난 종족의 수치인 반푼이 흡혈귀일 뿐이었으니까.

혈마왕이라는 자리도 그저 잠시 공석을 메우고 있는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일곱 마왕 중 대외적으로 멀쩡하게 남은 이는 카르카쉬밖에 없었으니, 그의 총애를 받던 내가 다른 뱀파이어들을 제치고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쪽이 고작 몇 년 새에 정말 마왕의 좌에 걸맞은 실력을 키웠다는 것보단 아다리가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눈앞의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 발짝 녀석에게 다가갈 때마다, 겁먹은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크으… 빌어먹을. 시작부터 이놈을 꺼내게 될 줄이야.”

점차 다가오는 공포 속에서도 새 마왕을 자청한 자로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그는, 이내 품에서 얇은 피리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제길… 본래 카르카쉬, 그놈을 잡기 위해 준비한 녀석이건만. 영광으로 알아라, 반푼이 자식!”

삐익-!

“엘벤리트!”

쿵- 쿵-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외침과 함께, 풀숲 뒤편에서 무언가 지축을 울리며 빠르게 달려왔다.

“저, 저게 뭐야!”

“움직이는… 조각상?”

콰앙-!

-그르아아아아!

이전의 키메라들이 아이처럼 보일 만큼 거대한 덩치.

쩍 벌린 주둥이에 솟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칙칙한 회색빛이 감도는 딱딱한 피부.

이마에 난 작은 뿔과 온몸을 뒤덮은 거친 갈기.

마지막으로 피막이 돋은 날개와 얼핏 용을 닮은 생김새까지.

분명 처음 보는 해괴한 생명체였지만, 묘하게 익숙한 부분이 많은 녀석이었다.

“이건….”

“흐흐. 자, 어디 이번에도 방금 전처럼 잔재주를 부릴 수 있나 볼까? 엘벤리트, 놈을 찢어발겨라!”

-크와아아아악!

나는 무어라 입을 뗄 새도 없이 곧바로 덤벼드는 괴물을 보며, 조용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머저리 같은 놈, 승리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설마하니 7대 종족의 일원들을 모아다가 키메라를 만들었을 줄이야.

이러면 만에 하나 여기서 우리를 잡고 패권을 손에 쥐게 되더라도, 멀쩡히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의 오크나 고블린, 놀 같은 녀석들을 끼워 맞춘 괴물들이라면 모를까.

실질적으로 제 휘하에 두고서 중간계와 마계를 다스려야 할 7대 종족들에게까지 반감을 살 일을 해서 대체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콰앙-!

녀석의 거대한 앞발과 검붉은 검기가 부딪히며 폭음이 일었다.

손끝을 타고 찌르르 울려오는 충격을 보아하니, 정말 상상 이상의 괴물을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힘으로만 따지자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그나마 시체를 끼워 만든 부작용이라 그런지,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일 이런 놈이 마력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다면, 그가 자신하는 대로 상당히 번거로운 상대가 됐을 테니까.

콰아앙-! 콰아아앙-!

후두둑-

“으하하하! 그래, 그거다 엘벤리트! 그대로 그 반푼이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려라!”

쉴 새 없이 주먹이 몰아칠 때마다, 땅이 갈라지고 그 파편이 주변에 튀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행히 그 무지막지한 힘만큼이나 몸놀림까지 빠른 건 아니었기에 공격을 피하는 데는 여유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여유가 없었다.

“난감하군.”

적당히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리라 믿었거늘.

키메라들만 없다면 오합지졸에 불과하리라 생각했던 적들은, 의외로 확실하게 아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모두가 성벽을 넘으며 지칠 대로 지친 것도 문제였지만, 카르카쉬는 물론 카렌과 아이시스 같은 전력이 일전의 마법으로 마력을 많이 써먹은 것이 컸다.

더구나 어찌 성벽을 날려 버리긴 했어도, 엘프와 드워프들 또한 전멸한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반대편 성벽까지 허겁지겁 도망치던 놈들이, 어느새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 앞뒤로 아군을 몰아넣고 있었다.

카가가각-

“으하하! 소용없다. 영창조차 하지 않은 그깟 혈마법 따위로, 엘벤리트의 갈기와 거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중간중간 틈을 봐서 만들어 낸 핏빛 바늘들은 놈의 두꺼운 가죽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떨어졌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녀석을 노리고 쏜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쿠르르륵-

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점점 질척이기 시작하는 바닥을 보며, 슬쩍 자칭 정통 마왕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별칭에 맞게 반으로 갈라져라, 반푼이 자식!”

혈마법인가.

난 이윽고 바닥 아래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형체를 잡아가는 핏빛 대검을 보며, 꽤 의외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훑었다.

과연, 뒤에서 키메라들만 부릴 줄 아는 쭉정이는 아니었군.

생각보다 마법에 담긴 마력량이 많았다.

아무리 이 키메라가 쓸 만하다고는 해도 도대체 어떻게 카르카쉬를 잡을 생각이었는지 싶었는데, 꽤나 그럴싸한 한 방을 갖추고 있었다.

안쓰럽게도, 이쪽은 전혀 당해 줄 생각이 없었지만.

“가라앉아라.”

번쩍-

“읏… 뭐, 뭐냐. 설마 그사이에 영창을?”

영창은 무슨.

짧은 읊조림과 함께, 환한 빛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지금껏 공격하는 척, 이 키메라에게 핏빛 바늘을 맞춰 가며 녀석의 거죽에 새긴 마법진이 발동한 것이었다.

-크, 크와아아아악!

마법진에서 진득하게 묻어나온 핏물이 그 큰 몸뚱이를 천천히 휘감았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중간에 피가 좀 모자라긴 했지만, 그거야 어디에서든 늦지 않게 보충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 그래 봐야 이미 늦었… 어? 대, 대검… 내 마법이!”

녀석이 힘들게 영창해 만들어 놓은 대검은, 한 번도 휘둘러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내 마법의 원료로 빨려 들어갔다.

내 마력이 감히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았기에.

혈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한참이나 앞서고 있었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크르륵, 그륵…

“에, 엘벤리트!”

결국 제 주인이 불러 낸 대검의 몫까지 더해 빈틈 하나 없이 핏물에 온몸이 젖은 키메라는,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서 올라온 손들에 붙잡혀, 천천히 피 웅덩이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어, 어떻게… 컥!”

콱-

제 수족처럼 부리던 키메라가 없어진 녀석은, 멍한 얼굴로 너무나도 쉽게 목을 내주었다.

“오, 오베른 님… 윽!”

“방해하지 마라. 이미 승부는 끝났으니.”

그를 본 간부들이 놈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질척거리는 바닥 위로 떠오른 핏빛 창에 주춤주춤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아직 현실을 부정해 볼 셈인가?”

“꺼윽, 끅….”

녀석, 오베른은 제 목을 붙든 손을 어떻게든 떼어 내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다.

“끄… 바보, 같은… 흐, 흐흐. 주변, 을….”

뚜둑-

“아, 아아… 오베른 님!”

그는 목이 졸려 부러지는 와중에도, 끝내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곧 축 늘어진 녀석의 시체를 바닥에 던지며,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멍청한 놈. 주변이 어쨌다고…

“…음?”

오베른이 마지막까지 내뱉으려 했던 말을 떠올리며 슬쩍 주변을 둘러본 나는, 그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 멀리 자취를 감추어 버린 아군을 보며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짚었다.

“이거야 원, 앞으로 고생 좀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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